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 4.18(일) 10;00-16;10 ★코스; 용문역-화전교-흑천-용문천-마룡교-용문천-흑천-용문산지구전투전적비-봉황정-봉상교-수미마을체험장-삼가교- 부안천-보룡교-비룡고개-덕수천-백동저수지-백동고개-점골저수지-향소교-우리식당-석산로-말치고개-망능길-한솔길- 꿈꾸는 사진기-브니엘 노인 전문병원-시나래글래핑-중원계곡계류-중원산로-중원천-시인과농부-조현초교-용문천- 조현교--덕촌교-덕고개-마룡ic교-마룡교차로-용문로-마룡교-용문천-흑천-화전교-용문역(41km) ★참가(4명); 쉐도우수, 홍토마, 아스트라전, 스머프차
지 ㅇ용문산지구 전투전적비에서
4월은 방춘화시(方春和時)로 백화난만(百花爛漫)의 계절이다. 이번 라이딩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일대에서 라이딩 향연을 펼치기로 하였다. 용문역에서 주로 하천을 경유하여 백동저수지와 중원계곡을 둘러보고 용문역에서 마침표를 찍는 원점회귀 코스로 약 41km에 이른다. 용문(龍門)이란 지명은 조욱(1498-1557) 선생 호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조욱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중종 11년(1516)에 생원, 진사시험에 모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 김식 스승으로 부터 사사하면서 학문 연마에 힘썼다.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서경덕, 이황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우하였다. 그러나 기묘사화(중종 14년, 1519) 때 화를 면하고 미지산(彌智山)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제자들은 그를 용문선생이라 일컬었다.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이라고 전해온다. 미지는 미리의 옛 형태이고 미리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용의 방언(경상,제주)이라고 돼 있다. 용의 옛말인 미르와 관련있다. 그렇다면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큰 차이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 언제부터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바뀌어 불렀는지 확실하지 않다. 조욱 선생묘는 용문산 자락인 덕촌리에 위치해 있다. 용문역 2번 출구에서 직진하다가 화전교에서 좌회전하고 흑천과 용문천변을 타고가다 다시 흑천변을 따라 이동하였다. 흑천과의 만남은 세번째이다. 첫번째 만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4년 전 sd 16 바이콜릭스(Bikeholics) 회원 4명이 세차게 내리는 여름비를 맞으며
몽롱한 비구름 속에서 마치 신선의 새계로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흑천이란 지명은 좀 특이한데가 있다. 통상 하천 지명은 동네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흑천이란 지명은 1925년 을축년 큰 홍수 때 검은물이 흘렀다는 설과 용문면 삼성리 거부내 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 바닥에 검은 바위가 깔려있다고 하여 흑천이라는 설이 있다. 흑천은 양평군 청운면 금물산(791m)에서 발원하여 남한강에 합류하는 제1지류로 길이는 약 40km에 이른다. 쉐도우수는 흑천을 따라 이동하다가 투명하고 푸른빛의 물줄기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흑천은 중랑천및 안양천의 물줄기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본래 자연에 가까운 깨끗한 물이다.
하천을 따라 두루 여행을 하였지만 감탄사를 연발하기는 처음이다. 여울목펜션에서 잠시 용문로를 타고가다 두꺼비하우징에서 다시 흑천으로 진입하고 금곡교에서 숨고르기 하였다. 광탄교를 건너면 용문산 지구전투기념비가 나온다. 용문산 지구전투는 1951년 5월18일부터 사흘간 용문산 북쪽과 화야산 일대에서 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제 63군 예하 3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뒤 파죽지세로 파로호까지 몰아붙여 섬멸한 전투다. 이 전투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수세에 몰려 휴전협상을 제의하였으며. 전쟁의 양상은 전면전에서 전선 교착전으로 변하게 되었다. 용문산지구 전투전적비는 가장 먼저 세워진 용문산 전적비로 57년 7월15일 제 5사단에서 건립하였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올리고 봉황정으로 향했다. 봉황정은 흑천 광탄리계곡 절벽위에 설치된 정자로 조선 인조2년(1624)에 남원 양씨 선조인 이조참의 양응청과 병사 양응함이 건립하였으며, 운치가 돋보였다. 용문로에서 다시 흑천으로 진입하고 수미마을체험장을 거쳐 삼가교에서 토끼굴을 통과하면 부안천을 만난다. 보룡교를 건너서 비룡고개를 넘으면 덕수천이 나온다. 덕수천을 따라가면 백동저수지에 이른다. 백동저수지는 산속에 숨어있는 아담한 저수지로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운치가 있다. 겨울철에는 빙어축제, 썰매, 팽이치기 등의 놀이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호수는 여행객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준다.
맑은 공기가 가슴 깊숙히 파고드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였다. 가족단위, 연인들이 호젓하게 산책하면서 힐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백동저수지에서 백동고개와 점골저수지를 지나 항소교를 건너면 우리식당이 나온다. 쉐도우수가 선견지명으로 라이딩 도중에 미리 예약한 식당이다. 식당 밖에서 오붓하게 두부전골과 쌍드롭, 비름나물로 꿀맛같은 식사를 하였다. 예전에 두부전골을 식음했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다. 대열전사 모두가 극찬하였다. 자전거와 관련한 다양한 소재로 정겹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페달링을 재촉하였다. 아스트라전이 스머프차의 회장 취임 4주년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한 턱을 쏘았다. 감사한 마음을 박수로 화답하였다.
341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 노루피해 범온다는 속담처럼 이번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멀티고개를 만난다. 서너번의 고개를 만나 세궁역진했지만 멀티고개는 차원이 달랐다. 약 1km에 이르는 고갯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갈수록 점점 고도를 높였다. 기식엄엄할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쉴새없이 페달링을 해야만 하였다. 더군다나 배가 부른 상태에서 페달링을 하다보니 더욱 힘이 배가 되었다. 스머프차는 고개 정상 30m를 못 버티고 밀바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전사들은 말의 심장을 가진 노익장으로 정상을 극복하였다. 한마디로 열정과 패기넘친 대단한 전사들이었다. 마치 마법의 물약이라도 찾은 것처럼 오르막길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쉐도우수는 스머프차에게 그게 바로 '짬밥의 차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하여 한바탕 웃었다. 정상에서 숨고르기한 후 한솔길로 이어지는 2km 구간은 노페달링으로 쌓였던 피로가 안개처럼 걷히는 신바람나는 내리막길 이다. 한솔길을 따라가면 이름이 특이한 꿈꾸는 사진기카페 건물이 나온다. 그리고 건너편 산자락에 옹기종기 들어선 별장들이 꽃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한다. 브니엘노인전문병원을 거쳐 중원천을 건너서 중원산로를 따라가면 중원계곡이 나온다. 중원계곡은 중원산(800m)자락에 위치한 계곡으로 수량이 맑고 깨끗해 한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중원계곡 입구에서 부터 밀바하면서 중원계곡을 따라 나무덱 교량까지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계곡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여기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중원폭포가 있다. 중원폭포는 약 10m 높이의 3단 폭포로 기암절벽에 둘러싸여있어 경관이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대열잔차 동호회가 2013년 8월18일에 탁족을 하면서 땀도 식히고 신선놀음했던 곳을 보고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울창한 숲 속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에 앉아 탁족을 하거나 하늘을 이불 삼아 누우면 신선이 부럽지않다. 중원계곡에서 약 2km 떨어진 달래골을 가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지체돼 그냥 패스하였다. 중원산로와 중원천 둑길을 따라가면 시인과 농부 펜션을 만난다. 이곳은 쉐도우수가 1998년에 추억과 낭만이 깃든 곳으로, 그 당시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하였다.
중원산로와 중원천변을 타고가다 조현교에서 용문천을 따라 덕촌교까지 이동한 후 용문산로를 따라가면 마지막 고개인 덕고개가 나온다. 마룡삼거리에서 용문로로 갈아타고 용문천과 흑천을 따라 용문역에 오후 4시10분에 도착하였다. 오늘 날씨는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봄날씨였다. 그리고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하였다. 가는 곳마다 야생화들이 반겨주어 룰루랄랄이었다. 바야흐로 꽃대궐이다. 여행하는 동안 길의 표정이 다양하여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쉬엄쉬엄 유유자적하면서 신선놀음하듯 풍류를 즐겼다. 장중보옥같은 동기생들과 여행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에 푹빠진다. 이번 여행은 다소 힘든 여정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 만큼은 모두 행복했다.
쉐도우수는 기획부터 안내까지 완벽하게 연출해 줌으로써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쉐도우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함께 동행한 전사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대열잔차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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