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
卍瞛 조 성 복
원주 병원에 들어가 귀 닫고 소리만 지르시는 아버지께 발 한쪽 담그고 제천 요양원에서 천지를 모르고 한울님과 삿대질하시는 어머니께 남은 한쪽 발마저 담그고 나니 김포와 일산에서 손발이 닳도록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딸 아들이 눈에 밟혀 두 팔 하나씩 주고 나자 그냥 이쁜 놈 광명사는 막둥이는 줄 게 없어 아내 몫 가슴 한쪽을 떼 주었다
모든 걸 주는 게 맘 편한 심사라지만 더 줄 게 없어 평생을 발 등만 내려보고 쫓겨 살아선지 한 이불 덮어도 남남 같던 아내가 문득 생각나 고개를 들어 보니 그 곱던 얼굴 간데없고 검은 사진 속 찌든 얼굴로 바람벽에 서 있네
지난달엔 젊디젊은 당고모가 그깟 코로나 하더니 황망하게 삼베옷 갈아입으셨고 며칠 전엔 눈먼 복사골 친구가 날 기다리다 도화주만 안고 떠나 이틀 밤을 지켰다 문밖 간판 자리가 눈에 익는다 했더니 예식장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고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어쩌자고 데려만 가는지
해 넘어 마당 가 홍시 단풍들던 날 때늦은 연민으로 술 한잔 들고 뒷동산 아내를 찾아가 푸념하기를
- 그래, 날 두고 먼저 가니 그리 편한가? 그리도 좋아?
투덜대다 정신이 돌아온 듯 애걸하여 사정하길
- 거기선 아프지 말게나 배곯지도 말고…
주거니 받거니 혼자 취해 흥얼거리다 아내 곁에 잠들어버렸다
산다는 게 신이 내어준 소풍 길이라 꽃밭인 줄 알았는데 섶다리 건너듯 평생을 흔들리며 살아왔으니 애당초 나서지나 말 것을, 타박한 날들이 왜 이리 더디기만 할까?
오늘 밤 달이 지고 새벽 별 따라 오는 낯익은 얼굴 만나면 그 옆자리 하나 부탁해 둬야겠다.
문우 여러분!!
용서하십시오!
오늘, 술 한 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