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사는 자세(눅21:12-28)
1, 축구 좋아하는 분들은 새벽에 잠을 제대로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
일이라 축구 경기 보는 것을 포기하고 예배 준비하다가 12시에 자고 아침에 일
찍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보니, 아쉽게 준우승을 했어요. 대신에 이강인이 예
상대로 골든볼-최우수상을 받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너무 부러
워하고 있답니다. 요즘, 우리나라 스포츠의 대세는 여자 골프와 남자 축구이지
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연속해서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이 뿌렸
다-투자했다는 증거에요. 여자 골프는 박세리 이후-소위 박세리 키즈(너무 많은
선수들이 자람), 남자 축구는 박지성 이후-박지성 키즈.(손흥민-이강인으로) 일
찍부터 전문가에게 훈련받게 하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려서부터 경쟁에 참여한 결과입니다.
여자 골프와 남자 축구만 아니라, 우리 한국 교회도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
면 소망이 있습니다. 기초훈련부터. 언제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이것을 무시하면 아무런 소망이 없고요. 예수님의 종말론 설교(강화)가
이어집니다. 종말에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이고 종말의 징조를 잘 살피라고. 종
말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의 경우는 13장. 주
님은 종말 강화에서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 전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당시 제
자들이나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자꾸 종말의 시기를 물어요.(21:7, 행1:6-성령이
임하시기 전이라 그런지) 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종말에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장차 이런 일들이 있을 것
인데 너희들은 이렇게 살라고.
2.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을수록 종말의 시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
다. 시험 준비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하던 학생들처럼.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종말의 다양한 징조와 더불어 신앙박해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2절,
”이 모든 일 전에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
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관리들이 붙잡아 감옥에 끌고 가기도 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이때가 제자들에게 매우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십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는데, 어떤 기회일까요?
13-15절,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
을 항상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
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예수님은 신앙박해가
시작되는 이때는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셨어요. 박해
가 있으면 대개 성도들이 두려워하며,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걱정해요. 그런데
주님은 다소 엉뚱하게도 이때가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때라고 하셨어
요. 주님은 우리 인생의 코치이십니다. 최고의 코치이세요. 최고의 코치이시니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3. 관리들이 제자들을 감옥에 끌고 가더라도 제자들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게 일어날 일을 일일이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미리 제자들에게 구변-무슨 말을 할지 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은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주님의 종말론 강화는 이런 일이 있을 때에
제자들의 관심은 복음을 전하는데 초점을 둘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종말-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생애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복음 전하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이고, 사도 바울이 본을 보
인 것이에요. 바울이 고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난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했어요.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놀랍게 실천한 제자에요. 다른 사도들도 대부분 그
랬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시다. 예수님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가족들
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16-17절, ”심지어 부
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주님의 제
자들이 부모와 친척들, 친구 관계에서도 신앙으로 인해 사이가 갈라질 것이라
고. 또 신앙 때문에 죽기도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순교). 주님은 제자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이러
한 일이 있을 것이기에 주님이 미리 대비하도록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4. 이런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자도라고요. 예수님은 이렇게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인격의 소유자이세요. 18-19절, ”너희 머
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주님은
제자들이 신앙박해가 있을 때 두려워하지 말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마치 전쟁터
에 나가는 군인들을 격려하듯이요. 경기장에 나가는 선수들을 격려하듯이. 영혼
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생명-영생을 얻는다는 의미에요. 종말에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대가지불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 대가지불을 두려워하거
나 피하지 말라고 주님이 당부하셨습니다.
대가지불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고요. 두려워하지 않
고 대가지불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예수님은 종말은 예루살렘 멸망에
서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절) 예루살렘에 외국 군대가 진입하면 유대에
있는 자들은 도망하라고 경고하셨어요.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목숨을 잃지 말라라고. 매우 상식적인 메시지입니다. 한적한 곳으로 패해서 생명
을 보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영혼도 귀하지만 육신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라고.
주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이에요. 22절,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이 날들이 징벌의 날이라고 주님은 선포하셨습니다.
5. 이 징벌은 어떤 죄에 대한 대가지불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
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은 대가였어요.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
리라.“ 종말에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리스도를 거부하지 않고 영접하는 것이에요.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1:12) 이것은 영적인
일이에요. 영적인 것은 자기 자신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
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
를 영접함으로 복 받은 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하셨
습니다.(오늘 본문 24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자기 백
성들과 함께 하셨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예루살렘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에요. 예로부터
그곳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예루살렘을 한 번 가본 사람이라면, 다윗이 왜 그곳
을 수도로 삼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위로 이뤄진 천혜의 요새에요. 그토록
천혜의 요새라도 하나님께서 그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시127:1) 예루살렘은 두 차례 멸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6. 그것은 복음이 유대 지경 밖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멸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대신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회당을 지었어요. 그곳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
르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교 신앙의 명맥을 오랫동안 잘 지켜올 수 있었
습니다.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다시 비참하게 멸망했습니다. 이
때 로마군이 1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죽였어요. 이후 유대인들이 두려움
속에서 세계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23-24절,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
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
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유대인들이 세계로 흩어져 살면서 복음이 유대 지경 밖을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스
라엘이 나라를 재건하였어요. 이때가 이스라엘 건국이 아니고요. 이스라엘은 이
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해방 후에 대한민국 정부
가 수립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해에.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1948년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해가 아닙니다. 재건입니다. 1948년을 건국의 해로 보는 사
람들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에요. 나머지 사람들은 1919년 3.1운동 이후 설립
된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봅니다. 일본의 불법적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
기 위해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어요. 친일파는 이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이승만이 친일파와 손을 잡으며 정권을 잡았고, 둘은 그렇게 공생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7. 예수님은 종말을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먼저 말씀하시고, 이어서
세상의 멸망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종말은 때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종말
은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것이에요.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복음이 유대 지경
밖을 넘어갔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리스도인의 수가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갈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어요. 주님의 통치가 유대 지경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로 확장되어 갔
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예언과 같이 이방인의 때가 찼습니다. 지금도 더욱 그
렇고요. 종말에 대한 주님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로 천체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26절,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
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이런 종말의
징조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일어날 일들이에요. 기후변화-북극의 얼음이 점차 녹으며 엘리뇨, 라니뇨 등으
로 이상기변이 일어납니다. 지진과 그 여파로 인한 쓰나미 현상(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손실을
입었습니다.
8.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종말의 최고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종말의 최고
비전이 무엇일까요? 27절,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때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므로 기절할 정도가 되
는 때,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우주질서가 흔들리
는 때에요. 그 때에 주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지
금까지는 천체의 변화나 자연재앙이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
상 종말의 때가 되면 세계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어져요. 우리가 두려워할 것
이 없는 것은 그때가 바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은 자신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라
고 예언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어느 부흥사가 이 장면을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하여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꽤 감동적으로.
종말의 징조가 커질수록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8절,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
느니라 하시더라.“ 이런 일이 되기 시작하면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
구원이 가깝다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이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날을 기뻐합니다. 지난 주일에 소개한 호라티우스 보
나르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오늘이 종말입니다. 매일 매일이 종말이에요.
주님이 오늘 밤이든, 오늘 낮이든 언제 오셔도 좋아요. 주님이 오시는 날 지금
우리가 누리고 확장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고 완전한 주의 나라가 시작되
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종말-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