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만나자마자 몇 밤 자고 가냐고 묻는 예진이는 벌써 헤어질 그날이 아쉽다고 힝힝 거립니다.
손녀에게 이런 환영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 크면 이렇게 착 감기지 않을 것을 알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오직 비옵기는,
육신의 할미의 사랑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잘 전달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사람의 칭찬에 우쭐해지는 마음,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이 되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진리를 보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 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본문 주해)
1~4절 : 3년 전에 북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치른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아합이 아람의 벤하닷을 이겼다. 그때 아합이 벤하닷을 살려주었을 때, 벤하닷이 자기 아버지가 아합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땅을 다 돌려준다고 하였는데(왕상20:34), 그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남쪽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을 때에 아합이 함께 아람을 치자고 한다. 여호사밧은 ‘내 것, 네 것 따질 우리가 사이가 아니다’ 라고 하며 이 전쟁에 동의한다.
원래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난 딸(아달랴)과 여호사밧의 아들(여호람)이 결혼하게 됨으로(왕하8:16~18), 사돈관계가 된 남북이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5~6절 : 여호사밧은 아합보다 신앙이 있는 왕으로서, 아합의 제안에 동의는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물어보자고 한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묻자고 제의하자 아합이 선지자 400명을 부른다.
이 나라에 어떻게 선지자가 400명이나 있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갈멜산 전투 이후에 형식적이나마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이름 불리는 자들 4백 명 정도를 왕궁 선지자로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의 시녀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아합의 뜻을 먼저 살피고 그에 맞는 예언을 만들어 말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400명의 선지자 전부가 아합이 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 여호사밧에게는 미심쩍어 보였다.
7~9절 : 여호사밧이 다른 선지자를 찾자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한 명 있기는 한데 그는 자기에게 안 좋은 일만 예언하기에 자기가 미워하는 자라고 한다.
열왕기서에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에 대하여 나쁜 예언을 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떤 학자들은 아벡 전투에서 패한 벤하닷을 살려준 아합에게 심판을 고지한 익명의 선지자가 미가야였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확정적 증거는 없다.
그러자 여호사밧이 “임금님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새번역) 하며 내시로 하여금 미가야 선지자를 데려오게 한다.
아합은 미가야를 부르면서 ‘선지자’로 부르지 않고 ‘이믈라의 아들’이라고 부른다.(9절) 이에서 미가야를 미워하는 아합의 마음을 볼 수 있다.
10~12절 : 그 동안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을 비롯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한 400명의 선지자와 백성들이 성문 어귀 광장에 모여 있었다. 두 왕은 왕복을 갖추어 입고 보좌에 앉아 있었고, 선지자들은 열심히 예언할 내용을 찾고 있었다.
어용 선지자들의 대표인 시드기야는 시청각 자료(철뿔)까지 동원하여 아합의 승리를 확증한다.
(나의 묵상)
여호사밧이 아합보다 영적으로 더 깨어있는 왕인지라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한다.
그런데 아합에게 동원된 400명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같이 승리를 말함으로 아합의 기분을 맞추는 것에 미심쩍은 마음이 든 여호사밧은 다른 선지자를 찾는다.
우리의 선지자 미가야는 내일 등장할 것이지만 아합의 말을 통해 그가 어용된 선지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선지자임을 알 수 있다.
“야훼께 뜻을 여쭈어줄 자가 하나 더 있기는 합니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는 자인데,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내가 하겠다는 일이면 사사건건 잘되지 않으리라고 하는 자입니다. 한번도 잘되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공동번역)
이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격려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도 그가 복음을 모르는 자라면 대개 이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찾는다. 이 땅에서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그 마음을 격려받고 싶고, 이룬 것을 칭찬 받고 싶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다녔는데, 내가 교회 다니는 이유는 당연히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으로 알았기에, 또 남편과 같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종교생활은 하나님께 잘 보여서 복을 받고, 또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을 내니, 소위 모태 신앙이라는 사람들보다 더 믿음이 좋은 듯이 보이기도 했다.
한때는 인간적으로 너무도 코드가 맞는 목사님을 만나, 내 신앙의 절정기인 듯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내 믿음의 절정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늘 기대 가운데 있다.) 그분의 말씀도 그렇고, 당시 내가 읽는 모든 책들이 ‘잘 되는 나와 긍정적의 습관....’ 등 자기확장에 관한 내용이고, 그런 내 믿음에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2015년 복음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었다.
나를 격려하거나 위로하거나 칭찬해 주는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커녕 죄인이요, 티끌이요, 먼지요, 안개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을 따로 계셨다.
바로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나를 잘 되게 하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전에 삼위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내게 영생을 주시고자 계획하시고, 이 땅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지금 성령을 보내셔서 내 죄를 보게 하시고,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심으로 영생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게 하신 그분이 주인공이시고 또 내 인생의 주인이셨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듣기 싫고 인정하기 싫던 그 말씀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내가 주인공이기를 원했던 자였는데 어떻게 이 복음의 진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아니라, 매일 듣고 싶은 말씀이 되었을까?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그래서 매일의 말씀 묵상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또 듣는다.
어리석은 아합에게 늘 귀에 거슬렸던 그 복음이 오늘날 나에게는 생명수 말씀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생명수 샘을 밝히 보게 하시고,
매일 흡족하게 마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것은 날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아합처럼 사사건건 나와 맞지 않는 말이라고 입을 삐죽이며 살았을 존재를
복음을 선포하는 참 선지자들에게 배우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기도하며,
함께 힘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과거의 저와 같은 누군가를 성령께서 만나게 하실 때
복음과 생명의 교제를 전하게 하심으로
주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제 인생의 믿음의 최고 절정기에 주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