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4]이런 독후감 보셨나요?
대학로 백기완 선생의 <통일문제연구소>가 사후 <백기완 마당집>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5월 3일(금) 유서 깊은 그 집을 방문했다. 로비 옆방 이름이 <옛살라비(백기완식 고향의 순우리말)>였다. 책상 위에는 선생님이 남긴 저서 30여권과 잡지 <노나메기> 몇 권이 진열돼 있었다. 노나메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예전에 내가 기고한 글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글을 찾아 잡지를 뒤적였다. 몇 권을 뒤지다 <노나메기> 3호(2000년 가을-겨울호)에서 졸문을 발견한 기쁨은 컸다. 아, 그랬구나, 그때 필명(최상)으로 썼구나. 전재하는 까닭은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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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7인의 유예된 삶’을 읽은 소감
최상<자유기고가>
황석영 작가의 역작 <오래된 정원>은 18년 동안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주인공 오현우가 출소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저 거울에 비친 얼굴 뒤에 컴컴하게 보이는 어둠 뒤편에는 무엇이 있을건가. 과연 바깥세상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걸까’ 그에게 있어 수감중이던 시간은 완전히 고여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은 당연할 터이다. ‘펜은 칼이다’며 전사戰士이기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물봉’ 김남주씨는 10여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을 때 일성一聲이 “천길 낭떠러지를 겨우 기어나온 것같다”고 했던가. 불혹을 막 넘긴 그의 머리는 이미 완전 백발이었다.
여기 이 책은 ‘비전향 장기수 7인의 유예된 삶’에 대한 간단한 체험기라 할 수 있겠다. 또 한편 비극을 전하는 자선전이겠다. 김선명 신인영 김석형 조창손 홍경선 이종환 이종. 이들의 이름 뒤에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이면 시비걸 사람들이 많을까. 왜, 그들이 빨치산이어서, 그들이 남파간첩이어서, 그들이 고질적인 공산주의자여서.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그들의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보라.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탄압도, 그들의 신념을 꺾지 못해 소위 ‘비전향 장기수’인 이들은 9월 2일 남북 해빙무드에 힘입어 한없이 ‘그리운 사상적 조국’인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땅, 그들의 또다른 조국에서 산 징역 햇수로만도 230여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기수’로 43년 10개월을 복역한 ‘총각 할아버지’ 김선명선생이 오르는 등 국가적인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 0,75평이라? 한번 상상을 해보자. 어디 이해가 가는가? 가축도 일주일이 못가 죽고 만다는 그 공간을 사람이 몇 수십년 동안이나 살아내고 말지 않은가. 민가협이나 양심수후원회 등에서 ‘1일체험 0.75평’행사를 했던가. 그 하루하고 김선명씨가 살아내고만 43년 10개월간의 차이는 얼마쯤일까? 읽다가 읽다가 너무너무 안타까워 마음에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정치는, 권력은, 기득권은 그런 것인가? 이들에게는 인간적 자존도 없는가? 무지막지한 전향공작으로 이어지는 폭력, 그런 ‘인권 사각지대’에서조차 이들의 심성은 오롯이 맑다. 그런 순정의 사람들을개돼지 취급하다니? 어쩌면 그럴 수가? 정말 믿기지 않는다. 티가 없다고 할까? 오로지 동지애와 조국에 대한 신념, 그것뿐이다. ‘0.75평’에 대한 촌철살인의 칼럼을 언젠가 리영희 선생이 일간지에 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명색이 대학을 나오고도 이들을 돕는다는 단체이름은 몇 번 들었어도 이분들의 ‘유예된 삶’을 햇볕에 드러나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되었다는 자괴심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간의 의지는 육체를 얼마나 뛰어넘는가? 이들의 강철같은 신념 앞에 폭력은 차라리 우스웠다.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죽음을 앞세워 투쟁을 하였는가? 한마디로 ‘조국통일’을 위해서였노라고 말한다.
그들은 한국전쟁(조국전쟁)에 정규 인민군포로이기도 하고, 통일사업차 내려온 우리말로 ‘간첩’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간첩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나는 그들을 분단된 민족을 안타까워하는 ‘민족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 당연히 남에서 북으로 간 ‘수많은 통일사업선생’들도 돌려보내라. 그들도 북에서 보면 ‘간첩’이다. 제네바협정을 무시한 채 억류한 국군포로와 납북가족도 모두 돌려보내라. 이제 남한에 전향, 비전향을 떠나 장기수는 없다. 이제 맨 원점으로 돌아가 통일을 이야기하자. 그동안의 분단세월은 너무 길었다. 상처가 너무 깊었다. 더 이상 이인모 노인을, 이번에 올라간 정기수 선생들을 영웅시 말라. 김낙중 선생은 20대 후반 ‘통일’에 밑거름이 되고자 임진강을 건넜다. 그 기록이 <굽이치는 임진강>속에 그대로 생생하지 않는가? 피도 눈물도 말라버린 70-90대의 이 노인들은 지금도 통일의 노둣돌이 되기를 희망하며, 실제로 너무나 담담하게 판문점을 넘어갔다. 남쪽과 교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기를 바라며, 통일이 도둑처럼 어느날 밤에 문득 오기를 빌며,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누구를 칭찬하지도 않고.
최근 영화 <쉬리>흥행을 뛰어넘었다던 <공동경비구역 JSA>을 보았다. 중반 넘어서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 단군의 후손인 남북 젊은이들의 저 비극은 무엇 때문인가? 누구 때문인가? 누가 누구를 미워할 것인가? 이 영화는 북한에서도 곧바로 상영이 돼야 하리라. 엊그제 보도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도 곧 이 영화를 본다고 했다. 그 살벌한 속에서도 꽃피는 우정, 그 비극적 결말 앞에서, 정치인들은 이제 너나없이 겸손해야 한다. 고전적인 의미로서의 정치는 ‘민추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다. 이산가족의 평생의 한을 풀어주는 거다.
시작이 반이다. 정부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6.15 남북공동선언을 뼈에 새길 일이다. 공동경비구역이 아닌 비무장지대를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된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자. 모든 지뢰를 안전하게 없애라. 경의선복원 기공식이 열렸다. 대통령까지 참석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포장(?)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공사 와중에 지뢰에 숨져갈 우리 국군병사들은 또 없겠는가? 더 이상 백해무익한 분단의 희생양들이 있어선 안된다.
<0.75평…> 책이나 <JSA> 영화나 결론지어 말한다면, 바로 이 말 아닐까?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져 아무데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제치지만, 그 노래조차 ‘쉬쉬’눈치 보며 부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이종 선생의 <설마>라는 시를 보자.
설마 그러랴만 만약 그리는 영상들을 지금 그렇듯이 망막에
거미줄을 친 채 만약에 만약에 죽어도 눈을 못감는다면…
만약에 사람의 소리를 지금 그렇듯이 가슴에
누질러둔 채 만약에 전하지도 듣지도 못한다면…
또 만약
동강난 산천을 부둥켜안은 채 만약에
만약에 터도 없는 무덤이 되고 만다면…
아 설마가 사실일 날이 내일일지도 모르니
만약 그렇다라도
지금 그렇듯이 비겁하지 말고 어리석지 말고
죽음이여! 담담하라. 미소 지어라!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고통을 맨몸으로 떠받들며 묵묵히 고행을 해내고만 이들 7인 선생의 앞날에 행운을 빌면서 조국의 밝은 미래를 꿈꿔 보자. <도서출판 창 펴냄, 339쪽,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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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잊어버린, 잃어버렸던 독후감을 지금 읽으니 유치찬란하다. 나딴에는 필명으로 '가장 최崔에 항상 상常자를 생각해 '최상'으로 했을 것이나 촌스럽기 그지없다. 제목 또한 허접하다. 허나 그때의 기록이니만큼 일말의 의미는 있을 터. 잘썼든 못썼든 이렇게 기록은 남는 것이다. 그러니 글 쓰는 자 조심할지언저. 그리고 그 기록은 또 역사가 된다. 당시 장기수 김선명 선생 등 일곱 분을 판문점에서 북으로 송환한 것같고, 그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있어선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같아 씁쓸하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가? 왜 우리는 중차대한 민족사의 문제에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걸까? 병신, 바보, 쭈대들이여! 그대들은 반통일적 인간! 이 한반도를 당장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