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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마16:21-28)
21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say plainly to his disciples, “I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much from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I will be put to death, but three days later I will be raised to life.”
22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God forbid it, Lord!” he said. “That must never happen to you!”
23 Jesus turned around and said to Peter, “Get away from me, Satan! You are an obstacle in my way, because these thoughts of yours don't come from God, but from human nature.”
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 of you want to come with me, you must forget yourself, carry your cross, and follow me. 25 For if you want to save your own life, you will lose it; but if you lose your life for my sake, you will find it. 26 Will you gain anything if you win the whole world but lose your life? Of course not! There is nothing you can give to regain your life. 27 For the Son of Man is about to come in the glory of his Father with his angels, and then he will reward each one according to his deeds. 28 I assure you that there are some here who will not die until they have seen the Son of Man come as King.”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1 From that time on Jesus began to say plainly to his disciples, “I must go to Jerusalem and suffer much from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I will be put to death, but three days later I will be raised to life.”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3년의 공생애를 보낸 후에 나는 누구인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졸업시험에 해당됩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16:16)
바로 베드로가 이 대답을 했을 때부터(From that time on)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실 고난을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백이 예수님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고난이란 머큐롬 바르면 딱지 졌다가 2,3주 후에 떨어지는 상처를 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이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인해서 즉시(From that time on) 고난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반드시(must)
예수님께서는 이제 반드시(must)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유일하신 구원의 길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놓여 있습니다.
왜 꼭 고난인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부모이십니다.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에게 최선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의 목표는 죄인들로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는 일입니다.
뷔페에서 거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의 죄가 하나님 나라 가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죄인들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죽어야 할 처지인데 예수님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죽으심으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제 십자가를 졌을 때 제대로 기독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국가는 정말 위기 상황입니다.
나라가 피바다가 될 뻔했습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로써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핵심적인 내란 세력의 동조자라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반역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가신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스러운 곳을 향해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요2:16)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요2:19)
거기는 거룩한 곳인데 말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실 때에는 이 성전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거기가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판정받으신 곳이었습니다.
*장로 대제사장 율법학자
예루살렘의 성전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장로와 대제사장 또 목사들에게 고난당하셨던 것입니다.
21.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21 “I must --- suffer much from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당시 유대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자신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쳤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그들에게 명령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상관이 국회 의원 끌어내라, 구금해라 명령을 내렸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그 명령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 보니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시킨 자는 돌아다니고.......
성전은 이미 도둑놈의 굴혈로 변한 것입니다.
그들을 비판없이 맹종하다가 예수님 죽이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11.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결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17:11)
사도 바울이 설교를 했어도 그랬습니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설교를 일단은 경청했지만 집에 가면 성경을 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 아니면 신앙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계 대상 1호가 목사입니다.
목사 때문에 지옥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정말 양면적인 대상입니다.
성경으로 그가 전했던 설교를 반드시 검증했던 것입니다.
설교란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결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이 사실인지 성경을 날마다 상고 해야 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 앞의 무리들은 장로 목사가 하는 말을 두고 성경을 상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저 맹종했던 것입니다.
음담패설을 해도 그가 말을 하면 아멘을 외쳐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죽임당하고, 살아나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되시기 위해서는 그 죽음을 그대로 수용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실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것은 속죄의 제물이 되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부활은 사람들을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케 하셨다는 증거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세상의 죽음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 죄의 결과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의인으로써 죽으셨던 것입니다.
또 속죄의 제물로써 죽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단순한 육체적으로 다시 살았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을 육체가 다시는 죽지 않을 육체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29.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30. 부활할 때에는,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22:29,3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의 존재로 다시 사셨던 것입니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2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God forbid it, Lord!” he said. “That must never happen to you!”
*항의하였다.
예수님의 반드시(must) 죽으심과 베드로의 그러면 절대 안 된다(must never)의 대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른 대결이었습니다.
베드로도 확신을 가지고 그 예수님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또 항변했던 것이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2,000년 전에만 있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그 정도로 헛짓을 했는데 우리는 아마 더 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막아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방식을 펄쩍 뛰면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must never
믿는 사람들은 교활한 방식을 택합니다.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할 곳에서 결코 질 수 없다고(must never) 할 것입니다.
내가 미쳤냐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찔렀던 창을 들고 사람 죽이러 달려들 것입니다.
내가 찔리다니 말이 안 됩니다.
내가 찌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깃발이나 만들지!
절대로 예수님처럼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멸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푸틴을 예배드리고 나와서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23 Jesus turned around and said to Peter, “Get away from me, Satan! You are an obstacle in my way, because these thoughts of yours don't come from God, but from human nature.”
*돌아서서
예수님께서는 등지고 돌아선 사람이 누구입니까?
3년을 함께 했던 베드로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을 대할 때 예수님처럼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must never 앞에서 겸연쩍게 뒷머리나 긁고 있을 것입니다.
확 돌아섰다가 우리 교인 다 떨어져 나가라고!
더욱이 베드로가 악의를 가지고 예수님께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런 사탄의 짓거리를 확실하게 지적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란을 지랄발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주섬거리는 것입니다.
*사탄
그렇게 돌아서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방금 전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굳건한 반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무오설을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릇된 생각이었습니다.
사탄은 얼마나 교활하던지 성령 받은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제 도구로 삼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를 통해서 노리는 것이 있습니다.
*걸림돌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걸려 넘어졌다니 예수님께서 코피가 터지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리적으로는 평안을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죽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써 하셔야 할 일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임당하셔서 속죄 제물이 되셔야 합니다.
사탄은 그 그리스도의 희생을 막는 자입니다.
십자가를 피해 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던 베드로가 지금 제대로 예수님의 그 걸림돌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끼는 마음이 그런 항의를 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그 죽음의 폭력을 수용하시겠니 그 일만큼은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맞습니다. 옳습니다. 당연히 죽으셔야 합니다.” 하면서 박수치는 베드로를 상상해 봅시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너무나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한국말로 아무리 반복을 해도 미국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빨리 말해보고
아주 느리게 말해보고
큰 소리로 해보고
조용히 말 해보고.......
그 정도면 통할 것도 같았는데 희안했습니다.
안 통했습니다.
영어로 표현하기 전에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세상 말을 아무리 잘 해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말이 사탄의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 땅의 최선의 것이 모일 때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 세상에서는 최선의 것을 보인 것인데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류 소설가가 아무리 미려한 한국말을 해도 그것이 미국에서 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병 고치시는 분도 아니고
사업을 다시 흥하게 하시는 분도 아니고.......
그것은 세상의 말들입니다.
23.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고전1:23a)
23 As for us, we proclaim the crucified Christ,
처절하게 피 흘리신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 of you want to come with me, you must forget yourself, carry your cross, and follow me.
*나를 따라오려거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원(If any of you want to come with me,)했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이 되고 만 것은 참제자의 그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제자는 1.자기를 부인하고(must forget yourself) 2.제 십자가를 지고(must carry your cross,) 3.예수님을 실천적으로 따라야(must follow me) 했습니다.
즉 참 제자가 되는 길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반드시(must)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1*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께서는 초지일관 자신을 부정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건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1:14)
그런데 빌립보서는
6.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빌2:6,7)
예수님을 하나님으로써 자신을 부인하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부정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46.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부르짖으시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다.(눅23:46)
이런 자발적인 자기 부정은 사람의 눈에 결코 있을 수 없는(must never) 일입니다.
2*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동기와 그 목적이 분명하십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요3:16)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세상에 대한 사랑이 십자가의 동기가 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죄인을 살리실 목적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렇게 죄인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인의 생명을 살리는 희생입니다.
짝뚱 기독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십자가의 내용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십자가의 희생이 없는 종교 행위의 봉사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3)
나는 예수님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예수님은 나를 모르시는 이유는 자기희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무슨 예언하고 방언하고 종교적인 기술을 부리는 일이 아닙니다.
3.*나를 따라오라
여기에서 따름이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좇아가는 일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강한 명령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꼭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법원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불을 붙이려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하셨을 그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실이 없는 장로 제사장 목사를 따라 하다가 망합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5 For if you want to save your own life, you will lose it; but if you lose your life for my sake, you will find it.
*잃을 것
우리 상식은 살려고 하는 자만 산다는 것입니다.
죽으려는 자는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며 또 죽은 사람이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나요?
어떻게 죽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생명이 있을까?
성경은 지금 완전히 다른 세상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나라를 예비하신 것이니다.
그 나라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주실 것입니다.
다만 그 나라에 합당한 사람에게 그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나라는 주님을 위해서 죽으려는 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6 Will you gain anything if you win the whole world but lose your life? Of course not! There is nothing you can give to regain your life.
*온 세상과 제 목숨
온 세상을 다 제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 이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소유를 위해 무자비 합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을 봅시다.
저 땅을 내가 먹자고 살인하고 거짓말하고 전쟁을 작전이라고 하고 그것을 계몽이라고 하고.......
성경은 그렇게 챙긴 썩을 것과 영원한 것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세상 것을 나무 풀 짚에 비교합니다.
또 하늘의 것을 은 금이나 보석에 비교합니다.
이 둘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집을 검증하시는 것입니다.
불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썩을 것은 모조리 불타고 말 것입니다.
15.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마치 불 속을 거쳐서 살아나오듯 할 것입니다.(고전3:15)
온 세상을 챙겼던 사람은 제 것이 모조리 홀랑 타 버린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영원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대가
집 정리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는 물건들은 모조리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썩을 것들은 그 나라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세상 것을 몇 창고 쌓아두어도 그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썩을 것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살 수 없습니다.
이집트의 바로왕이 엄청난 부와 권력으로 생명을 연장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규모의 제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제 죽음을 치장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권력과 제물의 의미일 뿐입니다.
썩을 것은 이 썩을 세상에서나 의미가 있습니다.
26.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26 There is nothing you can give to regain your life.
영생을 바라거든 썩을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27 For the Son of Man is about to come in the glory of his Father with his angels, and then he will reward each one according to his deeds.
*재림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끝이 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를 그 나라로 부르시기 위해서 주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행실대로
그 때에 주님은 그 행실을 따라서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그 행실의 기준은 이 말씀입니다.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25 For if you want to save your own life, you will lose it; but if you lose your life for my sake, you will find it.
정말 역설로만 들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아, 이 행실은 나를 위해서 제 목숨을 버리려는 행실이었구나.” 아니면 “이것을 온전히 제 것을 챙기는 행실이었네.” 그것을 골라내실 것입니다.
김익두는 1874년 황해도 안악골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주경야독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낙방하고 얼마 후 아버지마저 잃었습니다.
그러다가 상업에 종사하게 되는데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는 칼을 차고 다니는 악랄한 깡패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안암골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 여선교사에게 전도를 받게 되는데 전도지에서 바로 이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벧전1:24,25)
그는 영원히라는 말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끝장이 나버리는 죽음의 문제를 두고 고민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왈렌 선교사의 도움으로 이 영원의 문제의 답을 들은 것입니다.
그가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김익두가 부흥회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가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쉬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술꾼이 비틀거리며 그 앞에 나타나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놈아 그 자리 나에게 비켜!
거기는 내 자리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김익두를 두들겨 팬 것입니다.
그 때 안암골 호랑이 김익두는 그 어처구니 없는 매를 다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씨 다 때렸소? 예수님은 내가 믿었는데 복은 형씨가 받았소. 내가 김익두요”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질겁을 했고 김익두 목사에게 교회로 끌려갔습니다.
이 술꾼이 나중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뜬금없이 두들겨 맡는 일이 있는지 그 여부를 보신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을 자신의 주먹을 감춘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그 술꾼을 주님께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술꾼에게 어처구니없이 두들겨 맞은 행실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이 안 되는 일을 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2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28 I assure you that there are some here who will not die until they have seen the Son of Man come as King.”
우리는 지금 그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