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
김상분
아, 자꾸만 눈이 감겨옵니다. 아무 말 없이 저의 두 발목을 꼭 잡고계신 아빠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슬픔을 참지 못한 엄마가 저의 배 위에 얼굴을 얹었습니다. 눈물이, 엄마의 따뜻한 눈물이 가슴 속 깊은 곳 까지 스며듭니다. 조금 전 까지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던 힘든 시간이 지나고 이제 저는 아주 평화로운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깊은, 아주 깊은 잠으로 스며드는 순간입니다. 엄마, 아빠. 두 분의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행복했던 날들, 제 가슴 가득히 안고 이제 먼 길을 떠납니다. 안녕, 안녕. 어제 같은 그 아름다운 시절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데 제가 탄 배는 점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저어갑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아이엠에프라는 엄청난 시련이 몰아닥친 때였습니다. 나라의 빚이 많아 부자나라에서 더 큰 빚을 얻어온다고 모두들 걱정을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아주 어린 철부지 귀염둥이이기만 했지요. 눈부시게 하얀 털이 아름다운, 저 먼 나라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도 사랑했다던 말티즈랍니다. 어느 날, 나를 그토록 예뻐하던 첫 주인은 호숫가로 드라이브를 나섰답니다. 나는 마냥 좋아서 잔디밭이며 물가에서 깡충거리며 한참을 뛰고 놀다가 돌아와 보니 자동차가 없어졌습니다. 사랑하던 주인도 없었습니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주인과 멋진 자동차를 찾아다녔습니다. 해가 저물도록 헤매다가 지치고 목마른 저는 어디인지도 모를 풀 섶 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어디선가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경적소리도 울렸습니다. ‘아, 나의 주인이 나를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솟구치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두리번거리며 아무리 돌아보아도 주인은 없었습니다. 어느 식당에 딸린 텃밭 한구석에서 밤을 지냈나봅니다. 아주 커다란 시커먼 개가 계속해서 나를 보고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것도 그렇지만 한없이 두려웠습니다.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기운도 없고 온몸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일어났습니다. 식당의 부엌 쪽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지만 묶여있는 큰 개는 곧 나를 향해 돌격해 올 듯 무섭게 짖어대며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텃밭에 가득히 자라고 있는 어린 배춧잎이며 상추를 얼마나 많이 뜯어 먹었는지 모릅니다.
며칠을 그렇게 여러 식당과 자동차와 그곳에 오는 손님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커먼 개가 으르렁거리는 북골 식당으로 다시 와서 그 녀석이 먹다 남긴 찌꺼기라도 없나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도랑물 건너편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 어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작정 그 쪽으로 건너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인은 없었고 김을 매는 아주머니들이 새참을 드시며 쉬고 계신 듯했습니다. 목련나무 묘목 사이로 개풀이 가득 돋아나서 주인과 함께 거닐던 어느 공원의 잔디밭인양 마구 뛰었습니다. 저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뛰었는지 어지러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부르며 다가오셨습니다. 물에 말은 하얀 밥이 담긴 그릇을 내민 그 분에게 감사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밥을 다 먹었습니다. 나는 고마운 아주머니를 한 종일 따라다녔습니다. 함께 김을 매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이 동네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며칠간의 내 모습을 이야기할 때 아주머니는 나를 쓰다듬어주며 불쌍해하셨지요. 나는 의기양양하여 도랑 건너편 식당의 시커먼 개를 향해 으스대며 짖었습니다.
“나도 이제 우리 엄마 있다고. 엄마가 맛있는 밥도 주고.”
“자, 봐 내 배가 이렇게 볼록하잖아?”
그렇게 저는 삶의 큰 전환점을 찾아 도랑을 건넌 셈입니다. 김매던 아주머니들이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는 것을 들으며 많이 망설이던 엄마는 결국 저를 차에 태워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근심이 태산 같았어도 지친 저는 엄마의 옆자리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이 제게 열렸습니다. 저의 걱정과는 달리 삶은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신 아빠, 저를 데려온 엄마, 대학생인 누나와 형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모두들 바쁘고 책과 컴퓨터밖에 모르는 새로운 집에서 온 식구들의 넘치는 환대 속에 저는 마냥 버릇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빠의 그늘만 믿고 마치 황태자처럼 군림하여 경거망동 했답니다. 그래도 예뻐만 해 주는 아빠 엄마는 여행길에도 저를 동반했고 아빠랑 관악산 연주암에도 여러 번 올라갔답니다. 아빠가 큰 수술을 받으셨을 때 저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요. 퇴원하실 때까지 며칠을 밥을 안 먹고 형아를 애먹인 생각도 납니다. 미국에서 몇 년 만에 누나가 왔을 때는 반가워서 누나 얼굴에 뽀뽀를 하며 소동을 치던 기억도 납니다. 그 찬란한 시절들이 어제 같습니다. 기나긴 열일곱 해 동안의 삶이 오색 무지개처럼 빛납니다.
꿈같은 세월도 흘러서 지난 해 부터 저는 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주 늙었지요. 아빠 엄마도 이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지만 저는 사람으로 치면 백 살도 넘었다고 합니다. 눈도 잘 안보이고 귀가 먹은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후각과 촉각에만 의존하면서도 살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아빠의 지극한 사랑으로 가능했지요. 얼마 전 부터는 저의 몸이 더욱 이상해져서 낮과 밤이 바뀌어 식구들은 물론 이웃도 힘들게 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요. 화장실도 못 가리고 걸음걸이도 힘들어져서 자꾸만 주저앉게 되더군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저를 위해 식욕촉진제를 먹여주는 아빠, 저를 안고 손으로 밥을 먹여주는 엄마의 정성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더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경련을 일으키는 저를 붙잡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지요. 곱게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며 품안에 꼭 안아주셨습니다. 함께 밤을 새우기를 몇 날 며칠인지요.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엄마는 저를 안고 몇 번이나 병원을 오가셨는지 다 알아요. 저는 이제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가 먹어도 소리가 들린답니다. 아빠도 달려 오셨지요. 두 분이 나란히 서서 제 몸을 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시는군요. 저도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열리지 않아요. 엄마를 처음 만난 곳에 저를 묻어 주신다구요? 오월, 찔레꽃 향기가 그윽한 벚나무 아래 제가 뛰어놀던 그 곳에서 저는 영원한 안식을 찾을 것입니다. 온갖 새들이 노래하고 벌 나비가 노니는 이 좋은 계절에 그 곳으로 돌아갑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손수 가꾼 작약이며 붓꽃 레드 클로버를 꺾어서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저의 몸 위에 얹어 주시겠지요. 아빠는 작은 나무십자가를 세우고 ‘여기 사랑하는 쫑이가 묻히다.’라는 묘비도 써주신다고 하셨죠? 우리는 언제 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요.
이제 저의 몸은 떠나지만 아빠 엄마의 건강과 모든 식구들의 행복을 위해 저의 온 영혼을 다해 빌고 또 빌겠습니다. 착한 마음과 정성을 모아 바치는 진실한 기도는 온 우주가 돕는다지요.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그리하여 저를 구해주시고 저의 목숨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주신 두 분께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까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