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5]아름다운 사람(27)-영원한 우리 담임선생님
1975년 3학년 2반 시절 담임선생님을 반班친구 여럿이 만나 뵙고 점심을 대접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즈음, 국내에서 반년을 살러 온 미국국적 친구가 제안하며 나의 협조를 구했다. 불감청고소원. 모임을 만들고 번개팅을 하는 것은 거의 나의 ‘특기’가 아닌가. 임실 등 가까이 사는 친구들에게는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이 보름 전에 문자만 보냈다. 재미난 일은 일산과 대전에서 KTX로 달려온 친구들이 있어 자리가 커졌다. 더 커져도 좋으련만, 내년을 기약하자고 했다. 모두 10명. 전주 아중역앞 코다리각시집(구 황금코다리). 우리 나이 90(1935년생), 선생님은 윤석열나이로 89라 해 모두 웃었다. 아무튼, 정정하시다. 하루에 2시간씩 인근 건지산을 산책하신다 한다. 앉으면서부터 일어서실 때까지 ‘남북통일’이 주요 화두였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이 민족으로선 다행이고 연방제통일이 하루빨리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가슴꽃을 달아드리고, 꽃다발을 안겨드린 후, 한 친구가 한지에 쓴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의 내용에 오늘의 친구들은 모두 동의하리라. 편지를 공개한다.
선생님께.
선생님은 1975년 3월부터 1976년 2월까지 우리의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그 1년은 우리에게
학창시절 가운데 가장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리과목을 가르치실 때‘세계지도’한 권만 달랑 들고 오셔
칠판에 각 나라의 지도地圖를 그린 후 언어, 인구, 종교, 산업 등
각종 제원諸元을 모두 외워 판서를 하던 모습,
30cm쯤 되는 뿔잣대로 해찰하는 제자들의 목덜미를 여지없이 때리던 장면,
작은 체구에 페달이 닿을까 걱정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시던 모습,
종례시간마다 다른 반 눈치 안보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로
시작되는 <나그네설움>을 합창했던 일 등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자칫 딴길을 밟은 제자들을 살리기에 앞장서시던
선생님의 교육관에 바탕한 무용담을 들으며
우리는 늘 선생님을‘참 스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올해 구순이시지만, 역시 우리 선생님답게
날마다 건지산을 두 시간 동안 산책하신다구요.
강녕하시어 정말 보기에 좋습니다.
내년에는 우리의 담임선생님 되신지 50년, 반세기가 됩니다.
오늘은 비록 카네이션 가슴꽃 한 송이 달아드리지만,
내년 스승의 날에는 더 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을 모시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오래도록 강녕하시어 우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강녕하시기만을 빌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2024. 5. 13.
미욱한 제자
김종석 송기돈 오동영 이종대 정안준 최영록 황의찬 한종용 빙강섭 절합니다
막걸리도 한두 잔 마시며 유의미한 장광설長廣舌을 펴는데, 한 친구가 무엄하게도 자꾸 말을 잘라 짜증도 나셨을 터. 허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 정말 이런 모임은 흔치 않을 듯하다. 묻혀있던 질문들도 쏟아졌다. "뿔잣대로 목덜미를 때린 이유는요?" "종례때마다 왜 나그네설움을 부르게 했어요?" "어쩌다 지리선생님이 되셨어요?" 그러니 식당 브레이크타임이라며 자리를 파해달라는 말까지 듣고서야 일어섰다. ‘작은 반창회’에 다름 아니었으니, 수십 년만에 만난 친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꼬집으며 “그대로다”며 신기해하기도. 선생님이 맨처음 건배사를 하시는데, 말씀이 재밌는 게, 당신도 10년도 넘게 재직했으니 동문同門이라며 “모든 동문의 건강을 위하여”를 선창하셨다. 키포인트는 선생님으로부터 언젠가 들었던 <만주 독립군가>를 다시 불러달라며 조르고 녹음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듯. 감격적인 모임은 2층 커피샵으로 옮기며 더욱 진진해졌다.
한 친구는 손수 만든 경옥고를 두 병 바치고, 또 한 친구는 사모님을 위하여 홍삼정을 선물했다. 시골 사는 친구는 ‘농촌어부’라며 어제 직접 잡은 토하(보리?) 새우를 가져왔고, 교수로 정년퇴직한 공부 잘했던 친구는 고3시절 반친구 50여명과 선생님이 함께 찍은 사진을 확대, 액자로 만들어왔다. 이것이 아름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성추행한 제자를 살리기 위해 학교 교무회의를 넘어 검사들과 말싸움까지 해 구제한 에피소드를 얘기하실 때에는, 우리 모두 절로 박수를 치기도 했으니, 자격資格이래서 이상하지만,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대접을 충분히 받으실만한 ‘참스승’이셨다. 당시 선생님 춘추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불혹不惑(마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젊으신 나이인가? 투철한 교육관으로 다른 선생님들의 부러움까지 살 정도였으니, 진정 ‘아름다운 선생님’이셨다. 편지 끝 문구처럼 “오래도록 강녕하시어 여전히 미욱한 우리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부기: 밥값은 미국적 친구가, 다른 친구들은 십시일반 선생님께 봉투(스승의 날 뇌물?). 극구 사양하시어 옛날 방식으로 잡지 속에 넣어드림. 흐흐.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20]이런 ‘사제師第 만남’도 있었답니다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