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門고수와의
Dinner Time 17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되 폴리페서는 되지
말라
서울고 총동창회 뉴스레터 17호(2018. 6. 09)
우희종(서울고 29회, 59세) 서울대 수의대 학장
이달의 ‘동문고수와의 디너타임’은 범 자연과학자 편으로 꾸몄다. 총동창회가 초청한 동문고수는 29회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 대학학장이다. 우 학장은 서울대 수의대를 나와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약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강사, 보스톤대 의대교수를 거쳐 1992년 서울대 수의대에 몸담았다. 저명한 면역학자로, 생명철학에도 조예가 깊고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뒷줄 좌측에서 시계방향으로
이필재(29회) 편집인, 윤석준(37회), 우희종(29회), 강석형(40회), 윤성호(41회), 유성호(43회), 이종훈(44회)
참석자: 우희종(29회) 서울대 수의대 학장
윤석준(37회)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과 교수
강석형(40회) 신반포 동물병원장
윤성호(41회) 미 뉴욕대 환경공학과 교수
유성호(43회)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이종훈(44회) 차의과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서정욱(37회·편집위원회 간사
이강희(65회·편집위원·고려대 영문과3년
진행·정리: 이필재(29회, 편집인)
일시: 2018. 5. 30. 저녁7시
장소: 서초동 애향
“학자는 우리사회에 빚진 자입니다. 자연과학자도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 만큼 사회에 대해 부채 감을 느끼고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죠. 학자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참여해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학장은
“학자로서 사회참여를 하되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학자는 사회참여로 포장을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싫어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는 학자도 있는데 그런 부류도 역시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평생 학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보시나요?
“스스로 학자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학자는 수행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공과 관련해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학문을 통해 과연 무엇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필요하죠.”
+연구윤리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귀국 후 수의학계를 포함해 연구윤리가 무너진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논물표절은 남의 연구성과를 가로채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과를 부풀리는 자기표절도 학자로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거죠.”
+만일 '우희종의
인생사용설명서' 같은
게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당기는 대로 살자. ’욕망에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주변에 피해 안 끼치고, 즐겁게 이웃과 나누면서 살려 나름대로 노력합니다.”
그는 살아오면서 내린 가장 중요했던 결단으로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후 광우병 원인 물질인 프리온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만류로 현실과 타협해 하버드의대 행을 택한 것을 꼽았다.
“경력 쌓기가 중요했던 그 시절은 지금처럼 당기는 대로 살지 못하던 때였죠. 프리온 연구는 지금도 하고 있지만, 당시 프리온의 개념을 최초로 확립해 노벨상을 받은 프리즈너 교수의 UC샌프란시스코
연구실로 가지 않은 선택은 말하자면 저에겐 프로스트가 읊은 ‘가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프리즈너 교수는 그 후 프리온 연구로 노벨상을 탔다. 우 학장이 그의 연구실에 들어갔다면 어쩌면 노벨상을 받은 연구에 동참했을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좌절 경험은
뭔가요?
“재미교포인 전처와의 헤어진 일입니다. 가치관이 서로 달랐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문제로 입장을 좁히지 못해 상처가 큰 이혼을 했어요. 어떤 경우든 배우자는 인생의 큰 스승이죠.”
+서울고 재학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사춘기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기엔 숲이 우거진 경희궁이라는 환경이 참 좋았죠. 서울고는 서울 출신인 저에게 청소년기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는 대학에 있어 동물진료는 하지 않지만 현역 수의사이다. 동물의 생명을 비롯해 생명과 생태계에 관심이 깊다.
+왜 수의대에
진학하셨나요?
“서울고에 입학할 당시엔 서울의대가 목표였고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2학년때 왜 사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 지내느라 졸업할 땐 서울의대 갈 성적이 안됐어요. 생명에 관심이 있겠다 수의대에 갔죠.”
그 해 서울대 의대는 사상최초로 미달이었다. 그가 의대에 진학했다면 아마 의사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의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만해도 수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낮았기에 그는 해외유학을 떠났고 그 결과 그의 인생경로는 바뀌었다. 그는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잘된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운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동물복지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사회엔 동반동물 말고도 산업동물 즉 가축과 의학용 등의 실험동물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물에 따라 생태계 내 지위가 서로 다르다는 거죠. 산업동물에 대해 반려동물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려 드는 건 지나치게 관념적입니다. 그러나 산업동물도 생명체로서 최소한의 조건은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사회도 이런 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근본적으로 EU처럼 동물복지에 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동물보다 못한 존재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한한 욕망의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감사를 할 줄 안다는 겁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이 세 가지 인간의 특징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성찰과 감사를 못하고 무한한 욕망에만 사로잡혀 산다면 동물보다도 못한 거죠. ‘개 같은 놈’이라는 욕은 실은 개에 대한 심각한 결례입니다.”
그는 “근대사회 이후 신으로부터 인간을 되찾았다는 생각으로 인간의 탐욕을 합리화하는 것에 대해 인간의 경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생의 의지와 욕망은 위대한 능력이자 인간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욕망을, 자아를 실현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영위하는 원동력으로 써야죠. 그래서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왜 이러고 사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메타인지적 접근, 자아성찰의 미학이 필요합니다. 자연과학도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 만큼 자연과학자도 마땅히 사회적 가치를 둘러싸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학문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젊은 학자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시고 싶나요?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명학자가 되면 좋겠지만, 학문적 성과를 내고 연구비를 타내려 제자를 실험하는 기계로 취급하고 대학을 산업현장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단적으로 단기평가에 집착해 대학원을 ‘논문공장’처럼 운영하는 것이 과연 학자로서 정당한 일 인지에 대해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대학이 요구하는 조건만 충족시키면 돼요.
이 기준을 초과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건 과욕이에요.”
그는 내 안에는 부모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선조들의 삶과 죽음,
자녀를 포함해 무수히 많은 미래 세대의 삶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저마다 개인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람답게 살려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는 현대과학이 인간생명의 연장을 위해 막대한 돈을 쓰는 건 생명존중이라기보다
생명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했다.
“생명을 살린다고는 하지만 21세기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또 다른 잉여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