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와 티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수수하고 편안하게 살아왔던 내가 오늘은 스커트를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바바리를 입고 둥글고 깊게 파인 옷을 받쳐 입고 목걸이까지 했다 다른 것들은 오년 넘게 묵은 것들이고 바바리 하나만 요즘 것이지만 스타킹을 신고 구두를 신는 일은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가 예전 친구중의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쁜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서면 온 세상이 환해져 달라보여'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구두굽만큼 뒷꿈치를 살짝 들어올린 탓인지 내 자신이 조금은 더 날씬해진 기분도 들고 다리에 긴장감이 돌면서 아가씨가 된 것 같은 오늘은
둘째 시누이의 외동딸내미 결혼식날이다 한강변에 위치한 선상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결혼한지 벌써 25년이 지나가버렸으니 기억마저도 흐릿해진 우리의 모습을 찾아내고 싶었을까 붉은 카펫이 예식장 입구까지 20m정도 깔려있는데 남편을 잡아끌어 팔장을 끼고 걸어본다 히히힝 말처럼 웃음이 나온다 나이만 먹었지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그 시절처럼 분홍빛인걸 어쩌랴 마음은 영원한 청춘인걸 어쩌랴 이런말 할 나이가 됬음을 어쩌랴
신부대기실에는 온 세상을 밝게 만들만큼의 광채로 신부가 앉아있다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으면서 사라져 버린 내 아까운 광채가 거기 있다 지난해에 결혼한 조카도 그날은 저 번쩍이는 광채로 눈이 부셨었다 지금 아이를 하나 낳고 기르고 있는 조카의 광채도 흐릿해져 있다
남과 남이 만나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것이고 글라디오러스 구근처럼 새 구근을 오밀조밀 늘여놓고 제 몸은 빈 쭉정이가 되어가듯 제 몸을 비워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러니 광채가 사라져감을 서러워하지는 않으나 지금의 저 광채는 얼마나 아름다우냐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질 저 광채에 나는 입이 닳도록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부러워하는 것이다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허리를 반쯤 접어 인사를 한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자세와 하객을 일일이 바라보는 여유로운 눈빛! 요즈음 아이들은 다르다니까 떨지도 않잖아 옆에 앉은 두살 아래 막내 시누이와 감탄을 한다 25해 전에 찍어놓은 우리 결혼 비디오와 비교해보자면 하늘과 땅 차이다
내 남편으로 말할것 같으면 장발에다가 곱슬머리를 스스로 고대기로 손질하고 나왔다 이발소에도 가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저 신랑처럼 메이크업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수도승처럼 마르고 얼굴빛이 어두운 그를 상상해보시라 나는 그래도 신부 화장이라도 하고 드레스라도 입었으니 실제 얼굴보다 훨씬 달라보여서 신부실로 달려오신 아버지가 한번에 막내딸을 알아보시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저 신부처럼 세련된 화장과 헤어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어쩌다 비디오를 보는날에는 배꼽이 빠져라 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촌스럽고 자신감이 없어보이고 뻣뻣한 우리의 모습은 지금의 젊은이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순박함과 순수함이 묻어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뻔뻔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랑이 축가를 부른다 신부를 옆에 세워두고 신랑이 피아노 반주를 맡고 친구와 코러스로 축가를 부르는데 다들'멋진 녀석이네 역시 젊은이들은 다르다니까'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신부와 신랑의 눈빛이 마주치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내 가슴에 물결이 일렁인다 그 물결을 따라가보면 서점이 나오고 서점 안쪽에 내가 앉아있고 서점 바깥쪽에 기타를 든 그가 앉아있다 형부가 서점 주인이셨고 나는 형부를 도와주는 도우미였고 그는 학생이었던 시절에 그와 나의 연애가 시작되고 있었다
형부가 일찍 집으로 귀가하시고 나 혼자 남아있던 한가하고 나른한 주말 오후쯤 마주보고 앉아 그가 불러주던 노래-제목이 생각나지는 않으나 노래를 부르며 간간히 마주치던 그 눈빛은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 바로 지금의 신랑신부의 눈빛과 같은 강도이기 때문이다 신랑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내 남자의 그날 눈빛이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끝없는 미로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어지러움이 기억난다 영혼마저도 흔들릴만큼 아름답고 힘찬 사랑을 말이다
그들의 결혼 서약서처럼 사랑의 맹세를 따라해본다 결혼식은 아마도 결혼한지 오래되어 결혼이 무엇인지를 잊어가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맹세할 기회를 주는것인지도 모른다 나 朴贊美는 崔秉勳 당신을 평생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를 바라본다 마주친 눈빛이 말을 하고 있다
나 崔秉勳은 朴贊美 당신을 평생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에게 저 거룩한 광채는 아직 남아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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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명하게 결혼사진 보여주지.
예쁜 찬미의 예전 모습 상상하게 되네.
부럽다~~당 .25년 이상의세월이 흘렀는데도 거룩한 광채로 표현하니...
찬미야 광채가 나느거 난 지금도 본거같아
찬미에 광채는 나이 먹었다고 없어 지는 게아니라오
조카 결혼식에 찬미가 결혼 서약을 다시금 새겨 보았네
우리는 오랜 세월을 서약을 한것을 잊고 살지.
그런데 우리는 15년쯤 혼인 갱식식 이란 것을 했고
23년쯤은 M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부부는 다시 새로운 결혼생활을 하게되었어
애쓰는거지 그럴려고
다짐하는거지 그럴려고
원래 부족한 사람이 입으로 글로 자꾸
지껄이는 거잖아 찬금아!!
효숙아!!
ㅋㅋㅋ 들어왔네
기다렸던 사람 한 명 들어오면
또 한 사람 사라지고
사라졌던 사람 들어오면 또
누군가가 숨어버리고
문 밖에 서 계신 어머니 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네
친구의 높은 목소리가 카페에 없으니 왜 이리
적적할꼬? ㅋㅋ
뒤늦게 카페에 들어와 느낀점 찬미!! 찬금?? 효숙이
이렇게 세명이 재미없어 그렇치????????????
찬미야~!!
참 안쓰러운 아침이다~
내가 삶의 터전을 왜 미국으로 정했던가~
찬미의 결혼식을 내가 볼수있었다면 하는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모든걸 버리고 떠나온 내 삶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