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Thales: 640~550 B.C.)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혹은 만들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탈레스는 물 또는 습기라고 대답하였다. 탈레스가 왜 이런 대답을 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이러한 진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물은 증기증발이라는 현상을 통하여 기체로 될 수 있으며 또한 결빙 현상을 통하여 고체로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물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게되는 모든 물질 중 사물의 변화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물질로서 등장한 것 같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추측한 것처럼 “탈레스가 이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의 양분에 수분이 있는 데서, 그리고 열 자체가 물기 있는 것에 의해서 생길 뿐 아니라 또한 그런 것에 의해서 살아있게 됨을 보고, 그리고 또 모든 생물의 씨가 물기를 지니고 있으며, 물이 모든 물기 있는 것들의 본성의 기원이라고 본 데서 비롯되었다.”
두번째 이유는 탈레스의 또 하나의 명제 즉 ‘만물은 신(神)들로 가득찼다’는 명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탈레스는 세계의 기본물질이 곧 생명의 기본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물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물질로서 등장한다. 따라서 위의 명제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우주의 근원적 존재로서의 신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적 존재 혹은 생명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탈레스가 들고 있는 예는 자석인데,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이 자석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쇠를 끌어당긴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방식은 인간정신의 발달사에서 비교적 초기의 사고방식으로 물질과 정신의 분화가 의식되지 않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만물은 물이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물은 생명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다. 수분은 먹을 것과 씨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생명의 열 즉 살아있는 신체의 온기는 언제나 축축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보았을 때, 탈레스는 유물론자(materialist)로 간주되었음직하나, 그의 사고는 물질과 정신이 구별되기 이전의 미숙한 단계였으므로 그를 유물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선언지가 주어지고 전자가 취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유물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활론적 사고단계에 있는 철학자에게 유물론자란 명칭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설명은 밀레토스 학파에 속하는 다른 철학자에게도 해당된다. 밀레토스 학파에 속하는 세명의 철학자는 모두 물활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했기 때문에, 그들이 탐구한 근본물질은 한결같이 만물의 구성물질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원리인 것이다.
우리는 탈레스가 물활론적 사고방식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대답이 유치하다는 것 때문에 그의 업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지칭했듯이 그는 철학의 아버지라 기릴만한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세계의 궁극적 본성은 무엇인가’ 혹은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제기했다는 사실에 놓여 있는 것이지, 그가 실제로 제시했던 대답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전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의 원리를 신화적인 접근태도로부터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