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니아의 성녀 아가타(Agatha)
성녀 아가타의 순교 /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아가타 성녀는 로마 황제 데치우스(240~251)가 일으킨 교회박해 때 순교한 동정순교자로 축일은 2월 5일이다. '아가타'라는 이름은 '착하고 어질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에 따르면, 아가타는 시칠리아섬의 부유하고 권세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한 아가타는 남자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하였다. 권시아누스라는 집정관도 아가타에게 거절당한 사람 중의 하나인데, 그는 데치우스 황제가 일으킨 교회박해 때 아가타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그녀를 체포하여 끌어 오도록 하였다.
이때 아가타는 권시아누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님, 모든 이의 주님이신 분!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당신은 저의 간절한 열망을 아십니다. 저의 모든 것을 가지소서. 저는 당신의 양입니다. 제가 악을 이기도록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를 바쳤다. 이에 분노한 권시아누스는 아가타의 굳은 신심과 의지를 꺾으려고 '아프로디사'라는 여자 포주가 운영하는 사창가로 그녀를 보냈다. 그러나 아가타를 유혹하여 타락시키려던 이러한 시도마저 그녀의 굳건한 신앙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후 아가타는 권시아누스에게 다시 불려가 심문을 당하였으나 여전히 자기의 확고한 뜻을 굽히지 않아 감옥에 보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타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굽히지 않자, 권시아누스는 온갖 고문을 가하였다. 권시아누스는 이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견디어 내는 아가타를 보고 크게 격분하여 그녀의 젖가슴을 잘라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이에 아가타는 "잔인한 군주여, 내 몸을 이렇게 고문하고도 당신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당신은 여인인 어머니 젖을
빨지 않았던가요?하고 질책하였다.
성녀 아가타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권시아누스 집정관은 그녀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면서 어떠한 치료약이나 음식물도 주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아가타는 환시를 통해 하느님이 보낸 사도 베드로로보터 가슴의 상처를 기적적으로 치유받았다. 나흘 뒤에 아가타가 다 나은 것을 보고도 권시아누스는 또다시 그녀에게 고문을 가하고 감옥에 쳐넣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가타는 "주님, 저의 창조주시여, 당신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저를 언제나 보호해 주셨나이다. 당신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 저를 택하시고, 고통을 견딜 인내를 주셨습니다. 제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바친 뒤 숨을 거두었다.
아가타가 순교한 뒤에 팔레르모와 카타나 지역에서 그녀를 성녀로 공경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그 관습이 확산되었다. 530년경 카르타고 교회의 미사 경본에 아가타의 이름이 삽입되었으며, 5세기와 6세기의 [예로니모 순교록]과 고대 [카르타고 순교록]에는 2월 5일에 아가타가 순교한 것으로 수록되었다. 또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에 의해 로마 미사 경본에도 수록되어 전체 교회에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성녀 아가타 - 프란체스코 구아리노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팔레르모에 성 악시모와 성녀 아가타 수도원을 세웠으며, 지금의 카프리 섬에 있는 성 스테파노 성당에 아가타의 유해 일부를 안치하도록 명하였다. 한편 아가타 성녀의 유해 대부분은 카타나에 있었는데, 그 유해는 1040년 시칠리아에서 사라센인들을 몰아낸 그리스 장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1127년 다시 돌아왔다.
"아가타를 매장한지 1년 후 에트나 산의 화산 폭발로 유황과 돌들이 분출하였을 때 그녀의 무덤에서 나온 베일이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었다"는 아가타의 유해와 관련된 기적 이야기가 이 지역에서 전해져 오고 있다. 이외에 1551년 투르크족이 말타 섬에 침략하였을 때, 아가타 성녀의 전구로 위기를 모면한 뒤부터, 이 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산 등반안내자,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14세기부터 쟁반에 담긴 잘려진 젖가슴과 양초, 화염에 휩싸인 집들을 배경으로 한 아가타 성녀의 상본이 등장하였다. 남부 독일에서는 화재의 피해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성녀 아가타의 이름으로 빵, 양초, 편지 등을 축성하기도 한다. 아가타 성녀는 많은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 대표적 성녀이다.
-장인산 베르나드로 신부(청주 문화동 본당 주임)-
성 아가타의 순교 -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성녀 아가타는 데치오 황제 시대에 순교했다. 성녀는 옛날부터 대단히 존경을 받아 그의 이름은 미사 경본에까지 삽입
(揷入)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수난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옛 기록에 기록되어 기도문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유명한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때의 총독 퀸시아노는 그녀에게 결혼을 청했으나 거절당한 후
에는 그녀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체포해 법정에 끌고 갔다. 그때 재판관은 어찌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노예로서 일생을 보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성녀는 대답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나는 겉으로 종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가장 높은 귀족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총독은 그녀가 그리스도를 배반치 않는다면 더욱 가혹한 형벌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성녀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당신이 나를 맹수와 같이 포악성으로 위협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것을 진정시키리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불을 사용하면 그때는 천사들이 나를 위해 하늘에서 향기로운 장미꽃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라고 했다. 아가타는
많은 형벌을 받고나서 마치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처럼 만면에 희색을 띠고 좋은 기분으로 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기도하면서 자기의 모든 고통을 구세주께 맡겼다.
다음날 성녀는 재판관에게 다시 끌려나갔을때 그에게 "당신이 만일 형리로 하여금 내 육신을 없애지 않으면 내 영혼은
순교자들과 같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형리들은 그녀를 형벌대에 눕게 하고 뻘겋게 달군 쇠로 그녀의
유방(乳房)을 떼어냈다. 이러한 형벌을 받으며 그녀는 이와같이 기도했다. "나는 정덕에 대한 사랑으로 이와 같은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나의 주님 구세주여, 나의 이러한 고통을 잘 참아 이기도록 도와 주소서."
아가타는 총독의 잔혹함에 대해서 책망하기를 "악하고 잔혹한 더러운 폭군이여,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먹여 길러 준 것을
이 가련한 여자에게서 베어내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지 않습니까?"했다.
성녀 아가타를 치유하는 성 베드로 / 란프란코
그녀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다음날 밤에, 점잖은 한 노인(베드로 사도)이 약을 가지고 그녀에게 나타났다. 아가타는
정결의 부끄러움으로 자기 육신의 상처를 그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노인은 "나는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내 딸아,
나에 대해서 의심치 마라"하고 말하자, 그녀는 "나는 세상의 약으로 내 육신을 고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 그의 말씀으로 모든것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는 성 베드로 사도께 온전히 치료를 받고 난 후 "주 예수 그리스도여, 거룩하신 사도를 보내시어 저의 병을 고쳐 주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하고 기도했다. 바로 그때 감옥에서는 광채가 밤중에 비추므로 간수들이 놀라며 도망
쳤다. 그때 같이 갇혔던 동료들이 도망치기를 권했지만 그녀는 거절하며 "구세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이때, 나를 낫게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그를 더욱 오랫동안 모시고 싶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나흘 후에 그녀는 또다시 재판관 앞에 끌려나갔다. 그때 그는 그녀의 병이 완치된 것을 보고 놀랐다. 재판관은 전과 다름
없이 우상에게 숭배하기를 강요했지만 아가타는 그리스도께 자기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러므로 총독은 대노
하여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불타고 있는 석탄 위에서 뒹굴게 했다. 이 순간 모든 마을이 대단한 지진으로 진동했고 그 바람
에 두 담이 무너져 실비노와 팔고니오라는 총독의 가장 친한 사람들이 눌려 죽었다. 총독은 이로 인해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킬까봐 반쯤 죽은 아가타를 다시 감옥에 가두었다.
아가타는 그곳에서 마지막 죽음의 기도를 바쳤다. 그녀는 일어나서 팔을 펴고 구세주께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로 하여금
모든 형벌에서 승리를거두게 해 주셨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히 복된 영광속에 들어가게 해 주소
서"하고 기도하며 세상을 떠났다.
첫댓글 세고비아 알카사르의 예배실 벽화에 나오는 '성녀 아가타'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