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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성경의 어휘를 지금까지 많이 연구했는데요. 어휘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 그 기본이 정확해야 신학도 올바른 신학이 된다고 믿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56번째 시간입니다. 156번 강의 제목은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이라고 하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직접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인 예식, 혼인 잔치는 나옵니다. 그러나 결혼식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또 그 결혼식의 의미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두드러지므로 오늘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옵니다. 맨 첫 번째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확실하게 인류 역사 첫 결혼식이 될 것입니다. 그 결혼식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성경 구절이 바로 창세기 2장 24절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 선언문이지요.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영감받은 책 『부조와 선지자』 46쪽에 보면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한 다음에 바로 이어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 하나님이 주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주례하시는 결혼식이었으니 얼마나 뜻깊고 얼마나 아름답고 또 감명 깊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앞에 세워놓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선언하신 것은, 앞으로 있을 수많은 아담의 자손들이 결혼식을 할 때 이런 의미로서 하라고 하나의 샘플로 주례를 최초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제도의 창시자는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이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를 창시했고 그 첫 결혼식을 주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 말씀처럼 혼인은 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들 중에 하나였으며, 타락 후에 아담이 낙원의 문 저편에서 가지고 온 두 제도 중에 하나입니다. 이 두 제도가 바로 안식일 제도와 결혼 제도입니다. 그중에 더 먼저 있었던 것은 결혼 제도입니다. 창조 주간 여섯째 날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그 두 사람을 짝지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고 선언하신 다음에 맞이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때로부터 안식일은 오늘날까지 창조의 기념일로 지켜져 오고 있으며, 결혼식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룬다는 이 제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시편 45편에 보면 왕의 결혼식에 대한 축시가 나옵니다. 이것은 왕이 결혼하는 데 대한 축하의 시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편 45편을 보면 표제어에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 사랑의 노래,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 맞춘 것'이라 되어 있습니다. '인도자'는 음악을 지휘하는 지휘자 또는 악장이라는 뜻이고, '소산님'은 백합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된 음악 형식입니다. 지휘자를 따라 소산님이라는 곡조에 맞춘 것으로서 쓰인 축시가 시편 45편입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왕이 결혼을 하니까 온 백성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고라 자손이 시를 써서 왕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인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여기서 '규'라는 말은 옛날 개역한글판 번역에는 '홀', 즉 임금의 지팡이입니다. 결혼하는 왕을 아주 잔뜩 축복하고 칭송하는 노래입니다. 이 결혼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으면 이렇게 한 시인이 왕을 위해서 축시를 썼겠습니까? 결혼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혼인 잔치가 비유로 나타납니다. 신약에 와 보면 예수님이 하신 비유 가운데 결혼식을 천국에 비유하셨습니다. 천국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면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절로 1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혼인 잔치를 베푸는 임금이 나옵니다. 아까 시편에서는 임금이 신랑이었는데, 이번에는 임금이 신랑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을 천국에 비유하셨습니다. 임금이니까 종이 많겠지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오라고 초청했는데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고 했습니다. 혼인 잔치는 천국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어중이떠중이 다 오라 하여 가득 찼습니다. 하객들이 왔으니 혼주로서 인사하러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는데,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풍습에는 결혼 잔치에 참석하면 밖에서 준비해 준 예복을 걸쳐 입고 들어가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그냥 길가에 다니던 옷을 입고 들어온 것입니다. 임금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라고 따지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에 이 사람 저 사람 다 오라 해서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오지는 못하지만, 오는 사람은 예법에 맞게 옷을 입고 와야 합니다. 그 옷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의, 즉 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비유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내 옷을 입고 들어가려 한 사람은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 데 내던져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결혼과 관련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번째는 또 하나의 결혼과 관련된 비유가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명의 처녀가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입니다.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신랑이 밤중이 될 때까지 더디 오니 불을 켜놓고 기다리던 미련한 처녀들은 그 사이에 기름이 다 떨어졌습니다. 신랑이 온다는 소문이 나니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하는데, 슬기 있는 자들은 기름을 다시 부어 신랑을 맞이하려 하고 미련한 자들은 기름이 떨어져서 어떡하나 발을 동동 구르며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여 부랴부랴 기름을 사러 나갔습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사 가지고 왔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후였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 알지 못하니까 항상 깨어서 기름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비유입니다. 여기서도 혼인 잔치이고 신랑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비유합니다. 열 처녀는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 성도들을 말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고 준비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비유입니다.
다섯 번째는 진짜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가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나는 가버나움과 나사렛 사이에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도 가나에 가면 요한복음 2장에 있었던 결혼 잔치를 기념하는 혼인 잔치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께서 첫 이적을 베푸신 결혼식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도 청함을 받았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결혼식에 청함을 받았더니, 손님이 많이 와서 즐겁게 흥을 돋우는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니 예수님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하니 우리 풍습에는 무뚝뚝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풍습에서 '여자여(Gynai)'라는 표현은 여성을, 혹은 어머니 같은 분들을 가장 존중하여 부르는 정중한 칭호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그 일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 사람들의 곤란한 처지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고 말했는데,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보는 가운데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가 아직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을 키워왔기에 말씀의 뜻을 알았고 예수님께 무슨 계획이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셨는데,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니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첫 이적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혼인식에 참석하신 것은 혼인이 인간에게 유익하고 특별하며 엄숙한 예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신 것이고, 태초에 하나님이 주례하신 그 결혼식을 예수님도 인정하시는 장면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가장 큰 잔치인 어린 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신부입니다. 예수님과 성도들의 만남을 어린 양과 그의 아내가 만나는 혼인 예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구속의 역사가 종국적으로 완성되는 궁극적 성취로서의 결혼입니다. 신랑은 예수님이고 신부는 교회입니다. 이 만남이 이루어짐으로써 영원히 함께 사는 하늘나라의 영적인 결혼 생활로 들어가는 잔치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어마어마한 결혼 잔치가 시작됩니다. 구원받아서 우리 구주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그 사랑의 대상을 함께 만나 영원한 생활로 들어가는 예식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의 결혼식이며, 우리 모든 성도가 그분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결혼과 관련된 성경의 사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 '결혼'이라는 단어는 이사야, 예레미야 등에 네 번밖에 안 나타나지만, '혼인'이라는 말은 구약에 4회, 신약에 22번 합쳐서 총 26회 나타납니다. 둘을 합치면 성경에 30회나 사용되었습니다. 혼인은 결혼과 같은 말이며, 이 예식을 우리는 결혼식이라 부릅니다.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입니다. 결혼식이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직접 나타나 있지 않지만 결혼식의 광경은 나타나 있으며, 그 대신 '혼인 잔치'라는 말이 여덟 번 나옵니다. 혼인을 축하하는 잔치이자 피로연 같은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바로 어제 오후에 한 젊은 쌍을 결혼시키는 주례를 했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신랑과 신부가 되어 한 집안의 남편과 아내가 되는 정중한 예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축하했고 풍성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기쁜 자리였습니다. 제가 가끔 주례를 하지만 어제 또 한번 주례를 하면서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성경의 사상과 우리의 문화를 취합해 보면 결혼식의 목적은 적어도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약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주례자와 양가 부모와 하객들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엄숙하게 약속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돌보고 존중히 여기며 함께 살겠다고 공중 앞에서 고백하는 무거운 비중을 가진 약속입니다. 둘째는 권면입니다. 앞으로 신랑과 신부로 살아갈 때 겪어야 할 일들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조언을 주례자가 베푸는 것입니다. 저도 어제 다섯 가지를 꼭 실천하라고 이야기했고 신랑 신부가 명확한 대답으로 약속했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셋째는 축복입니다. 함께 모여 축하하고 복을 비는 것입니다. 온 손님들을 '하객(賀客)' 즉 축하하는 손님이라 부릅니다. 부모와 성도들, 하객들의 축복을 주례자가 대표하여 축복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두 젊은이가 부부가 되어 살아갈 때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자녀를 잘 기르고 부모에게 효도하게 해 달라고 복을 비는 것입니다. 넷째는 선언입니다. 부부가 된 것을 엄숙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저도 어제 이 두 사람이 엄숙히 서약했으므로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된 것을 엄숙히 선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남몰래 하는 비밀 결혼은 성경의 취지에 맞지 않으며, 공중 앞에서 결혼식을 하고 선언하는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다섯째는 예전입니다. 예를 갖추어 드리는 거룩한 예식을 예전(Liturgics)이라 합니다. 침례식이나 유아 봉헌식과 마찬가지로, 결혼식도 하나의 예전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그럼 이 결혼식을 누가 집행해야 할까요? 집행하는 사람을 주례자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서약, 권면, 축복, 선언, 예배 등을 의미 있게 진행하는 결혼식은 단순한 의례나 그들만의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예배이며 성전입니다. 하나의 신성한 예전(Sacrament)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주재하는 주례자는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해야 합니다. 주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랑과 신부의 서약을 받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경 말씀으로 권면을 베풀며(저도 어제 에베소서 5장 22절과 25절을 읽었습니다), 하객들을 대표하여 축복하고, 부부가 된 것을 공적으로 선언하며 감사의 예배를 집행하는 사람입니다. 책임이 아주 큽니다. 예배 인도자로서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은 반드시 안수를 받은 목사가 집례해야 합니다. 교회의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교회요람』 2009년판 90쪽을 보면 "결혼 예식에서 행하는 결혼 위탁 명령, 서약 또는 성원 선언을 하는 일은 안수 목사만이 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초한 결혼식의 법입니다. 단서가 있다면 교회 장로로 안수받은 인준 목사나, 화회 행정위원회가 인정한 지역에서는 인턴 목회자도 결혼식을 거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원칙은 안수 목사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결혼시켜야 할 부모님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식은 동네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대단히 엄숙한 예전입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식에 많이 참석해 보니까 현실의 추세가 조금 새로워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례자는 없고 사회자가 예식을 진행하는 추세입니다. 제가 작년에도 몇 번 보았습니다. 주례 목사가 없으니 양가 부모 중 한 사람이 나와서 덕담 한마디로 권면을 대신하고, 성경 봉독과 찬송은 아예 없습니다. 세속적인 축가 음악만 연주됩니다. 찬송과 성경 봉독이 전혀 없는 예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성원 선언이나 엄숙한 선포 같은 것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교회당보다는 일반 예식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예식장에서는 15분, 20분 만에 빨리빨리 마치다 보니 주례사가 말할 시간도 부족하고, 결혼식이 신성함이 없는 천박한 행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관찰한 아쉬운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예식은 어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결혼식에 대한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결혼하는 당사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하고 축복을 받음으로써, 새 출발에 대한 자신감을 느끼고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결혼한 후 얼마 살지 못하고 헤어지는 사례가 참으로 많이 일어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상태를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름답게 영원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부모님도 행복하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기초한 결혼식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앞길에 아름다운 결혼식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새 가정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 핵심 요약정리
결혼 제도의 기원과 신성성
결혼식이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혼인 예식과 잔치의 형태로 성경 전반에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인류 최초의 결혼식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친히 최초의 '주례자'로 참여하신 신성한 제도입니다. 타락 전 낙원에서 보존되어 온 안식일과 결혼은 인류 최고의 신성한 선물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결혼 관련 사건과 비유
축시(시편 45편): 왕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고라 자손이 지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마스길)가 기록되어 기쁨의 예식을 칭송합니다.
혼인 잔치 비유(마태복음 22장): 천국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으며, 참여하는 자는 자신의 옷이 아닌 신랑 아버지가 준비해 준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열 처녀 비유(마태복음 25장): 등과 함께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여 신랑을 깨어 기다리는 성도만이 영원한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요한복음 2장): 예수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첫 번째 이적(물이 포도주가 됨)의 무대로, 주님이 친히 결혼 제도의 거룩함과 인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고엘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요한계시록 19장): 구속 역사의 최종 성취이자 재림의 도래를 뜻합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세마포 옷을 입고 마주하는 영원한 하늘 대합창의 잔치입니다.
결혼식의 5가지 핵심 목적
서약: 하나님과 주례자, 하객들 앞에서 평생 사랑하고 존중하겠다고 공표하는 엄숙한 약속입니다.
권면: 부부로서 나아가야 할 성경적인 조언과 영적 지침을 듣는 시간입니다.
축복: 하객(賀客)들과 주례자가 대표 기도를 통해 새로 출범하는 가정의 형통을 하나님께 구하는 일입니다.
선언: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음을 널리 선포하는 일로, 남모르게 치르는 비밀 결혼은 성경적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예전(禮典): 결혼식은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침례식이나 성만찬처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신성한 '예배(Sacrament)'입니다.
집례의 원칙과 주례자의 책임
결혼식은 거룩한 예전이므로 교단의 규람(교회요람)에 의거하여 공식 안수를 받은 '안수 목사'만이 서약을 받고 성원 선언을 집례할 수 있습니다.
현대 결혼 문화의 세속화 경계
최근 유행하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나 사회자 중심의 진행, 성경 봉독과 찬송이 전무한 예식, 시간 제한적인 일반 예식장 선호 추세는 결혼식 본연의 성경적 의미와 신성함 및 엄숙성을 훼손하는 우려스러운 경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식은 가능하면 교회당에서 잘 갖추어진 경건한 예배의 형태로 드려져야 하며, 주 안에서 신앙이 일치하는 배필과 멍에를 함께 메어 평생 토록 사랑의 서약을 변치 않고 지켜내는 것이 복음의 실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