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를 지킨 기생 |野談集 득세(得勢)에 따라 바뀌는 노비 문제
사내종 노(奴)와 계집종 비(婢)가 그 어미의 신분을 따르는 것은 고려 정종(靖宗) 때 시작되었으나, 양산(良産)까지 모두 추쇄(推刷)하여 노비로 만든 것은 어느 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현종 기유년(1669, 현종 10)에는 종량법(從良法)을 시행하였고, 숙종 을묘년(1675, 숙종 1)에는 환천법(還賤法)을 실시하였으며, 신유년(1681, 숙종 7)에 또 종량법을 시행하였다가 기사년(1689, 숙종 15)에 다시 환천법을 시행하였는데, 이미 속량한 사람은 거론하지 않았다.
대체로 서인(西人)은 종량법을 주장하고, 남인(南人)은 환천법을 주장하여 또한 편파적인 의론을 이루었다. 환국(換局) 때마다 그들이 주장하는 법을 시행하였으나 갑술경화(甲戌更化) 때에는 그대로 환천법을 따랐다. 영조 경술년(1730, 영조 6)에 또 종량법을 명하여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신사년(1761, 영조 37)에 판서 김효대(金孝大)가 강원도 관찰사로 있다가 돌아와 승지가 되어 역노(驛奴)들이 얼마 안 남아 있음을 극력 진언하고 다시 양산을 추쇄할 것을 청하자, 정승 홍봉한(洪鳳漢)도 이를 찬성하였다. 임금이 이미 윤허하여 시행 조목을 내렸는데, 판서 이익보(李益輔)가 홍 정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주장을 버리고 저들의 주장을 따랐다고 책망하니, 홍 정승이 비로소 자기 잘못을 깨닫고 형조(刑曹)에 내려진 조례들을 반포하지 못하게 하였다.
《대전통편(大典通編)》에는 공사(公私)의 천민은 어미의 신분을 따른다는 법만을 기재하였으니, 지금은 양산을 단연코 추쇄할 수 없다.
[주B-001]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사내종 …… 시작되었으나 : 정종 5년(1039)에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을 만들어 노비의 자식은 그 어미의 신분에 따르고, 소유권은 그 어미의 소유주에게 귀속된다고 하였다.
[주D-002]양산(良産) :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이 혼인하여 낳은 자식을 말한다. 원래는 양인과 천인이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였으나, 신분제가 해이해지면서 혼인이 많아졌는데 양인 남자가 계집종과, 사내종이 양인 여자와 혼인하는 두 경우가 있게 되었다. 이때 이들이 낳은 자식의 신분을 어떻게 하느냐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주D-003]종량법(從良法) : 양인과 천인 사이의 혼인으로 인한 양산(良産)을 노비 신분에서 양인 신분으로 바꾸는 법을 말한다. 노비가 증가하고 양역(良役)을 부담하는 양인이 줄어들자, 태종 14년(1414)에 노비종부법(奴婢從父法)을 도입하여 양인 남자와 혼인한 계집종의 자녀를 부계에 따라 양인으로 삼았으며, 조선 후기에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을 따라 사내종과 혼인한 양인 여자의 자녀를 모계에 따라 양인으로 만들어 양역 인구를 증가시켰다.
[주D-004]환천법(還賤法) : 면천(免賤)하였던 사람을 도로 노비로 만드는 법이다.
[주D-005]서인(西人)은 …… 이루었다 : 조선 후기에 집권층 서인은 양역 인구의 증가를 고려하여 종량법을 주장하였으나, 남인들은 노비와 주인 간의 분쟁을 이유로 종량법을 반대하였다.
[주D-006]갑술경화(甲戌更化) : 1694년(숙종 20) 폐비 민씨(閔氏)의 복위 운동을 반대하던 남인이 화를 입어 실권하고 소론과 노론이 재집권하게 된 사건으로 갑술환국(甲戌換局) 또는 갑술옥사(甲戌獄事)라고도 한다.
[주D-007]김효대(金孝大) : 1721 ~ 1781. 본관은 경주, 자는 여원(汝原)이다. 1758년 수원 부사(水原府使)가 되었다가 그 뒤 승지와 공조 및 병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8]홍봉한(洪鳳漢) : 1713 ~ 1778.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이다. 사도세자의 장인이며 정조의 외할아버지로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다.
[주D-009]이익보(李益輔) : 1708 ~ 1767. 자는 사겸(士謙)이다. 1756년에 대사헌이 되고 이어 병조 판서, 수어사, 이조 판서를 거쳐 좌참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