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초등 역사(사회5-2) 국정 교과서 개발을 즉각 중단하라!”
우리는 그 동안 정부와 교육부가 주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 검토 논란’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이 시대착오적인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 연장선에서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초등역사(사회 5-2) 교과서 실험본을 분석하였다. 이 책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들이 6학년이 되었을 때 배울 교과서로 초등학생의 역사인식 형성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인식과 국정교과서 개발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분석을 위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일어났고, 여러 연구자들의 분석 결과를 종합할 시점에서는 모두 참담한 마음에 말문을 잃었다.
우리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실험본은 이번 학기에 전국의 40여개 초등학교에서 실제 수업에 활용된 교과서들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8월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편찬 기관 공모가 이루어졌으니, 2014년 2학기에 실험본 교과서를 현장에 보급할 때까지 약 2년 동안 개발 작업이 진행된 결과다. 같은 교육과정의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에 겨우 7개월, 고등학교 검정 한국사 교과서에 1년 4개월 가량의 시간을 준 것에 비하면 2년이라는 시간은 완성된 교과서를 제작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분석 결과는 그 동안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를 굳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놓은 근거들 모두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사실로서 보여주었다.
그 동안 정부와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명분으로 각계의 최고 전문가로 집필진을 구성하여 오류와 이념 편향성이 없는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실험본은 그 주장이 완전히 허구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실로 엄청난 수의 오류, 무성의한 편집과 엄청난 학습량, 편향된 역사인식 등 역사 교과서가 가져서는 안 될 거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실 오류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명백한 사실 관계 오류, 부정확한 표현과 역사적 맥락을 잘못 기술한 내용이 무려 350여개로 쪽당 2개에 이른다. 이는 작년에 수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검정을 통과하여 사회 문제가 되었던 교학사 교과서를 떠올리게 한다. 이 교과서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와 같은 검정 절차를 거쳤다면 절대 합격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
무성의한 편집과 중·고등학교 수준의 엄청난 학습량도 심각한 문제다. 같은 사진을 반복하여 사용하거나, 고증을 거치지 않은 삽화, 독서의 흐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편집 등은 교과서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단원에 따라서는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수준의 지식이 나열되어, 역사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우려가 크다. ‘누숙경직도’(11쪽)와 같이 역사교사도 잘 모를 역사용어가 남발된 것도 걱정스럽다.
초등학생들에게 편향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정권에 관한 서술에서 군사 정변과 유신 독재의 실상을 왜곡하는 서술, 새마을 운동을 경제 발전과 연결시켜 과도하게 평가하는 서술, 산업화 과정과 경제 발전이 가져온 변화를 제시하면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에 대한 고민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교과서로는 우리 역사와 사회를 균형 있게 바라 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친일과 독재 미화로 학교 현장에서 외면 받은 교학사 교과서의 서술 방식이 여러 곳에서 보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일제가 한국의 의병을 ‘토벌’(93쪽), ‘소탕’(94쪽)했다거나 일제강점기 동안 쌀을 ‘수출’(96쪽)했다는 표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157쪽) 등의 표현은 교학사만의 서술 방식 그대로이다.
교육부는 실험본이기 때문에 지금 부터라도 수정하면 된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2년간의 시간을 투자하고도 왜 제대로 만들지 못하여 지금 이 같은 문제가 외부에서 지적되는지 교육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육부가 제대로 수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려니와 설령 수정하여 다시 발행한다고 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명백하게 잘못된 실험본 교과서로 이번 학기에 공부한 학생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초등 역사(사회 5-2)교과서의 문제가 바로 국정 발행체제의 모순이 집약된 현상으로 이해하며, 교육부에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1. 교육부는 실험본 교과서를 회수하고, 이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
1. 교육부는 그 동안 국정으로 발행한 다른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후 더 이상 국정제로 교과서를 발행하지 않도록 교과서 발행 체제를 전면 재검토하라.
1. 겨우 이 정도의 국정 교과서를 발행할 능력 밖에 안 되는 박근혜 정부는 중등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2014년 12월 09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공동대표: 김정훈(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
신승철(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완기(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정동익(사월혁명회의장)
[보도자료]국정 초등사회 교과서 분석 성명 및 토론회(2014.12.0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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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의 문제점을 제대로 노출하고 있으니 조금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학생들일수록 역사교육을 더욱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어릴 때 배운 건 정말 오래오래 기억에 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