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8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이 출애굽 구원을 받은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서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이오니 주께서 주신 생명의 길을 오늘도 넉넉히 걸어갈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마음조차 흔들리게 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등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의 보혈로 나를 덮으사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홀로 얻어먹으며 온전한 생명을 이어가게 하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와 영적 하루살이의 삶에 만족하게 하소서.
나를 미혹하는 어떠한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막아서서 싸움이 끝난 후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로 삼아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마음에 쫓겨 조급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일정에 순응하는 자 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날, 거룩한 날임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22:1-12
제목 : 모든 선지자도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하더라.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3년을 지냈더라.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400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 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시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 나의 묵상
아합과 아람 왕 벤하닷의 3차 전쟁은 2차 전쟁이 끝난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일어났다.
1, 2차 전쟁은 아람 왕 벤하닷의 침공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있었다면 3차 전쟁은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기 위한 원정을 통하여 발발하였다.
또한 3차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좀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당시 아합과 여호사밧은 사돈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는 아합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요람)이 혼인함으로써 둘은 사돈지간이 되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에게로 갔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 길르앗 라못을 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아합이 여호사밧을 초청하여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했을 때 아합은 그의 신하들을 꾸짖었다.
그것은 길르앗 라못이 이스라엘의 것임에도 그것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와 함께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하자 여호사밧은 아합과 군사 동맹을 맺는다.
여호사밧은 출정에 앞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아합에게 요청한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 400명 정도를 모아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는 전쟁 여부를 묻는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전쟁을 지지하며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실 것을 예언한다.
여호사밧은 이런 국정 선지자들 말고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지 아합에게 물었다.
이 때 아합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있긴 한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그러면서 그를 통해서 여호와께 물을 수는 있지만, 그는 자기에 대하여 좋게 예언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그런 말 하지 말라면서 미가야 선지자를 부를 것을 간접적으로 구한다.
아합은 내시를 시켜 미가야를 불러오게 하였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왕복을 차려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보좌에 앉았다.
모든 선지자들이 두 왕 앞에서 예언할 때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철로 뿔을 만들어 여호와의 말씀에 왕이 이것들로 아람 군대를 찔러서 멸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그 외 모든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며 길르앗 라못 회복 전쟁을 지지하며 반드시 승리할 것을 장담하였다.
오늘 본문에 아합 왕의 길르앗 라못 회복 전쟁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국정 선지자들 400명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름은 선지자들이지만 사실 국정 선지자들로서 왕의 의견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호응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그들의 모든 봉급을 지불하기 때문에 국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아합이 무엇을 하든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등장한다.
그 사람은 국정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는 참 선지자 미가야이다.
그는 아합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자이다.
그래서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편이 되어 자기를 지지해 주는 이들을 좋아한다.
아합에게 있어서 국정 선지자 400명이 바로 그러하였다.
이들은 아합의 든든한 후원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심판하기 위하여 이들의 입을 이용하기도 하신다.
그들 입으로 아합을 응원하며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을 것이며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나는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그것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음으로 구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구한 것의 대부분은 나의 필요였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인데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내가 원하는 필요를 구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구하여 그것을 얻으면 신앙이 좋은 자로 인정받았으며 그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나의 필요를 구하여 응답을 받는지 아니면 받지 못하는지가 신앙 수준의 척도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벽을 깨우며 부르짖었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그렇게 기도하는 나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힘써 응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신앙에 대한 심판을 맞았다.
그것은 나의 신앙이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리는 하나님의 경고였다.
나의 신앙은 철저히 만물 안 곧 이 세상에 국한된 신앙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는 목사인 내가 그러했으니 나의 목양을 받는 성도들이야 두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성도들에게 기도에 진력할 것을 주문하면서 든 성구는 이렇다.
(마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요 15:7)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6:2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나는 이런 말씀들을 기도하면 응답받는 절대 기도의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응답에만 신경을 썼을 뿐 이 말의 조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은 무조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의 뜻을 알 때 그 뜻 안에서 구하는 자가 되며 그렇게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님의 뜻인 영생을 아는 자가 그 뜻을 떠나서 나의 필요를 구할 리 만무하다.
하나님의 뜻은 첫째도 영생, 둘째도 영생, 셋째도 영생이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늘에서 내려오신 목적이 자신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인 영생을 이루기 위함이다.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는 국정 선지자들과 같이 나의 왕으로 섬겼던 성도들 앞에서 철저히 나의 필요와 그들의 인간적 육신적 세상적 필요를 구하는 자였다.
그런 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 당시는 나는 앞이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절망적이었다.
큰 낙심 가운데 빠졌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복음을 통하여 영생의 진리를 알게 하셨다.
만물 안 이 땅에 눈자락을 두고 살았던 나를 들어 안으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옮기신 것이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무덤이나 나의 영은 기뻐 뛰는 하나님의 품속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주님과 함께 거하는 영생의 자리임을 믿는다.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옮겨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양과 영광을 올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국정 선지자들의 호응과 도움이 큰 힘이 되었을 아합, 그가 바로 오늘 나임을 고백합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위하여 왕에게 진정한 상소를 올리지 못한 국정 선지자들, 그들은 하나님께 이미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위하여 때로는 그들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그들의 호응과 도움이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일진대 나는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품속으로 옮기셨습니다.
하여 오늘도 오직 주님의 품속을 사모하며 그리워합니다.
이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나의 필요를 위하여 사는 구차한 자에서 주님의 뜻을 위하여 사는 참된 종으로 서게 하옵소서.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주님의 의만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