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인력 엑소더스… 자발적 퇴사 2배, 원자력科 자퇴 1.4배
탈(脫)원전 정책 2년 만에 국내 원전 관련 전문 인력 붕괴 현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국내 원전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전문 인력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국회 정유섭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운영)·한전기술(설계)·한전KPS(정비) 등 원전 공기업 3사의 자발적 퇴직자(정년퇴직 등 제외)는 2015년 78명에서 2017년 121명, 2018년 144명으로 증가했다. 2017~2018년 한수원과 한전기술 퇴직자 중 최소 14명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관련 업체로 이직(移職)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탈원전 2년에 따른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원자력 관련 학과가 있는 전국 18개 대학 실태를 전수 조사해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원자력 전공자 취업률은 2017년 51.7%에서 지난해 32.2%로 떨어졌다. 한양대·경희대·제주대 취업률도 10~ 18%포인트 하락했다. 복수전공자는 2016년 22명에서 작년 58명으로 늘었다.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도 2016년 39명에서 작년 56명으로 증가했다. 서울대에선 작년 8명이 학업을 포기했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은 "정부 정책 변화로 원자핵공학이라는 학문이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전 전문 인력 이탈로 우리나라가 60년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가 사라지고, 원전 생태계 붕괴와 안전 문제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UAE로 옮긴 한국 원전 인력 50~60명"
작년 UAE로 회사를 옮긴 원전 설계 전문가 A씨는 "한국에선 더 이상 원전을 안 짓고, 해외 수출에 대한 희망도 없어 떠났다"며 "원전 인력 '엑소더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40대 초반인 A씨는 작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떠났다. A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선배들이 60년 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기술인데 하루아침에 몰살시켜버리니 억울하고 분한 생각뿐"이라고 했다.
A씨가 몸담고 있는 UAE의 원전 업체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 등 원전 선진 각국에서 스카우트한 전문가 2000여 명이 근무한다. 급여도 한국보다 2.5~3배 많다.
A씨에 따르면 한국에서 온 직원은 50~60명 정도다. 그는 "요즘도 한국의 후배들이 전화해 'UAE에 자리 없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A씨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한 사람(대통령)이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나라 정책을 휘두르고 있다"며 "공약이니까 무조건 지키겠다고 하니 이런저런 사달이 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전 부품업체 "핵심 기술 25명 중 10명 떠나… 원전 포기"
원전 부품 회사인 우리기술은 원전 3대 핵심 기술 중 하나인 '계측제어설비(MMIS)'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국산화했다. MMIS는 원자로 내부가 과열되면 자동으로 원전 가동을 정지하는 시스템이다. 2017년 250억원이던 우리기술의 원전 매출은 올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회사 유지가 어려워지며 주요 사업이었던 원전 기술 대신 철도 스크린도어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MMIS 전담 전문인력 25명 중 10명은 회사를 떠났다.
노갑선 우리기술 대표는 "이미 원전에 들어간 MMIS 서비스는 계속해야 해 최소 인원만 남았지만 더는 인력을 보강하지 않을 것"이라며 "1~2년 뒤에는 MMIS 기술을 포기할 생각"이라고 했다.
◇원전 6기 백지화… 건설부문 1만명 일자리 사라져
국제원자력기구(IAEA) 분석에 따르면 1000㎿급 원전(경수로)을 짓는 데 필요한 인력은 전문가·건설직원 등 1200명이며, 건설작업 기간 10년 동안 일하게 된다. 또 50년 동안 원전을 가동하는 데에도 600명의 행정·운영·유지보수 인력이 필요하다. 계획됐던 원전 6기(8400㎿)를 정부가 백지화함으로써 10년 동안 1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됐다.
원전 관련 일부 공기업·연구소는 작년 신규 채용을 크게 줄였다. 2016년 821명을 신규 채용했던 한국수력원자력은 2018년 427명으로 줄였고, 한국원자력연료·한국원자력연구원·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신규 채용이 감소했다.
[개인의견]
며칠 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에 대해 기존 원자로의 수명을 연장하고,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늘릴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특히 IEA가 원전 관련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20년 만의 일이기에 그 주요 내용에 많은 회원국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할 것이다.
보고서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즉 선진국(미국·일본·한국·EU 회원국 등 41개국)에서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속도는 느린데 원전 비중을 낮추는 속도는 빠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크다라는 점이다.
선진국들의 미온적인 원전 투자 추세를 가정할 경우 2025년에는 현재 원전 설비의 4분의 1이 가동 중단되고, 2040년이면 현재의 3분의 2가 가동을 멈출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이렇게 원전 비중이 가파르게 축소될 경우에도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2040년엔 전체에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85%에 달해야 한다는 것이 IEA의 분석보고 내용이다(단, 현재 태양광,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전체의 36% 수준임). 따라서 IEA 보고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노후 원자로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에너지원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음은 지극히 상식적일 것이다.
희망이 없는 한국의 원자력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세계적 수준의 원자력 관련 인재들이 조국을 등지고 해외로의 이탈을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하지 못한 채 실직자로 전락되는 경우를 고려하면 그 규모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두 세대에 걸쳐서 이룩한 한국형 원전기술이 사장되는 것은 이제 2년도 채 걸리지 않을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원전의 도움 없이 안정적으로 주력 에너지원의 세대교체를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너지원의 세대 교체’, 이것이 궁극의 목표가 되더라도 원전의 지원과 균형적인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