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말 씀: 눅가복음 23:33-49
설교일: 2024. 3. 24 (주일 낮 예배) - 종려 주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사실 가장 끔찍하고 불길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는 사형집행 도구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사형제도 중에서 가장 참혹하고 잔인한 방법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죄인을 죽이려고 십자가에 매달아 놓으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동안 극도의 고통을 겪다가 죽습니다. 죄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어떤 때는 까마귀들이 날아와서 아직 살아있는 죄인의 눈을 쪼어 먹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사형 방법입니까?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신 것입니다.
군병들이 예수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쒸웠습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사정없이 채찍질을 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예수님은 무려 200대의 채찍질을 당하셨는데, 그 채찍 끝에는 납덩이나 짐승의 뼈가 달려 있어서 한번 휘두룰 때마다 살점이 뚝뚝 묻어 나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속에서 피를 물처럼 쏟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지 6(여섯)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참혹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은 이 참혹한 사형도구인, 이 십자가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내 걸고 자랑합니다.
교회 지붕에도 십자가, 교회 강단에도 십자가, 거실 벽에도 십자가, 그것도 모자라서 목에도 십자가를 걸고 다닙니다. 혹 꿈에 십자가라도 보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찬송할 때도 십자가를 노래하고 기뻐합니다.
♬♬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아멘 ♬♬
그러면 도대체 왜 성도들은 이 십자가를 좋아하고,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일까요?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하며 에덴동산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죄를 범하고, 심판을 받아 쫓겨났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은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죄를 짓고 살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 대신 죄 값을 치루게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다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손과 발에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는 붉은 피가 솟구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피 흘리는 한 손으로 우리 손을 잡으시고, 또 다른 한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선언과 함께 죄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오래 전 80년 가까이 믿지 않고 사신 분을 전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 분은 기자로 정년퇴직을 한 분인데, 어느날 목디스크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수술이 잘못되어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렇게 식물인간처럼 10년 넘게 누어있는 남편에게 그의 아내가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없다고 큰 소리 치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시라고 이렇게 전도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죄인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라는 것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시더라구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모든 인간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우리 인간이 죄의 심판을 받는 것을 그대로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다 짊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든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의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어르신 !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납니다.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사함받습니다.
죄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삽니다.
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전도를 해 오던 중 어느 날 그분이 세례를 받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정에 가서 세례를 베풀었고,
세례를 받으시고, 얼마 안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에 가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좌우편에 두명의 강도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 중에 한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당신이 구세주요? 그러면 지금 당장 뛰어 내려와 당신도 구원하고,
나도 좀 구원해 보시오”
이 강도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결국 자기 죄 값을 자기 십자가에서 치루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멸망 영원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명의 강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예수여 !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 강도는 인생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직전 예수님과 예수님 나라를 믿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아멘
이 강도는 인생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심령에 구원의 십자가가 세워지고 그 영혼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입곱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 중에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34절에 나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주님을 죽이려고 모함한 사람들, 주님을 끌고 온 사람들, 주님의 몸에 못 박은 군병들, 침 뱉고 뺨을 때리고 욕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다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환경을 초월하고, 대상을 초월하고,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원수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왜 이렇게 명령하시겠습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기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를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기만 아프게 찌르는 가시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엄청 악한 사람도 있고, 도대체 못마땅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십자가를 보고 / 그들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의 십자가를 보고, 그들을 보면 똑같은 죄인으로 구원받을 사람이고,
사랑의 십자가를 보고 그들을 보면 똑같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십자가의 구원이요, 사랑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좋아하고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8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dkaps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의 형벌은 예수님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그냥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솔직한 심정으로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지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즉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의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런 말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물 위를 걸으신 것도 아니요, 38년된 병자를 일으키신 것도 아니요,
죽은자를 살리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최대 기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끝까지 견디시고 내려오지 않으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12군단도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서 단번에 대적들을 쓸어버리고 내려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삽니까? 내 뜻대로 삽니까?
입술로는 “주여! 주여!”하면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노래 합니다만
정작 행동은 “나여! 나여!”하면서 내 뜻대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순종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며 순종의 십자가를 지겠노라고 고백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425장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폴라드”라는 여자 선교사 어느 선교단체 회의에 참석했는데,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특별히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목숨을 잃게 되는 위험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면서 참석한 선교사 중 제일 나이 어린 선교사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우리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좋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단순하지만, 담대한 이 기도에 폴라드 여사가 감동을 받고 이 찬송 시가
바로 찬송가 425장입니다.
우리 찬송가 425장을 다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엔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모두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과 사랑과 순종으로
마지막 날, 영광의 면류관을 다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