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의 퇴고
유옹 송창재
낙서는 외로운 기다림이다.
낙서는 찬란한 슬픔이다.
낙서는 가녀린 사랑이다.
낙서는
봄에는 노란 민들레이고
여름에는 붉은 장미이며 가을에는 코스모스였고 겨울에는 처마 밑 고드름이다.
낙서에는
사계절이 있고
수 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고
나를 압축하여 그 속에 넣을 수있고
온갖 세상을 쓸 수가 있다.
나는 엄마의 편지를 쓰며 글을 배웠다.
침 바른 몽당연필로 서투른 삐툴 글씨를 쓸 수 있을 때부터
엄마는 나를 불러 앉히시고 당신의 편지를 불러주시며 받아쓰게 하였다.
엄마가 글을 몰라서 그러셨던 것은 아니었다.
글씨도 엉망인 내게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읽으시며 받아쓰게 하셨다.
어려운 한문 투의 글이었지만 간간히 당신을 담아 읽어주시는 편지 글 속에서
나는 엄마의 가슴을 읽어가면서 자랐다.
엄마는 참 현명하신 분이셨다.
나의 글쓰기를 조기교육 하셨던 것이다.
부산 출신인 엄마는 중학교만 졸업하시고는 버스 안내양이 그렇게나 예뻐보여서 할아버지에게 혼나면서도 진학을 포기하고 할아버지를 졸라 버스 안내양을 해 보셨단다.
그렇게
철 없는 문학소녀셨다.
난 예전에는 엄마의 감수성을 몰랐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머리에 떠 오르는 엄마의 모습이 바로 그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렇게 편지를 받아쓰게 하시고는, 다시 크게 읽어 보라고 하시고 “어디 고칠 데가 없을까?” 하며 내 생각을 물으셨다.
바로 퇴고를 내게 가르치 셨던 것이다.
그렇게 글의 표현과 감정의 기술을 가르쳐 나가시는 엄마는...
나는 엄마를 닮아 초등학교 때부터 표어 쓰기나 동시쓰기에 두각을 나타냈다.
동시대회에서 입상을 하여 상을 타면,
내가 쓴 그 동시를 큰 소리로 다시 읽으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엄마였다.
말씀을 하실 때마다 적절한 속담을 인용하여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 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더냐?”
“책 속에 길이 있단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다더라.”
내용을 몰라 물어보면 일일이 알려주셨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를 가르치시는 현명하신 엄마였다.
나의 정서는 어릴 적 그 시골의 촌놈 용근이 성과, 엄마의 타고난 감수성과 바람과 햇빛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글쟁이는 “글로 망하고, 배가 고프다.”고 하시며, 글쓰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하셨던 아버지와, 어리석은 선생 때문에 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후로는 글을 쓰는 것을 접었다.
그래도 나를 그리고 싶어 가슴 속의 “가슴애 피”를 긁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낙서였다.
공부하러 연습장을 펼쳐놓고 방정식을 푸는 대신 여학생의 이름을 적었고. 좌절과 번민과 슬픔과 소외를 쓰고 그리움과 사랑을 그적 거렸다.
그래서 나는 낙서의 가치를 안다.
낙서는 함축된 언어이며 간결한 시다.
나는 정형시 특히 서정적인 정형시를 좋아한다.
따라서 요즘의 산문시는 내 개인적으로는 압축하지 못한, 시가 되지 못하여 늘어놓은 사설에 불과하다고 고집을 한다.
운율에 맞추어 어찌보면 시조 같고, 어찌 보면 시 같은 서정적 시조형 정형시를 나는 좋아한다.
아마 짧은 낙서를 쓰던 버릇이 있어서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핸드폰, 컴퓨터등 오히려 우리 때보다 낙서의 도구들이 더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쓰기를 싫어하고 읽기를 싫어하며, 감각적으로 순간을 자극하는 지나가는 그림들을 좋아한다.
그러니 머릿속에 생각하는 사고가 있을 수 없고, 사고력이 길러 질 수도 없고 따라서 적확한 어휘도 모르고, 유행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생겨난다.
글은 말의 표현이며 말은 생각의 표시이다.
그런데 생각이 없으니 뱉는 대로의 말이고 그 말도, 말이 안 되는 공해로 나오게 된다.
낙서!
그 속에는 나만의 모든 궁전을 지을 수 있고, 아름다운 왕비와 멋진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고, 알프스에 가서 하이디도 만날 수 있고, 백설 공주도 만날 수 있는 것이 낙서이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사계절의 모든 꽃을 피울 수 도 있고, 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낙서가 없어졌다.
연필로 그적거릴 수 있는 낙서시간이 없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낙서 대신 졸아야 한다.
그 시간에 옷 벗고 춤추는 아이 돌을 보아야 하고, 가방 메고 학원에 가야 하고, 엄마. 아빠가 데리고 조금만 함께 나가면 온통 시골인데 돈 주고 체험학습장에 가야한다.
난 현명하셨던 엄마에게,
내 동시를 읽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에게,
편지를 읽어 주시며 받아 쓰게 하셨던 엄마에게, 그러면서 나에게 퇴고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엄마에게 오늘도 연습장에 낙서를 한다.
“엄마 잘 계시죠?”
“보고 싶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