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9장 언론은 정도를 걸어야 한다 5. 미국인들에게 정론을 보여준 「워싱턴타임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2개의 신문사가 있었다. 하나는 「워싱턴스타 Washington Star」였고 하나는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였다. 1980년대 초 문선명이 독일의 기계공업 회사인 세일로를 인수해 공장의 운영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때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워싱턴타임스」가 파산을 신청하고 폐간을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문선명은 「워싱턴스타」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나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한 나라의 수도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크게 우려되었다. 그렇게 되면 「워싱턴포스트」가 아무런 경쟁없이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보도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망 있는 「워싱턴스타」는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몇 년 전에 창간됐다. 그러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막강한 「워싱턴포스트」의 위세에 밀려 마침내 문을 닫을 운명에 처했다. 이는 대도시에서 발간되는 신문 역시 생존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워싱턴스타」는 하루에 25만 부를 팔았음에도 살아남지 못했다. 두 신문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1970년대 초반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워싱턴스타에 비해 훨씬 작았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밝혀내고 미국 정치를 뒤흔들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이 꾸준히 증가했다. 「워싱턴스타」가 파산을 선언하자 「워싱턴포스트」는 「워싱턴스타」 소유의 토지와 건물, 인쇄기를 비롯해 모든 자산들을 사들였다. 또한 편집 칼럼과 십자낱말풀이, 연재만화 등 인기가 높고 특색 있는 지면들까지 몽땅 사들였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문선명은 몇 달 동안 애국적인 미국인들이 워싱턴에서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기를 기다렸다. 문선명의 예상대로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7개 기업이 비용과 수익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모두는 같은 결론을 내렸다. 「워싱턴 포스트」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지 않으려 하자 문선명은 그 과제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선명은 「뉴스월드」에서 일하고 있는 박보희를 불러 워싱턴에서 일간지를 창간하는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워싱턴에는 자유와 신앙 그리고 가정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신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서부터 거대한 계획이 시작되었다. 우선 전문가 팀을 구성해 타당성에 대한 연구와 시장조사를 했으며 건물, 설비, 편집인, 기자 등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워싱턴포스트」가 눈독을 들이지 않았던 「워싱턴스타」의 중요 자산 중 하나인 편집용 컴퓨터를 살 수 있었다.
더 다행인 것은 「워싱턴포스트」와 경쟁을 벌이는 새로운 신문이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두 손을 걷어붙이고 곧 창간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성과를 만들어냈다. 1982년 3월 창간팀이 만들어진 지 2개월만인 5월 17일에 역사적인 창간호를 발간했다.
기자들은 자긍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었으나 세상의 시선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미국 곳곳의 신문사들은 길어봤자 1년 정도 하다가 망할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우호적인 정치인들조차 2년 만이라도 지속해주기를 바랐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은 일주일이라도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잘못 생각한 것은 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워싱턴타임스」가 통일교 선전도구가 될 것이라 떠들어댔으나 이 역시도 틀렸다.
문선명은 결코 통일교회 선전도구로 「워싱턴타임스」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문선명은 전 세계가 하나님 아래 자유를 누리며 모든 인류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소망이었다. 그 소망을 이루는 디딤돌의 하나로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워싱턴타임스」를 만들었다. 「워싱턴타임스」의 사훈은 '자유, 믿음, 가정 그리고 봉사'이다. 또한 사명은 '우리는 그날의 중요한 정치적 이슈, 국가 안보에 관한 이슈, 그리고 문화적 이슈들을 워싱턴DC,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에 알리고 그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이다.
창간 이후 「워싱턴타임스」가 한 일은 무척이나 많다. 그중 하나는 공산주의 멸망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은 문선명이 창간한 「뉴스월드」의 지지에 힘입어 압도적인 승리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공산주의와 싸우며 강경한 자세를 취했을 때 과연 그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 일대 논란이 벌어졌다. 소련의 위협이 막강하기는 하지만 강경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세계를 더 위태롭게 한다는 논쟁이 벌어졌고 그만큼 혼란이 심했다. 바로 그때 「워싱턴타임스」는 깊이 있는 해설과 객관적인 뉴스, 정보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산주의 폭정의 가혹한 현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이기기 위해 전략방위구상(SDI)을 세웠으나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 계획을 반대했다. 그러나 「워싱턴타임스」는 강력하게 SDI를 지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워싱턴타임스」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정치인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레이건은 SDI를 추진했고 경제적으로 파산 지경에 이른 소련은 미국과 경쟁할 힘을 잃어버렸다. 몇 년 후, 소련 고위 관료들은 세계 적화 야욕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것은 미국의 SDI 때문이었다고 실토했다. 마침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크리스마스 전날, 74년 동안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소련 제국이 붕괴됐다. 이러한 역사적 투쟁, 즉 공산주의 멸망과 하나님이 실존하시느냐 아니냐에 관한 이념전쟁에서 자유세계가 승리한 데는 「워싱턴타임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워싱턴타임스」는 인사이트(Insight)라 불리는 독자적인 조사 보도와 많은 출판물들을 발간했다. 그중 가장 특별하고 흥미로운 출판물은 「월드 앤 아이 World&I, 세계와 나」였다. 월드앤아이는 700페이지 분량의 월간 잡지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과학, 스포츠, 학술, 오락 등 모든 분야를 포함하는 대중적이면서도 학문적인 종합월간지였다.
문선명이 처음에 700페이지짜리 월간지를 만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펄쩍 뛰었다. 미국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700페이지 잡지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70~120페이지였고 많아야 150페이지였다. 그런데 700페이지를 매달 만들라고 하니 기가 막히는 것은 당연했다. 문선명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교수들, 유명한 학자들이 각자 언론기관의 연구원이 돼 있어요. 그걸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연구한 내용이 있다 해도 그것은 그 학교면 학교, 대학이면 대학 도서실, 언론기관의 자료실 구석에서 썩고 있어요. 그러니 세계 인류 앞에 얼마나 손해예요?"
문선명은 많은 연구 자료와 글들이 구석에서 낮잠을 자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것들을 지상으로 끌어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월드 앤 아이」를 창간한 것이다. 독자층은 학생들로부터 시작해 교사・교수, 회사원, 전문직 종사자, 주부까지 폭넓은 사람들이었다. 삶과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잡지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다양하고 멋진 사진과 삽화들이 풍성하게 들어갔다. 온갖 논란과 고민, 수정과 퇴짜, 보완을 거쳐 1985년 12월에 드디어 제1호가 발간되었다. 서점과 가판대에 깔리자 마자 잡지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날 이후 「월드 앤 아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면서도 흥미 넘치는 잡지로 평가받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워싱턴타임스」의 인터넷 웹사이트는 미국의 신문 웹사이트 중에서 인기가 높으며, 매일 수십만 명이 기사를 검색한다. 독자들이 매달 읽는 뉴스와 사설, 논평은 무려 1천8백만 페이지에 달한다. 그 외에 월간 「워싱턴골프Washington Golf Monthly」, 케이블 TV 방송인 포토맥 텔레비전(Potomac Television), 애틀란틱비디오(Atlantic Video), 50개 주의 시청자들에게 방송되는 굿라이프케이블TV(Good Life Cable TV)등을 운영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워싱턴타임스」 창간 25주년 기념식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 재임 시절을 포함한 1980~90년을 돌아보면서 "「워싱턴타임스」는 나와 함께 20세기의 제일 중요한 10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한 결과 냉전을 종식시켰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냉전을 이기는 결정적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인물이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이다. 그녀 역시 "「워싱턴타임스」 창시자 문선명 목사님이 이 신문을 창설했을 때 그 일은 매우 어려웠고,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워싱턴타임스」 가 살아있고 번영하는 한 보수주의의 가치는 결코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보냈다.
「워싱턴타임스」 를 향한 문선명의 유일한 목표는 전 세계 자유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문선명은 도덕적 가치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밝은 미래를 추구하는 신문을 만들고 싶었다. 「워싱턴타임스」는 단순히 '또 하나의 신문'이 아니라 자유롭고, 선하며 행복한 세계를 이루겠다는 비전을 실천하는 신문이었다.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는 「워싱턴타임스」에서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