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 조미숙
몇 년 전에 취업한 지인의 아들이 승진의 문턱에서 자꾸 밀려 그만둘 생각이란다. 순서에서 이번이 대상자가 맞는데 벌써 두 번이나 안 됐다고 했다. 인사고과가 적용되지 않고 차례만 되면 자동으로 된다는데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뭐라도 해주고 싶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얼마를 줘야 하는지 안다면 그렇게 하겠단다. 그런 낌새가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돈으로 어떻게 하는 시절도 아니고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 했는데 주위에선 다 찬성한다. 내 아이가 그만큼 호봉이 낮아 손해 보는데 할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느냐다. 아이의 문제에 언제까지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가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우리 집 둘째와 셋째, 두 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있다. 둘째는 지구환경과학과에 입학했지만 대기업에 취업할 목적으로 반도체까지 공부해 이중 전공으로 학위가 두 개다. 지구환경 공부도 좋은 것 같은데 억척스럽게 다른 공부와 병행하니 안타까웠다. 졸업하기 전에 1년 휴학하고 목포에 내려와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졸업하고 대학원 연구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이 박사 공부를 제안했으나 자기는 취업해서 돈 버는 것이 목표라고 안 한다고 했단다. 난 박사 타이틀만 생각해도 너무 좋은데, 뒷바라지해 줄 능력이 없으니 뭐라 할 수도 없어 아쉽기만 했다.
셋째는 자동차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자동차가 좋아서였다. 1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 의무를 다한 뒤, 복학해서 자동차 제작 동아리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 대학생 스마트 이(e)-모빌리티 경진대회에서 작년과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학교 성적은 내세울 게 없지만 성실하게 대학 생활을 했다. 현대자동차나 기아에 들어가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막내는 여름부터 인턴사원에 열을 올렸다. 아무래도 취업의 빠른 길일 거라는 생각에 응시했는데 번번이 떨어졌다. 의기소침한 아이는 "난 출발선이 다르다."라는 말로 내 가슴을 할퀴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4학년 여름방학이 다 되도록 알바까지 병행하느라 쩔쩔맸는데 난 그것을 모른척했다. 이래저래 하면 생활비가 해결될 테니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다행히 방학 동안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 운영하는 청년 하이(HI)-포(Po) 5기에 합격해 반도체 공부 기회를 잡았다. 전공 학생과는 천양지차여서 그걸로 취업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두 달 동안 꼼짝없이 어려운 공부와 씨름하느라 고생했고 또 떨어진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다.
9월이 되면서 여기저기 채용 공고가 났다. 날마다 자소서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추석에 집에 와서도 두 아이는 노트북에서 떠나지 못했다. 둘째는 딱 두 군데만 원서를 넣고 인적성 시험 대비에 몰두했다. 지난번 에스케이하이닉스 장학생 선발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타격이 컸나 보다. 막내는 조금이라도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다 쑤시고 다녔다. 창원까지 가서 면접을 봤다. 물론 여기도 좋은 회사이지만 일종의 보험용이 되기를 바랐다. 왜 힘들게 이렇게나 많은 곳에 서류를 넣는지 물었더니 그렇게 해야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스무 군데 가까이 넣은 것 같다. 지금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자기가 원하던 곳이 줄줄이 떨어졌다. 더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또 그 회사가 인재를 놓쳤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나도 점점 불안해진다. 본인은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을지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 발표가 나지 않는 곳도 더러 있어 그거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업무에 지원한 회사의 에이아이(AI),인적성 검사에 통과해 1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시시콜콜 단톡에 소식을 전하는 막내와 달리 둘째는 가타부타 말을 안 한다. 자기는 모는 게 결정 나면 알려준다면서 아예 물어보지 말란다. 그래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여태 큰 실패를 하지 않은 아이가 오로지 취업 목표로 대학원까지 갔기에 실로 걱정이 많았다. 막내가 두 곳 다 서류 통과되었다고 말해 줘 비로소 안심했다. 추석에 하도 열심히 공부하기에 인생을 너무 팍팍하게 사는 게 아니냐고 뭔 재미로 사냐고 은근하게 돌려 말했다. 물론 제 할 것 다하고 놀 것 다 노는 눈치이긴 하다. 그래도 너무 계획적으로 행동하니 거기서 어긋나면 힘들어해 좀 여유로웠으면 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라 어디서 그런 물건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이 셋을 길렀지만 다들 아롱이다롱이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을지 아직 모른다. 내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아이들을 키웠다는 말은 못 한다. 핑계이긴 하지만 살기 버거워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아이들에게 감정 해소를 하곤 했다. 신념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평범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그저 고맙다. 그들의 앞날을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