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아이들의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 기다리다 잠들 때를 놓쳤습니다.
잠시 뒤척이다가 깜깜한 새벽이지만 몸을 일으킵니다.
잠들 때를 놓치면, 뒤척이지 말고 차라리 일어나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 밤에 대구로 내려갑니다.
정성을 다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5월의 마지막 날에 열왕기상을 마무리하며
언제나 그러하듯이 풍성한 은혜 주시는 주님을 기대합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50.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5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 그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 바알을 섬겨 그에게 예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기를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본문 주해)
41~42절 :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4년에 남 유다의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된다.
여호사밧이 35세에 왕이 되어 25년을 다스리는데, 그에 대한 평가가 역대기에는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열왕기에는 그의 과오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43~47절 : 여호사밧의 공은 자기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이다.
아버지 아사가 그랬듯이(왕상15:12) 여호사밧도 남색하는 자(남창)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다.(46절) 다만 산당을 없애지 않아 백성들이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또 여호사밧은 그는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에돔을 속국으로 삼고 장관을 보내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47절)
그런데 여호사밧의 과오가 있다.(44절)
아버지 아사는 평생 북이스라엘과 대적 관계였지만, 여호사밧은 아합과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이었다.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사위가 된 것인데, 아합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에 끼친 패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48~50절 : 여호사밧이 옛날에 솔로몬이 에시온게벨에서 선단을 보내어 금을 구하여 오는 것처럼(왕상9:26) 무역으로 국력을 신장하려고 선단을 보낸다. 그런데 에시온게벨에서 파선이 일어난다. 그러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자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하시야의 아버지 아합과는 화평을 하였지만, 그 아들 아하시야와는 화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역대기에는 여호사밧과 아하시야 사이에 이미 교제가 있었고, 이에 대해 선지자가 여호사밧을 꾸짖는 장면이 있다.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대하20:37)
아하시야와의 단절로 인해 여호사밧은 무역을 하여 이익을 남기지 못하게 되었기에 엄청난 국가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의 도움을 거절한 것은 여호사밧이 파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한 아하시야와의 교제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여호사밧이 죽고 그 아들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다.
51~53절 :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겨우 2년 동안 재위에 있게 된다.
그가 간 길은 아버지 아합의 길, 어머니 이세벨의 길 그리고 우상 숭배자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고 표현함으로, 그는 아버지 아합처럼 하나님을 노하게 한 자임을 밝힌다.
(나의 묵상)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나란히 등장한다.
아하시야는 최고로 악한 아합왕과 최고로 독한 우상숭배녀 이세벨에게서 태어나 자란 자식이므로 바알을 숭배함으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여호사밧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아쉬운 마음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44절)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된 단 한 줄의 짧은 문장이지만, 이로 인한 남유다의 역사는 위기에 처해진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화평했다는 것은 그 자식들을 정략결혼 시킴으로 가족관계가 된 것이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아내는 악명 높은 아합과 이세벨의 사이에서 난 딸 아달랴였다.
이 아달랴로 인해 남유다 왕조의 씨가 마를 뻔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요아스가 남겨지는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여호람과 아달랴의 결혼은 여호사밧과 아합의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강했기에 여호사밧은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이는 여호사밧의 치명적인 실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이제 ‘파선’ 사건까지 일어나자,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린다. 우상숭배자들과 손잡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호사밧에게 있어서 ‘파선’은 어긋난 길 가는 것을 그치고, 바른 길 가는 계기가 된다.
우상숭배자와의 인연 때문에 꼬이고 꼬인 인생을 살아야 하지만, 이제 그것을 정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복음을 알게 된 것이 여호사밧이 당한 ‘파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적으로는 복 중에 복을 받은 것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바닥을 치는 일이다. 복음을 알게 됨으로 세상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자기부인의 길이니, 여러 모로 손해를 볼뿐만 아니라,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것이 다반사인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그러나 이 비장한 말씀과는 달리, 한없는 위로의 말씀도 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전6:8b~10)
물론 바울 사도의 삶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참으로 포실한 나의 삶이지만, 복음을 기준으로 한 내 삶의 전후 내용은 180도로 달라졌다.
주님께서, 세상을 벗어나게 하시고 아들의 나라로 진입하게 하시어, 이런 비장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에 다 아멘 하게 하신 것이다.
아하시야와 다시 손을 잡고, 파선한 것을 보수하며 힘을 합치면 여호사밧은 얼마든지 경제적 손실을 메꿀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이미 악한 아합의 삶을 보았고, 어쩔 수 없이 왕복을 입고 나섰다가 전쟁 중에 죽을 뻔한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서 구해 주셨고(왕상22:32~33), 아하시야와의 교제에 대한 하나님의 꾸지람(대하20:37)을 들었던 터라 다시 그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파선하게 하심으로 생명의 길을 보이셨는데 어디로 가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세상방식을 따라 사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는다.
파선이라도 시키셔서, 그 길이 아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여호사밧 왕의 파선 사건은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이다.
주님이 내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알게 되었는데, 다시 세상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용쓰지 않는다. 아히시야가 내민 손을 거절하는 것은 세상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붙잡는 삶인 것이다.
여호사밧에게 아쉬움이 많은 열왕기 기자의 마음을 읽지만, 나는 파선 이후 그의 행보에 초점을 두고 싶다.
비록 주님 앞에 자주 엎어지고 자빠지는 일을 반복하지만, 아하시야의 손을 잡지 않는 내가 되도록 성령께서 늘 도와주시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여호사밧 왕에게 생명의 길을 인도해 주신 주님,
제게도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인간이 있어 주님 앞에 온전히 서겠습니까?
스스로는 될 수 없는 그 일을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또 다 이루어 주십니다.
복음을 들음으로 세상 속에서 파선을 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 믿던 것이 다 끊어짐으로 죽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참 생명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한결같이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