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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의 뿌리는 “교회”가 아니라 “언약”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서 특정 땅으로 보내시고 민족을 이루게 되고 복을 받아 그의 이름이 창대해지고 복의 근원이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창12:1-3). 그리고 약속을 이루는 것은 여호와의 말을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되었다(창26:3-5). 이런 언약을 아브람과 세우셨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는 것도 대대로 복을 받고 명성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 것이다. 이 영생의 언약 때문에 우린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언약을 세우셨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언약이 핵심이다. 만약 언약이 없는 교회라면 어떨까?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26:3-5)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안에서 완성되었다.
이것이 성경적 ‘루트(뿌리, שׁרשׁ)’이다.
로마서 11장은 우리(이방 신자)가 “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은 가지”라고 한다.
즉, 우리의 뿌리는 로마 교회가 아니라 히브리적 언약 공동체입니다.
2 아브라함 언약의 본질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셨다.
“내가 너와 네 후손 사이에 내 언약을 세우리니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라.” (창17:7)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심과 땅·후손·복의 약속”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언약에 ‘순종’함으로 유지되는 관계였다.
그 증표로 '할례(언약의 표)'가 주어졌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서며 이렇게 응답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19:8)
“모든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리이다.” (출24:7)
이 고백이 바로 “언약의 아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이스라엘이 공동체적으로 받아들여 완전한 언약 백성이 되는 순간이다.
3 언약의 핵심: 계명과 명령
언약은 항상 말씀(계명)을 포함한다.
창26:5에서도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고 하셨다.
즉, 율법은 언약의 조건이 아니라 언약의 표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바로 '토라(תּוֹרָה, 삶의 길)'이다.
4 예슈아께서 언약을 새롭게 세우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눅 22:20)
새 언약은 계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 (렘 31:33)
즉, 토라가 마음에 새겨지는 언약의 완성형이다.
아브라함의 언약 -> 시내산의 언약 -> 예슈아의 새 언약
이 세 흐름은 모두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를 계명으로 묶는 하나의 줄기이다.
“시내산에서 아멘이라 화답한 명령들”
그게 바로 언약의 실체이다.
“아멘”은 “진실로 그렇게 행하겠습니다(אמן, 믿고 지탱한다)”는 뜻이다.
5 십계명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1) 나는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 하나님의 유일성
2)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 -> 우상 금지
3)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시간의 구별, 창조의 질서
5) 부모를 공경하라. -> 가정의 질서
6) 살인하지 말라. -> 생명의 존귀함
7) 간음하지 말라. -> 언약적 정결
8) 도둑질하지 말라. -> 정의
9) 거짓 증거하지 말라. -> 진실
10) 탐내지 말라. -> 내면의 순결
6 가톨릭의 십계명 변개
가톨릭 교리서를 보면 십계명의 배열과 내용이 성경과 다르다. 이건 단순한 “번역 차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신학적 의도'에 따른 재배열과 생략이다.
1.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너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 1+2계명이 합쳐짐 (우상 금지 부분 생략)
3. 주일(일요일)을 거룩히 지켜라. ->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
10. 탐내지 말라(두 조항으로 나눔) -> 10계명을 9,10으로 나누어 수를 맞춤
가톨릭에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안에 “우상을 만들지 말라”를 포함된 의미로 해석하면서 별도의 독립된 계명으로 분리하지 않았다.
실제로 성인상, 마리아상, 예수상 등 많은 형상과 이미지를 예배 보조물로 사용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출20:4,5)
따라서 이 부분이 가장 큰 신학적 차이이자 “계명의 변개”이다.
7 샤밧을 지키는 것은 예슈아의 습관이셨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습관을 좇아)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16)
이 구절은 예슈아께서 안식일을 율법적 의무가 아닌 ‘삶의 습관’으로 지키셨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예슈아는 어린 시절부터 토라 안에서 자라셨고,
성인 때는 샤밧마다 회당(시나고그)에 들어가 말씀을 낭독하고 가르치셨다.
즉, 예슈아의 예배 패턴은
“샤밧 -> 회당 -> 성경 낭독과 토라 가르침”이라는 토라적 질서 안에 사셨다
8 초대 교회 시대에 샤밧은 여전히 지켜졌다
1~2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예슈아의 제자들과 유대인·이방 신자 공동체는
토라의 연장선 안에서 샤밧(토요일)을 지켰다.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에 들어가 강론했다”(행17:2, 18:4)고 기록되어 있다.
예슈아의 부활 이후에도, 초대 제자들은 ‘안식 후 첫날’을 예배를 위해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예슈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무교절(절기 안식일) 다음 날인 초실절이기에 일요일이 “예배일”로 제도화된 적은 없다.
9. 2~3세기: 태양신 숭배와 “일요일의 신성화”
로마 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태양신 숭배가 중심 종교 중 하나였다.
“일요일(Sunday)”이라는 말 자체가 ‘태양의 날’을 의미한다.
로마인들에게 일요일은 태양신에게 경배하는 날이었고,
“빛과 생명의 신”을 상징하는 태양은 황제의 상징이기도 했다.
3세기 초,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 그리고 나중에 아우렐리아누스 때
“태양신”이 제국의 공식 신으로 선포됩니다.
이때부터 '일요일'이 국가적 신성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0 태양신을 향해 목을 맨 역사가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수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서 목을 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하시니라.
이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자기에게 속한 자 중 바알브올에게 연합한 자를 죽이라 하니라.” (민25:4,5)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수장)들이 태양신 숭배와 음행으로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태양을 향하여” 달게 하심으로
거짓 신에게 향하던 얼굴을 심판의 대상으로 돌리셨다.
11 정치적 통합을 위한 일요일
4세기: 콘스탄틴의 칙령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321년에 내린 칙령이 결정적 전환점이다.
“모든 재판관, 시민과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Codex Justinianus 3.12.3)
즉, “Sunday(태양의 날)”을 국가적 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이때는 아직 가톨릭이 ‘예슈아의 부활’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통합을 위해 로마의 태양신 숭배 전통과 기독교 예배일을 결합한 것이었다.
12 가톨릭화 과정: “부활의 날”이라는 신학적 포장
콘스탄틴 이후, 니케아 공의회(325년)를 거치면서 가톨릭(로마 교회)이 제국의 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요일을 “예슈아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날”로 공식 선언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 문헌을 보면, 이 ‘부활 기념일’은 신학적 근거라기보다 정치적 포장에 가까웠다. 이미 “태양의 날(Sunday)”을 거룩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은 이교적 전통을 교회 안에 융합시킨 것이다.
실제로 “Sunday worship”이라는 표현은 4세기 이후 문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13 “때와 법을 바꾸는” 실제적 사건
결과적으로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것은 예슈아의 명령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태양신 숭배 전통과 정치적 통합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다.
교회가 제국의 권력 아래 들어가면서 토라적 언약의 시간(샤밧) 대신, 인간이 만든 시간(일요일)이 예배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니엘 7:25의 말씀 “그가 때와 법을 변개하려 할 것이며…” 의 역사적 성취로 보고 있다.
14 계명은 언약의 기준이므로 변개는 중대한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새기신 것을 인간이 바꾸면,
언약 자체가 왜곡된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도 이 부분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
루터 이전의 왈도파(Waldensians), 위클리프, 후스 등은
“하나님보다 교황의 권위가 높아진 결과”라고 경고했다.
예슈아께서도 십계명을 폐하신 적이 없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그분은 오히려 계명의 참된 의미를 회복시키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요14:15)
즉, 참된 제자는 인간의 전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15 때와 법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권위로 대체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때와 법을 바꾼다”(단7:25)는 건 단순히 달력이나 규정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구별하시려고 주신 “거룩한 시간(샤밧·절기)”과 “거룩한 기준(토라)”을 인간의 권위로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때와 법”
때 : 창세기 1:14에서 이미 “절기(모에딤)”가 창조 질서 속에 포함되어 있다.
-> 하나님께서 자신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시간을 통해 구별하신 것이 샤밧과 절기이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라.” (출 31:17)
법(תּוֹרָה) : 언약의 기준이자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길이다.
-> 법이 바뀌면, 언약의 관계 자체가 바뀐다.
16 바벨론은 진리(언약)가 없는 연합이다
다니엘 7:25의 “그가 때와 법을 변개하려 한다”는 예언은
후대에 실제로 샤밧을 일요일로, 절기를 이방 절기로 바꾼 역사와 맞물려 있다.
이로써 사람들은 “언약의 표징”을 잃고, 세상 종교적 통합, 곧 “큰 성 바벨론”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벨론은 혼합의 영, 진리 없는 연합의 상징이다.
17 샤밧과 절기 :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
샤밧은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 하는 여호와의 표징”이다 (출31:13)
-> 곧, 누가 하나님께 속했는가를 드러내는 표징이다.
세상 종교는 샤밧과 절기를 “성령의 인도 없이” 지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의 임재 안에서만 지켜지는 언약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의 영(불순종의 영)은 이때를 미워하고, 대신 “인간이 만든 시간”을 거룩한 날로 포장한다.
18 하나님께서 “때와 법”을 주신 목적
주님의 백성을 세상에서 구별하여 언약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영생을 주시려는 것이다.
반대로, “때와 법을 바꾸는 세력”은
언약에서 벗어나게 하여 혼합 속으로 끌어들이는 바벨론의 영이다.
그러므로 샤밧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생명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표시이다.
19 가톨릭과의 “연합 운동”이 위험한 이유
1) 언약이 없는 연합은 빛과 어둠의 타협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고후 6:14–15)
하나님은 단지 ‘통합’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으로 ‘구별됨’을 명하셨다.
2) 진리보다 일치(연합)를 우선시할 때, 결국 진리(언약)가 사라진다.
언약이 빠진 일치는 어둠의 통합으로, 영적 배도이다.
계시록 17장은 “큰 바벨론, 음녀의 포도주로 만국이 취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20 성경의 하나됨은 ‘진리 안에서의 연합’이다.
예슈아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17:21-23)
이 말씀을 근거로 사람들은 교단을 통합하고 가톨릭, 이슬람, 다른 종교들까지 함게 통합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종교의 뿌리는 결국 하나라면서 모두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할 종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진리(언약)'이 중요하다. 진리는 표증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고 뿌리를 증명한다.
우리 진리의 언약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뿌리임을 증명하게 된다.
즉 예슈아가 말한 ‘하나됨(אחדות)’은 진리 안에서의 연합이다.
같은 영, 같은 순종, 같은 진리로 연합해야 한다.
진리(토라)가 빠진 연합은 이교 종교들의 통합이다.
그들은 언약이 없는 함의 자손 바벨론의 뿌리이다. .
요17:19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1 토라 준행이 없는 연합은 ‘영이 다른 연합’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출19:5,6)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언약과 토라 준행 위에서 세워졌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은 이름만 백성이고, 본질상 이방인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2:3,4)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순종의 영’이 아닌 ‘불순종의 영’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연합”을 말하면서 토라를 거부한다면,
실제로는 다른 영에 속한 연합이다.
22 “순종의 영”과 “불순종의 영”의 차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라(겔36:26,27).
성령(여호와의 영)은 ‘율례를 행하게 하는 영’이다.
다시 말해 토라 준행을 싫어하는 영은 성령이 아니라, ‘불순종의 영’이다.
그래서 불순종의 영을 가진 사람은 언약의 사람과 함께 설 수 없다.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따르며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음성을 청종하라.” (신13:4,5)
하나님은 “순종으로 구별된 백성”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지,
타협된 종교 연합으로 구원하지 않으셨다.
23 ‘언약 없는 연합’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이유
다른 영은 다른 왕국에 속한다.
불순종의 영은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없고, 결국 대적의 진영에 서게 되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엡2:2)이다.
순종의 영은 빛을 따르고, 불순종의 영은 어둠을 따르다.
빛과 어둠은 결코 함께 설 수 없다.
“의와 불법이 어찌 사귀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4)
따라서 토라 없는 연합은 결국 배도의 연합이다.
처음에는 “평화와 사랑”을 말하지만,
종착점은 “진리를 버리는 연합”, 즉 큰 바벨론의 길로 흘러간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그 음녀에게서 나오라,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24 왜 진리 없는 연합이 결국 ‘반이스라엘’로 흐르는가?
언약이 없는 연합은 신앙의 뿌리를 부정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명이 아니라 언약의 틀이다.
언약을 거부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토라를 거부하면, 정의(צדקה)와 의(משפט)가 무너진다.
불순종의 영은 항상 “율법은 옛것”이라 말하며 인간 중심 신앙을 세운다.
그러나 계시록 12:17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슈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참된 남은 자(손)라고 선포한다.
‘거짓 평화’는 결국 거짓 메시아를 맞이하게 합니다.
진리가 없는 연합은 ‘모두가 하나 되자’는 이름으로 적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다
참된 신부(브리트의 백성)는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으로 구별되지만, 거짓 신부는 인간의 체제와 권세에 순종한다.
25 언약”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백성도 사라진다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내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출19:5,6)
하나님은 “믿음 고백”이 아니라 “언약 준행”을 백성의 증거로 주셨다.
언약이 깨지면,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해도 본질은 이방인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돌아오라, 언약으로 돌아오라(שׁוּב שׁוּבָ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율법을 범하였음이라~
이스라엘이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르리라.” (호8:1-3)
즉, 언약의 부재는 자동으로 “원수의 지배”를 불러옵니다.
26 언약이 없는 곳에 불법의 영(רוּחַ הָאָוֶן)이 역사한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나니…
진리를 사랑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미혹의 역사를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시리니.” (살후2:7-10)
불법(ἀνομία, 아노미아)은 토라의 부재를 의미한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33)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언약(계명)이 없는 자들은 주의 나라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단지 특정 교파나 국가가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적 목적을 위해 여러 교파·제도·철학이 섞일 수 있다.
이들은 오히려 언약에 속한 자들을 “배교자, 근본주의자”라 부르며 대적할 것이다.
27 바벨론의 영은 안식을 얻지 못한다
바벨론은 혼합을 통해 평화를 흉내 낸다.
“율법을 지킬 필요 없다, 진리보다는 사랑이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묶는다.
하지만 그 중심은 말씀의 권위를 인간 제도로 바꾼 체제이다.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들의 원수에게 안식을 주지 아니하시리라.” (렘50:33,34)
바벨론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은
‘언약으로 돌아가는 회복’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하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슈아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 (계14:12)
마지막 시대의 참된 성도는
‘토라의 순종 + 예슈아의 믿음’ 이 두 기둥 위에 서 있어야 한다.
28 비유로 이해하기
어느 날, 큰 왕이 잃어버린 반지를 찾고 계셨어요.
그 반지는 왕과 신부의 약속의 표시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 반지의 모양만 본떠
수많은 가짜 반지를 만들었어요.
모두들 “이게 진짜다!” 하며 모였지만,
왕은 단 한 가지를 보셨어요.
“내 인(Seal, 언약)이 새겨져 있느냐.”
가짜 반지는 아무리 빛나도 왕의 인이 없었고,
오직 진짜 반지, ‘언약의 인’만이 왕의 손에 맞았어요.
마지막 날, 신부는 그 반지를 손에 끼고
왕 앞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으로 돌아온 자’의 표징입니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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