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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약말씀>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마태복음 23:1-12, 29-39 1960년 7월 17일 (日),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제1차 7년노정 첫 번째 전국하계40일전도 실시를 앞두고 하신 말씀임.
<말 씀> 잠깐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입니다.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를 중심한 선과 악의 싸움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선한 땅이 못 되어 있고 땅 위에 사는 인류도 선한 인류가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악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선을 소망하고 오늘의 부족함을 염려하면서 내일의 완전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활을 통해 잘아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은 선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데 환경에 이끌려 악한 길로 가게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내가 동기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진대, 여기에는 필시 나 이상의 원인과 동기가 되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봄이 오면 봄의 기운이 모든 산천을
뒤덮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환경으로 인한 감정에 얽매이거나 환경으로 인한 죄 가운데 얽매이는 그 모든 것은 내가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적인 힘 밑에서 간접적인 동기가 되어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을 찾다 보면 결국 절대자를 세우지 않을 수 없고, 악을 규명하다 보면 절대자와 반대되는 신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개체에게는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선하게 되고, 못 하면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면 절대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못 하면 악한 원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기로에 선 인간이기에 아무리 미미한 생명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일지라도 그는 천적인 싸움과 역사적인 싸움을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이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움직여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역사의 방향을 이상세계로 전향(轉向)시키기 위해 전개되어 나온 것이 문화사(文化史)의 변천 과정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인간은 제2원인의 입장에서, 제1원인의 대상으로서 행동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죄악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악에게 점령당한 인간과 섭리역사
인간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심정이 있습니다. 심정과 마음과 몸을 갖추어 세계를 대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사정에 엉클어진 생활 무대를 떠나서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보고 만지고 먹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누가 점령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 사탄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원수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을 돌이켜 본연의 상태로 회복하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입니다. 회복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원수를 항복시키지 않고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장차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에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싸움은 하나님이 원수, 즉 마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벌이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싸움 이라는 것입니다.
싸움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는 밤에도 선의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격퇴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싸움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이런 대원수가 우리 앞에서 생명을 노리고 이념을 파탄시키고 역사적인 행로를 더럽히면서 우리를 악의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움직임이 지상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을 중심삼고 오른편이 생기고 왼편이 생기는
것입니다. 좌익이 있는가 하면 우익이 있습니다. 전후가 있고 상하가 있습니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은 하늘땅 전체입니다. 이 땅은 사탄이 점령한 지역, 원수가 점령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원수에게 점령당해 살도록 되어 있지 않았지만 주인의 가르침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죽는다는 그 길로 감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되었어요. 그러한 종족으로 번식되어 내려온 것이 오늘날의 인류입니다. 천지에 대원수가 있나니 그는 역사적인 원수요, 이 시대적인 원수입니다. 또 미래에도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인류의 원수인 동시에 만물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선과 악의 작전본부가 되는 인간의 몸과 마음
우리의 양심을 근거로 하는 것이 하늘이요, 우리의 몸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 사탄입니다. 이 양심과 몸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우성
치고 싸우며, 쓰러졌다 일어서고, 맹세했다 또 꺾어지고, 결심했다 또 무력해지는 생활을 반복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몸을 쳐서 일어서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양심의 권한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이 싸움을 누가 정비해야 되느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늘과 인간이 합동작전을 해서 정비하지 않는 한 신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념이니 이상이니 해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간들은 양심적으로 살자 , 선을 지향하자 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안그래요?
이 땅이 사탄의 점령권 내에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으로 갈라졌습니다. 민족과 민족간의 풍습이 다르고 전통이 다릅니다. 이 사회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고 사탄을 중심삼고 전통과 풍습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탄들을 박멸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과 하나님의 섭리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선을 위해 외친다 해도 100년 이상을 계속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선의 세계를 이룰 때까지 원수를 대해 싸움을 계속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원수 앞에 하늘 편의 정병을 내세워 행진 명령, 출동 명령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이념을 세워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면서 악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정병을 모으셨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수를 갚아 줄 수 있는 군대가 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그런 군대가 없습니다. 선한 정병이 모아진다면 그 선한 정병과 합동작전을 펴서 원수인 마귀 사탄을 사로잡아 무저갱(無低坑)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이루어져야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더 차원 높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일상 생활적인 감정을 통하여 자기와 대립된 자, 혹은 몇 대 선조로부터 무슨 상충이 있어서 원한이 맺힌 자를 원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원수를 갚기 전에는 어떤 원수도 갚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원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원수를 갚다가는 선한 사람이 희생을 당합니다. 그러니 참으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강조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면서도 왜 끝날에 심판한다는 명제(命題)를 세웠느냐? 그것은 원수 사탄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타락시킨 장본인인 사탄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원수에게 농락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인간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판이라는 명사를 세웠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심판주이십니다. 전세계에 있는 하늘 편의 선한 정병들은 하나로 뭉쳐 하나님의 출동 명령에 따라 이 악한 세상을 들이치고 사탄을 사로잡아야 됩니다. 그때까지 각자가 준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맞기 위해 6천년이란 역사를 끌고 나오셨으나 아직까지 그 한 날을 맞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래의 양심 기준을 가졌다면
인간이란 마음과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을 분석해 볼 때 우리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늘 편에 서 있느냐?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사상적인 혹은 이념적인 환경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먼저 침범을 당한 곳이 어디냐? 먼저 침범을 당한 곳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내 마음에서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양심의 기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기준입니다. 본래의 선한 사람, 완성한 사람이 지녀야 할 양심 기준이 아닙니다. 이것이 옳은
지 저것이 옳은지 완전하게 판결을 지을 수 없는 양심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미완성한 아담 해와의 양심 기준이 오늘날 세계 인류의 양심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 양심 기준이 어디까지 올라갔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해명이 필요 없는 기준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동적으로 느끼는 기준까지 올라갔을 거예요. 그러한 양심 기준이 완결되었다면 그 양심이라는 씨에서 태어나야 할 것이 무엇이뇨? 그것은 심정입니다. 사랑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기준을 갖추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간성을 초월합니다. 공간성을 초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 작용도 심정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본연의 양심 기준을 세우는 날에는
타락인간은 세상에 대한 욕심밖에 없습니다. 땅만 주관(主管)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땅만 주관하게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영계(靈界)까지 주관하게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주관할 하늘은 있으되 하늘의 명령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다리가 없습니다. 인류의 시조(始祖)가 그것을 끊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손 중에도 그것을 연결시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본부에는 작전참모부가 있어서 모든 계획을 하고 있지만 그 계획을 연락해 줄 전화 줄이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이어 놓는 날에는 양심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흘러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본연의 양심 기준을 세우는 날에는 몸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몸뚱이 정복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마음 기준을 세워 놓고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수 없는 심정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을 부자(父子)로 인연맺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인간은 아들이라는 인연을 맺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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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원수는 네 집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몸을 성전(聖殿)이라고 하였지요? 이 몸은 성전이니 곧 집입니다.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했으니 몸이 곧 원수가 되지요. 그러니 이 몸을 정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원수를 정복해야 될 것인고?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원수가 있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원수가 되었는지 그 사정을 모르고서는 그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야 됩니다.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
인간은 본래 어떤 무리였느뇨? 하나님의 품에서 애지중지 사랑을 받던 무리였습니다. 하나님의 피를 받은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세포 중의 세포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칙을 세워 놓고 만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기준을 무시하는 날에는 온 피조물이 다 깨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서로 좋아하며 살아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놓쳐 버리고 오른손엔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엔 이 땅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끌어다 접붙이려는 놀음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뇨?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양심의 기준을 완성하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우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이라는 말입니다. 초점은 하나님의 심정 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들은 앞으로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그 길을 찾아 나가고 있으되, 양심과 심정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되겠느냐? 역사적인 사조(思潮)를 볼때,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오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연의 양심과 그 양심에 불어넣고자 하시는 본연의 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외적으로, 환경적으로, 상징적으로 수습해 나오는 것이 사상이요, 주의입니다. 사상이나 주의는 양심적인 감흥을 일으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하늘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폭발시켜서 환경을 혁명시키는 운동이 이시대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면을 갖추고 나온 것이 오늘날의 좌익입니다. 유물사관이에요. 이것은 이 땅 위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득세(得勢)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상(天上)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오는 주의 앞
에는 손들어야 됩니다.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은 어떤 곳인가? 마음이 편안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심정의 안식처를 개척해야 합니다. 좀 어려운 말이지요. 마음이 편안한 환경을 가졌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주관할수 있는 기준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핵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핵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을 채워 놓아야 그것이 만사(萬事)의 동기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모가 좋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을 넘고 시대를 넘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천당 갈 수 있는 조건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우리들, 심정을 잃어버리고 양심의 중심을 잡지못하고 생활의 목표를 잃어버린 몸을 가진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뇨? 한꺼번에 다 안 됩니다. 악한 것은 떼어 버려야 합니다. 떼어 버려야 돼요. 양심이 하늘 편에, 선한 세계에 제일 가깝기 때문에 양심이 문제가 되지 몸뚱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몸을 치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다 뭐야! 원수의 배통을 이겨야 합니다. 몸뚱이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사탄을 안식시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대해 적개심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인 이 몸을 대해 보복할 자신을 가진 자라야만, 그런 자신을 갖고 승리한 자
라야만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습니다. 출발 기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크나큰 선의 이념을 중심삼고 몸의 정욕이나 식욕 등 욕망의 일체를 자유 자재로 주관할 수 있는 사나이나 여인이 되지 않는 한 하늘이 세우실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의 신랑이고 심정은 마음의 신랑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심정의 주인이십니다. 또 예수는 신랑입니다. 성신은 신부입니다. 그래서 마음적인 형이 예수요, 몸적인 형이 성신입니다. 천지를 대신하고 심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음적인 형인 예수와 몸적인 형인 성신이 역사(役事)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음세계를 찾아 나가는 중심입니다. 신랑이에요.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이뇨? 신랑입니다. 신랑! 우주가 생겨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혁명을 제시하기 위해 오셨던 분이 예수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를 갚으려면
도의 길은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독신 생활을 하고, 남자는 남자대로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제일 먼저 채워야 될 것은 무엇이뇨? 마음입니다. 마음을 채워서 천정(天情)과 인연을 맺어 놓은 후에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곡절의 동기를
풀기 전에는 하나님의 원수를 갚을 수 없습니다. 원수는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낭설(浪說)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 그래서 예수는 모친인 마리아에게도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인 혈육의 인연을 갖고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당한 말입니다. 의당한 말이에요. 하늘을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유대교인들은 자기의 아들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중에 제일 큰 원수는 어떤 원수뇨? 사업상의 원수가 아닙니다. 제일 큰 원수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빼앗아 가는 사람입니다. 이 이상 큰 원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다 알겠지만, 본래 그런 곡절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선조들에게서 피 살을 받아난 우리는 몸에 대한 애착심을 전부 버려야 합니다. 굶주려 보아야 됩니다. 도의 길은 굶주리는 길입니다.
이 몸이 피곤해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노동판에 나가 일도 해봐야 합니다. 막 쳐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나간 사람은 부모가 와서' 야, 아무개야'. 해도 늠름히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
오늘날 인간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인지,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깜깜천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보지 못했으니 그 아버지가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떻고 어떻다고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오는 사람이 참목자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마음이 그리로 끌려가는 핏줄의 인연을 느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가 이 땅위의 인간들 앞에 참아버지로 오셨지만 그런 인연을 느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하나님이 나의아버지라는 사실을 해명하여 하나님도 눈물지으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신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원수들 앞에 농락받고 고충을 겪으시면서도 저희들을 아들 삼고 딸 삼기 위하여 피눈물의 역사노정을 개의치 않고 이 시간까지 참아 나오신 저희들의 참아버지시옵니다. '당신의 심정은 이러하고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고 당신의 몸은 이러한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할 수있어야 합니다.
참다운 양심을 중심삼고 참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해명해 주면 자기도 모르게 휩싸여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은 천적인 내용, 본연의 양심의 힘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양심이 아니라 본연의 양심의 힘입니다. 그 본연의 양심의 힘과 본연의 심정이 폭발되어 나오는 느낌을 신앙노정에서 찾지 못한다 할진대 천국 못 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서지 못해요.
원수를 갚는 방법
사탄의 역사는 내 몸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러니 내 몸을 정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굶고 헐벗고 욕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철창에 갇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기 전에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여러분, 죽기 전에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갚고 죽어야 합니다. 참부모의 원수, 참신랑 참신부의 원수, 참자녀의 원수가 하늘땅에 남아 있거늘 이 원수를 박멸시켜야 할 책임이 기독교에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박멸시키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키려면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몰랐으니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그토록 기뻐하신 하나님이지만,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 때 그토록 서러워하신 하나님이란 걸 알아야 돼요. 아벨과 가인을 중심삼고 싸우신 하나님, 노아를 중심삼고 싸우신 하나님,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중심삼고 수천년 동안 싸워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될 때 심정이 터져 나갈 것입니다.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 깊이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설교자, 어떠한 스승의 말에서 받아 보지 못한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미래적으로 심정의 인연을 증거할 수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그러니 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대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은 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린 땅입니다. 원수 때문에 피를 흘린 땅이에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을 내세우는 하나님의 마음은 처량합니다.인간이 어찌하여 이런 길을 거쳐서 하늘을 배반한 보응을 탕감해야 되는고? 곡절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것을 풀려면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 자신도 가진 것 없습니다. 나는 명예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단 쓰러지는 그 순간에 내가 사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것을 좀더 할 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자리에서 죽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인간은 종적으로 부모이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그 하나님 앞에 반드시 효성의 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의 한을 풀지 못한 우리입니다. 효자가 무엇입니까? 탕자의 비유를 여러분은 알지요? 눈물을 머금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갖고 돌아오는 탕자 앞에 달려나갈 수있는 형제가 있다면, 아버지는 그에게 전체의 유업(遺業)을 넘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원수를 박멸시키는 하나의 길
오늘 우리들은 알았습니다. 세상의 탕자들도 한 혈육지친(血肉之親)임을 알았습니다. 역사는 흘렀으나 그 심정에 있어서는 사망의 아들딸들을 잊지못하시고 6천년의 곡절을 거치시고도 그들을 놓지 못하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심정과 원한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하게 될 때, 벅찬 심정에 눈물이 앞놓여 가는 부모의 심정을 여러분은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에 불타십시오. 삼복더위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를 붙들고 통곡하여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을 느껴 보십시오. 그가 수고하는 것은 나 때문이거늘, 내가 짐을 지겠다고 해보십시오. 가는 길을 막고, 형제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애달픈 마음을 갖고 통곡해 보십시오. 그런 여러분이 되었다 할진대,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하늘이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
사망세계에서 피땀을 흘리며 애걸하는 민족 앞에 생명의 철장(鐵杖)을 가지고 사망의 철망을 끊고 나아가, '동지여, 형제여, 내가 여기 있노라'. 고 외쳐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자(父子)의 인연을 높이 세우고 형제의 인연을 세워서 종족과 민족을 형성하여 하늘 백성으로 등장하는 날 천상(天上)의 주권(主權)은 회복될 것이요, 천상에 사무친 심정의 원한은 해원(解寃)될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입고 있는 옷이 아깝습니까? 벗어 치웁시다. 보물을 갖고 있습니까? 허공에 던져 버립시다. 그것이 하늘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사탄의 미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위하여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이들 앞에 한 치의 땅이라도 한 벌의 옷이라도 제공하기 위해 잠을 못 이루는 민족만 되면,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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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선을 찾다 보면 결국 절대자를 세우지 않을 수 없고, 악을 규명하다 보면 절대자와 반대되는 신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개체에게는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선하게 되고, 못 하면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면 절대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못 하면 악한 원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기로에 선 인간이기에 아무리 미미한 생명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일지라도 그는 천적인 싸움과 역사적인 싸움을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