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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토요일 통영 욕지도 연화도 섬 여행
W 산악회 금요무박 양재역 밤 11시 30분 출발 다음날 밤 11시 서울로 귀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맷돌을 돌릴 때 잡는 손잡이가 없다는 말이다. 둥그런 맷돌을 돌리려면 손잡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런 황당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원래 계획은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이었다.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참꽃 군락지가 있다는 고인돌 형님의 말에 참꽃과 노각나무꽃도 볼 겸 오랜만에 지리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일주일간 몇몇 산악회를 기웃거리니 적어도 각 산악회마다 버스 한 대씩은 채워질 듯하더니 막상 금요일이 되니 모두 최소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온다. W 산악회만 28인승 버스 한 대를 띄우기로 확정했다는데 이미 자리가 꽉 차서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산악회 사장님께 혹시 누가 취소하거든 연락달라고 당부했더니 퇴근 무렵 전화가 왔다. 한 명이 취소를 해서 한 자리가 비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번에 지리산 산신령이 내 소원에 감응하셨나보다.
수요일과 목요일 비가 내렸기에 토요일 아침 반야봉에서 해맑은 일출을 기대했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 계곡에는 산 안개가 어슬렁거리고 그 안개를 뚫고 붉게 펼쳐지는 아침 해돋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 반야봉에 피었다는 참꽃을 보고 노각나무꽃도 찾아볼 요량이었다. 길 가에는 지리터리풀과 노루오줌 등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리산을 꿈꾸며 퇴근하였고 긴 산행을 감안하면서 배낭을 챙겼다. 윤이가 미리 사 둔 빵과 참외를 넣고 물은 작은 페트병 하나만 담았다. 지리산에는 중간 급수가 가능한 곳이기에 빈 페트병만 하나 더 있으면 된다.
그렇게 채비를 갖추고 양재역 출발시간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가락시장역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두어 정거장 갔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지리산 산행팀 산대장이라면서 어디냐고 묻는다.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린다. 지금 전철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정확하게 어디쯤이냐고 묻는다. 벌써 버스가 양재역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짧지만 설왕설래 많은 대화를 한 것 같다. 그제서야 내가 알고 있던 출발시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10시 30분 출발로 알았는데 실제는 10시 10분 출발이었고 우리가 통화한 시각은 10시 15분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오래 서 있으면 카메라에 찍힌다며 애석하지만 기다릴 수 없다고 한다. 안내산악회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라 나도 고집을 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알고 결국 지리산가는 버스를 보내야 했다.
산대장이 산악회 회장님과 얘기해보라 한다. 별 다른 묘수가 없음을 알고도 전화를 했다. 대체로 설악산에 갈까도 생각했는데 만석이라 한다. 그리고 연화도 욕지도 가는 버스에 자리가 있는데 그 쪽으로 가려면 얘기해 놓겠다고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만 나는 생각이 많아 산에서 바다로 가는 꼴이 되었다.
양재역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 11시 30분 통영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8인승 리무진 버스에 혼자 앉아 가는 자리에 배정되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산대장이 코로나 예방수칙을 전달한다. 차 안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말고, 버스 탑승 내내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옆사람과 일절 대화하지 말기. 나는 준비해온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붙였다. 중간에 어느 휴게소에 들렀지만 개의치 않고 잠을 꼭 붙들어 안고 통영까지 달렸다. 서울을 출발한 지 5시간 여 마침내 새벽 4시 통영에 도착했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통영까지 연결되어 이렇게 먼 거리도 한 달음에 훌쩍 갈 수 있게 되었다.
지리산이 눈에 밟히지만 이제 다 체념하고 나름대로 통영에서의 하루를 잘 보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시장에는 벌써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열었다. 어두운 거리에 카트를 끌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버스가 선 곳은 재래시장과 여객터미널 주차장 사이 대로변이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니 무작정 바닷가쪽으로 걸어가 본다.
작은 어선들이 옹기종기 정박해 있는데 멀리 불 밝힌 건물 안에서 경매꾼의 특이한 울림이 들린다. 호기심에 경매장을 기웃거려본다. 간밤에 나갔던 배에서 쏱아 부은 물고기를 각 배별로 또 물고기 종류별로 정리하여 경매하는 중이다. 한 사람이 물 속에 있는 플라스틱 박스안에 담긴 물고기를 들어 보이면 경매꾼은 목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저음으로 길게 특유의 목소리를 뽑아낸다. 그러면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경매인들은 각자 생각한 가격을 손짓으로 표시하고 경매꾼은 제일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의 번호를 불러줌으로써 경매를 마무리한다. 그러면 경매를 따낸 사람의 가게번호를 플라스틱 박스에 붙여놓는다. 이렇게 많은 물고기 상자들을 이어 나간다. 특이한 것은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경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라는 점이다.
여명이 서서이 밝아오지만 기대할만한 일출광경은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새벽 5시도 안되었는데 재래시장인 서호시장 안에는 불이 훤하게 켜져 있다. 주로 물고기나 야채를 파는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시장이다. 아직 5 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주로 통영에 있는 식당에서 반찬거리를 사가는 모양이다. 아니면 통영에 관광 온 사람들이 건어물 등을 마련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아침을 먹으러 시장 안에 있는 시락국집을 찾았다. 배낭에는 산에서 먹으려고 싸온 빵이 들어있으나 기왕 이렇게 멀리 여행을 왔으니 이 곳의 토속음식을 먹어볼 생각이다. 시락국은 산대장이 추천한 음식이다. 쇠고기로 육개장을 끓이듯이 장어와 시레기를 넣고 양념을 해서 오래 푹 고운 시레기국인데 경상도 말로 시락국이라 부른 것이 이 곳의 음식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국 한 그릇에 공기밥 하나 그리고 열 가지가 넘는 밑반찬은 각자 먹을 만치 덜어서 먹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벽에는 반찬을 먹을만치 덜어서 남기지 말고 다 비우라는 빈 그릇 운동 문구를 적어 놓았고 천정에는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낙서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나는 시락국에 부추를 듬뿍 넣고 간을 맟춰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해치워 버렸다. 한 그릇에 6,000 원 그다지 싸지도 않지만 비싼 것도 아니다. 통영에서 유명한 토속 음식 시락국을 원조 시락국밥집에서 먹었다.
배를 타려면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평소 등산갈 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갈 일이 없으니 당연히 내 신분을 확인할 서류가 없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여객선 터미널 안에는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초본을 이렇게 부른다)를 자동으로 발급해주는 기계가 설치되어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우리나라 민원 서비스를 이렇게 이용해본다. 절차가 아주 간편하고 시간도 얼마 안걸린다. 발급 수수료 200원은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참 편리한 나라다. 산대장이 단체로 끊은 통영 – 욕지도행 승선권을 받아 6시 30분 배에 오른다.
옛날 바다낚시 다닐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배를 탔었다. 작은 배가 빠른 속도로 새벽을 가르며 바다를 달리는 뱃머리에 서 있으면 온 몸이 날아갈 듯 시원했었다. 그런 느낌을 받을까 싶은 마음에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어지간히 붐비지만 여기만 해도 벌써 속세에서 한 발짝 멀어진 느낌이다. 대부분 승객들은 배에 오르자 마스크를 벗고 여유를 부린다. 승객 중에는 중년 또는 노년의 여자들이 많다.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다. 달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처지가 못되었던 옛날 우리 어머니 또는 할머니 세대에서는 그나마 집안의 화복을 빌기 위해 절을 찾아가는 것이 특별한 여행이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여인들의 표정이 한껏 들떠있는 분위기다.
날씨는 덥지도 않고 쾌청하다. 파도는 잔잔하고 주변 모든 사물이 침묵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도 말이 없다. 지도를 보니 왼편에 한산도가 있다.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의 진영이 있던 섬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이 우리나라 해상국립공원인 한려수도의 초입이다.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이어지는 다도해를 아우른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뱃길를 이렇게 우연챦게 지나가게 되었다. 한산도를 지나고 용초도 그리고 비진도가 나온다. 모두 들어본 적이 있는 섬들이다.
비진도를 왼쪽에 멀찍이 두고 가까이 오곡도를 지나 내부지도와 외부지도 사이를 달린다. 부지도(夫支島 )는 원래 잘 모르는 섬이란 뜻으로 부지도(不知島)라고 불렀다 한다. 작은 돌섬인데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중간에 흙이 쌓이고 그 곳에 풀과 나무가 자라 꽤 큰 숲이 만들어졌다. 사람이 살지는 못하겠지만 낚시꾼들이 들어가 놀기에 좋아 보인다.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언뜻 보아도 키가 큰 나무도 많이 보이는데 자료에 따르면 곰솔과 광나무, 돈나무와 사스레피나무 등이 혼재하여 자란다고 한다.
통영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고 눈 앞에 긴 다리로 연결된 섬 세 개가 나타난다. 갑판 위에 있던 단체팀으로 온 여인들이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곳이 연화도(蓮花島)라 하며 유명한 절이 있어 불공을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라 한다. 여인들이 내리고 나니 갑판 위가 헐렁하다. 우리 산악회 팀과 또 다른 팀 이렇게 두 팀 정도 남았나 보다.
통영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그리고 연화도를 출발한 지 삼십분 정도 되는 8시에 우리는 마침내 욕지도에 도착했다. 섬에 대해 사전지식도 없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팀은 단순히 섬의 최고봉인 대기봉(355 m)과 천황봉(392 m)만 오르는 짧은 코스를 택했다.
순환도로의 가로수가 동백꽃나무다. 호두알만큼이나 큰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주로 화분에 심어 판매하는 팔손이가 여기서는 야생으로 자란다. 확실히 남쪽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산행팀을 따라가다가 뒤에 쳐져서 혼자 걷기로 했다. 바닷가 팬션쪽에 나무계단이 보이기에 다가가니 아직 공사중이라 한다. 언뜻 보기에 바닷가로 탐방로를 새로 개설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조금 걸으니 풀섶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이정표는 혼곡 1.2 km라 써 있다. 이미 탐방로의 기능을 상실한 듯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수풀이 무성하다. 그래도 아스팔트 길보다는 이런 길이 좋다. 갖가지 야생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오리나무 열매가 짙은 녹색으로 싱싱하다. 일본이 원산지이며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산비탈에 심는 나무이기에 사방(沙防)오리나무라 부른다. 이 섬산행을 하는 동안 마을 주변에서 많이 목격된다.
팽나무는 주로 해안가에 크게 자라 방풍림으로 조성되는데 팽(彭)나무라고 하는 이름이 재미있다. 나무의 열매가 단 맛이 나는데 이 나무의 푸른 열매를 대나무 구멍 양 쪽에 하나씩 넣고 한 쪽을 막대기로 밀어 넣으면 공기압축으로 ‘팽’하고 튀어나가는 것을 보고 팽나무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딱총이라 하여 대나무에 종이를 씹어서 밀어넣었는데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은 팽나무 열매를 이용했나보다.
또 다른 유래를 보면 단군신화에 기인한다.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상을 펼칠 무대로 우리 나라를 택하고 세 명의 신하를 데리고 신시에 내려왔는데 그 때 데리고 온 신하는 풍백(風伯)인 팽우(彭虞)와 신지(神誌) 그리고 고시(高矢)였다. 이들은 각각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에 묻어 있는데 단군을 기리는 당산(堂山)나무로 사람들 곁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팽우는 팽나무로 목신(木神)이 되었으며, 농사를 담당하던 고시에 대한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은 야외에서 음식을 먹기 전 그 일부를 떼어내 땅에 던지는 고시례(高矢禮)로 남았다는 것이다.
4~5월에 핀다는 팽나무 꽃은 이미 다 졌는지 보이지 않고 무성한 잎 속에 열매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걸었는데도 벌써 육지에서 보지 못하는 나무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팔손이는 자연 그대로 숲 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란 꽃대가 올라온 나무를 본 순간 전에 보았던 나무라는 느낌이 다가온다. 2017년 제주도에 여행갔을 때 길 가에서 보았던 예덕나무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기 쉬운 나무다. 나중에 산에 오르면서 그리고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예덕나무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노란색 꽃이 만발했다.
예덕(禮德)나무는 한자말 그대로 예절과 덕성을 갖춘 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림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자어의 유희처러 느껴진다. 이 나무는 중국에서 한약명으로 야동(野桐)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뭇잎 모양이 오동나무와 비슷한데서 유래한다. 주로 위궤양과 위염 등에 잘 듣는다는 야동은 제주도에서 야오동(野梧桐)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이 발음과 비슷한 예덕나무가 되었고 원래의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한자명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사람에게 한약재로 또 나무 껍질은 밧줄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이니 그만한 이름을 가질 자격을 갖춘 거라고 봐도 되겠다.
길가에 하늘타라도 많이 자란다. 하얀 머리카락을 흐트리며 뽀얀 얼굴을 한 하늘타리 꽃이 예쁘다. 제주도와 남쪽 섬지방에서 자라는 노란하늘타리가 많이 보인다. 고구마같이 생긴 괴근은 습진걸린데 찜질용으로 사용하며 달여 먹으면 이뇨 및 통경 배농에 좋다고 한다. 열매 말린 것을 달여서 먹으면 폐렴이나 천식을 낫게 한다고 하니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는데도 도움이 될까? 어쨌든 이렇게 여러가지로 이로운 약재이다보니 하늘이 내린 선물보따리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런 하늘타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가 아니라 나뭇꾼과 신선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 어느 나뭇꾼이 잠시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목이 말라 가까이 가 보니 커다란 나무들로 가려진 동굴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시원한 물로 갈증을 때운 나뭇꾼은 호기심에 동굴에 들어가보니 몇 걸음 가지 않아 동굴은 커다란 돌로 막혀있었다.
동굴에서 나와 다시 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 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두런거리는 사람소리가 들려 눈을 떠 보니 아까 물을 마신 동굴 앞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과 검은 머리를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올해는 참 운이 좋아. 금외가 두 개나 열리다니 말야.” 하고 검은 머리의 노인이 말을 꺼냈다.
“쉿! 그런 얘기 함부로 하지 말게. 그렇쟎아도 저기 있는 저 나뭇꾼이 알면 안되니까 말일세”하고 흰 머리의 노인이 나무라듯 말한다.
“알면 뭐하겠나. 어짜피 동굴 안에 문이 닫혀 있으니. 7월 7석날 정오에 문앞에 서서 ‘하늘 문 열려라. 땅 문 열려라. 금외 주인이 들어가신다.’하고 주문을 외워야 문이 열리는 것을 알 턱이 없으니 말일세. 하하” 검은 머리의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껄걸 웃으며 흰 머리 노인을 안심시킨다.
“그러게 말일세. 하하하. “흰 머리 노인도 별 일 없다는 듯 따라 웃으며 즐겁게 화답한다.
나뭇꾼은 두 노인들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누웠던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차려보니 노인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모든 게 허망한 꿈이었슴을 깨달았다.
나뭇꾼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칠월 칠석날 다시 동굴을 찾아가 정오에 바위문 앞에서 서서 주문을 외웠다. “하늘 문 열려라. 땅 문 열려라. 금외의 주인이 들어간다.”하고 주문을 외자 굳건하게 닫혀 있던 바윗돌 문이 거짓말같이 열리는 것이었다. 나뭇꾼은 신기한 마음에 성큼 동굴 안에 들어가 둘러보니 정말 오이덩굴처럼 생긴 것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데 거기에 열매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나뭇꾼은 생각할 결를도 없이 오이 두 개를 따서 부리나케 동굴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오이를 살펴본 나뭇꾼은 크게 실망했다. 오이처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쭈글쭈글하고 껍질이 질겨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열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뭇꾼은 열매를 방 구석에 버려두고 그것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나뭇꾼은 또 그 동굴 근처에서 나무를 하다가 잠시 쉬는데 전에 보았던 두 노인이 동굴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자네 입방정 탓에 금외를 도둑맞았으니 참 애석한 일일세.” 흰 머리 노인이 검은 머리 노인을 나무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나뭇꾼 애가 깨어서 우리 얘기를 들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나저나 그러면 뭐하겠나. 나뭇꾼이야 그 금외가 가슴앓이에 좋다는 걸 알 턱이 없으니 아마도 그냥 버려둘 것일세. 그러면 우리가 다시 가져오면 되쟎나.” 검은 머리 노인이 별 일 아니라는 둥 대답했다.
“어쨌든 입조심하게나. 우리야 일 년 기다리면 또 열리는 열매를 따면 되지만 속세 인간들이 우리 일에 간섭하면 골치 아파지니까 말일세.” 하고 흰 머리 노인이 주위를 당부한다.
잠든 척하면서 두 노인의 대화를 끝까지 다 들은 나뭇꾼은 집에 오자마자 금외를 찾았다. 껍질이 노란 금외는 그 새 다 썩어 문드러지고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금외가 있던 자리에 작은 씨앗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나뭇꾼은 이듬해 봄 씨앗을 뒷곁에 심으니 금새 싹이 터 동굴안에서 보았던 금외덩굴처럼 무성하게 자라나더니 하늘을 덮어 버렸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데 나뭇꾼은 두 노인들의 대화를 상기하며 금외를 잘 가꾸었다.
마침 마을에는 폐렴이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는데 나뭇꾼이 금외 달인 물을 먹이니 병이 씻은듯이 나았다. 약의 효능에 감탄한 사람들은 나뭇꾼에게 감사해하며 그게 무슨 약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났는지 물었다. 나뭇꾼은 그 두 노인이 신선임을 알고 있는지라 자세히 얘기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하늘타리는 중국에서 천원자(天圓子)라고 부르는 한약재이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하늘 울타리 즉 하늘타리가 되었다. 욕지도에는 숲 가장자리 어디에서나 노랑하늘타리 덩굴을 만날 수 있었다.
남쪽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돈나무에는 열매가 잔뜩 달려있다. 꽃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 하여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부른다. 3~4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삭과가 익는다고 한다. 큰 강낭콩 만한 열매가 잎이 무성한 가지 끝에 다닥다닥 달려 있다. 돈나무는 제주도와 남해안에서 자라는데 이 나무의 수액이나 열매에서 나오는 당분을 섭취하기 위해 파리가 몰려들어 사람들은 ‘똥나무’라고 불렀다. 이후 일본사람들이 이 나무를 가져 가면서 나무 이름의 된소리를 내지 못하여 지금처럼 돈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길가에 좀 거칠어보이는 양치식물이 보인다. 이제까지 산을 다니면서 고사리나 뱀고사리 그리고 관중이나 고비 등 여러가지 양치식물을 보면서 짐짓 모른 척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우선 그 많은 종류의 양치식물을 아는 척했다가 공연히 그 속에 갇혀서 허우적 댈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로 비슷비슷하게 생긴 고사리를 구분해서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여간 여려운 과제가 아닐 터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녀석은 이제까지 본 것과 또 다른 특이한 것이었다. 덩치가 관중보다 더 크면 컷지 작지는 않다. 그리고 깃잎이 두텁고 억세며 끝이 날카롭다. 짙은 녹색으로 빛이 반사되어 번들거린다. 뒷면을 보니 옅은 쑥색 바탕에 갈색 포자가 덕지덕지 붙어ㅍ있다. 내 스스로 고사리는 모른 척하자고 맘을 먹었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매정하다 싶어 조심스레 사진에 담아 와 검색을 해보니 도깨비쇠고비라고 한다.
고비라고 하는 것은 고사리를 의미하니 그렇다 치고 쇠고비는 무엇인가? 쇠고비도 도깨비쇠고비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와 남부 도서지방에 서식하는 면마과(관중과) 관중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상록 양치식물인데 고비에 비해 더 크고 질기고 늘 푸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도깨비라는 접두어를 붙인 것은 더 크고 좀 모양이 특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자라고 있는 도깨비쇠고비는 언뜻 보아도 특이하며 괴기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방에서는 도깨비쇠고비의 뿌리를 전연관중(全緣貫衆)이라 하여 유행성 감기의 해열작용 또는 지혈이나 자궁출혈에 쓰인다고 한다. 또한 민간에서는 회충이나 요충 등을 구제하는 구충제로 쓰인다 한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가 눈에 익었다. 전에 본 듯한 열매다. 제주도 사라봉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천선과나무다. 뽕나무과 무화과나무속 낙엽활엽 교목이다. 신선이 따 먹는 과일이라 하여 중국인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하는 이 천선과(天仙果)는 우리나라 토종 무화과나무라 한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 하나를 따서 씹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이 없는 과일이 다 있나 싶다. 푸석푸석한 것이 꼭 화장지 씹는 기분이다. 아무맛도 향도 없다.
어쩌면 내가 먹은 것은 숫꽃인지 모르겠다. 이 천선과는 암수 딴그루로 숫꽃은 지름이 약 15 mm 정도 되는 꽃주머니(화낭 花囊) 안에 들어 있는데 천선과좀벌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곤충이 이 화낭에 들어가 알을 까고 그 알은 화낭 속에서 겨울을 난 후 이듬해 여름에 부화한다. 부화한 천선과좀벌은 수꽃의 꽃가루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나와 암꽃을 찾아가 꽃가루를 묻혀 줌으로써 수정을 시킨다고 한다.
천선과나무 열매는 9월에서 10월에 구슬처럼 작고 까맣게 익는데 그 모습이 갓난아기에게 물리는 엄마의 젖꼭지와 닮았다 하여 전라도 일부지방에서는 젖꼭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선과 나무 열매는 단 맛이 적어 특별히 맛이 있다고 볼 수 없는데 굳이 하늘의 신선들이 먹는 과일이라는 뜻의 천선과(天仙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과일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먼 옛날부터 주변에 흔히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다호리에 있는 창원 다호리 고분(사적 제 327호)에서는 천선과로 추정되는 씨앗이 나오기도 했다는데 이는 사후에도 이 과일을 곁에 두고 싶어했던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반증하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천선과 나무의 수피는 희색인데 껍질에 상처를 내면 하얀 우윳빛 유액이 나와 달리 우유보(牛乳甫)라고 부른다고 하며 이 유액은 상처치료 등 항균작용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불과 다섯 시간 내려와 배로 한 시간 반을 들어왔을 뿐인데 이 곳에 자라는 풀나무는 중부지방과 확연하게 다르다. 이는 바닷물이 태평양에 연해있기 때문에 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를 유지해주어 온대성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탐방로는 제대로 연결이 안되고 다시 해안도로를 만난다. 해안도로 바로 위에는 욕지도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운행이 중단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개통을 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건물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새로 지은 건물인데다 주변 도로 가에는 루드베키아 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내 짐작으로는 올 해 운행을 하려고 야심차게 준비를 했으나 코로나사태로 인해 운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도상에는 이 모노레일이 설치된 곳에 등산로가 겹친다. 길 가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고 아주 작은 팻말에 ‘등산로 없슴’이라고 써 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섬산행을 왔는데 등산로가 없다니 !. 참 황당한 일이다. 모노레일이 설치된 구간을 따라 걸어 올라 가려고 보니 곳곳에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살벌한 경고문이 적혀 있다. 이럴 때 내게도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이 나타난다. 다른 말로 융통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유도리라고도 말한다.
달리 우회하는 등산로가 없으니 모노레일을 따라 급경사를 오른다. 레일 아래는 야자수 껍질로 만든 매트가 깔려 있어 일반 산길보다 걷기에는 더 편하다. 다만, 경사가 급한데다 모노레일을 따라 걸어야 하기에 길과 모노레일 사이가 좁아지면 모노레일을 넘어 다른 쪽으로 옮겨간다.
이 길은 대기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욕지도의 최고봉은 천황봉(392m)이고 대기봉(355m)은 천황봉과 작은 능선길로 연결되어 있는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아마 앞으로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쉽게 대기봉과 천황봉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길 가에 예덕나무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옆 바위에 하얀 백화등(白花藤) 꽃이 피어 있다. 전에 남해에 갔을 때 마을의 어느 집 담장에 하얗게 피어 있던 꽃이다. 이 꽃도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꽃이기에 정성들여 사진에 담아 본다. 흰 꽃이 피는 등나무 줄기처럼 생긴 덩굴이란 뜻이겠다.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백화등은 욕지도와 연화도를 다니는 동안 여러 곳에서 만난다. 이 곳 남해안과 섬에서는 백화등이 흔히 볼 수 있는 덩굴나무이다.
찔레꽃과 매우 닮은 하얀 꽃을 만났다. 전에 백두대간 뛸 때 지리산 정령치에서 작은 고리봉에 올랐을 때 한 번 보았던 꽃이다. 찔레나무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았으나 우선 돌가시나무는 제주도와 남해의 섬지방 그리고 전라도에 분포하며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반상록 활엽 덩굴식물이기에 구분해야 하겠다. 찔레에 비해 잎이 더 억세고 가시도 강하다. 찔레가 어느 정도 나무처럼 자라나서 덩굴로 벋는 반면 돌가시나무는 땅에 바짝 기어다닌다.
나무는 꽃과 잎 그리고 열매로 그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섬에 자라는 나무들의 잎새는 대부분 두텁고 번들거리는 혁질(革質)이다. 이는 열대지방이 아닌 곳에서 겨울에 늘 푸른 잎으로 살아가기 위해 잎 속에 공기층을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남해안 도서지역은 그나마 따뜻한 온대성 기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보다 추운 삼척이나 평창 등 석회암지대 바위에 자라는 상록수인 회양목도 잎 안쪽에 두터운 공기층을 두고 있다. 산길 주변에 키가 5 미터쯤 되어보이는 나무에 하얀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나무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니 향기가 은은하다. 잎새는 결각이 없이 사철나무 잎처럼 두텁고 윤기가 난다. 하얀 꽃은 쉬땅나무 꽃처럼 원뿔형으로 모여서 피어 있다. 광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 쥐똥나무와 성질이 비슷하지만 쥐똥나무에 비해 꽃이 더 소담스럽고 나무가 더 크며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늘푸른 나무다. 광나무 열매는 강장제로서 간의 기능을 좋게하고 흰머리를 검게하며 당뇨를 예방하는 기능도 있어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열매를 여정실(女貞實)이라 하여 동지때 채취하여 말려서 가루로 만들고 또 여름에 채취한 한련초(旱蓮草) 달인 물로 반죽하여 환을 만들어 먹으면 그 효과가 크다고 한다. 특히, 이명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이렇게 만든 환을 이지환(二至丸)이라고 부른다는데 이는 여정실 즉 광나무 열매를 채취하는 시기가 동지(冬至)요 한련초를 채취하는 시기가 하지(夏至) 즈음이라 최고의 음과 양의 두 약초를 하나의 환으로 만들어서 복용하면 간과 신장의 기능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다. 하긴 모든 병을 고쳐준다고 만병초라고 부르는 나무도 있으니 흰머리가 까매진다거나 정력이 좋아지게 하는 것쯤이야 어려울게 없겠지.
대기봉 정상이 가까워지는데 한 무리의 인부들이 모노레일 점검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지속되더라도 관광사업이나 일반 생산활동 등 경제를 멈춰서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기본 방침에 부응하여 멈춰선 모노레일을 곧 가동시킬 모양이다.
섬산행의 매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조망에 있다. 대기봉 정상 데크에 서니 욕지도 섬의 일부분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바다 넘어 또 작은 섬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첩첩산중의 높은 봉우리에 서서 주변 산마루금을 바라보면서 어느 산인지 궁금해 하듯이 이렇게 섬의 조망처에 서면 이름모를 섬들에 대한 아련함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대기봉에서 잠시 내려선 탐방길은 작은 숲을 지나 삼거리에 이른다. 직진하면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태고암을 거쳐 배에서 내렸던 욕지면 소재지 마을과 선착장에 이른다. 삼거리에는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있어 사람들은 이 곳에서 간식을 먹거나 잠시 쉬어간다.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 몇 명이 앞으로 갈지 그냥 내려갈지 망설이고 있다.
천황봉으로 향하는 약 300 미터 짧은 산길은 화려한 꽃밭이다. 예덕나무가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노란 꽃이 장관을 이룬다. 거기에 광나무 한 그루가 하얀 꽃을 가득 달고 있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런 광경은 내륙지방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섬에서 만나는 조록싸리꽃도 더욱 특별해보인다. 자주꿩의다리 꽃도 피었다.
천황봉 정상에는 해군부대가 있어 등산로는 정상 바로 아래 전망데크까지만 이어진다. 이 천황봉에서는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옛날부터 해군의 감시초소를 두었던 모양이다. 바위에는 숙종 15년 ( 1689 )에 지금으로 치면 해군참모총장급 정도 되는 통제사 이세선이 친히 다녀갔음을 기록한 암각문이 남아 있다.
태고암으로 내려가는 길 옆으로 숲이 울창하다. 큰 나무가 없는 곳에는 삼나무를 심어 놓았고 나무를 가꾸기 위해 나무주변에 무성하게 난 풀을 깍는 작업이 한창이다.
태고암은 작은 허름한 요사채와 산신각 그리고 작은 대웅전 건물로 이뤄진 아담한 절이다. 절을 찾는 사람이나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오솔길을 나 혼자 차지하고 있다. 태고암까지 차가 오를 수 있을 만큼 임도가 잘 닦여져 있어 걷기에도 편안하다.
숲을 빠져나와 더 넓은 임도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직진하면 약과봉으로 가는 것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배 타는 선착장과 욕지도 면소재지 마을이 나온다. 시간이 11시 30분인데 오후 1시에 배를 타야 하기에 나는 약과봉에 들르지 않고 마을로 내려간다.
길 오른편 덤불 아래에는 계곡이 이어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계곡도 무척 짧은데다 근래 큰 비가 내린 것도 아닌데 어디에서 물이 나오길래 이처럼 큰 소리를 낼 만큼 많은 물이 흘러내린단 말인가. 임도 끝에는 꽤 큰 저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작은 산의 숲이 많은 물을 담아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모양이다.
욕지도 면 소재지 마을에는 골목마다 벽에 그림을 그려놓고 거리를 깨끗하게 손질해 놓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배낭에는 점심으로 싸온 빵이 들어 있지만 기왕 섬에 여행온 것이니 이 곳의 토속음식을 먹을 요량으로 잠시 식당가를 기웃거려본다. 어느 중국음식점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대부분 다른 식당은 손님이 그리 많지도 않고 어떤 곳은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이 먼 섬에까지 와서 중국음식을 먹는단 말인가?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둣가에 나가니 포장마차가 몇 개 늘어서 있고 해물 음식을 판매한다. 삶은 문어와 고등어 회가 주류를 이룬다. 고등어는 금방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회를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아마 이 섬에서는 고등어를 직접 잡아 올려 횟감으로 쓰는 모양이다. 큼지막한 고등어 한 마리에 만원이다. 광어나 우럭회에 비해 특별히 맛이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음식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고등어 회 한 접시를 사 먹었다.
예정대로 12시 30분에 선착장에 모여 승선권을 받아 1시에 욕지도를 떠나 연화도로 향했다.
연화도(蓮花島) 여행
짧은 산행이었지만 무박으로 내려온 탓에 짧은 뱃길에서도 졸음이 쏱아진다. 선상 벤치에 몸을 누이고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다시 몸이 회복된다. 약 30분간의 짧은 항해 후에 환상의 섬 연화도에 도착했다.
연화도(蓮花島)는 통영에서 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인데 섬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불교의 색채가 짙은 곳이다. 잠깐 들러본 것이지만 사명대사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그런 기원에 맞춰서 1988년 연화사를 세우면서 점차 불교적인 명소가 되었다.
사명대사는 젊어서 깨우침을 얻고 중이 될 수 있는 과거에도 합격하였으나 정치나 벼슬에 관심이 없어 남해에 있는 보리암에서 수도를 정진하던 중 그의 아내와 여동생 그리고 애인까지 세 명의 여인이 그를 찾아왔다. 속세의 인연과 전생의 인연 그리고 미래의 인연 등 삼 세의 인연을 안타까와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이 연화도 연화봉 아래에 토굴을 파고 수도하였다 한다. 이후 이들은 섬을 떠나며 각자 삼 세의 인연에 관한 시를 한 수씩 남기고 바위에 부.길.재 (富.吉.財)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는데 그 암각문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연화도 곳곳에는 절과 탑 등이 세워져 있고 특히 사명대사가 머물면서 수도 정진했다는 토굴에는 사명대사의 모습을 불상으로 제작하여 앉혀 놓았고 그 토굴 아래에는 1988년 연화사라는 절을 지었다. 연화사는 다른 절에 비해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전통적인 건물양식이다. 특히 절 곳곳에 심어놓은 나무와 꽃이 왠만한 정원사가 가꾼 것 못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욕지도에서 보았던 예덕나무와 큰천남성, 돌가시나무 등 남쪽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산책로 주변에는 수국을 심어 놓아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정취를 선사한다.
연화도에는 출렁다리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고 싶어하나 부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버스를 이용하여 가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출렁다리 관광을 포기한다. 나도 연화도의 지리를 잘 모르는데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렁 오게 되었기에 다른 무리들을 따라 연화봉을 거쳐 능선을 걸었다. 보덕암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이 귀챦아 생략하고 5층석탑을 거쳐 진행하다가 지도에 쉼터라고 표시된 곳에서 임도를 만나 선착장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출렁다리는 여기서 한참 더 가야 나온다.
연화사를 둘러보고 벽화가 그려진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니 금방 선착장에 도착한다. 오후 3시 50분이다. 4시에 출발하는 배에 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뭔가 빠뜨린 듯 허전한 마음이 들지만 딱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배를 타야한다는 생각에 줄 끝에 가서 섰다. 차레차례 줄이 짧아지고 배에 타려는데 검표원이 표를 달라고 한다. 얼떨결에 주머니에 있는 표를 주니 “ 이건 통영에서 올 때 끊은 표쟎아요.” 하고 다른 표를 달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 다른 표는 없다.
그리고 차례차례 밀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검표원과 제대로된 실랑이도 없이 그냥 밀려서 배에 올랐다. 원래 혼자 온 탓에 아는 사람들이 없는데 배에 오르니 모두 낯선 사람들이다.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눕거나 앉고 벤치 의자를 넓게 차지하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저녁 엷은 안개가 물 위에 떠 있는 저녁 바다를 감상하며 한 시간을 꼬박 선 채 이쪽 저쪽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특이한 것은 이 바다에는 배를 따라다니는 갈매기가 없다는 것이다. 인천이나 궁평항 등 서해안에는 갈매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배를 따라다니며 새우깡을 구걸하는데 이 통영 앞바다에는 갈매기가 없다. 통영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서너 마리 갈매기가 나타나 새우깡을 채가는 쇼를 보여주었다.
단체 팀은 나보다 한 시간 뒤에 오는 배를 타기로 했었나보다. 통영항 터미널에서 여유있게 몸을 씻고 의자에 앉아 쉬었다. 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아니고 어디 따로 갈 데도 없는지라 일찌감치 버스에 오른다.
오후 6시에 통영을 출발하여 11시에 양재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이 끊길까 서두르니 11시 40분 천호역에 도착하여 자정이 되기 전에 무사히 집에 도착해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