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 카페에 올린글이라
설명도 함께 ...............
금악산은 철원여고 옆으로
산을 오를수 있는 등산길이 입구에서 산아래까지
포장이 되있어서 눈이 쌓이지 않을때는 노인분들과 주부들이
새벽 운동 하러 가기 좋은 곳이다
점심을 먹고 몸도 무겁고 머리도 아프고
아무튼 많은 생각들이 혼돈 스럽게 만드는 날이 였다
카메라와 물 한병만 가지고 집을 나섰다
천천히 올라 가면서 사진이나 담아 와야지
그런데 몆일전에 폭설이 철원에 추위와 함께 그대로
쌓여 있었다 숨은벽 갈때 와이젠을 나래님 배낭에 넣어기에
가져 오지 못했는데 와이젠이 없이는 산을 오르기가
힘들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눈쌓인 산행 왠지
무겁게 다가오는데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이미 입구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 했다
그래도 작으마하게 오솔길이 나져 있었다
정상에 군인들의 초소가 있어서 군인들이 오르내리느라고
길이 만들어 진듯 싶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군인 둘이서 내려온다
보초 서고 내려 오는 길이란다
난 반가워서 그들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르기 힘들거라고 자기들도 와이젠을 신고 한시간 반을
내려 왔단다 난 아이젠도 안신었는데
갈등이 생겼지만 올라 가고 싶었다
중간에서 하산 하기는 여기 까지 왔는데
군인들 사진을 찍어 주며 꼭 싸이월드에 올려 달라고
하는 말을 새기며
그들과 헤어지고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정상이 보이는듯 하면서 오르면 또 있고
잠시 하산할 걱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산길이 미끄러워서 어두워지기전에 하산을
해야 할것 같았다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했어도 혼자 두려움 없이 한시간 반
정도에 산행을 즐기며 하산길에 미끄럼도 타고 내려 오면서
혼자 산행에 상쾌함과 시원하게 눈속을 헤메다
돌아 왔습니다
금악산은 고대산에서 철원 방향으로 바라다 보면
고대산을 가로막고 서있는 철원군 동송읍을 품에 안고
있는 산이다 학교 교가마다
금악산 이라는 산이름이 꼭 들어가 있기도 하고
초입에서 노인분들이 운동 할수
있도록 운동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다
등산로
이곳에서 군인들을 만났다
무슨 의미가 있을것 같은데 ............
대한에 건아들 어느분에 자제분인지
믿음직 스러웠다 꼭 싸이월드에 올려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ㅎㅎ
눈이 쌓여 보이지 안지만 전쟁당시
아마도 굴 비슷하게 만들어 진곳이다
내가 올라 가야 할길 .........
하산길에 유난히 까치가 울기에 올려다보니
까치집이 나를 정겹게 반겨 주었다
(금악산 역사 이야기)
역사의 반대편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야사가 있는데, 그 야사 속에
우리의 ‘개’가 주인공, 또는 주인공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우리는 역사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개 이야기가 비단 흥밋거리나 소일거리의 수단 정도로 단순하게
취급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에는 매우 중요한 상징 의미가 숨겨져 있다. 반드시
역사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와 시대의식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소 중요하고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는 뜻있는 독자들 편에 맡기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를 모아 소개하기로 한다.
얼마 전에 모 방송국의 주말 드라마 덕분에 ‘궁예 신드롬’이
생겼던 때가 있었다. 그저 짧은 역사를 가진 실패한 왕국의
포악한 군주로만 궁예를 알고 있었던 우리에게 ‘궁예’는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온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 궁예에 대해서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평가하기에는 필자에게는
해박한 역사 지식도 없고 그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기에 궁예와
관련된 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사라기보다는
전설과 민담으로 전해지는 야사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서 혹시라도
독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처음 궁예가 금악산에 궁궐터를 잡았는데, 금악산을 안으로 정하고
고암산을 뒤로 삼으려 했는데 궁예의 부인이 말을 해서(또는 궁예가
애꾸여서 잘 보지 못하여) 그 반대로 정하게 되었다.
사실 고암산을 뒤로 삼고 금악산을 안으로 정했다면 풍수학
상 나라가 천 년을 지낼 것이었는데 그만 여자의 말을 들어 금악산이
너무 서러워 3년 동안 나무를 키워도 잎이 하나도 피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결국 천 년 도읍할 것을 30년에 끝나는 비운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
궁예가 왕이 된 지 20년 쯤 되었을 때 구미호가 궁예의 왕비를
잡아먹고 왕비 노릇을 하게 되었다. 여우라는 요물이 사람으로
둔갑을 해서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만 궁예는 홀딱 반하여 여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우는 사람고기를 좋아하여
사람이 죽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여우가 둔갑한 왕비는 잘 웃지 않다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매우 좋아하며 웃곤 하였다. 그 여자가 웃지 않으면
궁예는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사람들을 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처형하게 되는데, 특히 잔인하게 죽여야만 더욱 좋아하여 점점
더 잔인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었다. 다른 대신들은 그 전의 황후는
매우 어질었는데 요즘의 황후는 매우 악독한 것을 보고 차츰 구미호가
둔갑한 사실을 눈치 채게 되었다. 그러나 궁예 왕에게 아무도
얘기를 할 수 없어서 무슨 방책이 있나 하고 비밀리에 의논하게 되었다.
구미호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삼족구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삼족구란 뒷발이 둘, 앞발이 하나로 다리가 세 개인 개를 말한다.
그 삼족구만이 변신한 여우를 잡을 수 있었는데, 삼족구를 백방으로
구하여도 통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 송파의 누구의 집에 강아지를 낳았는데 발이
세 개인 개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래서 대신이 그 집에 가서 보니
젖 떨어질 만큼 되었는데도 조금도 크지 않은 강아지였다.
그런데 발만 커다랗고 눈알이 빨개서 아주 무서워 보였다.
다리는 비록 세 개밖에 없지만 뛰어가는 것이 마치
날아가는 것 같이 빨랐다.
값을 치르려 했지만 개 주인이 그냥 주어서 갖고 돌아와 궁궐로 들어가
조회할 때 도포 소매 속에 숨겨둔 강아지를 꺼내 놓으니 강아지가
비호처럼 달려들어 황후의 목을 물어뜯으니 곧 여우로 변하고 말았다.
나라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여우가 정치를 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였다고 모두들 분개했다.
아마도 궁예가 개인적으로 포악하여서 실정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은 백성들이 후대에 꾸민 이야기인지 아니면 태봉국의
유신들이 고려에 남아 있을 때 망국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사람들도 잡을 수 없는 여우를 삼족구, 즉 장애를
가진 강아지가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이 꽤 흥미롭다.
아마도 장애견이라고 멸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한 생명체로서의
고귀함을 표현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려는 우리 선조 들의
인도주의적 인 면이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궁예와 관련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왕건에게 쫓겨 도망간
궁예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러나 종일 쫓겨 다니느라고 음식은커녕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여 갈증의 괴로움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주위에 모시고 있던
신하들에게 목이 마르다고 하소연을 했으나 모두들 물이 없다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 마리의 개가 쫓아 왔는데 땅의
어느 곳으로 가더니 계속 끙끙거리며 마치 그 곳을
파라는 시늉을 하는 듯 했다.
이상히 여긴 대신들이 그 곳을 파니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샘물을 궁예에게 떠다 바쳐서 갈증을 풀게 했다.
그 샘물을 개가 팠다고 해서 그 이름을 ‘개우물’이라고 한다.
현재에도 철원군에 있다고 한다. 한 편 궁예는 인근 마을의
농부들에게 들켜서 매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한 때는 한 나라의 임금이었는데 때려죽일 수가 있느냐
해서 고려의 왕건이 함경도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지 않았다
한다. 물론 이야기 속의 궁예를 죽인 농부는 함경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전히 사실에 입각한 얘기라기보다는
흥미 위주의 꾸며서 전해지는 얘기이다.
아마도 비록 궁예가 포악한 왕이었다 하더라도 개 같은 미물도
그 왕을 위하여 우물을 찾아내 주었는데 하물며 인간이 그래도
한 때 왕이었던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느냐는 도덕적
교훈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역사 속의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또 있는데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개가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여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단종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
역사 상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비운의 왕이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슬픈 전설도 꽤 많이 전해진다.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영월에 귀양을 가서 사약을 먹고 죽었다는
얘기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죽어서도 그 시신을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 치욕을 당했는데 그 때 엄흥도라는 사람이 시신을 잘 수습해주어
후에 충신으로 추대를 받게 된다.
단종이 죽을 때 우리는 그저 역사상의 기록으로 봐서 억울하게
사약을 먹고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강원도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조금 다르게 전해진다.
단종 임금이 사약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차마 사약을 전하지 못하고
고초를 당하는 일이 생기자 자신 때문에 다른 신하들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안타까워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갇혀 지내며 감시를 받는 처지에 함부로 죽을 수도 없어서
꾀를 내어 몸보신을 하려고 하니 개 한 마리를 구해달라고 하였다.
모시고 있는 시녀들이 몸보신을 한다고 하니 기쁜 마음에
개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단종이 방 안에서 개 목을 조르려한다며
끈을 달라 하고 밖에서 연결된 그 끈을 힘껏 당기라 청하였다.
그리고는 끈을 자신의 목에 감으니 밖에 있는 시녀들이 개 목을 잡는
줄 알고 힘껏 잡아 당겼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단종이 죽어 있었다.
물론 나이 어린 단종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다만 단종이 자신 때문에 무수한 충신들이 고초를 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 더욱 단종에
대한 애처러운 마음과 비분강개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개는 소품에 불과한 역할이지만 단종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한 번 되돌아보았다.
지면상 역사 속에 나오는 개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는 없어
다음의 기회로 미루며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다. 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친근하게 등장하는 동물로 오랫동안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좋은 친구이고 동반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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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몰라던 사실을 이곳에서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이거 누나글이구나.... 난 또 누가 썼나 했지요..... 언제 함 지랑 같이 등반 하지요..
좋은글 감사^^이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고향 생각도 나고 군인 아저씨를 보니 군대생활 이 생각 나네요...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