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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 기도의 사명
18: 22-33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오늘 본문은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중보 기도를 보여줍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기 원하시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할 그날까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이 세상을 위한 중보 기도라는 것을 알려 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니 아브라함과 식사를 마치신 여호와 하나님과 두 천사가 소돔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아갑니다.
17절을 보니, 소돔을 향하여 가시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가 있는데 그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기로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러면서 알려 주신 비밀은)
-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이다.
-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
- 아브라함과 그 자식과 권속들 (가족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할 것이다.
한편)
- 소돔과 고모라 나라는 그 죄악이 심히 중하여 부르짖음이 크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께서 내려가서 그 모든 악행들에 대하여 심판할 계획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번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증거하였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그것도 장시간동안 복음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예)
(1)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하기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 편에서 전쟁을 치룰 때: 겨우 318명으로 수십만의 4개 연합군을 싸워 이긴 사건은 너무나 자명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보면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은 자신들의 불신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합니다.
(2) 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소돔성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분명히 멜기세덱의 복음의 증거를 수십번도 넘게 들었을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증거입니다.
상당히 약한 증거이긴 하였겠지만 그럼에도 롯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하더니 결국 가장 타락한 사회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타락한 사회의 표본으로서 언제나 소돔과 고모라를 말하는데,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1) 먼저 성적 타락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결국 성적 타락은 변태적 성행위들로 발전하였고 특히 게이 및 레즈비언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2) 또한 이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교만이 하늘을 찔렀고 불신앙으로 가득찼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으니 소돔과 고모라 성 내부에는 불의와 착취가 창궐하였고,
이는 마치 창 6장 5절, 노아의 때의 모습과 방불하였습니다.
[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더라 ]
딤후 3장에는 말세의 때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이 그림은 사실 정확히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 돈을 사랑하며 / 자긍하며 / 교만하며 / 훼방하며 /
부모를 거역하며 / 감사치 아니하며 / 거룩하지 아니하며 / 무정하며 /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 참소하며 / 절제하지 못하며 / 사나우며 /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 배반하여 팔며 / 조급하며 / 자고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하며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 ] <딤후 3:1->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한 부분들이 없는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게 된 것은,
오늘 본문 20절을 보니,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신음과 부르짖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얼마나 많은 비참한 신음 소리와 고통의 비명 소리가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다른 사람들의 신음을 들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주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특히 억울한 비명 소리와 죄로 말미암는 인간들의 비참한 신음 소리에 민감하십니다.
창 4:10: (가인에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약 5: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지구 땅은 죄악으로 인한 부르짖음과 비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 마약을 먹기 위하여 몇불 빼앗으려고 권총을 들고 한 가정을 침범한 치한과, 그로 인하여 두려움으로 신음하는 한 가정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까?
아무 힘도 없는 어린 소녀가 힘이 센 청년에게 간강을 당한 후 평생 신음하는 비명을 들으십니까?
몇푼 안되는 마지막 목돈으로 가게를 차리려고 했는데 파렴치한 사기꾼에게 사기 당하여서 온 가정이 이제 입에 풀칠도 못하고 소망이 없어 자살을 택한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비통한 고통 소리가 들리십니까?
짓지도 않은 살인죄를 변호사가 없어서 제대로 변호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인 강도로 몰려서 감옥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어떤 젊은이의 원통한 고통의 한숨이 들리십니까?
평생 남편의 폭행 속에서 숨도 못쉬며 살며 험악한 남편의 쾌락의 장난감으로 유린당하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여 살다가 마침내 정신 병원에 들어가 미쳐 있는 어느 여인의 눈물과 비명을 들으십니까?
아무 이유없이 착하게 살고 있는데 괴한의 총과 칼을 맞아 가족을 잃은 고아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는 그러한 비명과 한숨이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저 하늘에서 다 듣고 계신 것입니다. 그 모든 불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시며 당장이라도 이 더러운 쓰레기 같은 세상을 불과 유황으로 쓸어 버리시길 얼마나 원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죄로 썩은 사회를 향하여 무슨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 악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가서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시려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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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중재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혹시 그곳에 의인이 있다면 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다 쓸어 버리시는 심판을 하셔야 하는가? 혹시 그 곳에 의인이 있다면... 혹시 하나님을 믿게 될 사람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또한 분명 롯을 기억한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와 더불어 함께 멸망할 것이 대하여 염려하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 혹시 그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있다면 그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 당하면 억울한 것 아닌지요.’
‘그 성중에 의인 50이 있다면 그들도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의인 오십이 있다면 그들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쓸어 버리지는 않겠다.’
마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는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와 같습니다.
50 ==> 45 ==> 40 ==> 30 ==> 20 ==> 10
얼마나 간절한 기도요 끈질긴 대답인지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주 똑 같은 내용으로 6 번을 질문하며 부탁하였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한번도 화를 내지 않으시며 다 대답하십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 성중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아직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에 얼마나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마 적어도 수십만명은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의인 10명만 있다면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까?
단지 10명의 의인으로라도 있다면 그들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심판하시기 전에 의인 한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렘 5:1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 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아브라함이 찾는 의인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이 의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그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정말 완전한 의인을 찾으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벧후 2:6-
[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여러분! 다음 번에 보시겠지만, 이 롯은 아주 형편없는 저질 죄인입니다.
나중에 술이나 퍼 마시고 근친 상간의 죄마저 범하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간신히 믿음을 소유했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였던 것임. 바로 이 롯을 벧후 2장에서 의인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인은 하나님을 믿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곧, 그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의 자녀가 10명이라도 있다면 심판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 아브라함의 기도요,
하나님의 대답은 나를 믿는 나의 백성 10명만 있어도 내가 그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의 존재 여부는 하나님의 심판의 가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우리는 불신자의 무지를 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 세상 사람을 봅니다.
이들은 무지한데,
- (1) 하나님의 심판의 자명함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 (2)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 덕분에 아직 멸망 당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은혜도 못 깨닫는 존재들입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그 가정에 기도하는 한 사람 때문에 자녀들이 잘 자라나고 하는 일이 형통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식구는 그 덕을 전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보 기도의 역사는 아주 강합니다.
중보 기도는 아주 강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중보 기도 자체가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기도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로서 기도의 근본 정신에 가장 잘 맞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를 드리는 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저도 이 교회에 처음 부임할 때 어떤 분을 향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고, 작년에 어떤 자매님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보니 그 중보 기도가 다 응답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있는 척 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죽은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참신앙은 남을 위하여 얼마나 중보 기도하는가와 비례합니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보 기도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중보 기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신앙 성숙과 비례하는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없고 전혀 남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찾음은 언제나 유아기적인 신앙에 머물러 단지 사탕 내 놔라, 빵 내놔라 외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소년과 같은 수준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믿는 영혼들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계신지요.
소돔을 바라보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마음을 1/100 이라도 느끼시는지요.
이 땅 앤아버의 복음화를 위하여 얼마나 중보로 기도하시는지요.
같은 한 교회를 이루고 사는 형제 자매를 위하여 얼마나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계신지요.
교회가 이렇다 저렇다... 저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는 데에는 빠르지만,
정녕 얼마나 그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 본 적은 있는지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기도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녀로서 친구로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깊은 관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는 부러운 교회가 몇 교회 있습니다.
그 교회는 중보 기도팀이 따로 있는 교회입니다.
그 중보 기도팀은 복음의 열정이 타오른 성도들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알고서
서로 체인을 만들어 연속적으로 기도하는 팀들입니다. .
지금 저희 교회에도 중보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찬양팀에도 있습니다. 성가대에도 있습니다.
각전도회에도 있으며 일반 교우 중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교회를 살립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한 사람의 중보 기도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숨은 중보 기도자 1명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양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간절한 중보 기도가 우리 교회의 모든 찬양에 능력을 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중보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는 복음을 위한 기도입니다.
한번 같이 찾아봅시다.
살후 3장1-2절,
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많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힘있는 교회마다 말씀을 선포하는 담임 목사님의 말씀의 능력을 위하여 얼마나 중보기도 하는 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러한 기도 제목으로 말씀 선포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소서.
구원하는 말씀이 되게 하소서.
사탄의 궤계와 나라가 무너지는 말씀이 되게 하소서. .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죽은 영혼에 생명을, 낙망한 영혼에 희망을, 상처 받은 영혼에 위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될 수 있도록...>
이와 같이 간절히 기도하는 중보기도에 의하여 교회가 복음으로 힘있게 일어서 승리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역사 속에서 위대하게 쓰인 모든 목사님들에게는 그의 말씀과 사역을 돕는 아주 강력한 중보기도팀이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 선교로 미국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으시는 우리 교단 PCA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R.C. Sproul 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RC Sproul)
그런데 이 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다름 아닌, 노 선교사님이십니다. (노씨가 아니라, 나이 드신 선교사란 뜻입니다.)
이 노 선교사님은 수십년 선교사로 봉사하시다가, 이제는 80이 넘으신 채, 여러가지 종합병으로 거동을 못하시고 침대에 항상 누워계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아무 봉사를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어느날, 스프로울 목사님이 이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프로울 목사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이 선교사님께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면서 이 노선교사님께서 스프로울의 사역을 평생 돕겠노라고 언약하십니다. 그때 곁에 사람들이 듣고 어이가 없어했습니다.
어떻게..돈도 한푼도 없고 침대에만 계신 분이 스프로울의 방송 사역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일까?
이때 노선교사께서 침상에서 다짐하며 스프로울 목사님께 언약합니다.
<하루에 8시간을 목사님을 말씀 증거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님께서는 그 언약 이후에 침상에서 정말로 매일 스프로울 목사님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시게 됩니다.
그 이후부터 스프로울의 사역에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지…
스프로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미국의 엄청난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스프로울 목사님께서 어느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였습니다.
< 그 선교사님께서 그 병상에서 기도를 시작하신 날로부터, 나의 선교 사역에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른 봉사도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를 기다리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주의 복음의 말씀을 위하여 주의 종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도로 봉사하는 일!!
이러한 중보 기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위대한 바울도 언제나 기도를 부탁하지요.
롬 15:30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엡 6:19 [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말씀 증거자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간에 서로 중보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이나 친척 중에 안 믿는 자를 위하여 눈물로 중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달리는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중보 기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보 기도에 따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하여 지금도 주님과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제 곧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찾아옵니다.
그 날은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작은 도시에 어떤 유성과 불 정도가 아니라 전 우주적인 멸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벧후 3:8 [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이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부지런히 중보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 주님 안에서 열심히 중보 기도를 드리는 앤아버 한인 장로 교회의 거룩하신 교우님들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