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
지난 토요일 아침은 정말 분주했어.
직장의 대표주자로 텔레비전에 나가 전 국민을 상대로 라이브 하는 날이 바로 토요일이었는데, 하필 그 고대하던 산수유축제와
공교롭게도 맞물려 떠나는 날이지 뭐겠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7시까지 머리 쥐날만큼 긴장된 순간이었는데, 카메라를 향해 방긋거리며 얘기해도 머릿속은
그야말로 천길벼랑 끝에 서있는것처럼 아슬아슬...버벅거릴까봐 말야...끝나고 다시 9시까지 직장으로 돌아와서 근무를 해야했어.
그리고 점심도 건너뛴채 나와 친구는 정신없이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지.
왜냐구? 아, 글쎄 화우들 모다 아침일찍부터 먼저 길을 떠난거야.
기어이 오늘도 한점 그리겠다는 욕심쟁이들이라, 오후에 떠나자고 애원하는 내말은 콧등으로 듣고는 날 빼놓고 간거지.
그래도 말이야, 저 아래지방의 거의 맨 끝자락에 붙어있는 구례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를 산수유축제와 맞물려 이렇게 일찍
시작한다고 하니 항상 정중에서 좌지우지하며 설쳐대던 내가 빠질수가 있겠냐 말이지.
그 머나먼 길을 참 지치게도 달려갔지. 아이구... 하필 운전에 젬병인 인간하나 더 달구 가려니 속터지드만...
한차선만 달랑 해놓고 고속도로랍시고 돈받아가며 폼재고 있는 호남선 88도로가 얼마나 아니꼽던지..이건 아무리 밟아야 80을
못넘으니, 다른 차들한테 온갖 협박 다당하고 왔다면 믿겠어? 나 전야제 꼭 참석해야 하는데, 그 의지가지고 굳세게 참았지.
어쨌거나 아휴휴! 제때 가까스로 참석하긴 했어. 장장 7시간이나 달려서 말이지.
그래도 천신만고 온 보람이 있드만. 아, 글쎄말이지...놀라지마! 그날 그 많은 사람들중에 -한 몇백명쯤 됐나?-나혼자 상을
세 개나 탄거 알아? 것보라구, 기어이 떼놓고 아침부터 가더니만, 풍류에 능한 나라도 없었으면, 우리 속수무책 서울팀,
어떻할뻔 했냐구?
근데, 같이 온 뚝뚝이 있잖아, 아니, 그 젬병말고...표정이 왜 저렇게 의기양양한거야.
뭔지 뭔지 찝찝해.... 평소같으면, 벌써 흐물거릴텐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아주 기운차 보여, 에고...뭐지?
아무리 훝어보고 째려봐도 득의만만하단말야...
전야제는 무척 아쉬울 때 끝났어, 아직 입맛만 다셨는데, 그 힘들게 찾아간 그날 밤을 그렇게 맹숭하게 접을수가 있냐 말야.

오호라...마침 다들 같은 생각인가? 그래 나두 쫒아가서 신나게 놀거야. 내친김에 아예 나이트에 눌러앉아버려?
번쩍 번쩍, 휘황한 조명아래서 신나는 음악에 몸을 전부 맡겨본적 있어?
늘어진 엿가락처럼 서서히 리듬을 타다가 경쾌하게 귀를 찌르는 선율에는 눈밭에 뛰노는 토끼마냥 신나게 들뛰어보란 말야.
혹, 고민같은거 있어? 아님, 스트레스 받는거라두? 그러고나면, 뭐든게 개운하지. 마치 찌든 때 같은 것들이 훌러덩 벗겨지는
기분인거 알아? 이래서 바람중에 젤 무서운게 춤바람인가봐....^^;;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 산수유마을은 너무 황홀했어. 그렇게나 이뿐 꽃망울 터트리려구 지난 겨우내 그 혹한 추위를 참 잘도
참았냈다면서?
그 많은 우리 발길들을 다른 봄꽃들에게 선수뺐기지 않을려고, 노란 욕심쟁이들이 똘똘 뭉쳐 한꺼번에 이렇게 멋진 축포를
쏘아댔대지?
흐흐흐.....그러고 보니, 그다지도 잘나보이던 개나리가 웬지 아주 곰살맞은 고집쟁이로 보이는데 유난히 샛노란걸 보면,
지 혼자 노랑비 움켜쥐고 시선 한번 더 받으려고 음모를 꾸민건가? 참 묘하게 동시에 핀걸보면, 시샘내는게 분명해.
근데 말이지, 생김은 점점히 아주 작고 겸손해도 비록 개나리에게 뺏긴 나머지 별볼일 없을 것 같은 희미한 노랑을 가지고
참 대견하게도 여럿이 나누니까 얼마나 화사하고 근사하던지...
그렇게 전체 산야까지 지편만들어 한꺼번에 뎀비니까 천하장사도 못당한다는 말이 생각나더라구...그러니 쭉정이 같다는 말,
이럴 때 눈치없이 끼어든 개나리한테나 어울리는 조크가 아니겠어?
그랬지, 산수유에 정신팔려 그 많은 당대 내놓라하는 그림객들속에 섞여 나도 참 폼새나게 그렸었어...더러 더러 내 그림도
멋지다는 구경꾼들의 빈말에도 으쓱하며 참 열심히 붓질을 해댔는데 말야....
어쩐지 엊저녁부터 내친구 그 뚝뚝녀의 예사롭지 않은, 혹은 뭔지뭔지 찝찝했던 예감이 적중했다는거야.
허긴! 뭐....그림안에 내가 떡허니 들어 앉아있는데, 어쩌겠어? 대상이고 말고지.그 수많은 그림들을 당당히 제끼고 말야...
내 뒷모습이 시야를 가린대나 어쩐대나 하면서 쫑알거리더니, 전략을 바꿔 날 아예 모셔간거야.
에구구, 나 그날 오면서 화장실 여러번 간거 알아? 쉿! 이윤 묻지 마!
그래도 그렇게 남의 마을의 비싼 돈들여 벌여놓은 산수유축제를 거져 건져올리고, 돈까지-한두푼이라야 말이지,
자그만치 50만원이라네-받은 뚝뚝녀의 대상이 내심 올매나 부럽던지. 태어나서 1등을 해봤어야 말이지...
아! 그래도 그림속 나와 어우러진 산유수나무가 정말 아리삼삼하더라구...
올 때는 그날 하이라이트의 주인공이 된 뚝뚝이를 모두에게 양보하고는 우리만 먼저 길을 떠났어. 물론, 대상으로 받은 돈에서
저녁으로 한턱내는 선심과 축하건배자리까지는 함께 했지. 내심 나도 그냥 주저앉아 좀더 여흥을 즐기고 싶었는데. 에고, 아쉽당..
모두들 거나하게 한잔 들이키며 헤벌쭉하고 있고, 입이 양쪽 턱에 걸려 째지기 직전인 으뭉한 사촌(뚝뚝이야, 왜냐구? 내가 무지
배 아픈거 보면, 땅산 사촌아니냐구)을 뒤로하고 먼저 서울길에 올랐어....

하지만, 흐이구, 난 그 시간이후부터 서울도착할때까지 장장 7시간여를 살아남기 서바이벌 게임의 시작이었던걸 까맣게
몰랐던거지.
그 끔찍스런 1차선 88고속도로를 밤에 그 젬병이 운전하는 조수석에 앉어보라구... 옆의 백밀러로 보이는 우리 뒤부터 까맣게
이어지는 번쩍거리는 불빛이 그렇게 공포스러울수가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겪었어.
정말 전날밤 날 흥분시켰던 댄서의 번쩍번쩍 불빛이 그렇게 광포하게 변할 수가 있다니, 신나는 선율대신 귀를 찌르는
경적소리까지 믹서시켜서 말이지...
난, 너무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에 땀이나서 그 똥고집의 젬병한테 사정하기 시작했어...
제발....50으로만 달려, 80까지도 안바랄게... 저러다 뒤에서 우릴 박을거 같잖니? "그래두, 우리가 일등이잖어.
안전속도로 가면서 일등까지 하는데 왜 자꾸 보채구 그래! "
"아니, 한차선밖에 없는 도로에서 이렇게 달리니 당연히 일등이지만, 이러다간 죽는 것도 일등이란말야" 윽! 그래도 우리의 천하
무적 젬병녀! " 아 다들 눈있는데, 급하면 지네가 추월하라 그래" 도무지 눈도 꿈쩍 않더란 거야. 으흐흐....
그러는 사이에도 그 무시무시한 덤프트럭들이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거야. 한차선밖에 없는데...그 젬병이 운전대는 누가 뽑아
갈것처럼 억세게 쥐어틀고는 40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고 마냥 마냥 기어가는거야. 고속도로를 그 한밤중에 말이지...
지리산 휴게실까지 거의 갓길에서 덜덜덜 거리며 오는데, 급기야는 내심장이 너무 놀래서 혈압도 무섭게 오르고, 머리에 번개맞은
것처럼 쥐나고... 난 급하게 우리팀 버스로 SOS를 쳤어.
그랬더니, 우리보다 한참후에나 떠난 버스가 이미 휴게소를 빠져나갔다지 뭐겠어? 하늘이 무너지더라구...
난 도저히 조수석에 앉아 온정신으로 그 협박--시속 140, 160으로 달리는 차들의 경고음과 어떤차는 앞지르기한게 너무 약올라
우리차 앞에서 갑자기 속력을 팍 줄여 서기도 했는데...--을 도저히 옆에 앉아 견디기가 무서워 뒷좌석에 앉아 기도했어
"오! 주여....살려서만 여기를 빠져나가게 하소서"하며 머리끝이 쭈뼜거릴 때....

갑자기 우리차 뒤에서 웬 큰차가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마이크대고 우릴 세우는거야. 소리소리 지르며 뒤쫓아오면서 말이지
"아니, 지금 제정신으로 그렇게 가는거예요? 죽으려고 작정했어요? 이렇게 천천히가면, 남까지도 사고나는걸 몰라서 그래요?
운전자들이 화가나서 우리 도로공사사무실로 계속 항의들어와서 급하게 달려온거예요"하며 눈을 부릅뜨더라구...
그제야 우리의 운전경력 6년씩이나 된 젬병하는말, "아저씨...저 초행길이고, 밤이라서 안전운전하는거예요"
히이고! 또 그렇게 고집부리는거 있지? "안전운전은 리듬을 타야돼요. 이게엄청 위험한줄 몰라요? 정 못하겠다면,
비상등 양쪽으로 다 키고 가요"
그래서 양쪽 번쩍거리는 비상등키고 전남끝에서 서울까지 장장 6시간이상을 40, 50놓고 달려왔다는거야...
아휴휴...그래도 그 아저씨! 나에겐 구세주였어. 비상등키니까 그때부터 야유와 협박이 사라지더라구, 일찌감치 비켜서
가는거 있지... 그러니까 난 정말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며 무사히 살아돌아온거야....
그리고 난, 그 20년지기 친구가 운전대를 잡고나면, 그렇게 엽기적이 된다는것두 첨 알았다구, 도무지 끄떡도 않고, 지금도
40이 가장 안전한 규정속도인줄 알아....
"지들이 아쉬우면, 앞지르기 할거야, 내가 뭐 바쁜게 있다구? 안전하게 가야지 안전하게 말야..." 하면서 샐금 샐금 웃는데....
허걱!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더라구...시간? 물론 새벽 1시반에 도착했으니까...그래 그 오밤중에 말이지...
암튼 도착하자마자 그 끔찍스런 긴장이 풀려 온몸이 쑤시더란말이지.
담날까지 꼼짝도 못했어. 하이고.... 나 그래도 살아온게 어딘데? 게다가 환상의 산수유 마을 한가득 품어앉고,
지금 내방에 걸어놨어.
그 맑고 노랑가득한 산수유, 그 유혹적이고 향긋한 봄내로 우릴 유혹했던 산수유속에그날 하루동안의 생과 사가 들어있는거야.
달림말: 제가 그림을 함께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부가 있는만큼 큰 단체로, 매년 각 지부가 돌아가며 전국 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번에는 광주팀이 주축이 돼서 전남 구례의 산수유 축제기간에 열린겁니다. 아침 일찍 떠난 팀에 합류못해서
친구차를 타고 갔다온 소감입니다. 그 뚝뚝녀, 젬병녀, 그래도 나와 가장 친한 이쁜 친구들입니다 *^^*
*****2002년도에 구례 산수유마을에서 열린 전국일요화가회대회 참관기입니다. 뚝뚝녀 김성남 부회장님 제 멋쥔 뒷모습으로
대상탄 그림 좀 올려주세요. 혼자만 움켜보고 있음 눈에 다래끼 나여~ ㅜ.ㅜ
첫댓글 이것도 재미있네. 세상 온갖 에피소드 중에 심연을 비켜가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고...
박주경 이사님 ~ 그림도 잘 그리시고, 뛰어난 글솜씨까지 , 대체 못하시는게 뭘까요...?
아직 십팔세 뇌를 그대로 유지하는 듯한 새로움과 신비스러움에 푹 빠져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