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
올해 76살인 나는 일제 강점기 충청도 아산의 한적한 마을에서 자랐다. 농업이 거의 유일한 산업이나 가난한 살림에 옷은 기워 입고 음식은 항상 모자라 밥 굶기가 일상이었다.
못살아도 공동체 문화는 풍성하여 인심은 푸근했다. 한국전쟁 때 고향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을 마을주민이 따뜻이 돌봐주고, 우리 6남매도 마을 어른들의 배려로 탈 없이 자랐다. 이웃 누나들은 구로공단에서 저임을 받아 동생 학자금으로 송금해주었다. 남정네들은 두레를 조직하여 농사일을 같이 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공동으로 치뤘다. 어린이 놀이도 자치기나 소꿉놀이 같은 집단 놀이가 주류였다.
서당의 훈장이나 마을의 어른은 전승되어온 향약을 기초로 마을 일을 처리 하니 마을에는 범죄가 없고 풍기가 단정하였다. 큰댁에 모신 사당에 조상님께 정해진 에를 드렸다.
요즘은 어떤가. 불과 반세기만에 농업국가가 산업국가로 탈바꿈 하여 농업의 비중이 불과 2~3%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경제규모 11위권의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멀쩡한 옷을 버리고 게다가 유행이라고 찢어서 입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이나 멀쩡한 가구 등 가정용품도 버려진다. 기르기 어렵다고 아이를 아예 낳지도 않고, 어떤 할머니는 힘이 든다고 손주 키우기를 거부한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젊은 남녀가 진한 애정표현을 예사로 한다. 긴 댕기머리에 쓰게치마를 쓰고 외출하던 여인들의 모습은 아주 변하여 과감한 노출의 양장에 다양한 머리염색까지 등장했다.
평균 수명은 40세에서 80세로 급속히 늘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체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란다.
이집트 피라밋 안의 유물에도 세대 차이를 한탄하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세대 차이라는 게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어떤 문화 즉 감정과 가치관의 차이를 보이느냐 하는 문제라면, 그 차이는 나이보다 경험 즉 자라온 시기가 더 중요하겠다.
한국사의 첫 왕조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에 중국 한나라에게 망하고 그 땅에 한사군이 설치된다. 그 결과 철기사용을 비롯한 선진 문화가 유입되어 급격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 기존질서가 무너지고 범죄가 늘어나 고조선의 형법인 범금8조가 60여 조로 늘었다고 한다.
현 한국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할아버지 세대, 군사독재와 산업화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 그리고 풍요와 정보화를 누리고 있는 젊은이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국제결혼이 일반화되었고,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0만 명에 이른다. 한 세대가 과거 수세기에 해당하는 급격한 변화가 있었으니, ‘쌍둥이도 세대 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한 사회가 통합을 이루려면 사회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세대 차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가 아닌 나의 소견으로는 ‘역지사지’와 ‘시민단체 활성화를 통한 공동체문화 회복’이 중요할 듯하다.
먼저 나이든 어른들이 시대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집안의 혼자 사는 젊은이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경공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남아있는 공장은 로봇이 생산한다. 눈높이를 낮추어 취직하고 아기를 낳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다. ‘가난발생 원인에 대한 인식’에서 노인들은 노력부족이라는 응답이 50%로 나온 반면, 젊은이들은 사회구조가 65%나 된다고 한다. 60~70년대와 달리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도 보면 젊은이들은 정당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노인세대는 지역을 아직도 고집한다.
옛날에는 이웃집 부엌에 숟가락 숫자도 알고 살았다는데, 요즘은 한 아파트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마주치면 외면한다. 많은 노인들이 ‘못 살아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회고하는 것은 그 때의 인간관계를 떠올리며 하는 얘기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공동체문화를 무력하게 만들고 개인의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오직 힘만이 정의가 되는 이 사회에 대한 우리의 손쉬운 대응은 관변단체가 아닌 건전한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것이다. 사회정의와 공동체문화를 중시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 노인은 젊어지고 젊은이는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보람 있고 활기차게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2017.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