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먹고 싶은 게 생각났어! 남편의 말에 내 귀가 당나귀 귀만큼 커졌다. 간장에 까무잡잡하게 조린 쫀득쫀득한 도미머리찜 있지? 남편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짭조름한 음식을 먹으면 울렁거리는 속이 좀 가라앉을 것 같단다. 생전에 시어머니께서 솜씨를 발휘했던 그 별미가 눈앞에 그려졌다.
남편은 위암이 발병하여 항암치료 중이다. 밥 먹자고 하면 푹 한숨부터 내쉬었다. 마치 뱃멀미하는 사람을 뱃전에 앉혀놓고 억지로 먹으라는 것과 같았다. 의사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고, 백혈구 수치를 유지해야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며 신신당부했다. 특히 탄수화물과 단백질 섭취가 주요했다. 하지만 억지로 먹을라치면 구토를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음식과 사투를 벌이고 나면 몸무게가 푹 줄어 들었다. 지옥 같아. 남편이 말했다. 정말로 산해진미가 옆에 있어도 먹지 못하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잘 먹던 음식도 그이가 입덧하듯 못 먹겠다고 물리면 나도 덩달아 입맛이 달아났다. 모처럼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는 게 대견하고 고마웠다.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을 박차고 나섰다.
호기롭게 집을 나서긴 했지만 어디 가서 도미 머리를 구한다? 시댁에서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처음 보았던 요리였다. 시집오기 전엔 도미머리찜이라는 음식이 있는 줄도 몰랐다. 도미 몸통도 아니고 뼈만 잔뜩 있는 도미머리로 찜을 한다니? 헌데 한 점 먹어 보고 어두육미(魚頭肉尾)라는 말이 왜 생 겼는지 알 수 있었다.
시아버님은 생선요리를 즐기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미머리찜을 좋아하셨다. 무를 굵직하게 썰어 냄비에 깔고 그 위에 도미 머리를 얹고 양념간장을 끼얹어 짭조름하게 조려낸다. 도미 뽈살에 양념이 잘 배어들고 쫀득쫀득한 맛을 내는 게 관건이었다. 이 요리는 손가락을 동원해 뼈를 발라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다. 다 먹고 남은 조림간장에 밥 한 숟가락 넣고 비벼 먹으면 그 맛 또한 기가 막혔다.
50여 년 전 병석에 누우신 아버님이 도미머리찜이 먹고 싶다고 하셨단다. 도미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고가의 어물이었다. 광산 사업 실패로 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그런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님은 보채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당신의 비단 저고리를 보자기에 싸 품에 안고 효자동 시장으로 달려갔다. 건강과 마음을 상하신 아버님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일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철없는 아버님을 탓할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그 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이제야 읽는다.
새벽바람에 달려온 어머니를 보고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생선전에는 도미를 비롯한 귀한 어물들이 즐비했다. 큰 시장이 가까이 있었지만, 이곳 어물전이 싱싱하기론 단연 으뜸이어서 어려운 살림에도 아버님의 한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곤 했던 곳이었다. 때로는 외상거래도 해 주었던 넉넉한 인심이 어머니를 그리로 이끌었다.
당시에는 도미가 크고 워낙 비싸 머리, 몸통, 꼬리 부분으로 나누어 팔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단골 이기로서니 현금도 아닌 저고리를 들고 온 어머니께 몸통도 팔기 전에 머리부터 잘라 팔겠는가? 주인장이 눈치를 주었다. 하는 수 없이 몸통을 사러 올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보자기를 가슴에 안고 가게의 어두운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렸을 어머님. 시고모님이 전해 준 이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시려왔다. 남편은 그 전설 같은 이야기를 까맣게 몰랐다. 사연도 모르고 먹었던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이제는 통인시장이라 불리는 옛 효자동 시장으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은 젊은이들이 찾는 명소로 변모해 있었다. 시장 입구 지하에 있었다는 그 생선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잘한 생선이 즐비한 다른 가게들만 눈에 띄었다. 가슴에는 이유 없이 찬바람이 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 생선전의 젊은 주인장에게 묻자 횟집이나 일식집에 가셔야 할걸요? 한다. 활기찬 그의 목소리가 나를 추억에서 깨어나게 했다. 옳지 그렇구나! 발걸음에 생기가 돌았다.
눈썹이 휘날리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을 열어 레시피를 찾았다. 머릿속에선 어머니의 손맛이 나를 채근했지만, 그 솜씨를 무슨 수로 따라잡겠는가! 다만 지아비를 향한 당신의 절절했던 정성과 사랑을 떠올리며 감히 흉내라도 내보려 애를 썼다. 양념을 버무리며 당신 아들의 기력을 되찾게 해달라 기도했다.
상에 올려진 도미머리찜을 먹으며 남편은 이 맛이 아닌데, 그때 그 맛이 아니야. 쫀득거리는 맛이 없어. 양념도 이렇게 허옇지 않았는데. 하면서도 연신 머리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먹었다.
추억의 그 맛을 나는 다시 되살리지 못했다. 어머니 생전에 나는 어디에 한눈을 팔고 있느라 그맛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걸까? 때늦은 후회가 그리움으로 밀려들었다.
첫댓글 도미 머리찜을 잘해주셨던 시어머니와 작가!
그 어머니가 해주던 맛만을 기억하는 작의 남편!
모두 조화를 잘 이루었네요.
가슴 찡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도미 머리찜을 읽으면서 친정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이 생각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