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가 본적 없다는 가이드는 발음이 비교적 잘 하는 듯 했지만 전설같은 내용을 설명할 때면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는 검색을 하기로 했다
4세기
다트세나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후처소생으로 카사파
왕비소생의 아들은 목갈라나로 두번째 아들이었다
카사파가 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나에게 달라
그러자 다트세나왕은 카사파를 데리고 이곳 시기리아호수를 찾아온다
거대한 호수 앞에 아들을 세우고 말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이 물과 같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따르지 않고 아버지를 감금 죽이고 만다
이 사실을 안 목갈라나는 생명에 위협을 느까고 인도로 도망을 친다
이제 다 차지했지만 카사파는 불안했다
언제 어떻게 동생이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모른 것이다.
이 높은 바위 위에 궁전을 만들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요새를 만들었다.
카사파는 이곳에 살며 바위궁전을 내려가는 일은 없었단다. 바위궁전으로 들어오는 아래는 접근을 막기 위해 해자를 만들고 악어를 풀어 놓았으며 물길을 만들어서 해자가 마르는 일은 없게 하였단다
사람들이 왕을 만나기 위해 오면 한사람식 들어갈 수 있게 하여 사람을 거르고 걸러서 만나고 바위성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줄을 길게 서서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 많고 끝이 없는 길
천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원숭이들이 보고 있다. 저희들과는 다른두 발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우수웠을 것 같다.
왕이 왕자들과 즐기던 수영장이란다.
얻를 가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왕 한 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고생해가며 왕을 받들었을까?
참 괜한 생각을 해 본다.
목갈리나가 쳐들어 올까봐서 맨날 여기에 앉아서 불안해 했다는 왕의 의자
결국 가이드는 저 아래서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만 올라갔다 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이곳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는 곳이 있었다.
아직 궁전의 흔적ㅇ 남아 있는 담과 벽화를 보기 위해서 또 걷는다.
지금도 궁전은 남아서 벽화를 조금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던데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가져왔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해서 나도는지는 모르지만 내려오면서 보니 주르륵 액자형태로 만르어서 팔고 있기도 했다.
당장은 필요할 듯 보이지만 집에 가져오면 또 어느 구석을 차지할지 몰라 안 사기로 했다.
내려오며 보니 큰시누이남편이 그리 말하던 코브라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여주는데 돈을 달라고 하니 1불을 주었다.
피리를 불며 바구니를 여니 코브라가 머리를 치켜들고 나왔다.
쉭소리를 내며 달려들려고 하자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머리 추켜들고 나오는 것까지만 이다.
코브라를 보고 내려오니 거대한 바위기둥이 마치 코브라를 닮았다.
그 앞에 회의 장소였다는 다소 넓은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왕이 앉았던 자리에는 못 앉게 하였다.
통로는 겨우 한사람씩만이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길게 줄을 서서 갈 수 밖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내려가는 길에 처형을 하게 할 만큼 카사파왕은 평생을 불안에 떨다가 결국은 정신병자처럼 되어 자살을 했단다.
언제 어떻게 인도로 도망친 동생이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모르는 것이다 높다란 바위위에 왕궁을 짓게 하여 살았지만 정신적인 불안까지 해소해 주지는 못했나보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거대한 바위에 궁터만 남아 있다.
왕은 이곳에서 살며 내려오지 않았단다.
폰으로 글을 쓰려니 잘 되지 않는다
수정을 하면서 사진도 첨부하니 좀 더 나은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다 전할 수는 없다.
이것 역시 허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