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몰랐다. 이렇게 무위도식하게 될 줄은. 가을학기를 맞이하는 날 아침이었다. 조간을 펼쳤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발짝 떼었을까. 허공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뇌혈관 문제란다. 급박한 상황은 넘겼단다. 다행히 입원의 경과도 좋았다. 하지만 안정을 취하는 게 상책이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생면부지 강원도 원주, 바로 그곳에서 더듬더듬 이 글을 쓰고 있다.
휴가 아닌 휴가, 반추의 시간, 안도감에 앞서 당연한 귀결임이 분명했다. '서리가 내리면 얼음이 언다(履霜堅氷至)'는 것조차도 모르면서 인문학을 한답시고 깝죽댄 셈. 코앞에 엄청난 기미가 꿈틀대고 있었으련만, 한사코 외면한 채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꽤나 열심히 사는 양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뭐, 그게 무슨 대단한 작업이라고 밤을 새워? 불면증, 술이 무슨 보약이야 수면제야! 아니, 아직도 피워 담배를! 운동은 쥐뿔도 않는다면서!" 환청이 아니다. 사실이었으니까. 아, 이 얼마나 한심한 위인이란 말인가.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가벼운 산책이나 드라이브 말고는. 걸어서 반 시간 남짓, 그래서 자주 찾는 곳, '원주한지테마파크'다.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들의 품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한지의 역사가 오롯하기에. 닥나무로 빚은 한지, 백 번의 잉태과정을 거쳐 명품으로 탄생하기에 '백지(百紙)'라고도 부른다는 한지다. 나는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연고로 인류역사상 가장 빠르고 뛰어난 인쇄술을 갖게 되었으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한글을 창제했으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대하고 정치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수 있었는가를. 아, 양질의 종이가 담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랴!
원주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이어지는 국도변, 하늘로 우뚝 치솟은 바위등걸, 그 아래 터를 다진 오토캠핑장에 차를 세운 뒤 고개가 뻐근하도록 암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쩌렁쩌렁 대성일갈이 메아리쳤다. "네 이놈! 제 한 몸도 건사 못하는 놈이 뭐, 사람들을 가르쳐! 도대체 네놈이 아는 게 뭔데? 이런 시건방진 놈을 봤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편하고 불쾌했을까? 그래도 나는 몇 번을 더 찾았다.
언젠가부터 '욕바위'라 부른다는데, 그릇된 수령이 지나갈 때면 실컷 욕을 퍼부었던 험준한 바위였기에 붙여진 이름. 강원도 감영이 자리했던 원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른바 산호투쟁(山呼鬪爭: 집단으로 산에 올라 외치던 민초들의 불만 표출)인 셈, 신문고도 제 역할을 못하던 시대 얼마나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삼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으리라.
엊그제다. 우리는 또 한 분의 전 대통령을 잃었다. 공과와 호오가 엇갈리지만 반독재민주화투쟁에 기여한 공로야말로 길이 빛날 터, 그 분은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고, "영광의 시간은 짧고 고통의 시간은 길다"고 술회했다. 여운이 드리운 말이다. 조정래 선생도 '세상사란 영욕이 반반'이란 영원한 도반인 아내의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한다. 정녕 그런가보다. 칭찬만 듣고 싶은 게 인간이라지만,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려니.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그 때문에 이미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평생 인문학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차마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요즘 '육룡이 나르샤'란 역사극이 흥미를 자아내는 모양. 보지 않고서도 조선 건국에 얽힌 이야기란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것의 제목 또한 '용비어천가'에서 따온 것임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용비어천가를 역사라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주인공들이 제아무리 제왕이라 하더라도 칭송 일색이기 때문이다. 오백 년 조선왕실도 그것을 익히지 않는다고 눈을 부라리진 않았다.
역사는 묘갈명(墓碣銘)이 아니며,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역사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궤적,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비곡직(是非曲直)으로 얼룩진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교훈을 찾고, 또다시 닥칠지도 모를 착오에 대처할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해괴하다. 번갯불에 콩이라도 볶아 먹을 태세이니. '차떼기여론'이다 '깜깜이편찬'이다 온갖 신조어가 난무한다. 사학자라면 그 옛날의 춘추필법이나 조선시대 사관 선발이 얼마나 엄정하고 투명하고 경건했다는 것쯤이야 훤하련만…. 그런데도 기어코 우리의 자부심이며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까지 흙탕물을 끼얹을 속셈이란 말인가?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경연장'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간밤 궂은비에 산수유 잎이 졌지만, 빨간 사랑의 열매와 새봄의 꽃망울까지 매달고 있거늘. 그래,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그리하여 끝까지 기다려준 글빚을 갚는 날, 늙은 애 하나로 마음 조렸던 아내 가슴에 산수유 열매처럼 고운 산호 브로치를 달아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