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첨삭 받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추억에 잠겨 씁니다.
한결 순진한 언사를 남발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1. 정보공개법 개정안 강화 요구가 먼저라는 제 주장에 대해, 노 정권의 논리에 말렸다는 주장
노 정권이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은 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제 주장이 노 정권 논리에 말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습니다.
기자실과 정보공개법을 교환하자는 이야기를 제 글 어디에서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자실 통폐합에 대해선 퍼플님도 앞선 글에서 "기자실 까짓거 없애도 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전 기자실 문제와는 별도로, 언론계가 정보공개법 개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오히려 언론 전체가 기자실 통폐합과 사무실 출입 제한 이슈에만 목을 매고 있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노 정권의 의도에 말려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지요.
지금 입법 예고돼 있는 거시기한 개정안이 임시국회에서 은근슬쩍 통과된다면, 언론계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기자실.사무실 출입 재개를 외치는 만큼,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안을 강화하라는 주장을 소리높여 다루는 언론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비슷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신문은 서너면쯤, 방송은 두세꼭지 써야 된다고 봅니다. 한 일주일 정도, 매일매일요.
2. 정보공개법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주장
만병통치약이라 주장한 바가 없으므로 이건 사족인 것 같네요.
3. 접근권 제한이 심각하다는 말씀
이 부분에 대해선 퍼플님과 제 입장은 인식의 출발점이 다르다고 봅니다. 전 공무원의 발언 자체를 그렇게 중요한 뉴스 거리로 다루지 않습니다. 담당자의 발언을 주요 소스로 삼는 퍼플님으로선 이번 조치가 심각한 접근권 제한, 나아가 언론에 대한 탄압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아래 제 글에 댓글 달아주신 기자질하기싫어님 말씀도요.
하지만, 윗글에서 크레파스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꺼리를 만들어서 조지러 들어간다면 제아무리 공무원 할아버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해명이든, 앞으론 잘 하겠다는 읍소든 아니면 뭐 그게 잘못됐냐는 항변이든 한마디 하게 마련입니다.
뭐 좀 특별한 게 있냐는 질문엔 뾰족한 대답을 얻어내기 어렵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공보관을 거쳐 멘트와 자료가 윤색될 테니까요. 난처한 질문은 더하겠지요. 이렇다 할 백업 자료 없이 걍 떠보는 질문은 이젠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 될 겁니다. 그럴수록 외곽 취재를 성실히 해서 불알을 쥐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순진한 이야기를 또 하게 됩니다만.. 여하튼 그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합니다.
4. 몰지각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몰지각의 근거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진하거나 뭘 모르거나.
솔직히 제가 좀 순진한 편이고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뭘 좀 모르기도 합니다.
먼저 순진한 쪽에 대해 말씀드릴까요. 브리핑 내실화를 충분히 기자들이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카로운 질문에 공무원이 대답 못 했다가 그대로 신문 지면에 방송뉴스에 실려 개박살나면 반향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YTN 돌발영상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업고 가야 하는 건 정부의 배려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와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말 안 듣는 정부에 맞서 정보공개법 수준을 높이는 데 앞장서는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언론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정부는 OECD 국가들의 기자실 운영 현황을 전가의 보도로 삼고 있죠. 그 나라의 정보 공개 수준을 언론이 나서서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여담이지만, 언론 편을 들면서 선진화 방안 폐지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끌어들이면 정보공개법 수준쯤 간단히 높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부 정부 하시는데, 법안 수정과 통과 여부는 정부의 일이 아닙니다. 이건 두 정당을 좀 비꼬아서 하는 농담입니다.
뭘 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로선 정부 부처 출입 기자들의 고통을 당연히 알지 못합니다. 제 의견은 전적으로 제 경험에 입각해 세워진 것이고, 추가적 경험이나 적절한 논쟁에 의해 생각이 바뀌기 전엔 달라지기 어렵겠지요. 퍼플님의 경험과 그에 따른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너무 황당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토론은 누군가 승리해야만 하는 전투도, 상대의 몫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논의를 발전시키고 사고의 외연을 확대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퍼플님과의 논박을 통해 제 생각을 어설프게나마 다듬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습니다만, 퍼플님의 언행은 조금 아쉽습니다. 중앙 정부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의 고충을 알게 된 것은 소득이지만, 동시에 글에서 배어나는 우월감과 특권 의식을 느끼게 된 점은 다소 씁쓸하네요.
덧붙여, 오마이뉴스의 스탠스에 대해선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해당 언론사 기자분들과 저 때문에 아리송하셨을 분들께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논의입니다만, 기자실의 시초에 대한 제 질문엔 답을 주지 않으셨네요. 제가 아는 것과 차이가 있기에 확실히 하고자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일본 기자실의 시초에 대해선 경향이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정작 우리 제도에 대한 최근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퍼플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제 강점기 때부터 백년에 걸친 투쟁 끝에 선배들이 목숨 걸고 기자실과 사무실 출입의 자유를 얻어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한국기자협회가 2003년에 주최한 기자포럼 자료를 보면 (http://www.kpf.or.kr/datas/seminar/20030213sem0001.hwp) 박정희 정권 때만 해도 부처 기자단이 얼마나 놀아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의 이야긴 빠져 있지만, 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엄선된 기자단에 대한 관리는 더욱 공공연하고 적나라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KBS 미디어 포커스가 보도한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에도 그런 모습이 잘 반영돼 있습니다.
기자실 제도는 국민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피땀 흘려 쟁취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몇몇을 위한 일종의 편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 출입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기사 한두줄 거슬리게 쓰면 남산으로 끌려갔던 시절도 있는데, 기자들이 언제부터 자유롭게 정부 부처를 드나들었습니까? 보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언론의 과오 중 많은 부분은 이미 수십년 전 저질러진 일입니다. 퍼플님도 저도, 아랑 카페의 많은 젊은 기자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성 없이, 광고 수입과 시청료 수입으로 연명하는 언론사가 사회의 공기로 행세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이라면 국민이 부여한 권력과 함께 어두운 우리의 과거도 등에 지고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혼자 슬쩍 벗어놓는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당당하게, 박수 받으며 내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낡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게 아닐까요.
첫댓글 같은 문제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 저희들은 어쨌든 노무현 정부가 언론계의 내부분열과 대국민 이미지 실추를 통해 또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게 아닐까 나름대로의 음모론을 상상해봤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에 대한 오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렇다고 기자들이 독자들보고 우리를 오해하고 있다고 쓰기도 참 뭣하죠..-.-
노날님/지자체 공무원들의 발언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구청이나 시청 공무원들 발언이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요. 조질 것 가지고 가서 공무원한테 해명하라고 해서 하다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받아내는 건 전형적인 지방기사, 리포트지요. 저도 지방에 있을 때 그런 것 질리도록 많이 해봤습니다만...
중앙의 정책성 기사들 분석해보셨다면 공무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지 조지러 갈 때 만나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분석하신 관점에서 기사는 이미 다 나왔습니다. 누구 말대로 역시 섹시한 건 '기자실 존폐'라서 그런지 묻혀졌지만 지금이라도 기사 한 번 다시 분석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방에서 정도는 기자실 따위 없어도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희 회사한테만 기사 주겠다는 공무원 널렸으니까요. 경찰도 기자실 있는 서울보다 훨씬 협조적입니다. 지방이... 사실 지방 기자실 있어봤자 정체불명 찌라시 서식처로 활용되니까요.
기자에 대한 오해 참 많죠. 근데 지방은 아직도 그 모양인 곳 있어요. 그래서 지방기자들이 기자실 문제 가지고 다른 소리 내는거 지방 현실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공무원이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는 것이 기사 거리가 된다면 일간지 사회면의 절반은 '담당 공무원은 답변을 회피했다'로 써야 할 겁니다. 방송이라면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어떤 '감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겠죠. 하지만 신문지면에서는 기자의 무능만 보여주는 지면 낭비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 분들의 말씀을 통해 중앙 정부 부처 취재의 어려움을 알고 느낍니다. 자치단체와는 다르다는 기자질하기싫어님 말씀도 참고가 되고요. 윗글에 언급했듯, 지금까진 퍼플님 등의 의견을 이해하는 데 그쳤는데, 더 나아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네요.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기까진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이전처럼 등록된 기자단에 한해서만 자유 출입이 가능한 방안이 재도입될 수 있을까요? 150개가 넘는 언론사에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네요) 공평하게 취재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어떤 절차를 통해 가능할까요. 하여튼 이 점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견 감사하고요.
기자질하기싫어님/정보공개법 강화에 대한 요구가 기자실 통폐합을 다룬 기사만큼 나왔나요? 최소한 비중과 빈도에 있어 비슷한 수준은 돼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언론학자도 아닌데 기사 분석까지 할 필요도 없고, 일반 대중 입장에서, 더구나 뉴스를 상당히 많이 자주 접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소리높여 다루는 언론'이란 그런 걸 말한 겁니다. 섹시하지 않아서 묻혀진다고요. 언론이 의도를 가진 기사를 쓸 때, 묻어가게 그냥 놔둡니까. 그런 능력을 왜 정보공개법안에 관해선 발휘하지 않느냐는 토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