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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룻기 1:1-5
주제>:주님을 향하여
제목>: 하나님을 떠나서...
명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나타내신다.
설교목적>:무사 안일주의에 정체된 성도들을 전진하는 신앙인 이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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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우영 목사(벧엘동산교회) 1994년 10월 30일 /주일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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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조국의 품에 돌아온 64세의 조창호 소위가 대통령에게 귀환 신고를 하는 모습은 가히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습니다.
6.25전쟁, 꽃다운 21세 때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64세가 되어서야 돌아왔습니다.
그는 신문기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집에 가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남한이 바로 내집입니다. 가다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52년 월남을 기도했다가 실패해 교화 노동형을 선고받아 13년간 교도소에서 생활했고, 64년 교도소에서 나와 지하 2백m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이후 줄곧 내가 묻힐 땅은 이북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생각으로 2년전부터 압록강 주변 연변에 살면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조창호 소위는 오로지 내 조국의 품안에 안겨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달리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여 드디어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아니 그는 조국을 쟁취했습니다.
북한에는 아직도 5만명 이상 되는 국군 포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직 달리고 달렸던 조창호 소위만 조국을 쟁취했습니다.
미래의 천국은 오직 믿음으로 갈 수 있지만 오늘의 천국은 쟁취해야 합니다.
오늘 이 죄악된 세상 속에서 누릴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평화와 사랑과 안식의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창호 소위처럼, 오직 내 아버지의 나라에 안겨서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달리고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낮잠 자다가 얻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은 운이 좋아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권 당첨되듯이 가정에 평화가 있고, 교회가 부흥이 되고 사회가 안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수 대교가 무너지고 충주호 유람선이 불타고 여기 저기에서 대형 사건이 날마다 터지는 이유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옮겨 놓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걷은 것뿐입니다. 무사 안일과 복지 부동, 좋은 게 좋은 거, 대충대충, 적당히, 불법을 행하고 편안하게 쉽게 쉽게... 이렇게 뿌려 놓은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선진국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천국은 쟁취해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쟁취합시다. 교회 부흥을 쟁취합시다. 믿음 충만,성령 충만을 쟁취합시다.
그런데 슬픈 일은 근래에 우리 교회들의 풍조는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들 보다 쉽고 편안하다면 기꺼이 「주님을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해 따라가고, 돈 바라기는 돈만 따라가는데, 성도는 주바라기는 주만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11:12),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진취적인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달리고 달리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사회에 대한 무기력증』의 원인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달리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도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성도들의 자화상이 B.C 1300년경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Ⅰ.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입니다. 그는 그의 가족을 이끌고 고향 땅을 떠나 모압 땅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등지고 세상 나라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의 이 떠남은 단순한 이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모압은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이 혐오하는 나라입니다.
시 60:8)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압은 내 구정물통이라")
모압이라는 나라는 롯과 그 딸의 불륜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악하고 음란한 혈통입니다. 쾌락과 음란한 우상을 섬기는 소돔의 후예들입니다.
A.그가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1.그 시대의 풍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부터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통치가 있기 전까지 약 350년 기간을 사사 시대라고 합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는 왕이 아니라 사사였습니다.
士師는 전쟁이 나면 구원자가 되었고, 평소에는 백성들의 재판장이었고, 스승이요, 지도자였습니다.
이 士師의 통치 시대는 영적인 무정부 시대였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평화할 날이 없는 어두운 고통의 시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던 불순종의 시대였습니다.
사사기의 맨 마지막 구절은 사사 시대의 350년 동안의 시대 상황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삿 21: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 시대의 풍조는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상은 마귀가 준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의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엇입니까? 삶의 노선이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천대받아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기 노선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엘리멜렉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세상의 풍조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풍조는 어떻습니까? 오늘도 역시 「자기 뜻대로, 제 마음대로」삽니다. 모두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혼자서 잘난 척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까? 남들이 하는 데로 살아야 편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나는 나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수 없는 이유는
1)마음에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 30: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2)마음에 하나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일 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3)마음에 겸손한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상 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집과 같아서 시험 환난이 오면 무너지게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이 이렇게 시대의 풍조를 따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시대 풍조를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까?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래도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주님 앞에 회개하며 도움을 청하면 성령께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2.그 땅에 흉년 때문입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엘리멜렉이 하나님의 땅을 떠난 두 번째 이유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흉년이 웬 일입니까? 그러나 사사 시대는 잦은 전쟁과 기근으로 흉년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는 방법으로 흉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풍년의 때가 아니라 흉년의 때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궁핍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다면 그 땅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하나님의 보호가 함께 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보호가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보호가 중요합니까? 물질의 풍요를 더 쫓습니까, 믿음의 풍요를 더 쫓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거해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떠나서는 안될 곳이 있습니다.
요 15:5)...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라도 세상에 풍족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에게 흉년이 와 있다면 정신차리십시오. 目下 당신은 지금 시험 중입니다. 흉년을 통과하게 하여 당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업에 자금이 매 말라 갑니까?
당신의 부부사이에 애정의 기근이 왔습니까?
당신의 건강에 흉년이 찾아왔습니까?
"주의하십시오." 당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십니다.
3.잠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엘리멜렉은 잠깐 모압에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1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임시로, 잠깐만의 외출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주 눌러 살고 영영히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란 처음엔 잠시,임시로 시작합니다. 마약중독자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원리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에 살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2:11-13)
"이번 주일만 빼먹겠습니다." "이번 십일조만 이해하십시오."한번만 거짓말하겠습니다". "잠깐만 봉사생할 쉬겠습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만 신앙생활 쉬겠습니다."
모든 하나님을 떠나는 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잠시 수영하러 낙동강에 들어갔는데 38년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 내 친구처럼,"
임시 우거하러 모압에 갔다가 영영히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못한 엘리멜렉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잠시도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쉬지 말고 주님을 향하여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B.하나님을 떠나게 된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1.입술뿐인 믿음 때문입니다.
엘리멜렉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 준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입술은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의 삶은 어떠합니까?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살고 있지 않습니까?
입술뿐인 믿음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 29:13)"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여도 마음은 내게서 멀 도다"
마 7:21)"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술의 기도만큼 삶에도 힘씁니까? 말씀에 '아멘'한 만큼 생활이 있습니까? 주님이라고 부르는 만큼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까?
입술뿐인 믿음은 언제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2.이름뿐인 믿음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이름은 "기쁜,사랑스러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압에서의 삶은 이름과는 달리 괴로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죽하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자기의 이름을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움)라고(20절) 불러 달라고 했겠습니까?
절에 이름만 올려놓고 가끔 시주 돈이나 갖다 바친 사람같이 신앙생활을 하시지 않습니까?
집사란 무엇입니까? 하인입니다. 여자는 종년이요, 남자는 종놈입니다.
성도란 무엇입니까? 구별된 깨끗한 하나님의 소유된 무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분명한 자기 인생의 노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름만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有名無實』하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 중에 『구실 주의 인생관』이 있습니다. 다 제각기 이름 값을 하면 이 나라는 부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자기 구실은 하지 못한 채 남만 원망하고 있습니다.
10월 27일 대만에서도 13명의 사망자를 낸 가라오케 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대주 대만 시장은 이 화재 사건의 책임자로 자신을 처벌해 줄 것을 차청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외토픽으로 전 세계로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서울 시장이 책임을 졌습니까? 애꿎은 그 밑의 부하 직원들만 쇠고랑을 찼습니다.
자기 구실을 해야 모두 잘 살게 되는데 말입니다....
성도 님들이여, 집사님들이여, 자기 이름 구실을 잘 감당합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름뿐인 사람은 언제나 세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일
A.남편이 죽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만 믿고 고향을 버리고 논밭전지와 이웃과 친지를 뒤로하고 모압 땅까지 따라왔는데, 더 잘 살 수 있다는 남편을 하나님처럼 믿고 따라왔는데 그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시 127: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 함이 허사로다
아내들이여, 하나님 대신 남편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B.자식도 죽었습니다.
3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남편이 죽고 난뒤, 그래도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대개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들은 어려서는 부모님을 믿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믿고, 사별해서는 자식을 믿고 산다고 합니다.
나오미도 두 아들을 하나님처럼 믿고 살았습니다. 성도들이여 자식을 믿지 마십시오. 자식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두 아들을 모압의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큰 아들 「말론」은 「룻」과, 작은 아들 「기룐」은 「오르바」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이제 곧 손자를 안을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마저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와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까지 잃어버린 나오미,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큰 아들의 이름은 「말론」으로 "보잘 것 없는, 병"
작은 아들은 「기룐」으로 "소멸하는,폐병"
이 두 아들들이 얼마나 날 때부터 병약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큰 아들을 "병"이라고 불렀으며 작은 아들을 "폐병"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어쩌면 두 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풍족한 땅 모압으로 건너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병약한 두 아들마저 자손도 남기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모압에 온 엘리멜렉의 가족은 10년만에 나오미 만 덩그라니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시리아역 성경은 5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얻어서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들의 날수가 단축되었더라」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 엘리멜렉의 말로입니다.
신약의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말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밖에는 진정한 생명의 평안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의 어디를 가도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Ⅲ.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섭하십니다. 때때로 괴롭히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매를 드십시오. 간섭을 하십시오. 벌을 주십시오. 괴롭히십시오. 그래야 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던 일이 잘 안됩니까?
일마다 꼬입니까?
괴로운 일이 자꾸 생깁니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처럼 믿었던 사람이 떠났습니까? 애지중지하던 자식이 떠났습니까? 이럴 때일 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위치를 확인해 보십시오. 당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키질의 원리를 생각하십시오.
키질을 할 수록 점점 안으로 다가서는 것은 알곡입니다. 껍질과 겨는 점점 밖으로 밀려 나갑니다. 환난과 시험은 참된 신자를 가려내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알고 보니 그것이 축복이었습니다.
기독교 인기 작가 김성일씨의 간증에 의하면
그는 한 때 패기 있는 문단의 총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우 그룹의 이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사상을 신봉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에게 나오미의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교통사고로 건강이 깨져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큰 수술로 죽어 갈 때 더 깨졌습니다.
부인이 위암으로 투병할 때 완전히 깨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밤중에 교회에 나가 차디찬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복했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신호에 응답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는 수많은 신앙의 소설을 써내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기독교의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혐오하는 땅에서 풍성히 잘 사는 것보다 그 곳에서 다 죽었버린 일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나오미의 비참한 실패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품속을 향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패했습니까? 하나님의 그래도 당신을 보호하고 영원히 존재하고 계십니다.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결언:
「주님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어떠한 고난과 시험이 닥쳐도 천성을 향하는 성도의 길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64세의 노병 조창호 소위처럼 43년동안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조국의 품에 안기어 대통령께 눈물의 거수 경례를 붙이며 귀환 신고를 하는 저, 감격적인 장면을 보십시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리고 달린 역전의 신앙용사에게 "잘하였구나 눈물을 씻겨주시면 생명의 면류관을 씌여 주실 것입니다.
낙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실패한 엘리멜렉의 집안이 어떻게 주님을 향하여 다시 일어섰으며 전진하는가?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을 향하여 』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