[불교사 명장면] 9. 밀교의 출현
고대 ‘탄트라’ 수용했지만 대승불교 사상 기반
7세기 중엽 대승교학과 수행법 결합
밀교 경전 ‘대일경’ ‘금강정경’ 성립
# 밀교의 형성
밀교의 본격적인 출현은 A.D 7세기 중엽 이후에 해당하지만, 그 기원은 불교의 시작과 함께하며, 불교 대중화의 과정과 관련을 맺는다. 불교가 인도에서 성립되는 시기(B.C.5~6세기)에는 인더스(Indus)문명의 유산을 비롯한 아리야(Arya)인들의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s.ad) 등의 다양한 인도의 전통종교가 전승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토양 위에 새롭게 형성된 불교는 기존종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새로운 정신적인 질서를 강조하면서 이들 전통종교와는 차별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특히 초기불교 시대에는 개인적인 해탈이라는 불교의 독창적인 영역을 강조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봉헌의식과 주술적인 제의가 중심인 전통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종교는 궁극의 문제에서부터 인간의 현실문제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교라도 그 종교가 속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철저하게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일반대중들에게는 현실이익적인 의례나 기원 등의 소박한 종교적인 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불교 또한 자연스럽게 인도사회와 문화에 적응해 가면서 그것을 수용하고 불교적인 원리로 재구성하는 불교 내면화의 과정을 통하여 이들을 수용하게 된다.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출가 수행자들의 교단 내에서 자신의 안위와 수행을 위해서는 주술적인 방법인 호신주(Paritta)나 명주(Vidya) 등의 종교적인 행위가 용인되기도 하였다. 더욱이 일반대중들에게는 종교적인 의식을 동반하는 구원의 가르침으로 적극적으로 제시되었으며, 대부분의 종교적인 의식은 인도 전통종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의 차이는 출가자 중심의 상좌부와 일반인의 교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부의 근본분열을 비롯하여 이후의 부파분열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부파교단은 불교 학문화로 고착되었다. 반면 일반 대중들에게는 불교의 종교적인 구원의 성취에 대한 사회적인 욕구가 증가해, 불교적인 주술로 대체하는 주법(呪法)을 비롯한 삼장 이외의 주장(呪藏)이 성립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초기불교 이후로 불교포교의 지역과 대상이 확대되면서 대중종교로서의 불교의 역할이 인도 사회로부터 요청되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불교 대중화의 새로운 불교전개를 선언 한 대승불교가 A.D 1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기존의 불교전통 위에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사상적인 변화와 함께 인도 문화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현저해지면서 종교적인 입장이 강조되는 밀교적인 요소와 역할이 점차 대승불교 속에 편입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의 초기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다라니(Dha-ran.i)의 의미와 기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 대중화의 일환으로 시작한 대승불교 역시 다른 학문불교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대승불교의 대중화의 역할은 초기밀교 경전들을 통하여 꾸준하게 전개되었으며, 다라니가 중심이 되는 초기밀교 경전들이 A.D 4세기 이후부터 수없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학파는 6세기 이후 대두된 중관학의 귀루논증파(Pra-san.gika)와 자립논증파(Sva-tantrika), 유식학의 유상유식파(Sa-ka-ra-vijn~anava-din)와 무상유식파(Nira-ka-ra-vijn~anava-din)의 상호 대립과정 속에서 학문불교로서의 한계를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가중관의 사상가인 적호(a-ntaraks.ita) 등이 7세기 이후 등장하면서 대승교학의 종합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함께 초기밀교 경전의 다양한 다라니, 인계, 만다라, 호마법 등의 수행법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이런 과정에서 7세기 중엽에 이르면 대승교학과 수행법들이 결합하면서 밀교의 양부대경인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되고, 밀교의 독창적인 교학체계와 함께 수행법이 정리되면서 본격적인 밀교가 형성하게 된다.
밀교는 인도에서의 적응을 위하여 외부적으로는 인도종교의 종교적인 의례나 실천방법 등을 수행도로 채용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대승교학의 종합적인 정리를 통하여, 불교 근본정신의 대사회적인 실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런 점에서 밀교형성은 불교의 근본정신을 인도사회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펼쳐가는 불교대중화의 과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대중 속에서 배양된 ‘살아있는 종교’
# 밀교의 의미
인도불교를 시대적인 전승에 따라 초기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밀교로 구분한다. 따라서 밀교는 인도불교의 최종적인 시기에 해당하는 대승불교의 전개과정에 해당한다.
밀교(Esoteric-Buddhism)는 비밀불교의 약칭이며, 현교(顯露佛敎)에 상대하는 용어이다. 현교란 언설(言說)로 표현된 삼장 등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밀교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적인 신비한 경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밀교는 불교전통 중에서 신비한 종교적인 체험과 관련한 영역을 중시한다.
본래 비밀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는 Guhya이고 독자적인 비밀승을 나타내는 것은 Guhya-ya-na이지만 이러한 용어는 발견되지 않는다. 인도문헌에서는 주로 대승불교와 관련된 수행방법인 바라밀다수행(Pa-ramita--naya)과 진언수행(Mantra-naya) 두 가지가 언급된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밀교는 대승불교의 한 수행도로서 진언수행을 위주로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최근에는 서양학자들에 의하여 밀교를 탄트라 불교(Tantric-Buddhism)나 불교의 탄트리즘(Buddhist Tantrism)으로 호칭된다. 이것은 대승경전을 의미하는 수트라(Su-tra, 經) 대신에 8세기 이후의 후기밀교 경전을 탄트라(Tantra)로 호칭한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내용이 주로 인도 고대종교의 신화적인 내용을 의미하는 탄트라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된 이름이다.
그러나 밀교는 외형적으로 인도고대 종교문화에 해당하는 인도 탄트라를 수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상에서는 대승불교의 사상적인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인도밀교는 독자적인 교단이나 사상사적으로도 대승불교와 분리하여 존재하였다고 생각될 수 없기에 대승의 진언 수행도의 일부분으로 취급된다.
이런 점에서 밀교는 인도사회에서 불교의 독자적인 교학체계에 머물지 않고 불교의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밀교를 통하여 인도인의 현실생활과 부합한 인도종교로서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유럽의 불교연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교로 간주된 원시불교가 중심이었고, 근대 합리주의의 일반적인 풍조 속에서 불교는 종교적인 의미를 설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대승불교 특히 밀교는 불교의 예외적인 것으로 경시되었다. 이것은 밀교가 지닌 종교적인 성향에 해당하는 심비성(深秘性).상징성.의례성 등이 원시불교의 척도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밀교에 대한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밀교가 지닌 이러한 특성은 본래 인도종교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며, 따라서 밀교는 인도대중 속에서 배양되어 온 불교의 살아있는 인도종교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진설명: 밀교는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에 전해져 불교대중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 라닥의 알치사원 슘첵라캉에 조성된 문수(위쪽).관음보살. 불교신문 자료사진
팔리왕조 밀교대사원 건립
13세기초 이슬람탄압 소멸
# 밀교의 전개
정형화된 밀교경전인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하는 7세기 중엽부터 8세기에 걸친 기간을 중기밀교 시대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밀교의 형성과정에 해당하는 다라니를 위주로 한 주술적인 종교의례가 중심이 된 것을 초기밀교 시대라 하고, 8세기 이후 〈금강정경〉계의 경전들이 전개되면서 경전의 명칭을 탄트라로 호칭한 시기를 후기밀교 시대라 한다.
초기밀교 시대는 주로 굽따(Gupta) 왕조시대(320~500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힌두교 전성기다. 이러한 사회적인 추세를 받아들인 초기 밀교경전에는 주로 인도종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인 주술적인 다라니 등의 종교적인 작법을 통하여 현실 이익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내용들이 서술되었으며, 인도 전통종교의 다양한 신들과 제천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도 전통종교적인 내용들은 불교적으로 순화되면서 불교 수행법으로 정리된다.
이들은 중기밀교 경전인 〈대일경〉속에서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는 제불과 보살 및 성중 등을 비롯한 제천들이 태장계 만다라를 중심으로 정리되고, 일체지지의 관법화와 중관과 유식, 여래장 사상 등의 종합화와 함께 삼밀수행과 오자엄신관, 관정, 호마 등의 정형화된 밀교신앙의 형태로 등장한다.
7세기 후반의 〈금강정경〉의 시대가 되면 대승교학적인 설명은 줄어들고, 오불을 중심으로 하는 금강계만다라 삼십칠존의 등장과 함께 입아아입관(入我我入觀)의 유가삼밀을 통한 오상성신관의 관법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8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가 되면 중기밀교의 전통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어 현실긍정적인 대락(Maha--sukha)사상과 반야와 방편의 쌍입(Yuganaddha) 등을 위주로 하는 후기밀교 경전인 무상유가 탄트라(Anuttara yoga-tantra)가 등장한다.
이는 더욱 방편 부(父)탄트라와 반야 모(母)탄트라, 불이(不二)탄트라로 세분된다. 방편 부탄트라는 반야와 방편의 성취로 중생을 위한 대비행의 성취와 생기차제와 구경차제 등의 수행법을 설하는 비밀집회 탄트라이다. 반야 모탄트라는 차크라(Cakra) 등의 육신 생리이론에 기초하여 대우주의 법신을 성취하는 수행법을 설하는 헤바즈라 탄트라(Hevajra-tantra) 등이다. 불이 탄트라는 대비방편 탄트라와 공성반야 탄트라의 통합인 이이불이(二而不二)를 설하는 칼라차크라 탄트라(Ka-racakra-tantra)가 해당한다.
이러한 밀교의 노력에 의하여 8세기 이후의 불교는 인도대중의 종교로 승화되면서 불교의 전통적인 가르침들은 밀교 속에 내포되어 팔라왕조(Pa-la, 8세기 중반~12세기 중반)의 후원으로 건립된 위크라마실라(Vikramaila-)와 오단타뿌리(Odantapuri) 등의 밀교 대사원을 거점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밀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3세기 초 이슬람 세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하여 승원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인도 대중에게 뿌리 깊게 자리한 밀교의 수행법들은 민간신앙적인 요소로 남아 아직도 인도 동부의 벵갈(Bengal)이나 오릿사(Orrissa) 지방 등에 전승되고 있으며,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대승 불교권은 물론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 지역에서도 불교신앙과 의례의 중심을 이루는 불교 대중화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장 익/ 위덕대 교수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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