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불빛
2024년 성탄절에는 성탄의 불빛이 화려하게 빛났다. 예배당 입구와 그 주변의 나무에서 빛나는 불빛은 하늘의 기쁜 소식을 산골마을 온 누리에 퍼뜨린다. 가로등만 외롭게 켜있는 밤길이 마치 꽃길 같다. 그동안 없었던 이 성탄장식 조명은 남선교회원들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선교회장 김영식 권사는 봉평에 오기 전 서울에서 조명가게를 크게 운영했었다. 그 일을 놓은 지는 벌써 20여 년이 되었지만 성탄절에 빛나야 할 불빛이 없는 것을 보고 직업적 본능이 되살아나 이 땅에 성탄 하신 예수님을 기리고 싶어서 이렇게 남선교회 회원들과 뜻을 같이 한 것이다. 지난 12월 11일 추운 날씨인데 5명의 회원이 교회로 모였다. 미리 준비된 조명등을 점검하고 테라스 지붕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니 하나씩 예쁜 조명등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조명등이 하나의 전원에 연결되어 점등되려면 또한 전기기술이 꼭 필요했다. 다행히 선교회원 김천(金千) 집사는 평생 전기를 다룬 전문가이다. 남들에게 어려운 전기선을 연결하는 작업이 그에게는 식은 죽 먹는 정도로 손쉬운 전공과목이다. 그렇게 오후 시간까지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어둠이 온 누리에 내려앉을 즈음 전원 스위치가 올라가자 흰색, 주황색, 파란색 조명등에 불이 켜졌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성전 앞은 이 불빛으로 환해졌고 2천 년 전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불빛의 안내를 받으시며 다시 오실 것만 같다. 오랜만에 환하게 빛나는 성탄의 불빛을 바라보니 마음의 소원까지 빌어보는 토속 신앙의 본능이 발동한다. 비록 미신이라고 폄하될 신앙행위이지만 믿음으로 마음의 소원을 가진다면 그 또한 믿음대로 될 것을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나도 꺼지지 않은 채 환히 비추는 성탄의 불빛은 새날에 대한 소망과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승화되는 듯했다. 마침 그날 수요일 저녁 예배는 성막 구조 가운데 성소의 등잔대에 대한 말씀이 증거 되었다. 불빛 하나도 없는 성소 안에서는 자유스럽게 일할 수 없다. 그런데 등잔대의 불빛을 받으면서 비로소 어둠에서 해방된다. 불빛의 소중함을 말씀으로 깨우치는 시간이었다. 또한 우리에게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선교적 사명을 가슴에 안고 신앙의 교훈을 삼게 했다. 그날 등잔대 등불과 성탄 불빛의 일치를 보면서 실로 오랜만에 성전에서 빛나는 그 불빛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생각해 보았다.
성탄과 성탄절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른 말이다. 성탄은 거룩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하고 성탄절은 그 성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절기다. 원래 이 말은 같은 의미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이 말은 전혀 다르게 인식되었다. 성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많은 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성탄절 행사다. 성탄절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 어느 틈엔가 사람들은 성탄보다는 성탄절을 기다리고 그것에 열광하고 있다. 성탄 캐럴, 눈과 썰매, 산타와 사슴, 굴뚝과 선물, 성탄목과 카드 등등의 성탄절이면 떠오르는 행사가 시즌이 다가올수록 기다려진다. 그러면 성탄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객반위주(客反爲主) 주객전도(主客顚倒) 된 느낌이다. 주와 객이 바뀌는 현상은 무질서와 혼돈을 낳는다. 절대로 주인은 주인이어야 하고 객은 객이어야 질서다. 주가 되는 성탄과 객이 되는 성탄절이 이렇게 뒤바뀐 현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주객의 뒤바뀜 현상은 그 역사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매우 오래다. 처음 사람 아담이 저지른 죄의 실상이었으니 말이다. 아담(객)은 하나님(주)이 되겠다고 불순종했다. 그 후 인간 역사는 이런 죄악이 만연하여 무질서하게 흘러왔다. 요즘 애완견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또 목도한다. 사람이 아니라 개를 키우는 시대로 변하면서 동물학대금지가 법으로 제정되었다. 1970년대 주장하던 여권신장(女權伸張)은 지금의 견권신장(犬權伸張)으로 옮겨진 듯하다. 한 때 비난조로 사용되었던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옛말이 진짜 그대로 되었다. 그 결과 인구 절벽시대를 더욱 부추기고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유아실(乳兒室)보다 유견실(乳犬室)이 생겨야 교회도 부흥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나돈다는데 이 또한 그냥 흘려보낼 말이 아닌 듯하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질서의 하나님(고전 14:33)이심을 가슴 깊이 새긴다.
그러므로 올해 성탄의 계절에 유난히 빛나는 그 불빛은 보기 좋은 조명이 아니라 더욱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신호가 되어야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밝히는 그 불빛으로 어둠에 빠진 사람이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께로 안내받는 유도등이 되어야 한다. 행여 화려한 그 불빛에 매료되어 성탄 하신 예수님이 점점 내 마음 안에서 페이드아웃(Fade Out)되는 기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성탄의 전기불빛이 성전에서 빛나듯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불빛은 이 땅 곳곳에서 빛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성소의 등잔대 등불처럼, 올해 성탄절 조명등처럼 어디에 있든지 모두가 밝게 빛나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되어야 하듯이 환히 빛나는 불빛을 보면서 새삼 하나 됨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2024년 성탄 불빛을 바라보면서 마음 깊이 새겨지는 상념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베소서 5:8).
성탄을 알리는 성탄의 불빛
전기선 연결 작업에 수고하는 김천 집사
박창운, 권용규, 김남현 집사의 협력이 돋보인다.
로뎀나무카페 안을 장식한 성탄 조명
어둔 밤길이 꽃길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