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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냥 써 가 는 이 야 기
2012-09
깨어진 콩나물시루항아리 화분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올해의 여름 무더위는, 가물어 메마른 땅 위를, 면도칼이 그 날을 세우고 입술 우측을 잘못 스쳐 지나치는 바람에, 살갗을 훌고 지나치면서 배어 나오는 불그스런 핏빛처럼 매우 따가운 날들의 계속이었다. 그와는 반면으로 추위를 생각하자면, 지나간 겨울은 쉬이 앓는 감기처럼 그냥 가는 듯 보낼 수 있었지 만, 그 전해의 겨울인 이천 십년의 겨울은 지푸라기 지붕의 처마에 매어달려 늘어진 가락 가락의 기다란 고드름처럼 그 길이가 무척 길며 굵직한 추위였다. 이런 날들 속의 사람들은 접두어에 맹위(猛威)라는 말을 하거나, 겨울나기가 고되다는 말을 집어넣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만을 눈여기며 쳐다보게 되는, 우물 안의 뭐와 같은 감사의 얘기를 하자고 들자면, 우리는 뚜렷뚜렷한 사계절의 품안에 싸여져서 안에 들여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라 밖의 다른 외진, 그 지구 어디에 떨어뜨려놓더라도 잘 적응을 하게 된다고 친구인 말짱 황(黃)을 통하여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여러 차래였지만, 나는 외국이라고는 2009년 5월에 동료들이 어렵게 모여진 크지도 않은 것을 지니고 필리핀의 정 형을 찾아갔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 나라는 무덥기는 하였으나 건습한 더위라서 그리 땀을 흘리지는 않았었다. 야박스럽게 나는 방송으로만 접하였지만, 그 건습한 혀에, 지나간 해에 이어서 올 해에도, 하늘은 무심한 것 마냥, 그 하늘아래의 땅들이 물을 들어 켜도 너무 들어 켜게 쏟아 부어서, 그 나라의 서울인 마닐라가 온통 물바다로 넘쳐져서 백성들이 발 디딜 곳이 없어 절절 매여하는 모습이 몹시도 애처로웠다. 이런 모습을 멀리서 그저 쳐다만 보듯 얼핏 보면서도, 마음은 우리 공동체에 작년 시월 경에 마스크를 하신 사모님을 모시고 들르셨던, 같은 필리핀의 주민들을 섬기시는 장 목사님 부부가 생각되어진다. 목사님 사모님은 작년에 아기를 낳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는데, 그 때에 몇 곳의 병원들에서 여성분들에게 원인모를 폐질환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목사님의 사모님이 그 아픔에 맞닥치게 되어서,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교회단체 총회의 관심 아래 여러 교회와 사람 사람의 뜻들이 모아졌다. 조직이 전혀 다른 어느 분의 폐를 이식 받아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지금도 그 어두움의 터널을 헤쳐가려는 목사님 부부에게 나의 절실함도 함께 모여지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중동 열사(熱砂)의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어느 기업체의 현지 운영인으로써 몸소 생활을 하시기도 하셨으며, 그리고 후에는 이 나라의 안전기획부 등에서 계시다가, 그러면서 교회선교의 책임감과 그 시각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경기 군포의 홍 목사님도 생각 속으로 찾아든다. 내가 그 어려운 사람살이를 서술하는 구약성서 욥기서를 읽으오니 그 성서에서 전해주는 한 말씀을 들려주세요. 부탁의 말씀을 드렸더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8-10). 사람은 약하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약하지만, 그 반면에 그러한 난관 속에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강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12:10).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그런 말들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것이 길으면 길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바로 우리들의 살이가 다 그렇고 그러한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에서 나에게 부여된 살이 속에서의 절절한 고백 속에서의 의미가 깃들여진 삶일 것이다.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다녀오는 길에 차간의 어머니들이 하시는 말씀 “이렇게 몹시 더워도 추운 겨울보다는 더 났다”는 말씀을 옆에서 듣게 되니 “아 연세의 어르신들은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겨울의 추위를 되 새겨 가시며 삼복더위를 넘겨 가시는 구나”하는 생각이, 그 차가 길을 지나쳐 가듯이 언뜻 나를 스치며 갔다. 한 이십 몇 년 전인가? 테레비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햇볕에 땀 말려라”라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된다. 올 해는 백여 년 만에 찾아든 가뭄이라고 방송에서도 말을 하며, 또한 느껴지는 그 열기의 기세가 대단하다. 우리는 농사를 조금 짓기에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메마른 갈색의 날씨 속에서도, 밭의 아래쪽에 심은 감자 농사는 잘 되었다. 그러나 지나간 해에 고추 값이 비싸서 그것을 되새겨 가며, 그 간에는 농토의 부족함으로 심지 않았던 고추를 올 봄에는 밭의 위에 쪽에 심었으나, 물 부족으로 그 키가 잘 자라지 못한 채 고추농사가 거반 피농에 가깝다.
2008년 혹은 다음 해인 9년 즈음에, 고향 마을인 우리 동네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농사일을 해나가는 영관 집사님, 그 때에는 포도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밭 옆에서 기르던 꽃나무인 “천사나팔”을 몇 그루 얻을 수 있었다. 그 꽃은 쉽게 보기에는 길이가 호박꽃보다는 더 길며, 그 호박꽃이 활짝 핀 모습이라고 말하면 맞는 표현은 될는지? 노란색의 딱 피어난 그 모습은 이름처럼 입으로 불려지는 악기인 나팔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을에 계시는 최 목사님께서도, 돌계단으로 교회를 보며 오르게 되면, 교회 앞마당의 끝부분인, 오르는 계단 맨 위의 양 옆에 커다란 두 개의 화분에 주렁주렁 늘어뜨려서, 만발하게 천사나팔이 가득 피도록 열심히 물을 주어가며 가꾸시는 모습이 여상하게 머릿속을 그리며 간다. 그 천사나팔을 보면서더부살이하는 이들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년(喜年)의 힘찬 빵빠레 소리를 듣는 것 같다. 희년은, 우리도 그렇게 해보았는데, 일곱 해씩 나누어 마지막 연도인 칠 년째는 농사로 일구어 오던 농토를 쉬게 하는 안식년(安息年)인데, 이 안식년이 또 일곱 번 합쳐지면 칠칠은 사십구 년이 되는데, 그 다음해인 오십년 째에는 종이나 노비들이, 그 노릇하던 곳에서 놓여나서 자유를 찾게 되고, 농토도 처음 하나님에게서 나누어 받은 원주인에게로 돌아가는 환원(還元)의 아름다움이 다가드는 해이다. 오십 년째 되는 해에는 “희년(喜年)의 나팔소리를 크게 울려라. 죄 벗는 이 날 너희는 나팔을 불어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 해방을 선포하여라. 저마다 제 갈 곳으로 가거라......(!) 바로 그 통쾌한 기쁨의 날이 생각난다(레위기 25:8-12 -공동번역성서). 그 꽃나무는 물을 매우 좋아하고 햇볕도 덩달아서 좋아하는 열대성 식물로 여겨진다. 바로 아래 부분에서 흠뻑 머금은 물을 꽃잎으로 활짝 배출을 하는 모습이 자기 할 일에 우리들보다 더 열심인 듯하다. 코를 그 꽃 가까이에 들여대고 냄새를 흠뻑 빨아들이면, 그 향취에 취하며 상큼함이 치달아, 나를 골때리게 해서 머리끝에까지 다 시원한 듯하다(고린도후서 2:14-15). 그 반면에,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그 꽃 속에서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차면 기우나니”라는 유행가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뭐던가? 그 꽃은 노란빛이지만, 제아무리 아름다운 붉은 꽃이라고 해도, 채 열흘을 넘겨 가며 오랜 동안 불그스름함을 지녀 갈수는 없다는 얘기이다(베드로전서 1:24-25). 그 꽃나무는 추위에 약해서 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집 안으로 들여 놓아야 한다. 2010년도의 모진 추위의 겨울 동안, 살림집을, 나의 몸을 이불에 꽁꽁 싸가듯 그렇게 대비를 하지 못하고, 섣부르게 대하는 바람에, 고약스럽게 우리에게 다가드는 강추위와 그 보다 더했던 것은 그 추위가 길었다는 것, 그래서 그해의 겨울밤들은 동짓날만큼이나 긴긴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은 온통 사람들을 각각 그들의 집집에 집어넣었다. 긴 바람결에게, 그 바람과 추위들이 이곳 우리 집에서 살라고 비워 주고, 우리 부부와 아이는 밑의 건물인 어르신들이 계시는 공동체 건물로 들어가서 더불어서 살아가게 되었는데, 깜박 잊어버리고 위엣 건물인, 바람에게 들어와서 살라고 한 곳에서, 그 화분들을 아래로 옮겨 오지를 못했다. 우리가 생각이 모자랐던 것은 어쩌면 몸이 움츠리면서 생각을 담을 통머리까지 작아져서, 채 그 나무들을 담아오지를 못하고, 내빼듯 해가며 나와서, 들어선 것이, 마치 아낙네들에게 들어서는 어린 아기처럼 들어선 것 갔다. 몇 달 전에 오십 중반의 어느 목사님의 말씀에, 살다가보니까 사람이 오십이 되기 전까지는 어린 아이였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바로 그 아이처럼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이, 그 화려했던 꽃을 담을만한 마음의 토대를 지니지를 못했던 것 갔다. 스스로 자기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미더운 사람이 그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미더운 사람으로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나아가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면 숙제일 것이다. 그 결과로 추위의 집 안에서 몇 나무를 동사로 고사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겨우 한그루의 천사나팔만이, 지금 것 유행했던 노래처럼 나팔꽃 인생을 불러 가며 지내고 있다.
그 꽃나무의 화분은 예전에 밑이 뚬벙뚬벙하게 뚫려진 양옆으로 손잡이가 달린 콩나물시루로 사용하던 옹기(甕器)에 흙을 담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줄줄이 주는 물도 줄줄줄 밑으로 잘 빠져나간다. 올해의 긴 여름가뭄을 뒤로하고, 볼라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8월 말일 즈음에 대형 태풍이 찾아들었다. 방송에서는 그 태풍의 위력에 깨어지지 않고 막아내기 위해서는 유리창에 젖은 신문지나 혹은 끈적거리는 기다란 비닐테이프를 붙이라고 야단법석을 떨어댄다. 바람에 가지들이 몹시 흔들리는 화분을 현관 안으로 들이려다 보니, 세월이 여삼추(如三秋)해서 그랬던지? 그 화분이 각을 지어 아래와 위로 향한 부분인 밑모서리의 한 귀퉁이가 조각을 이루며, 전에 깨어졌던 듯 한것이 막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밑 부분의 일부가 떨어지게 되었는데도, 수년 동안 그 안에서 물을 먹으며 다져져서 그러한지? 흙은 흘러내리지를 않고 야물게 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고착화(固着化)라는 틀에 박힌 그 단단함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음이던가?하기야 어느 사람들은 그 틀을 이겨내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나는 군대를 같다오지를 못해서 그런지, 그 말보다는 격식을 깨는 헐랭이 국수마냥 헐렁헐렁, 인절미 마냥 몰랑몰랑이 이라는 말이 더 좋은 듯하다. 우리 개신교가 신교라면, 구교인 카톨릭 천주교회에서 바로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의 아호(雅號)가 바로 그 “옹기”이다. 그 분은 “옹기같은 사람”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얘기 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는 특별합니다. 오래된 옹기의 뚜껑을 열어 보면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게 있습니다. 무자비한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옹기나 숯을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지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습니다. 곡식도 담고, 오물도 담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그릇이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될 수 있을까요?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 세상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제 아호도 ‘옹기’로 정한 것입니다.” 깨어진 항아리화분에서, 천사나팔꽃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흙덩이 채 고스란히, 큰 플라스틱화분으로 옮기려고 플라스틱화분에 옹기화분의 그 자체를 통째로 넣으니, 플라스틱 빈 화분에 옹기 시루가 꼭 들어맞게 끼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꼴이 되었다. 나는 생각의 짧음으로 실수로 그렇게 하였지만, 우리의 살이도 우연이 아닌 필연 속에서 이리 저리 못하는 진태양란의 상황에 처할 때가 왕왕 있다. 그러기에 세상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도 “요지경”에 빠질 때가 많다. 그렇게 돼서 윗부분에 틈새의 공간에 자리한, 항아리의 윗부분을 망치로 툭툭 깨뜨리는 “파괴”를 헛일삼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러한 작은 일 조차도 괜한 헛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밑 부분으로 흙과 겉 화분 사이에 쐐기 같이 찜빠가 되어서 끼어있는 조각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다가 급기야는 밑에서 아이 엄마가 겉 화분을 붙잡고, 그리고 내가 위에서 꽃나무의 굵은 가지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서 위로 들어 올렸더니, 쉽게 깨진 항아리와 같이, 꽃나무는 쉽게 큰 흙덩이와 같이 위로 딸려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붙어져서 달려 올라온 피편과 같은 항아리 조각들을 야무진 망치로 이어서 툭툭 쳐댔다. 떨어져가는 모습 속에서 비록 깨어진 잔재의 조각들이지만 내용물을 충실히 보호하고 싶은 보호본능을, 그들은 나에게 보여주는 듯싶었다. 깨어짐은 아픔이고 비통이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한 삼십년은 가꿔 가야지” 아이 엄마는 빙그레 웃는다. 다른 그릇에 담겨진 천사나팔이 여러 해 동안 우리들 곁에서 천사의 일들을 후덕하게 해주기를 바래본다.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활짝 피어나서 다가드는 미소 띤 얼굴 표정의 노란 꽃으로....... 그 후에, 곧이어 며칠이 지나 태풍 덴빈이, 9월 중순에는 겁을 잔뜩 주고 간 태풍 삼바가...... 그러하지만,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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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예성만 김진구 박성찬 조창봉 이은주 지명수 권희숙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이삭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12년 8월 25일에 신평교회 최영득 장로님께서(충만육묘) 가을배추 육묘를 주셔서, 금산군자원봉사센터 가족봉사단이 9월 1일에 함께 해주셔서 밭에 심었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금성교회.충전교회.정이삭.최영애.라홍채.박종만.이은주.신평교회.진명구.김기홍.대덕교회.양오석.주식회사EG(이광형).최영관(신평리.2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채윤기(박현실).그리스도의집(옹인숙.금산파리바게트.3회).반석전원교회.수영교회.신건태.금산시각장애인협회(박지한.3회).동춘교회6여전도회.오미순.금산주부클럽(2인).대덕교회(이중삼.백종학).금산군북초등학교자모회(4인).알즈너대전세움대리점(김종국).오정교회(최세영).김용환(최정숙).김종성가족(청주온누리교회).금산한국전력(곽태근외4인).사랑의쌀나눔공동체(장진성)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