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모공지를 보고 따라가 봤더니 참 재미있는글이 있어서 퍼 올립니다.
장형일님은 진지하게 쓴글 같은데 제에겐 참 유쾌한 글로 읽힘니다.
놀땐 놀고 일할때도 논다. 일할때도 놀고 싶으면 논다고 하면 더 이해가
쉬울까요. 땡땡이 많이 못쳐본 저로서는 한명쯤 있었으면 하는 친구네요.
[제목]놀 땐 놀고 일할 때도 논다
[저자]장형일
작년, 아니 재작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는 돈과 시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건 다름 아닌 사람 만나서 놀러 다니는 것이었다. 직장생활 하는 놈이 놀 시간은 뻔한 거고 거기다 적은 월급 받으면서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얘기를 하자면 이렇다.
일 끝나고 사람들하고 술 마시다가 조금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살살 꼬시는 거다.
“야! 우리 내일 제낄래?”
“안 돼! 우리 일 바빠.”
“야! 너 하루 쉰다고 회사가 망하냐. 기차 타고 놀러가자, 내가 차비 댈께.”
이 정도 얘기가 나올 때면 반은 꼬신 거나 다름없다.
물론, 평일 날 회사를 안 나가는 일은 많아야 일 년에 두, 세 번이다. 아니, 그것도 양심에 찔리고 욕먹는 일이다. 그냥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서로 술자리에서 사는 얘기를 하다보면 막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잘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도 그렇다.
한 달 전에도 친구 꼬셔 가지고 수락산에 놀러 갔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계곡물에 발 담그고 제주도 조 껍데기 막걸리, 서울 생막걸리, 동동주에 도토리묵 먹고 대낮에 알딸딸하게 취하는 기분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아이고! 지금 한가하게 놀러 다니는 얘기하려는 게 아닌데 이야기가 길어졌네….
자아! 직장 생활하면서 이렇게 하려면 월차 휴가를 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하루 전날 휴가신청을 해야 하고, 급하게 일이 있을 때는 그 날 아침에 전화를 걸어서 말하고 다음 날 휴가를 낸다.
이것도 하나의 노무관리로 보통 주임까지는 현장에서 형님, 동생처럼 지내니까 서로 이해하는 것이 많아 걸리는 것이 없지만 문제는 사무실에 있는 과장이다. 휴가 신청서를 써야 하는데 그 전에는 전화만 해도 부서 책임자들이 알아서 휴가 내줬는데 몇 달 전부터 반장, 주임, 과장까지 거쳐야 휴가 처리가 되는 것이다.
거의 쉬기 전날 휴가를 내지만 연휴가 겹쳐 있다던가 앞에서처럼 갑자기 하루 제껴 버리면 아침에 전화를 한다.
“주임님! 오늘 아파서 못 나가겠는데요, 도저히 안 되겠네요.”
“아프긴 개코가 아파, 어제 저녁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지나치는 말로 욕하고 그래도 서로 처지를 잘 아니까 솔직하게 얘기한다.
“오늘 쉬어야겠네요, 하루 좀 봐줘요, 예!”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는 일일이 전화를 해 준다. 아니면, 문자로 못 나가서 미안하다고 보내기도 하는데 사무실에 있는 과장하고는 어려운 점이 있다. 지난 한식 때 연휴 겹쳐서 시골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주임한테는 보름 전부터 휴가를 낸다고 얘기를 해 놨다. 시골 가기 전날 휴가 신청서에 과장 도장을 받는데
“과장님! 휴가 내야 돼요.”
신청서를 보여 주니까 얼굴을 구기면서 짜증나는 말투로
“시골 갔다오는데 며칠이나 걸려….”
“연휴 끼고 그래서 내려간 김에 하루 더 쉬다가 올려고요.”
“일 바쁜지 알면서 무슨 얘기야….”
나도 평소 회사의 휴가 제도에 못마땅해 하던 터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씨발 솔직하게 말해도 지랄하네’ 손에 들고 있던 장갑을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일 바쁜 거 몰라서 그럽니까. 내 할 일 다 해놓고 휴가도 하루 전에 이렇게 내는데, 문제가 뭔데요? 내가 한 달 일해서 내 휴가 내가 쓰는 것 아닙니까?”
“네가 너 휴가라고 말하면 할말은 없지만….”
휴가는 냈지만 과장하고 풀어야 할 것 같아 내가 성질 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십 분 정도 잔소리를 들었다.
그 뒤로 수락산 갔다온 다음 날 휴가 내러 갔더니 웃으면서
“어제 왜 안 나왔어?”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나도 멋적게 웃으면서
“날씨가 좋아서 친구하고 봄바람 쐬러 갔다왔어요”
과장이 어이없는 얼굴로 성질은 못 내고
“참! 솔직해서 좋다. 주임은 너 아파서 못 나온다고 하던데”
“내가 아침에 전화로 그렇게 얘기했어요.”
서로 껄끄러운 사이인데 억지로 웃으며 대하기 힘들었다. 그 뒤로 친구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형이 결혼하고 전라도로 신혼여행 가는데 광주까지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다시 월요일 날 휴가를 내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주임하고 얘기가 되었다.
휴가 신청서를 써서 주임이 도장을 찍어주면서
“너 과장한테 뭐라고 말할거야?”
“그냥 결혼식 기사 한다고 그러면 되죠.”
주임이 내가 뻔히 어떻게 말할지 아니까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내 걱정이 아니라 자기가 과장한테 잔소리 듣기 싫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지 말고 너 무릎 아픈 거 아니까 병원에 간다 그래.”
“그러다 진짜 병원 갈 땐 어떡해요?”
“진짜 병원 가면 되지….”
또 휴가 때문에 과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 그보다 내 휴가를 내는데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하고 무슨 죄라도 지은 것같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더 싫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우리 주임을 봐서 그냥 병원에 간다고 했다. 진짜 싫다, 싫어. 내가 조금만 힘이 있으면 확 바꿔 버릴 꺼다. 꼭.
일이 많을 때는 잔업, 특근 한 번 빼는 것도 어려워 책임자 눈치봐야 하는 것이 현장이다. 그래도 돈벌이가 얼마 되지 않아서 걱정하는데, 거기다 자기 쉬고 싶을 때 쉬고 볼일 있을 때 빠지고 이러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하지 휴가 내고 들어가서 쉬라고 해도 안 낸다. 물론 돈도 돈이지만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하고 쉴 때 같이 쉬는 것이 몸에 베여서 또 그게 서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 같이 팔자 좋은 놈은 없지.
아아! 내일도 하루 제끼고 산에 가서 동동주나 한잔 마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