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절실히 구하라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찬송가 302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오늘 본문 말씀의 전후 맥락을 보면,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의 청을 듣고 기도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 연후에는 기도의 자세, 기도의 간절함에 대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한 예를 들었는데, 동네 절친의 대문을 한밤중에 계속하여 두드리면서 떡 세 덩이, 빵 세 덩어리를 꾸어달라고 매달리는 친구의 간절함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다가 일어나서 빵을 챙겨 대문을 두드리던 친구에게 건네준 이유는 그가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간절히 청하는 그 태도 때문에 그 요구대로 주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간절한 필요성을 느낀 친구가 그렇게 강청함으로써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소 바라는 바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간절히 청할 때 구하는 바를 얻는다는 것을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간절함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간구하라고 말씀하셨느냐면 13절 결론 부분에서 성령을 그렇게 간절히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 성령을 구하여 받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구하여 다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줄 믿습니다. 돈이나 권세나 출세나 다른 것들보다 주님은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기를 원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 제목 중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 5:18 말씀대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하신 대로, 지금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주님과 믿음의 선배인 사도들이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도록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간절히 간구하고 열렬히 간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한두번이 아니라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늘 평생 간절히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그런데 한밤중에 방문한 친구의 식사 대접을 위하여 한밤중에 옆집 친구네 집 대문을 계속 두드려서 빵 세 덩어리를 얻어냈던 그 사람처럼 성령을 달라고 간절하게 매달릴 수 있으려면 성령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는 절박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주님께 성령을 받지 않으면,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절한 절박감을 느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을 느낄 때는 어느 때일까요? 우리가 어느 때에 성령을 달라고 매달릴 때인가요? 성경은 다음 몇 가지를 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입니다.
에베소서 5:15~18절을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씀을 보면 악한 세태 속에서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사도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녀들의 삶에 대하여 어떠한 길로 인도하실까 하는 주의 뜻을 알 수 있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의 감동 감화 인도하심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뜻이 무엇인가 모르고 미래가 불안할 때에 성령 충만의 필요를 절감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육체의 소욕이 우리 마음과 삶을 강하게 지배하려 할 때입니다.
갈라디아서 5:16 이하에 이르기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의 타락의 본성이 우리 몸과 마음에서 지배력을 강하게 나타나게 되면, 더러운 생각과 방탕함과 다툼과 미움과 소란과 술과 방탕함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육체적인 소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서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이 점점 힘을 갖게 된다면 그냥 놔두어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4:26,27 말씀에도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타락의 본성과 죄악과 마귀가 한패가 되어 우리 안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려고 틈을 노리곤 합니다. 그런 기미만 보여도 우리는 성령의 강한 힘이 우리 안의 육체의 소욕을 지배하고 그 기세를 꺾어버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죄의 소원이 우리 마음에 모양이라도 나타나고, 지나가는 생각으로라도 몇 번 나타나며 이 세상 풍조가 멋있게 보이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생각이 느껴진다면, 그 때가 바로 성령이 우리 심령과 삶을 온전히 주장해야 할 때임을 알고 간절하게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성화의 필요성을 절감할 때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사랑이 부족함을 느낄 때, 겸손의 부족함을 느낄 때, 충성의 부족함을 느낄 때, 효와 우애의 부족함을 느낄 때가 바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결코 달라질 수 없음을 느끼고 성령을 간절히 구할 때입니다. 늘 다른 사람의 단점이 먼저 뚜렷이 잘 보이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커질 때, 성령을 간절히 구할 때입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온유, 주님의 거룩함을 생각하며 그 모습을 만분의 일이라도 닮아가야 하는데 하는 절망감이 우리 마음을 때릴 때에, 그 때에 우리는 주님께 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는 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거룩함이 부족하며 사랑이 부족하며 겸손이 부족하며 충성이 부족하며 우리가 영적으로 유치한 어린아기에 불과함을 느끼고 성숙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낄 때는 곧 성령을 간절하게 구할 때인 줄 믿습니다.
넷째로, 주님이 맡긴 일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을 느낄 때입니다.
주님께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먼저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 성도들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강림을 받아 성령 충만한 가운데 거리로 나가 전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을 때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맡을 일곱 사람을 세우는 조건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며 복음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힘있게 돕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영적인 공격이 있음을 느낄 때입니다.
에베소서 6:10~12 말씀에 이르기를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영적인 어떤 압박을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감각을 예민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악한 영의 공격과 압박을 느끼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꿈을 꾸었는데 비범한 영적 암시를 가진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깡패들 세 사람이 덤벼들어 공격하려 하고 교회 안으로 억지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꿈을 꾸었습니다. 혹은 아주 헐벗고 사납고 흉악한 모양의 개 세 마리가 현관 문을 열자 순식간에 억지로 달려들어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혹은 꿈을 꾸었는데, 건물 지하실에 거지 몇 사람이 들어와 몰래 살고 있는데 그 거지들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살도록 허락을 해주었는데, 잠을 깨고 나니 뭔가 기분이 찝찝한 것입니다. 그렇게 거친 깡패나 흉악한 개나 거지는 일종의 영적인 더러운 영의 상징들로 깨달아져서 영적 공격인 줄 알고 이를 대항하여 기도할 때는 강력한 영적 무장을 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이처럼 영적 공격을 느낄 때에는 마귀보다 더 강한 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너무나 절실히 느껴지기에 성령 충만을 구하는 기도가 간절해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는 은과 금이 많아서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있었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이 계셨기에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성령을 받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주님께 청하여 반드시 성령 충만하여 우리 주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일을 잘 감당하고 주님 앞에 충성스러운 종들로 칭찬받는 주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