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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몽고의 별~ 20~
이 싸움에서 1천여명을 죽이고, 포로로 잡은 것이 2천여명, 몽고병은 1백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을 뿐이
다. 철목진은 내만병의 갑옷을 벗기라고 명령하고 2천여명의 포로와 말을 함께 넷으로 나누어 완안 형제에게
한 몫, 의부인 왕한에게 한 몫, 의형제인 찰목합에게 한 몫, 자기가 한 몫을 차지하고 전사한 병사들의 가정에
는 다섯 필의 말과 함께 포로 다섯 명씩을 노예로 주었다.
완안 영제는 이때야 꿈에서 깬 듯 희희 낙락했다. 완안열은 철목진과 찰목합이 소수를 가지고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지금 몽고가 부족간에 서로 싸우기 때문에 그런대로 대금국의 북방이 무사하지, 만일 철목진과 찰목합이 몽고
를 통일한다면 화근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면에 먼지를 날리며 일표 군마가 달려온다. 몽고의 척후병이 아뢴다.
[왕한께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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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목진, 찰목합, 상곤 세 사람이 앞서 영접했다.
왕한이 말등에서 내려 두 손으로 철목진과 찰목합을 얼싸안고 걸어 완안형제의 말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예
의를 차렸다.
완안열이 보니 몸은 뚱뚱한 편이며 은빛의 백발과 수염에 몸에는 검은 표범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허
리에는 황금띠를 둘러 그 위업이 대단하다. 완안열도 급히 말에서 내려 답례를 하는데 완안영제는 여전히 거드
름을 피우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소인은 내만인들이 무례한 행동으로 두 왕자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급히 달려왔는데 세 아들이 물리쳐 천
만 다행이옵니다.]
말을 마치고 손수 앞장서 완안 형제를 자기 장막으로 인도했다. 완안열은 왕한의 기세가 철목진보다 더 호방한
것을 보고 그가 북방의 영웅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통솔하는 부락도 많고 병력도 더 강함을 알았다.
책봉의 의식이 끝나자 그날 밤 왕한은 완안 형제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여자 노예들이 풍악을 울려 주흥을
돋우었다.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르기 시작하자 완안열이 입을 열었다.
[몽고 사람들 가운데 영웅 호한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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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왕한이 웃었다.
[제 두 양아들이 바로 몽고 사람들 가운데 영웅 호한이옵니다.]
왕한의 친아들 상곤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은 듯 연거푸 큰잔으로 술을 들어마시고 있었다.
[친아드님은 더욱 훌륭한 영웅이시오. 그런데 왜 왕한께서는 아드님에 대한 얘기는 거내지 않으십니까?]
[그야 제가 죽으면 자연 부중을 통솔하게 되겠지만 어디 두 양아들만 하겠습니까?
찰목합은 지혜가 풍부하고 철목진은 그 용맹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적수 공권으로 일어난 사람들입니
다.
몽고 사람들치고 그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겝니다.]
[그럼 왕한의 장수들은 그들의 부하만 못하단 말씁입니까?]
철목진은 그가 하는 말이 의미 심장하고 어딘가 건드려 보려는 듯한 태도에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다보았다. 왕한
은 그 말을 못들은 척 잔의 것을 비운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 내만인들이 우리의 가축을 수만마리 훔쳐간 일이 있는데 다행히도 철목진이 자기 부하 가운데 네
영웅을 보내 주어 찾아올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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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서 고개를 내흔든다. 상곤의 얼굴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며 금으로 된 술잔을 술상에 땅하고 집어 던
지듯 내려 놓았다. 철목진이 입을 뗀다.
[저야 무슨 쓸모 있습니까? 내 처를 적이 잡아 갔을 때 의부와 의동생이 저를 도와 찾아준 일이 있는걸요.]
완안열이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네 영웅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좀 만나보고 싶군요.]
왕한이 철목진을 건너다본다.
[네가 그들을 들라 하여라.]
철목진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네 명의 대장이 안으로 들어선다.
첫째는 인상이 온화하고 얼굴이 희며 용병에 능한 목화려다. 두번째가 체격이 우람하고 눈이 독수리 같은 철
목진의 친구 박이출이요, 세째는 키가 작고 걸음이 빠른 박이홀. 네번째가 얼굴색이 핏빛 같고 그때 철목
진의 생명을 구했던 적노온이다. 이 네 사람은 몽고의 개국공신이요, 철목진이 말한 바로 그 영웅이다.완안열은
일일이 그들에게 칭찬의 말을 해주고 술 한 잔씩을 내렸다.
[오늘 싸움터에서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장군이 대단히 용감하던데 그가 누구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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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목진이 대답한다.
[그는 십부장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철별이라 부리지요.]
[그도 좀 들라 하시오. 술이나 한잔 권하게.]
철목진이 전갈을 하자 잠시 후에 철별이 장막안으로 들어오고 완안열은 술을 권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막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상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십부장 주제에 감히 내 금잔에 손을 대? 이놈아!]
철별은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서 술은 마시지 않고 철목진의 눈치를 살폈다. 몽고의 풍속으로는 다른 사람
이 술 마시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은 크나큰 모욕이다. 철목진은 생각했다.
(의부의 체면을 봐서라도 내가 참아야 한다.)
[그 잔을 내게 주거라. 목이 마르구나. 내가 마셔야겠다.]
철별의 손에서 잔을 받아 목을 제치고 잔을 비워 버렸다.
철별은 상곤을 향해 눈을 흘기고 장막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이놈 돌아오너라!]
상곤이 소리를 질렀지만 철별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상곤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철목형에게는 네 영웅이 있지만 내 한 가지 물건만 꺼내 놓으면 아무 소용없게 됩니다.]
말을 마치고 허허거리면 웃는다. 완안영제가 이상한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물건이오?]
[장막 밖으로 가서 보십시다.]
그러자 왕한이 소리를 지른다.
[잠자코 술이나 마실 일이지. 무슨 쓸데없는 수작이냐?]
완안영제는 구경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술은 그만 하면 많이 마셨으니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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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니 다른 사람들도 어쩔수 없이 그를 따라 나선다.철목진은 불빛 가운데 철별이 아직도 화
가 풀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봐라, 술 좀 가지고 오너라!]
수종이 큰 주전자를 올리자 그는 주전자를 높이 치켜들고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우리가 내만인을 통쾌하게 무찔렀다. 여러분의 수고가 너무나 많았구나.]
[왕한, 철목진 대한, 찰목합 대한의 덕분입니다.]
몽고병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시 철목진이 말을 이었다.
[오늘 내 특별히 용감한 장수를 보았다. 적진에 뛰어들어 용맹을 떨친 장수가 누군이 아느냐?]
몽고병들이 함성을 지른다.
[십부장 철별이오. 철별!]
[뭐 십부장이라고? 아니다 백부장이다!]
순간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다가 금방 알아차렸다.
[철별은 용사다. 백부장에 손색이 없다.]
함성이 초원의 하늘을 찌른다. 철목진이 자륵미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내 투구를 가져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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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륵미는 두 손으로 투구를 받쳐 올렸다. 철목진은 그것을 받아 높이 치켜들었다.
[이는 내가 쓰는 투구다. 이제 이것을 용사의 술잔으로 대신한다.]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제치고 한 주전자의 술을 투구에 따라 자기가 한 모금 마신 뒤 철별에게 건네 주었다. 철별
은 감격한 나머지 한 쪽 무릎을 꿇고 받아 마시고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천하의 귀중한 보석으로 아로새긴 금잔이라 하더라도 대한의 투구만은 못한 줄로 아뢰옵니다.]
철목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투구를 받아 자기 머리에 썼다. 몽고 병사들은 철별이 술을 먹으려다가 수모를 당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철목진이 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자 감격했다.
완안열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 무시 못할 영웅이로구나. 이렇게 해놓고 철별을 보고 만 번 죽으라 한들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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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영제는 네 영웅을 해치울수 있다는 일에만 생각이 미치고 있었다. 그는 호피 깔린 의자에 앉은 채 상곤에게
물었다.
[그래 무엇으로 네 영웅을 해치울 수 있다고 했는가?]
상곤은 웃으며 자기 부하들을 보며 묻는다.
[철목진 형님의 네 영웅이 어디 있느냐? 이 초원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 네사람 말이다.]
목화려등 네 사람이 걸어 나와 절을 했다. 상곤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자기의 부하에게 몇 마디 소곤거리듯
명령을 내리자 그는 대답을 하고 물러갔다. 잠시 후 짐승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며 장막 뒤에서 금빛 줄무늬
가 아롱진 두 마리의 표범이 슬금슬금 걸어나왔다.
완안영제는 깜짝 놀라 허리에 찬 칼자루를 꼭 쥐었다. 표범이 불빛이 있는 곳에 온 것을 보니 표범의 목은 줄로
묶였고 두명의 장정이 각기 표범을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정들의 손에 긴 장대가 들려 있는 것을 보니 사냥
할 때 데리고 다니는 표범임에 틀림없다. 상곤은 철목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님, 형님의 네 영웅이 맨손으로 표범 두마리를 때려 잡을 수 있다면 제가 승복하겠습니다.]
네 사람이 듣다 보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아까는 철별을 모욕하더니 이제 우릴 모욕하려 드는구나. 우리가 산돼지냐? 아니면 이리란 말이냐? 표범과
싸움을 하다니?)
철목진도 아니꼬와 죽을 지경이다.
[내 이 네사람을 내 목숨처럼 아끼고 있는데 어떻게 표범과 싸움을 시킬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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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곤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요? 그러면서 무슨 영웅이니, 호한이니 합니까? 그래, 두 마리의 표범도 해치울 수 없으면서.]
네 사람 가운데 적노온의 성미가 제일 불같다. 앞으로 썩 나서며 철목진을 향해 말했다.
[대한, 다른 사람의 노리개가 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대한의 체면이 깎여서는 안됩니다. 제가 표범과 싸우겠
습니다.]
완안영제는 기뻤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보석 반지를 빼 땅에 던졌다.
[자네가 이기면 이 반지는 자네 것일세.]
적노온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섰다. 목화려가 그를 가로 막았다.
[우리는 이 초원에서 이름을 떨치며 수많은 적을 무찌르지 않았는가? 표범이 군대를 지휘할 수 있나? 그리
고 또 매복했다가 적을 포위할 능력이 있나? 그만 두세. 그만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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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철목진이 입을 열었다.
[상곤 아우! 자네가 이겼네.]
몸을 구부려 보석 반지를 집어 상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상곤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웃으면서 사방을 향해 반
지 낀 손을 휘둘러 보이자 왕한의 부하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찰목합은 이마를 찌푸린 채 말이 없고 철목진은 태
연 자약하고 네 영웅만 분해 못 견딘다는 표정으로 물러선다. 완안영제는 일이 싱겁게 끝나자 하품을 하면서
잠이나 자겠다고 장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은 소설 영웅문>~제1부~몽고의 별~ 21
■ 출처: 김용의 소설 영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