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춘복 선생님과 나
김세영 시인
선생님께서 미수를 맞이하시어, 시전집을 발간하실 계획이시라고 한다. 그동안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분들의 글도 함께 모아 부록으로 실으실 것이라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고혈압과 뇌혈관질환으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13년간 순환기 내과 전문의사인 필자의 클리닉에 다녀 셨다. 후반 몇 년간은 사모님을 대동하고 다니시다, 거리가 멀고 보행이 다소 불편하시어,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계신다.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점점 쇠약해지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계기는, 문효치 선생님 지도로 시 공부를 한 후, 『문학시대』로 시 등단을 하게 된 인연의 덕이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논현동에 사실 때이다. 인사 겸해서 자택 인근에 있는 선생님의 단골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몇 번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미식가로 문단에 알려져 있기도 하여서, 조그만하지만 안티크한 실내 분위기에 음식 맛도 깔끔하고 좋았다는 기억이 난다. 2007년도에 필자가 쓴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미식가 다우시게 즐겨 다니시는 전국의 유명 맛집을 소개해 주셨다. 경상도의 진주 추어탕집(구마산), 된장과 두부 요리는 구기동의 민속집, 만두와 떡국은 북악 터널 너머의 자하, 보리 굴비와 뱅어찜은 청담동의 굴비집, 오분작이 된장국과 칼치구이는 서초동의 서귀포 식당, 통영음식으로 소문난 장충동의 전원 등등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초기 시풍은 문인화를 보듯 시어의 결이 단아하고, 시상의 흐름이 유려하며, 섬세한 이미지의 서정시라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박목월 시인, 청마 시인, 신석초 시인을 좋아하시고, 그 시풍을 이어 받으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현악사중주를 들을 때의 느낌이 든다. 박영배 문학평론가는 최근(2022년) 「해체와 변용 – 성춘복 시학, 또 하나의 시선」이란 평론에서 “첫 시집을 상재하고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랑이나 한을 청승이란 가락에 얹어보려 했던 범주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 쓰기를 결행한다.”라고 최근의 시적 변신을 평하였다. 원로 시인이신 지금도 창조적 변신을 시도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경의와 존경심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평소의 젠틀하신 인품이 시작품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젊은 시인에게도 존댓말로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다. 1971년에 천상병 시인이 실종됐을 때, 선생님은 동료 문인들과 함께 천시인의 『새』라는 시집을 발간했었다. 그런데 이 시집 발간이 보도됨으로써 무연고자로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던 천 시인이 발견되어 화재 되었다고 하였다. 이 또한 선생님의 시인으로서의 인품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된다.
선생님께서는 그림에도 타고난 재능을 보여 주셨다. 『문학시대』의 잡지, 시집, 수필집, 여러 단행본의 삽화들을 손수 그리셨다. 펜과 붓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삽화를 그리셔서 책을 세련되고 품위있게 만드셨다. <문학의 집 서울>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셨을 때 작품 한 점을 구입해서 병원 대합실에 걸어두었다. 선생님께서는 답례로 필자의 등단시인 「사월의 목련」을 시화로 그려서 선물로 주셨다. 절친이셨던 고 김영태 시인, 화가, 무용평론가 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필자의 스케치 인물화를 만들어주셔서, 지금도 진료실에 걸어두고 있다. 또한 선생님은 2009년에는 미국 뉴욕 <스페이스월드>에서 시화전을 여시기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이름난 기업가의 맏아들로 태어나셔서. 주변에서 부친의 사업을 맡아 하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웃으면서 “저는 기업인의 소질이 없습니다. 가난과 같이 가면서 시와 더불어 살겠습니다”라고 사양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1988.~2000. 기간 동안 제21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한국문단의 발전을 위해 혼신 노력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창간 35년 된 문예잡지 『문학시대』를 만들어 오시고, 20 여권의 시집, 시화집, 산문집 등을 내시며, 한국 문단의 맥을 이끌어오신 큰 원로시인이십니다. 이번에 시전집을 만드시게 되어 선생님과의 귀한 인연을 되새기며, 작은 글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백세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