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의 왕 르호보암의 죽음
왕상 14:25-31
25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기매
28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31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상 14:25-31 / 르호보암왕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올라왔다. 26) 르호보암은 시삭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자,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창고를 털어 주고, 솔로몬이 만들어 두었던 금방패까지 선물로 내주어 시삭을 돌려보냈다. 27) 그래서 르호보암은 금방패 대신에 놋방패를 만들어 왕궁 정문을 지키는 경비대장들을 무장시켰다. 28) 그후로 왕이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경호원들은 놋방패를 들고 수행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곤 하였다. 29) [르호보암의 죽음] 그 밖에 르호보암왕의 행적에 대해서는 유다 왕들의 궁중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30) 그는 16년 동안 끊임없이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북쪽의 여로보암왕과 전쟁을 계속하였다. 31) 암몬 족속의 여자 나아마의 아들 르호보암이 죽자, 다윗성에 있는 그 조상의 묘실에 안장되고 그의 아들 아비얌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르호보암의 통치와 애굽 왕 시삭의 침공, 르호보암의 죽음 그리고 계승자 아비얌에 대하여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굽 왕 시삭의 침공(25-28)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건하여진 유다 왕 르호보암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 때문에 시삭이라고 알려진 애굽 왕에 의하여서 침공을 당하게 됩니다. 이 침공에 대해 역대하 12장 2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시삭은 그 이전에 솔로몬으로부터 도망한 여로보암을 보호하기도 한 인물입니다(왕상 11:40). 역사는 시삭의 애굽 22대 왕조가 호전적이고 패권주의적이라고 기록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을 떠난 르호보암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시삭은 남북 왕국의 성읍 약 일백오십 여개나 정복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왕국이고 수도는 예루살렘입니다. 왕국에서 수도 예루살렘이 정복당했다는 것은 나라 전체가 정복당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복당한 수도 예루살렘은 나라의 모든 자랑거리인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약탈당합니다. 그 중에는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침공이 의미하는 것은 남 유다 왕국의 번영기가 완전히 끝났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놋 방패로 상징되는 그의 권위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여전히 왕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다윗 때문에 남겨주신 왕위이기 때문입니다(왕상 11:13, 32, 36). 남쪽의 르호보암과 북쪽의 여로보암의 차이는 단지 이것뿐이었습니다.
르호보암의 죽음(29-31) 19절의 ‘행적’과 29절의 ‘사적’은 같은 말입니다. 열왕기서의 기자는 르호보암에 대하여서 참으로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지 해석의 줄기만을 남겼을 뿐입니다. 하지만 역대기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11장, 12장). 남북 왕국 분열 초기에 큰 전쟁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의 기운은 스마야 선지자의 제지로 가라앉았습니다(왕상 12:21-33).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전면적인 큰 전쟁이 아니었을 뿐 근본적인 적대감은 상존했고, 그래서 국지적 전투가 계속 되었습니다. 솔로몬 이후 남·북 왕국은 서로 간에 정통성을 주장하는 두 체제였기에 이질적인 두 국가 간의 대립이 아닌 정통성 주장에 대한 충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충돌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여로보암(분열 후 22년 통치)의 죽음이 먼저 기록되어 있지만, 르호보암(분열 후 17년 통치)이 그보다 먼저 죽습니다. 그 이후 마아가의 소생 아비얌 혹은 역대기에서는 아비야라고 불리우는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에게 벧엘을 빼앗았습니다.
적용: 당신은 어떻게 기록되고 싶나요? 하나님의 기준에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신앙 잡지 <Pulpit>를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사용하는 공간이 늘 모자라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떠드는 소리로 늘 시끄럽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이 많아 일꾼이 부족하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일이 없기에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쓰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의 사람이 많아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먹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헌신자로 가득 차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생색내는 자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하게 전도하고, 죽어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화석화되어 간다.” 우리교회는?
< 설 교 >
가정과 민족이 살길
열왕기상 14:21-31 / 김정훈 목사님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죽음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단된 이후에 남유다왕의 첫번째 왕이 되었던 르호보암은 왕위에 오른 몇해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지만 그러나 그 이후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의 길을 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서 유다의 모든 백성들도 그를 따라서 우상숭배의 길을 걸어 가게되는데 본문의 말씀은 다름아닌 유다의 왕, 유다의 지도자 였던 르호보암의 타락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또한 르호보암의 타락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였던 나아마의 타락에서 시작되었음을 말씀하면서 공동체 가운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통해서 우리 민족과 우리 가정의 살길이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여로보암시대의 유다 백성은 악한 죄로 인하여서 여호와를 떠나고 말았다.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이 유다의 첫번째 왕으로 통치하던 시대에 유다 백성들은 악한 죄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다. 그 당시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성경은 그들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했다’라고 말한다.
르호보암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신할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레위지파 출신이 아닌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던 북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악을 행하여 죄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
1. 우상숭배하는 산당세움 (23절)
이방사람들은 자연 신을 섬김, 자신들의 신을 만나기 위해 산 꼭대기 높은 곳에 산당을 세웠다. 지리적으로 높은 곳으로 갈수록 자신이 섬기는 신들을 더욱 더 가깝고 친밀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 백성들도 이방민족과 마찬가지로 높은 산 위에 산당을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상을 비롯한 여러 우상을 세워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다.
2. 남색하는 죄= 동성애의 죄 (24절)
남색하는 자들이란 일차적으로는 당시 수리아의 여신이었던 아세라의 산당에서 매음행위를 하던 남성창기들을 의미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광희적인 면에서 그 땅에 남색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유다 백성사이에서도 이런 동성애의 죄악이 만연했다는 것을 의미
3. 이방민족의 온갖 악행을 다행함(24절)
당시 유다의 백성들은 단순한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이방민족들이 행하던 온갖 악행들을 행하여서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보다 더욱 더 가증한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 당시 유다 백성들은 우상과 산당을 세워서 그 것을 섬기고 또한 동성애의 죄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민족들이 행하는 모든 악행들을 함께 행함으로써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은데 중요한 것은 이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이 떠난 이유는 유다 왕국의 지도자, 유다 왕국의 왕 이었던 르호보암의 타락에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얼마동안은 하나님을 잘 섬겼다.
(역대하 11: 17)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르호보암은 3년동안은 다윗과 솔로몬의 신앙을 이어받아서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지 4년째 되면서 선왕들이 걸어갔던 믿음의 길에서 떠나서 우상숭배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역대하 12: 1)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르호보암는 흔들리던 나라가 견고해지고 약했던 세력이 강성해지자 교만에 빠져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말았다. 성경은 로호보암의 이런 죄악된 모습을 온 유다 백성들이 본받았다고 말한다. 르호보암은 유다를 통치하는 왕으로써 민족의 지도자로써 유다 백성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믿음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떠난 죄악과 우상숭배에 선봉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로호보암은 말년의 솔로몬과 같이 많은 처첩들을 거느리기도 했다.
(역대하 11: 21)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르호보암은 우상숭배에 빠진 영적인 타락 뿐만아니라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거느리는 성적의 타락에도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시삭을 통하여서 르호보암을 징계하셨다
(왕상 14: 25)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시삭은 애굽왕 22왕조를 시작한 세손급 1세라는 인물인데 솔로몬의 눈을 피해 도망했던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대규모의 원정대를 끌고 와서 유대를 공격했다.
(역대하 12:2-3)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 그에게 병거가 천이백 대요 마병이 육만 명이며 애굽에서 그와 함께 온 백성 곧 리비아와 숙과 구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더라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동원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시삭의 군대는 전쟁을 위해 동원된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수많은 실제 전쟁을 통해 훈련되고 단련된 최고의 정예병들이었다. 그래서 시삭왕 군대는 단숨에 유다의 수다였던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
(역대하 12:4)
시삭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빼앗고 예루살렘에 이르니
시삭은 훈련된 정예부대를 내세워서 단숨에 접경지대를 초토화 하고 르호보암의 집권 초기에 그렇게도 공을 들여 세워놓았던 수많은 성읍들을 한순간에 정복했을 뿐만아니라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까지 진격했다. 그래서 유다는 왕궁과 성전의 모든 진귀한 보물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26절) 솔로몬시대를 상징하고 유다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방패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왕이 었던 르호보암조차 방패만들 금이 없어서 놋으로 만든 방패를 사용해야 했다. (27-28절)
시삭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시삭의 군대가 모든 것을 쓸어 가버렸기때문에 한 나라에 임금이었던 르호보암조차 방패하나 만들것이 남아 있지 않아서 녹으로 방패를 만들어 사용했고 심지어 그것도 왕이 이동할 때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참으로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징계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왕과 유다백성을 멸하시기 위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회개의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호보암은 끝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역대하 12:14)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르호보암은 이러한 하나님의 철저한 징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온 유다 백성들까지 죄악의 길을 걸어가게 했다. 이처럼 유다백성들이 타락하게 된것은 다름아니라 유다의 지도자였던, 유다의 왕이였던 르호보암의 타락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르호보암의 타락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 나아마에게서 부터 시작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다왕의 삶을 기록하면서 그의 모친이었던 나아마의 이름을 두번이나 거론하고 있다. (27, 31절) 솔로몬의 르호보암의 삶을 기록하면서 그의 모친이었던 나아마의 이름을 두번씩이나 그리고 그녀의 출신배경까지 함께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름아니라 암몬 출신의 이방여인이었던 그녀의 영향력이 그의 아들이었던 그로보암에게 까지 강력하게 미쳤다는 것을의미한다. 르호보암의 모친이었던 나아마는 솔로몬이 취했던 이방인 아내 중에 한 사람으로써 특히 솔로몬 통치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게 만든 장본인 중에 한명이었다.
(왕상 11:4-5)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암몬신 밀곰은 몸은 사람의 몸에 머리는 황소머리를 하고 있는 우상으로써 특별히 어린아이를 산채로 불태워 바치는 인신제사행했다 . 르호보암의 모친이었던 나아마는 솔로몬의 마음을 유혹하여 자신이 속한 암몬 족속의 신 밀곰을 섬기게 했다. 남편을 유혹한 이 여인이 자신의 아들에게도 이런 이교적 신앙을 철저하게 가르쳤던 것이다.
이처럼 유다 백성의 타락한 그들의 지도자였던 르호보암의 타락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이 르호보암의 타락은 자기의 어머니 나아마의 타락에서 시작된것이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한 어머니의 타락이 자녀의 타락으로 이어지도 한 지도자의 타락이 모든 백성들의 타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늘 본문 말씀은 공동체의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해 주고있다.
한국에 모든 혼란과 갈등에 종지부를 찢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다. 우리가 찍은 사람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한 나라의 통치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인식하고 새대통령을 위해, 새롭게 세워질 정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각자 자신의 가정에서 부모로써 우리의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수하는데 최선을 다함으로써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참된 신앙인으로 길러내야 할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정과 민족이 살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조국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서 영광스럽게 사용해주실줄로 믿는다.
말씀을 맺고자 한다. 오늘 유다백성들의 타락은 다름 아니라 유다의 지도자였던 르호보암의 타락에서 시작되고 르호보암의 타락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나아마의 타락에서 시작되었다. 공동체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민족 살길이 무엇인지 우리 가정이 살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가정에서는 모델이 되는 부모로써 자녀를 참된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양육하고 교회와 세상에서 공동체를 위해서 세워진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가정의 미래는 부모가 얼마나 자녀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동체의 운명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냐에 달려 있다. 유다백성이 타락했던 이유는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르호보암의 타락했기 때문에 르호보암이 타락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 나아마의 타락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 참된 신앙의 모델이되게 하시고 또 우리 교회에 세워진, 우리나라에 세워진, 이 미국땅에 세워진 모든 리더들을 축복해 주시고 한국과 미국이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올바르고 겸비하게 세워져서 이 마지막 때에 선교를 위해 쓰임받는 복된 나라들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