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밤 월드컵 8강 러시아와 크로어티아 경기가 있었다.
2대2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었으나 승부차기로 크로아티아가 승리해 개최국인 러시아는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모두 잠자리에 있는 이른 시각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일요일이라 나르바의 넓은 도로에는 아무도 없다.
국경을 걸어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사람, 걸어서 에스토니아로 넘어 오는 배낭여행객이 보인다.
버스터미널에 오니 이미 짐을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르바에는 버스터미널 건물이 따로 없이, 길가 벤치와 정류장 부스가 전부이다,
매표소는 기차역 창고 건물인 택배 저장소에서 판매한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탈린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고 상트페테르브르크로 가는 사람들이다.
앞 차가 출발하고 30분이 지나서야 lux express 가 빈차로 들어왔다.
탈린까지 창밖으로 보여지는 전경은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다.
넓은 들판, 높게 자란 소나무 숲 그리고 곧게 자란 자작나무 방풍림 숲의 연속이다.
풍요롭다는 느낌이다.
12시 20분 탈린에 도착했다.
낮선 거리를 40분 이상 걸어 올드시티의 united backpacker hostel 에 도착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고도시이다.
인구는 약 50만,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은 1200년경 요세로 시작하여 처음에는 스웨덴, 투툰기사단 , 러시아 , 독일 그리고 다시 러시아에 예속되었던 핀란드만의 해안도시이다.
lux express은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버스회사이다.
숙소에서 언덕을 오르면 첫번째로 만나는 건물이 성당이다.
탈린 성내에서 한국 단체 관광단을 만났던 교회이기도 하다.
성에서 북쪽 핀란드만 방향으로 내려다 본 마을은 붉은 지붕의 동화 나라같다.
높은 탑 뒤로 발틱해가 보인다.
성의 북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기차역이 나오고, 뒤에 재래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이라고 하지만 대상이 관광객들이라 비싼 편이다.
리가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역사로 들어 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정보가 잘못된 것이였다. 리가가는 기차가 없다고 한다.
표 파는 아저씨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라고 한다.
성castle 아래로 좁고 긴 해자를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1900년에 세워진 알렉산드르 렙스키 러시아 정교회 성당.
다른 정교회에 비하여 내부가 단조롭다.
건물은, 지금 이자리에 1233년 이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개축한 성모 마리아 교회.
성모 마리아 교회 내부는 교인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중앙에 비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구조이지만 정교회에는 의자가 일반적으로 없다.
벽에 장식되어있는 장식품들은 교회라기보다 기사들의 모임 장소같은 느낌이 들었다.
종탑으로 올라가 전 시내를 조망할 수 있지만 입장료를 내야한다.
아침을 먹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일정 상 버스표를 구입한 후에야 숙소를 예약 할 수 있다.
7월이 여행시즌이라 좋은 숙소를 구하기 쉽지 않다.
물론 100유로 이상하는 호텔이야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우리는 10유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야 한다.
도심에서 가깝고 취사 가능한 깨끗하고 저렴한 숙소는 많지 않다.
버스터미널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상트페테르브르크에서 탈린 오는 버스를 같이 탔던 아들과 아빠가 1년간 세계여행 중인 가족이다.
우리는 리가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러왔고 그 식구는 리가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 전에 6개월치의 숙소와 차편 등 모두 예약해 두었다고 한다.
교사인 엄마는 방학하면 독일에서 합류하여 한 달간 여행을 같이한 후 귀국하고, 나머지 3명은 계속 여행을 할 계획이다.
이제 여행을 시작한지 열흘이 자났는데 아이들은 지처보이고 아빠는 약간 흥분한 느낌이 들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까지는 4시간 30분 거리이다.
경노 우대 10% 할인한 가격이 42유로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주민들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을 알게 되었다.
몇가지 과일과 대형수퍼 Rimi 에서 빵,물 그리고 딸기쨈을 구입한 후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올드타운 관광 시작했다.
골목을 걷다보면 몇 백년은 시간이 뒤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중세 어느 시점으로 돌아온 듯하다.
성벽이 상당히 높다.
성내 마을이지만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언덕을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도 시간이 멈춰진 듯하다.
성벽의 밖 모습. 더 큰 원형의 성벽이 있으니 내성인 셈이다.
성 아래 성 니콜라스 교회 종탑이 보인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교회는 1230년 독일 정착민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였다고 한다.
좁은 골목에는 이런 레스토랑이 많다.
스패인 레스토랑이다. 정작 야외 식탁은 성의 외벽에 붙어 있는 구조이다.
성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좁은 돌길.
골목을 돌아가면 어떤 모습의 거리가 나올지 궁굼해 지는 구조이다.
중앙 광장.
대부분의 중세 도시는 중앙에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타운 홀 광장.
14세기에 세워진 holy Spirit church 와 마주보고 있는 에스토니아 역사 박물관.
외성으로 들어가는 문.
1370년에 처음으로 성벽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새벽 3시면 밝아오는 아침을 적응하기 쉽지 않다.
저녁 10시에 해가지고 새벽 3시에 해가 뜬다.
침대에서 딩굴다 6시에 조깅을 나섰다.
빈 거리가 더 넓어 보인다.
커다란 돌로 포장된 도로는 조깅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이 도시도 이른 아침을 여는 사람은 역시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이다.
외곽에서 들어오는 두 칸 버스에는 출근하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올드 타운을 지나 신도시로 가는 사람들이다.
석조 건물 사이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많이 손상되었지만 화려한 장식이 남아 있다.
외곽 성으로 들어 오는 문.
주택가 좁은 골목을 걷다 나타난 야외 공연장.
무대 앞쪽에 반원형의 객석이 있다.
탈린의 올드시티는 언덕을 애워싸고 있는 성벽의 안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성벽 밖으로도 아기자기란 옛 정취가 느껴지는 골목들이 많다.
루터교회와 자유광장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성곽을 따라 북쪽 공원 뒤 항구에 다녀왔다.
특별히 볼 것이 있어서가 아니고 발틱해를 보고 헬싱키로 떠나는 페리를 보기위해서다.
가지 못하는 곳에 대한 미련이 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우리 여행 일정과 동선이 너무 달라 포기했던 곳이다.
여행경비가 비싼 점도 포기하는데 일조를 했다.
탈린은 정교회 성당보다 대부분 루터교회라고 한다.
내부는 우리나라 장로교회와 거의 같다.
탈린 올드시티는 길을 걸으면 골목마다 , 건물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로변에 창고같은 건물은 극장이다.
문은 없어지고 기둥만 남아 있다.
문 이름이 바다로 나가는 문이다, 약 20분 걸어가면 발틱해 연안의 항구이다.
바닷가에 서다.
탈린이라는 도시를 있게한 항구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물 위에 서있다.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구조물에 가깝다. 어떤 용도로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핀란드만, 저넘어 2시간 거리에 핀란드 헬싱키가 있다.
올드시티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해수욕장이 있다.
서쪽으로 올드씨티를 벗어나면 쇼핑몰과 통신사 건물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빌딩이 없는 주택가이다.
주택가를지나면 경마장이 나온다.
경마장이라기 보다 말 훈련시키는 목장이다.
경마장에서 해변까지는 울창한 숲으로 덮인 공원이다.
해수욕장 탈의실. 구조가 달팽이 같이 안으로 돌아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물이 얕아 족히 200미터는 나가야 허리까지 담기는 정도이다.
해안에는 공원이외의 별다른 시설이 없다.
수영하는 사람보다 선텐하는 노인과 아이들이다.
숙소앞 도로.
4일간 묵었던 숙소는 전형적인 배낭여행자 숙소이다.
일층은 로비와 공용공간, 지하에는 식탁이 있는 주방.
2층이 도미토리이다. 접수를 보는 젊은이도 모두 배낭여행객이다.
여행 중 숙식만 제공받고 일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가로등의 파란 디자인은 에스토니아 독립 100주년을 의미한다.
틸린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국 아이.
아빠랑 3명이 세계일주를 막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중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