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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11차시 합평 자료(2026년 5월 11일 월)
1. 오! 봄, 봄이여 /박선우2
1-문을 열지 않아도 빈 벽에 드리운 꽃 그림자의 자태가 무던히도 곱다. 가지마다 껍질을 밀고 나온 여린 꽃봉오리들의 발광에 그림자가 색을 입는듯하다. 매일 축제처럼 꽃 잔치가 벌어지고 포슬포슬한 땅 위로 삐죽이 오른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날 좀 보라는 듯 소란스럽다. 봄에는 조심히 발끝을 들자.
2- 오늘따라 바람 속에 이른 더위가 섞여 있다. 공원의 나무엔 가지마다 통통히 물이 올랐다. 작년 겨울, 잎을 다 털어내고 잔뜩 웅크린 채 버티더니 해사한 봄볕 아래 기특하게 다시 꽃을 내놓았다. 북극한파가 극성이었던 1월의 추위도 참아가며 제 속에서 뽀얀 꽃 이파리를 뱉어낸 나무의 생명력에 나는 괜히 뭉클하다. 요 어린것들이 얼마나 많은 밤낮을 생의 의지를 다지며 견디었을까. 그 대견함에 물이 오른 줄기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3- 올해는 작년보다 이른 봄이 온것같다. 벌써 이렇게 꽃이 가득하니 자꾸만 봄이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따뜻한 봄, 그 봄이 이렇게나 빨리 왔다. 나의 할머니가 그토록 기다렸던 봄이.
4- 할머니에게 그해 겨울은 길었다. 유난히 눈이 잦거나 한파가 기승을 부린 것도 아니었지만 동토같이 굳은 노인의 몸은 겨울이 벅차기만 했다.
할머니는 모로 누워 자주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었다. 동짓날은 아직 멀었는지, 오늘이 음력 열닷새가 맞는지.
그럴 때 어느 날이든 내가 아직 멀었다고 하면 손에 꼭 쥔 등 긁개를 툭툭 치곤 몸을 돌리셨다. 납작하고 마른 몸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앓는 소리가 곡조를 읊는 것처럼 "아이구 아이구" 숨을 뱉어내는 듯 선창을 하면, 뒤로 “이 옘병할 몸띵이” 가 후렴처럼 따라왔다.
5- 할머니가 기다리신 건 따뜻한 봄이었다.
“어여 봄이 와서 날이 따셔져야.....”
“어여 꽃도 피고 날도 따셔져야....”
날이 따셔진다고 무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건만 할머니는 마치 봄만 오면 꼬챙이 같은 다리로 벌떡 일어서는 기적을 보여줄 것처럼 봄을 기다렸다. 할머니 손에 쥐어진 효자손은 늘 방문 쪽을 향해 손톱을 세우고 행여 봄이란 놈이 몰래 스쳐 가기라도 한다면 냉큼 후려쳐서 잡아챌 기세로 엎드려있었다.
6- 곧 소멸할 것 같은 작고 마른 몸에도 기 라는 것이 흐르고 있다면 아마도 손에 꼭 쥔 그 효자손에 응집되어있었을 것이다. 등 긁개로 태어나 효자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 누가 긁어대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그의 이름을 불러 숭고한 효자가 되게 했는가. 할머니는 그 거룩한 이름을 가진 효자손으로 다리를 긁고 머리를 긁고 멀리 있는 재떨이를 끌어왔다. 그러니까 할머니에게 그것은 당신이 유일하게 부릴 수 있는 가장 만만한 놈이었다.
7- 인생이란 것이 무한한 영광과 빛나는 축복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겠지만 할머니의 역사는 9할이 고난이요 1할의 어디쯤에나 쥐똥만 한 축복이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그 1할의 바닥을 박박 긁어내야 겨우 한 숟가락 모아지는 축복이 있을 진데 그 축복 어디에도 효자는 없었다. 할머니가 쥐고 있는 등 긁개는 이름뿐이라도 그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당신만의 효자였다.
8- 그해 겨울은 더디게 갔다.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일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봄은 어디쯤에서 해찰을 하는지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도랑을 건너서 빨래터가 있었다는 까막 삼거리를 지나, 삽작거리만 들어서면 당신이 있건만 곧 올 것 같은 3월은 어찌하여 더디오는지.
9- 할머니는 왜 그토록 봄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셨을까. 내겐 그저 해마다 오는 보통의 계절일 뿐인 봄을.
어쩌면, 할머니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생명의 소란스러움에 동참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땅이 풀리면 당신의 몸에도 새로운 피가 솟아 붉은 동맥과 푸른 정맥을 뜨겁게 데워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멈춰버린 당신의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유일한 재주인 바지런함으로 봄을 누비는 희망을 품었던 건 아니었을까.
10-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은비녀로 곱게 쪽을 지고 옷장 깊숙한 곳에서 좀약 냄새 밴 살구색 한복을 꺼내입으셨겠지. 하얀 고무신을 신고 나비처럼 더덩실 더덩실 춤을 추며 사람의 말소리가 흥건한 저잣거리로 경쾌하게 나서고 싶었으리라. 나물 한 광주리를 캐고 돌아오시는 그 길엔 좋아하는 탁주 한잔을 걸치며 봄을, 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 그 봄을 실컷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꿈에라도.
11-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으시던 할머니의 기침이 더해지고 효자손의 움직임이 더뎌진다고 생각할 즈음 할머니의 ‘옘병할 몸띵이’는 끝끝내 봄을 보지 못하고 먼 나라로 훌훌 가버리셨다. 그날 당신은 ‘아이구, 아이구’ 앓는 소리 대신 ‘얼씨구, 절씨구’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 가볍게 가셨기를 나는 오래오래 빌었다.
12- 어린나무에도 꽃이 제법 무성하다. 저 꽃이 만개하면 구름처럼 몽실몽실 하늘을 타고 흐를 듯 빛나게 반짝일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나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찬 겨울 이 악물고 버텨내면 작년보다 더 해사하게 피어나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신기루처럼 짧게 빛나고 사라진대도 보드라운 몸으로 다시 핀다면 오래전 그해 봄 속엔 고무신을 신고 봄 밭을 누비는 할머니가 있었을 텐데. 자연의 섭리가 원망스럽다.
나는 할머니가 기다린 봄을 서른 번쯤 보고 있다. 당신이 가신 그 봄이 세월 속에 풍화되어 이제 좀 잊히면 좋으련만 해마다 봄 기억은 자락자락 되살아나 새롭지도 않게 또다시 그리움의 싹을 틔운다.
13- 할머니의 기억을 잡고, 한 김 식은 듯 잦아드는 햇살 속을 걷는다. 봄볕에 몸을 씻은 생명이 온 힘을 다해 형형색색의 빛을 내기 바쁘다. 곧 난만하게 피어날 농염한 원색의 꽃 무리뿐 아니라 지지리 푸르기만 하여 권태롭기 짝이 없는 소나무도 제 빛깔을 내기 위해 열성적인 몸부림을 치는듯하다. 이제 숨을 크게 쉬면 여기 모든 식물이 내뿜는 에너지가 기세 좋게 폐 속으로 휘몰아칠 것만 같다. 이 하찮고도 귀한 나무와 풀들이 다시 봄을 살기 위해 버텼을 시간을 생각하니 나도 문득 어떤 위대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솟구쳤다. 이제 더는 해마다 오는 그저 그런 봄이 아니라 내 빛깔을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계절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14- 결국 봄을 만나지 못하고 떠나신 할머니를 대신해서 조금 공손하고 더 바지런히 살고 싶어진다. 계속되는 내 삶의 9할이 무한한 영광과 축복으로 반짝거리길 바라면서.
아! 괜스레 두 다리에 힘이 불끈 솟는 듯하여 나는 두 팔을 휘적거리며 앞으로나아간다. 멀리 나를 부르는 듯한 저 빛나는 봄, 봄 속으로.
2. 멋진 상사/ 윤도월(2)
1. 늦은밤, 직장 후배로 부터 [신과장]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놀라움과 금금증을 뒤로하고 마음을 다스려 명복을 빌고, 애써, 그와 함께한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2.학업을 마치고, 일 여년간의 준비 끝에 첫 직장을 구했다. 정부에서 투자한 회사로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를 생산했다. 총무과로 배치되어 [월간 사보]를 담당했다. 모든 직원들은 연간 생산목표 달성에 전념할 뿐 사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궁리끝에 원고료를 두 배로 인상하여 독려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기성문인들 에게 청탁하여 분량을 메꾸었다.
3.나의 업무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이번에는 대민업무가 주어졌다. 바다와 인접한 공장이다 보니 대기와수질의 공해문제로 인근주민들과 마찰이 심했다. 이미, 이주보상이나 택지도 조성 되었으나,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수시로 화사로 들이 닥쳤다. 사무실 점거와 멱살잡이는 예사였다. 별다른 대응책도 없이 그들의 분노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고 설득도 해야했다.
4. 두어 해가 지났을 때, 정기 인사에서 회계과로 전보 되었다. 맨 먼저 뜨오르는것이 Accounting이고 "셈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진행중인 기안서류에 눈길을 주었으나 속내는 저멀리 가 있었다. 회계과 신과장이 다가왔다.
"보따리 안싸고 뭐해, 그냥 눌러 앉을래?“
"인수인계는 해야지요?"
시큰둥하게 대꾸하고, 긴급 사안만 챙겨들고 회계과로 들어섰다. 늘 지나던 복도지만, 천정에 매달려 있는 부서명 푯말이 일과 사람을 구분해 주는 이정표 같았다.
5. 모을 "총"의 일들은 늘 어수선하고 분주하였으나 "회계"의 일들은 여기저기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뿐 조용하고 차분했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주산과 부기가 [단] 이상의 실력자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주눅이 들었다.
6. 회사의 모든 자금을 관리하고 수입과 지출하는 출납업무 (금고지기)가 주어졌고, 비밀번호와 열쇠 꾸러미를 인수했다. 어느 누구던 금고를 열거나 들여다 볼수없는 나만의 비밀공간 이다. 금고 안은 물자대와 인건비, 경비들이 공장가동에 모든이들의 수고로움의 댓가로 가득 차 있다.
7. 자금 요청을 하자면, 운영부서는 원인행위를 첨부하고, 예산과 심사를 거친 "지출결의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이를 수합하여 지불계획서 대로 정확히 지급한다. 오전에는 당좌수표를 발행하여 필요자금을 인출하고, 오후에는 상대처에게 지급했다. 시재를 맞추고, 분개장을 작성하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8. 회사경영의 실적을 보는 결산시기에 의외의 출납사고가 발생되었다. 월별로 화공약품을 납품하는 업체에게 이중으로 지급한 것이다. 분개장에서 그 사실이 확인 되었고, 경위는 이러했다. 회사는 서울지점에도 경리과를 두어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는 거래처의 편의를 도모했다. 실무자는 대금지불과 동시에 결의서에 [지불봉]을 찍어 송부해야 함에도, 이를 누락시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다. 감사실 에서는 결과만 중시함으로 나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한번 지급된 자금을 환수하는 일은 지나간 버스를 되돌리는 것처럼 힘이 드는, 난처한 경우이다.
9. 실무책임자의 자존심은 차치하더래도 환수가 시급했다. [신과장]이 나서 주었다. 가벼운 책망과 함께 구두끈을 조여매고, 해당업체를 찾아나섰다. 공장문은 닫혀 있었고, 책임자의 행방은 묘연했다. 허탕치고 돌아온 그는 이사태를 해결할 수단이 있는 것 같았다.
10. 기 납품된 물자대를 동결시키고, 부족분은 기어이 가계수표로 받아냈다. 이어, 수입결의서를 작성하게 했다. 제목은 과오납 환입, 차변에 영업외 수입, 그아래 현금을 동반하지 않는 작은 삼각형의 *아끼지*로 표시했다.
11. 직장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승진기회가 왔다. 나에게 상업학교 교과서인 '상업부기,를 달달 외우게 하고, 면접관의 예상질문도 제시해 주었다. 승진이 되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는 원료조달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국제통화가 원활히지 않은 시절이라 안부만 전해 들었다.
12. 정부의 민영화 정책으로 제지업체들이 연합하여 회사를 인수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에 청춘을 다 바친 이들이 밖으로 밀려났고, 각자도생 하게 되었다.
13. 지난날, 부서회의에서 신과장은 영원한 회사도 직장도 없다. 그러니 다른 방도도 강구해야 한다. 우리 숫자쟁이 들은 어느 곳에든 쓰임이 있을 테니 항시 붙들고 있어면 인생의 실패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가 여태껏 살아온 경험담인 것 같다.
14. 하늘시민이 되어버린 그를 보고 싶어도 볼 길이 없다. 마음 깊숙히 담겨두고 꺼내볼 뿐이다. 그래도 이말은 꼭 해야 될 것 같다. 당신은 직장상사를 떠나,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이었다고.
3. 쓸모없는 내 자리 / 심묘락 3.
1. 심박동 모니터에서 울려대는 경고음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박동에 듣는 사람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여러명의 의료진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최전방, 환자의 곁, 가장 먼저 손이 닿는 자리, 저기가 내 자리다. 그러나 그날 나는 어느새 문밖에 서 있었다. 핏기없는 엄마의 두 발만 보이는 곳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온갖 종이들을 들이밀며 서명을 하라고 재촉을 한다. 읽어볼 틈도 없이 열 몇 장의 동의서 위에 이름 석 자를 휘갈겼다. 동의서에 서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몸에는 많은 관이 꽂히고, 처방된 약물이 투여되기 시작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종이 한 장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연명치료거부의사결정서. 병원에서 30년간 근무한 나로서도 순간 멈칫하게 되었다.
2. 병실에서의 처치는 끝났고 집중치료실로 옮겨서 경과를 보겠다고 했다. 집중치료실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절차가 있다.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약품을 정리하고, 장비를 확인한다.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있었다. 이번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엄마는 이동 침대에 실려 의료진들에 둘러싸인 채 끌려 들어가듯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집중치료실로 이동하면 연명치료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결정서에 대한 동의를 요구받았다.
3. 엄마가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것은 10여 년도 더 지났다. 쉽게 피로하고 땀이 많이 난다는 말에 지인의 권유로 한약을 드신 이후, 혈압이 오르고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다.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을 했고, 여러 검사와 신장 조직검사 끝에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4.처음에는 약물치료를 시작했지만, 신장기능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결국 혈액투석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네 시간씩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치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견디기에는 너무도 고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묵묵히 버텨냈다. 담당 의사의 지시를 성실히 따르며 상태를 유지해 왔다. 물론 투석 중에 활력징후가 흔들릴 경우가 있었지만, 응급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어진 투석은 엄마의 몸을 서서히 소진 시켰고, 결국 종잇장처럼 가벼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5. 집중치료실에 들어선 뒤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연명치료거부의사결정서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여러 처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집중치료실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와 제일 가까운 그 자리는 늘 내 자리였다. 그러나 집중치료실에서도 내 자리는 보호자 대기실이었다.
6. 기도삽관과 인공호흡기 연결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게 되면 임의로 제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전달받았다. 나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아니, 너무나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미 스스로 심장박동과 호흡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경동맥을 통해 투여되는 약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약물이 중단되면 심장이 멈추고, 이어서 호흡도 멈출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7. 담당 의사는 보호자 두 사람의 동의면 충분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언니와 동생은 평소에 하시던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연명치료거부의사결정서에 동의했다.
8. 약물과 산소공급 중단되었다. 병실을 가득 채우던 심장박동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
9. 엄마는 목숨처럼 여기던 자식들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외롭고 고요하게 이승을 떠났다. 그제서야 우리 여섯 남매는 집중치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가 처음 보았던 것도, 끝내 남은 것도 침대 끝에서 보이던 엄마의 두 발이었다. 의사는 담담하게 사망을 선언했다.
10. 사망 선언이 되고 나면 특별한 간호가 이어진다. 환자에게 꽂혀 있던 모든 관을 제거한다. 상처를 정리하고 필요하면 봉합을 한다. 온몸을 깨끗이 닦고, 새 환의를 입힌 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시트로 감싼다. 그리고 영안실로 보내진다.
11. 많은 환자들의 마지막을 그렇게 배웅해 왔다. 그러나 엄마의 마지막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그날만큼은 끝내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엄마의 딸일 뿐이었다. 엄마에게는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었다.
4. 내가 온 그곳은 / 이원규(2)
1.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영혼을 노래하는 여성 가수가 부르고 있다.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순전한 사랑을 주고 오라는 음성을 듣고 태어나, 슬픈 세상에서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2. 이 노래는 라트비아라는 나라의 지정학적 운명과 비극적 역사를 모녀 관계에 빗대어 ‘사랑할 딸을 낳았지만 행복을 주지는 못함’을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하였다. 마리냐는 라트비아의 최고 신으로 라트비아를 탄생시켰으나 이웃 강대국에 의해 휘둘리어 행복할 수 없는 나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3. 이어서 러시아에서는 ‘여배우를 사랑한 화가의 구애와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로 번안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별한 님을 그리워하며 행복을 빌어주고 다시 사랑을 피울 희망를 노래하는 가사로 번안되어 불리다가, 심수봉에 의해 아가페적 사랑을 노래하는 곡으로 번안되어 널리 불리었다. 직접 작사한 가수 본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노래한 곡”이라고 말한 바 있다.
4. 이 노래가 나의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어렸을 때 ‘나의 영혼이 하늘에 머물다가 가장 적합한 부모님을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났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한 이유가 부모님께서 서로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고, 자식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조그만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사랑을 시험한 적이 있었다. 길에서 살짝 넘어져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달려와서 일으켜주며 달래주곤 했는데 어느날에는 울면서 쳐다보니 어머니가 오시지 않아 슬며시 일어난 후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아버지는 창고 슬레트 지붕을 수리하고 계셨고, 나는 밑에서 망치를 갖고 놀다가 불현듯 크게 고함을 치면 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악~”이라고 울부짖었는데 한참 뒤에야 “무슨 일이고?”라며 물으셔서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항상 믿었었다.
5. 이름 때문으로도 이 노래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점도 있다. 한자로 ‘으뜸 원’자와 ‘별 규’자로 아버지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래서 스스로 지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별병이 ‘으뜸별’이다. 아내는 ‘빛 광’자에 ‘맑은 숙’자를 쓴다. 그래서 유형화된 별이 무형의 빛을 만나 완성을 이룬 우리는 천생배필이라고 말하곤 했다.
6. 노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장미를 피워 내가 온 별나라로 갈 수 있다고 호소한다. 성경에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주인이 다른 나라로 떠나며 세 명의 종에게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장사를 하여 갑절의 이익을 남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무서워하여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결실 없이 되돌려 주어 쫓겨난다. 이 비유는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여 삶의 여건이 어떠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교훈으로 해석되고 있다.
7. 그래서 가끔 지금처럼 살면 몇 송이의 장미를 피울 수 있을지, 내 별나라로 갈 수나 있을지, 받은 달란트를 썩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만 더 성실히 살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 땅에 부모님을 택하여 태어나게 허락해 주심을 감사하며, 진실한 사랑을 알게 하고, 영혼을 살찌워 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길 기도한다.
5. 멀어지는 속도 / 이자연3
1. 어느 날 우편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수신인 자리에 선명히 적힌 나의 이름과 달리 발신인 칸은 비어 있었다. 받는 사람만 남겨두고 비워 둔 그 자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봉투를 쥔 채 잠시 서 있었다. 몇 년 전 공항에서, 뒷모습만 보인 채 캐리어를 끌고 사라지던 미숙이 떠올랐다.
2. 우편함 문을 닫는 소리가 복도에 짧게 울렸다. 가벼운 종이봉투인데도 손끝에 이상한 무게가 실렸다. 가위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뜯는 순간, 멈춰 있던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 같았다. 벽시계의 초침이 규칙적으로 공간을 잘라냈다. 나는 봉투를 뒤집어 봉한 자리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풀칠된 가장자리는 반듯했고, 이름을 눌러 쓴 글씨도 반듯했다.
3. 기억은 늦여름 오후의 자취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1학년, 지방에서 막 올라와 도시의 공기에 익숙해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캠퍼스에는 늘 구호가 울렸고, 시위가 지나간 자리의 매캐한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창문을 닫아도 그 공기는 강의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미숙의 자취방은 그런 소음에서 잠시 비켜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창턱에 기대앉아 멀어지는 구호 소리를 흘려듣다가 우리 얘기에 고개를 살짝 돌려 짧게 웃곤 했다.
4. 방 안에는 오래 끓인 보리차 냄새와 눅눅한 책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문 아래 작은 책상 위에는 줄이 반듯한 공책과 모서리가 닳은 사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숙은 늘 방을 단정하게 치워두었다. 그 단정함이 생활의 습관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버팀목처럼 보인다는 것을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방에만 들어가면 공연히 목소리를 낮추게 되었다.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와.”
어수선한 시대 속에서 그녀의 말은 나를 잠시 붙잡아주었다. 그때는 그것이 다정함인 줄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숙은 불안을 말로 풀어내는 대신 하루를 정리하며 견디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5.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우리 사이는 어긋나 있었다. 나는 저녁이 되면 창밖을 보며 집 생각을 했고, 미숙은 남은 반찬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아 다음 날 먹을 준비를 했다. 나는 불안할수록 말을 길게 늘어놓았고, 미숙은 그런 날일수록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치웠다. 나는 누군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 불안이 줄어든다고 믿었고, 미숙은 말이 길어질수록 불안이 더 커진다고 믿는 사람 같았다. 그 차이를 우리는 성격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6. 우정은 십 년에 한 번쯤 “잘 지내?” 같은 얇은 안부로 연명되었다. 정년퇴직을 한 해, 미숙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미로 떠나자는 제안이었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오래 꿈꿨던 곳들이라는 말에 내 대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7. 공항에서 만난 미숙은 낯설지 않았지만 얼굴은 변해 있었다. 우리는 반갑다고 손을 잡았다. 미숙의 손은 예전처럼 차고 건조했다. 나는 그 손을 잡은 채 오래전 자취방의 보리차 냄새를 떠올렸지만, 미숙은 곧 탑승 시간과 환전한 돈을 확인했다. 웃음은 일정표와 기내 반입 가방 무게 같은 실용적인 말들 사이로 흩어졌다.
여행 중 우리의 걸음은 자주 어긋났다. 나는 시장 골목의 과일 색깔이나 낡은 간판 앞에서 걸음을 늦추었고, 미숙은 다음 이동 시간과 숙소까지 돌아갈 거리를 먼저 계산했다. 나는 멈춰 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고 느꼈고, 미숙은 멈춰 서는 순간 길을 잃을까 봐 마음을 조이는 사람 같았다.
“미숙아, 우리 오늘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난 내일을 위해 자야 돼.”
미숙의 내일은 벽처럼 완고했고, 매번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날 밤 숙소 창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미숙은 침대 옆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다음 날 입을 옷을 의자 등받이에 반듯하게 걸어두었다.
8. 마추픽추에서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도 미숙은 사진 속에만 존재하려 했다. 셔터를 누르는 내 손끝에 사막의 찬 공기가 감겼다. 내 휴대폰에는 그녀의 사진만 쌓였고, 그녀의 휴대폰에는 내가 없었다. 그때 나는 서운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녀는 나를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그 먼 곳까지 자신이 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유니의 흰빛은 눈이 시리도록 환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것들이 얇게 얼어 있었다.
9.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오는 길,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먼지 나는 계곡을 지날 때 우리는 각자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같은 풍경을 지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오래된 말을 꺼낼 틈을 찾고 있었고 미숙은 다음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을 세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식당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친구 사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습관처럼 “오래된 친구”라고 답했다. 미숙은 물잔을 입에 댄 채 눈으로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부정도 긍정도 없었다. 이과수폭포의 굉음 앞에서도 나는 감탄할 수 없었다.
10. 인천공항의 유리문 밖으로 그녀가 돌아보지 않고 사라진 지 육 년. 마침내 열어본 편지 봉투 안에는 줄 없는 하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정중앙에 적힌 딱 한 문장.
‘ 우리는 여행 때 같은 속도로 걸은 적이 없었지. ’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물을 찾았다. 한 모금을 마셨다가 곧 내려놓았다. 오래전부터 어긋나고 있던 것이 이제야 도착한 것 같았다.
11. 우편함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자 새벽 공기가 차갑게 닿았다. 밤새 비가 조금 왔는지 아스팔트에는 덜 마른 물기가 남아 있었다. 천천히 걷자 보도블록 틈새의 풀과 담장 아래 젖은 흙이 눈에 들어왔다.
걸음이 조금씩 풀리자 몸의 긴장도 늦게 따라 풀렸다. 나는 그 길을 한동안 천천히 걸었다. 멀어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6. 고추장 맛있겠다/ 박인규4
1.올해 대구의 봄은 유난히 여유롭고 포근하다. 대구에서 여러 번 봄을 맞이 했지만 올해는 특별히 내 마음을 흔든다. 그동안 몇 번 일정을 조율해 보았으나 여러 명이 매화꽃 만발시즌에 더구나 토요일 날 잡기는 어려웠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번 주말 무조건 청도에 있는 구룡산 구룡 공소에 소풍가기로 모임에 통보를 했다. 높은 산 산속이라 각자 먹을 도시락을 지참하기로 하고.
2.도시락.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가. 아이를 다 키워 결혼을 할 때 까지도 도시락을 싸준 기억이 없다. 소풍날에도 돈만 달라고 했지 도시락 김밥을 준비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급식을 다해주고 밤낮없이 문자 한통이면 먹을 것이 번개 처럼 문앞에 배달되는 세상에 도시락은 설자리를 잃었다.
3.그러나 지난날 우리 집은 아침마다 도시락 전쟁이었다. 시골에서 내 땅이 없어 품팔이를 해야 했던 부모님이 우선 두 개씩 네 도시락을 필요로 했다. 중학생이던 두형님과 초등생이던 나와 동생 몫 까지 한때는 열두 개씩 도시락을 싸셨다고 한다. 당시 전기밥솥은 상상도 못했고 새벽부터 부엌지붕도 없는 월세방 아궁이에 불을 때고 밥을 지어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4.문제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김치도 내 밭에서 배추를 키우는 것이 아니었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도시락 밥 한모퉁이에 고추장을 한 숟가락 묻어가거나 두부를 장물에 절여 매우 짜게 만들어 조금씩 나눠 가는게 거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점심시간이 돌아오면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시길 기다렸다. 나와 몇몇은 도시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른 친구의 반찬을 허락 없이 한 숟갈씩 떠먹곤 했다. 뺏어 먹었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 당시 시골에서 마늘장아찌나 계란 후라이, 더덕, 도라지 반찬이 최고 인기였으며 부잣집에서 쏘세지라도 누가 반찬통을 열면 닭들이 모이 쪼듯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남학생들의 반찬 강탈에 여학생들의 원성이 높았으며 어느 여학생은 울기까지 했다.
5.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점심시간에 교실자리를 안 뜨시고 선생님 책상에서 도시락을 푸시는 것이었다. 쌀이 부족하던 때라 국가에서 혼분식을 적극 권장했으며 가끔 선생님께서 흰쌀밥 금지 도시락 검사를 하셨다. 평소와 달리 우리는 각자 제자리에 앉아서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제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빨리 교실을 나가기를 바라면서 할 수 없이 오늘은 고추장에 대충 비벼먹으려니 했다.
6.그런데 선생님께서 뚜벅뚜벅 내 자리로 걸어오시는 게 아닌가. 수저를 든채로. 나는 왠지 찔리기도 하고 고추장과 뒤섞인 도시락을 보여주기 싫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야! 고추장 맛있겠다.”하시면서 얼굴에 환한 웃음으로 신나게 내 도시락 한 모퉁이의 고추장을 한술 퍼 가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본인 도시락에서 계란말이 한 조각을 다시 내게로 갔다 주셨다. 누군가의 점심시간 무질서 민원에 대해 갓 부임한 여선생님은 그런 방식으로 반장이었던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계란말이를 어떻게 먹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7.어쩌다 품삯으로 감자를 받아오면 어머니는 밤새 달빛에 감자를 긁어서 다음날 아침 맛있는 감자볶음을 반찬으로 해주셨다. 그날은 등굣길이 무척 신났었다. 칼로 감자를 깎으면 살이 많이 떨어지므로 놋쇠 숟가락으로 거의 껍질만 벗겨야 했다. 언젠가 동그란 놋숟가락이 닳아서 초승달 모양을 보고 어머니의 수고를 가슴으로 느낀 적도 있다. 그 숟가락을 우리는 곰방숟갈이라 불렀다.
8.고교때는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면 밤 10시가 되어야 귀가할 수 있었다. 도시락 두 개는 기본이었고 간식도 준비하곤 했다. 문제는 점심 도시락은 난로에서 데울 수 있었으나 저녁은 그냥 차가운 채로 먹어야 했다. 이때 학교 근처의 수많은 어머니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교정에 오셔서 마치 소풍날처럼 도시락을 야외에서 먹곤 했다. 나의 어머니는 거리도 십리도 더 떨어진 시골에서 매일 남의 일하시느라 학교에 도시락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나는 같은 반 친구인 규림이와 남엽이네 어머니 도시락에 매일 붙어서 맛있는 반찬으로 나름 눈칫밥을 그런대로 먹을 수 있었다. 저녁 찬 밥을 걱정하는 어머니께는 고마운 두 친구네 덕분에 잘 먹고 있다고만 짧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일부러 하루 일을 쉬시고는 커다란 농사용 함지에 직접 키우신 호박나물과 오이무침, 가지무침등 반찬과 따뜻한 밥으로 여러 명 분량을 머리에 이고 학교에 오셨다. 나는 좀 챙피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어머니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모처럼 어깨 펴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머리에 이고 오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9.시간이 흐른 지금,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마다, 달빛으로 감자를 긁어 도시락 반찬을 해주시던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늘 기억하게 된다.
초중고 학창시절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도시락이 방문 앞에서 먼저 등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인생은 전부 자식들 밖에 없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아들들 학교 다닐 때 반찬을 제대로 못해준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제는 키가 내 어깨 밑을 도는 어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
10.이번 주말에는 그 옛날의 어머니 도시락 그리움에 잠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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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3차시 예정 작품(6월 1일)
진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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