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안양장례식장에 문상을 다녀왔다. 고인 영정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명복을
빌며 고인의 얼굴을 잠시 응시했다.
고인(故人)의 이름은 유광현(柳光鉉), 그 앞에 문상객도 유광현(柳光鉉)!
이 얼마나 기묘한 조우(遭遇)인가!
고인은 내가 정유회사에 근무할 때 부하 직원의 부친으로 20여 년 전 그 친구 결혼식장에서 똑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同名異人)의 혼주와 하객으로 만난 후 이렇게 생과 사를 달리 해 다시 만났다.
고인은 개성이 고향인 월남 실향민으로 지척에 둔 채 못 가는 고향을 그리워 하다 7년을
치매로 고생하다 결국엔 개성이란 고향도, 유광현이란 본인 이름도, 자식 얼굴도 기억 못하고 82세에 세상을 하직했다.
상주(喪主)는 나를 보더니 고인이 홀홀 단신 피난 온 후 하루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망향(望鄕)의 그리움이 도져서 망향(忘鄕)의 치매가 된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를 낳아 주신 아버지 유광현은 돌아가셨지만 한 때 고락(苦樂)을 함께 한 상사(上司)
유광현을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술에 취하면 수시로 나에 대한 호칭을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버릇이 있지만
믿거나말거나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내 이름은 유광현(柳光鉉). 문화(文化) 유(柳)氏 左相公派 34세손이다.
柳哥는 한국 330여 姓氏 가운데 19위로 50여 만 명이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10대 성씨(金,李,朴,崔,鄭,姜,趙,尹,張,林)에도 들지 못하는 겨우 1% 정도의 한미(寒微)한 성씨이다.
어쨌든 5천만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 땅에서 50만 명의 씨족이 사용하는 같은 성을 갖고
다시 같은 이름(물론 한자도 같은)을 가진 동명이인(同名異人)을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내가 처음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초등학생 시절로서
아버지 따라 시제(時祭)에 갔다가 같은 이름, 비슷한 이름이 그토록 많음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종친회 사람 외에 동명이인,유광현(柳光鉉)을 4명 만났다.
처음 알게 된 나 아닌 또 다른 유광현은 고3 때 우연히 알게 된 고1(22회) 후배였다.
그러나 그와는 일면식도 없이 졸업을 했고, 그 후 내가 아는 22회 후배를 만나면 혹시나 해서 유광현 동기의 근황을 묻곤 했는데 그는 나와 달리 전문인(공인회계사)으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유광현이 이번에 고인이 된 분이고,
세 번째 만난 유광현은 내가 건설회사 법무실장으로 있을 때 사법고시
출신의 사내 변호사 결혼식장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였다. 역시 동명이인의 혼주와 하객으로서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그는 내가 회사를 그만 둔 후에 다른 법무실 직원들과 달리 일절 모임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버지 유광현과 사이가 안 좋아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안 되는 집안 사정의 여파가 아닐까 억측을 해본다.
네 번째 유광현도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몇 년 전 용두열 친구 류영철의 아들 혼사에 갔더니 아들 이름이 나와 똑 같았다. 아주 잘 생긴 풋풋한 새 신랑 유광현과 초로의 하객 유광현이
혼잡한 가운데에서도 혼주의 배려로 짧으나마 덕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가뜩이나 박학다식하고 후덕한 인품의 류영철에게 부지불식간에 주눅이 들어 그가 흡사 아버지 같기도 하고 고등학교 대선배같이 어렵기만 하다.
내가 아는 4명의 유광현 중 한 명은 이제 유명을 달리 했다.
고인이 된 유광현 씨는 한 평생을 고향, 개성을 그리워하다 나중에 아예 고향을 잊고 타향에서 한 줌의 재로 갔다. 그는 그래도 한 평생을 그리워 할 대상이 있었음에 행복했던 건 아닐까?
선조가 물려 준 성씨와 부모가 지어 준 이름, 이름 석 자 양명(揚名)은 비록 못해도 최소한 이름값은 하느라고 아등 바등 살아 온 것 같다.
문득 창 밖을 본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푸르러 사패산 봉우리에 흰 구름 한 조각 걸려 있다.
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지 새삼 알 것 같다.
첫댓글 나는 고등학교 동창 柳光鉉을 알게된후 지금까지 같은 이름을 만나 본 적은 없으나 柳明鉉, 柳演鉉 柳彦鉉 을 만나 본적이 있다, 셋다 69학번 같은 또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동창 유광현과 같이 똘똘하다고 할까? 똑똑하다고 할까? 좌우지간 뛰어난 친구들 이었다. 그리고 그들 3명 모두 광현이 같이 글싸를 매우 잘 쓴다 명필이다 그리고 문장 실력도 뛰어나다. 또 유연현이는 영어를, 유명현이는 일어를 무척 잘한다.그 친구들을 볼때마다 우리 동창 광현이가 생각나고, 혹시 4촌, 혹은 6촌 정도의 관계가 아닌가 싶었었다.
남원아 오랜만이야! 鉉 자 돌림 柳哥를 많이 알고 있네.
명현,연현,언현의 후광효과로 칭찬도 받고 고맙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잘 읽었습니다.부친이 지어준 내 이름은 독특?해서 아직까지 동명이인을 만나본적이 없네요ㅎ
죽철이란 이름은 아마 천상천하 유일할 듯 싶고 號는 있을성 싶은데?
@유광현 '호'는 없구 별명은 있지..물론 안가르켜 주겠지만..ㅋ
동명이인을 만나는것도 복인거 같은데....그러나 망자를 만나는 건 좀...그래 인생이 구름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