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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고름
류외순
한복 명장으로 불리는 연로한 사촌 언니가 이나마 기운이 있을 때 해주고 싶다며 내게 한복을 지어주었다. 남색 치마에 자주색 고름이 달린 분홍 저고리와 옥색 저고리이다. 예로부터 남편이 있는 여자는 저고리 색과 고름 색을 달리했고, 남편이 없는 여자는 그 색을 같이 했다고 한다. 언니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아는 언니로서 만날 때마다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는 분이다.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라는 이름, 언니는 나를 볼 때마다 하늘이 도와 태어났다고 했다.
우리 집 장롱에는 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금박 자주 고름의 노랑 저고리, 갑사 여름옷, 실크 겨울옷, 두 아들 혼례 때 입었던 한복 두 벌, 시어머니 칠순 때 입었던 옷, 예물로 받은 자주색 비로드, 삶의 고비 고비를 장식했던 옷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옷들을 바라볼 때마다 어머니의 무명 저고리가 떠오른다.
나는 한복의 옷고름을 유난히 좋아한다. 애기 때부터 어머니의 옷고름을 바라보며 자랐다. 젖을 먹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언제나 둘이서 마주 앉으니 저절로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밥을 먹다가 어머니가 고름이 없는 옷을 입고 있으면 울컥 토할 것 같아서 밥을 못 먹었다. 화를 내며 그 옷 벗으라고 악을 썼다. 예닐곱 살 때일 것이다. 철부지 딸이 단추 달린 저고리를 입었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니 어머니는 또 얼마나 당황스럽고 그런 딸이 염려되었을까.
지금도 나는 단추 달린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교복은 고쳐 입었고 병원의 환자복도 윗도리는 티셔츠를 입었다. 치마도 끈을 달아매어 입었다. ‘천의무봉’의 선녀들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껏 고쳐지지 않는 나의 알 수 없는 무의식의 비밀인 셈이다.
젖 냄새 배었을 어머니의 옷고름을 떠올려본다. 거기엔 어린 나의 눈물 콧물과 어머니의 눈물이 함께 섞여 있다. 탯줄이 잘려 나가고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부터였을까.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것처럼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모든 힘을 어머니의 옷고름에서 찾은 것 같다. 어머니는 예배당에 갈 때면 옷고름을 붙잡고 잠든 딸의 손을 가만히 떼어놓고 살그머니 가셨고, 자다가 깬 나는 밖에서 잠긴 문이 열리지 않아서 문종이를 다 뜯어놓고 울었다. 옷고름을 놓치면 어머니가 없어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시도 내 시야에서, 손아귀에서 무명 저고리의 옷고름을 놓아주지 못했다. 옷고름이 나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끈이고, 내 삶의 버팀목이며 만유인력보다 강한 사랑의 끈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어쩌면 이 세상에 나가도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없을 거라는 걸 알기라도 한 듯, 한사코 어머니의 옷고름에 매달리는 것으로 근원적인 불안감을 해소하며 안도하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나저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고름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배었을까. 숨이 막히도록 나를 껴안고 잘 때 답답해서 움직이고 싶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참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야 그 한숨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어머니는 “내 이야기는 들먹이지도 말아라. 득 될 게 없다. 팔자가 어디 있나 전쟁 때문이지.” 하며 살아온 세월을 말로 어찌 다 하겠냐며, 아무리 물어도 입을 굳게 다무신다. 혼자 자라서 저밖에 모르는 고집 센 딸이 불쑥불쑥 덤빌 때면 한숨뿐이었을 텐데, 오히려 너 아니면 어떻게 살았겠느냐고 하신다.
짧고 긴 고름을 교차하여 매는 옷고름처럼 엄마와 아버지의 짧은 만남은 어긋난 운명처럼 교차하고 말았다. 공무원이던 청년과 결혼한 열아홉 살 새댁은 옷고름을 마주 풀며 행복했기에 시집살이의 어려움도 힘들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 년여 남짓 짧은 시간만이 두 사람에게 허락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뱃속에 어린 씨앗 하나 남겨두고, 며칠 후 오겠다며 떠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머니 눈에 선할 텐데…. 그 씨앗이 태어나 날마다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며 어머니의 불덩이 같았던 마음을 쏘시개 질 할 때마다 어머니는 속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세월의 부침 속에 이제 연세가 높아 이산가족 상봉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몇 년 전이던가. 이산가족 찾기를 할 무렵 TV문학관에서 <바닷가 소년>이라는 프로를 방영했다. 전쟁으로 부모님과 헤어지고 할머니와 사는 어린 소년은 혼자 지내는 외로움에 바닷가에서 작은 게의 다리에 실을 묶어 데리고 다니며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오지 않는 부모를….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설움에 북받쳐 흐느꼈다. 어린 아들이 놀라서 내 소매를 잡으며 “엄마 왜 그래요?” 했다. 그 순간 어린 날의 어머니와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 어머니는 어느 시골에 홀로 사신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는 듯이. 오래 사시어 아버지 몫까지 사랑해 달라는 딸의 소망에 언제나 “걱정마라 잘 지내고 있다. 니 애비가 도울 것이다.” 하신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옷고름이 되어 인고의 세월로 다져진 어머니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드리고 싶다. 남색 끝동 저고리의 자주 고름을 매어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시다. 생전에 해드리고 싶지만 결단코 사양하실듯하다. 매번 설날에는 언니가 지어준 옷을 입고 세배를 드린다. (2016년 1월 7일)
바람의 발자국
류외순
봄바람이 분다. 여행을 좋아하는 선배가 서해안 몽산포로 떠나자고 한다. 몽산포, 꿈꾸는 산이 있는 포구일까. 지명에 끌린다.
한적한 해변 마을에 집주인은 서울로 여행가고, 대신 빈 집에 2박 3일 예정으로 우리가 왔다. 뜨락의 매화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몽산포 해변 모랫길을 걷는다. 소나무 방풍림, 솔밭 길이 아무리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고 인적은 드문데 오고 간 발자국은 수없이 많다. 소나무 사이로 봄 햇살이 비추어 아롱거리는 모랫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생각에 젖다 보니 여기서 가까운 곳에, 나 항상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국내 최대 모래 언덕이라는 신두리 해안사구(海岸沙丘)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린다. 숙소의 빨랫줄에 빨래도 바람에 펄럭이고 나뭇잎도 따라 춤을 춘다. 그 바람에 이끌린 듯 홀린 듯 신두리 해안사구에 왔다. 모래 언덕에는 바람의 발자국이 즐비하다. 바람이 산을 만들고 계곡을 만들어 놓은 모래 민둥산을 오른다. 햇빛이 가득하다. 사막의 상인들처럼 얼굴을 싸맨다. 물도 나무도 없다. 바다에는 지나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한적한 해변에 한두 쌍 연인들이 걷고 있다. 다정히 모래 위를 걷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여고 일학년 때 만난 언니가 들려주던 소설이 생각난다.
지방 도시로 나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집에 돌아온 친척 언니가 오십 여리 떨어진 우리 집에 얼마간 머물렀다. 왜 자기 집을 두고 불편하게 와 있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늘 소설을 읽던 언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갑게 웃으며 소설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빛이 쌓이는 해구>라는 소설이었다. 오래되어 내용은 희미해졌지만, 제목은 또렷이 기억난다. 무언가 안타까움 가득한 모습으로 꼭 읽어보라고 당부하듯 말했는데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읽지 못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자신의 그때 처지와 비슷한 내용이었을까. 후에 찾아보니 절판이 되어 아쉬움이 컸다. 그리움이 쌓이는 모래 언덕, 그 언니의 낙서 장에는 ‘그리운 언덕’이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 전, 그 책이 서울의 한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이제야 읽을 수가 있겠구나. 한걸음에 달려갔다. 책을 대출해 보니 문고판으로 세로로 쓰인 글씨가 옛날을 말해주듯 고서 같은 느낌을 주었다.
초로의 할머니가 된 내가 스무 살 즈음의 언니 마음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시작부터 빠져들었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애인의 이름이 언니의 성과 같다는 것도 우연일까. 소설의 주인공은 뼈가 부스러지는 아픔을 겪으며 애인에게 싸늘하게 이별을 고했고 애인은 그녀에게 죽을 듯이 추궁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부의 연을 맺어야 했던 남자에게 당한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긋난 사랑의 이야기가 안타깝다. 한편으로 고고하고 능력 있는 여주인공의 지성과 저항이 언니의 마음에 들었을 듯도 하다. 주인공 혜영의 성실하고 참되고 따뜻한 인간성에 굳은 유대를 갖고 싶은 남자들, 그러나 매서운 구석도 있다. 언니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소설의 등장인물들 일생이 허무하고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들의 가슴 한 켠에는 사랑의 희열이 잔잔하게 흘렀다. 사랑의 모습은 수천 가지일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독자를 긴장하게 했고,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사랑에 나는 책을 덮으며 울고 말았다. 진정한 사랑의 성취는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언니는 스무 살 즈음에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집을 떠나 있으면서 가슴앓이를 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애끓는 사랑을 함께 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언니가 꼭 읽으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과 일생을 살아가야 했기에, 성실하고 참되게 산 여인으로 인정받았지만, 더 나아가서 빛이 쌓이는 해구(海溝)에는 영원한 희구(希求)가 있는 것이다. 지심(地心)까지 사무친 어둠을 빛으로 메우려는 그것이 삶이고 또한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뒤늦게나마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이다. 읽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은 언니 집으로 찾아와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했으련만. 집에 없다고 하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어른들의 완강한 거절에. 청년은 얼마나 절망하고 언니의 집 주변을 맴돌며 방황했으려나. 봄바람이 야속하고 그 마음은 사막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삭막했으리라, 모래 언덕에 앉아 아득히 수평선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알지 못할 아련함이 밀려온다. 햇빛이 쌓이는 해안사구에서 저 바다의 윤슬은 바닷속 어디까지 비출 수 있을까, 비추기나 할까, 짐작만 해본다.
이 언덕에는 전설이 있다 한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사랑하는 두 남녀가 바다 풍랑으로 죽어 바람과 모래가 되어 모래 언덕을 만들었단다. 바람과 모래가 남긴 모래 언덕이기에 더 신기하다. 어느 날 어느 밤에 이 많은 모래를 옮겨 오름을 만들었을까. 무슨 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몸부림치고 울부짖으며, 한바탕 모래폭풍을 일으켰을까. 수없이 많은 밤을 모래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그래도 바람의 발자국은 잔잔한 물결 문양으로 가지런하다. 이 부드러운 모래는 저 해변의 파도가 헤아릴 수 없이 쓸고 갔다 쓸고 오면서 깎이고 깎여서 만들어졌을 터, 우리 삶도 파도 같은 세파에 시달리며 바람에 휩쓸려 가는 것이리라.
그 언니, 보고 싶다. 다시 만나면 오래전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 사연을 물어보고 싶다. 언니를 낯선 곳에 데리다 놓아야만 할 만큼 절박했는지 그때 언니의 가슴앓이를 조금만이라도 알았더라면 뒷산 언덕에라도 올라가 먼 산이라도 바라보게 했을 것을, 뒷방에 갇히듯 바깥을 외면한 채 책만 읽고 있던 언니의 마음을 이제는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빛이 쌓이는 해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내게 해주었던 얘기들을 다시 한번 들려줬으면 좋겠다. 나를 보며 웃던 고운 모습, 지금은 무슨 소설을 읽으려나. 언니의 푸른 발자국은 세상 파도에 지워졌을까.
저 멀리 아득히 두고 온 기억을 바람이 전하는 듯 가슴이 아슴해진다. 슬픔도 아픔도 세월 지나 돌아보면 그리움이고 사랑이듯이. 어느새 멀리도 왔다. 사랑이 소중한 것은 처음부터 있었고 가장 나중에까지 남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이고 힘이다. 바람이 사랑을 실어 나르는 곳. 파도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이끌려 봄빛 가득한 해안사구를 바람이 지울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미풍, 훈풍, 태풍, 역풍, …, 우리의 인생 사계에는 수없이 많은 바람이 스쳐 간다. 산다는 건 바람이 남긴 흔적, 바람과의 동행이다. 그 발자국에 수많은 인연이 겹친다. 다시 바람이 분다. (2021. 11)
류외순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문화교양학과를 졸업.『계간수필』2016. 가을호《옷고름》으로 완료 추천. 수필집《푸른 언덕의 노래》(2020). 공저《나의 인생 포토에세이》 수상:율목시민 문학상 최우수상(2012) 경기지방우정청 편지쓰기대회 동상 수상.(2013) 한민족 통일문예제전 경인지방 병무청장상(2016년) 경기예총회장상수상.(2018)경기도 문학상 수상 (2021)계수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수수회 회장 역임. 과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과천문협 수필분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