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실 때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처럼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를 1973년 ‘첫 영성체’ 교리를 받으면서 외웠습니다. 어느덧 50년이 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가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준 곳이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는 각 나라의 언어로 주님의 기도가 벽에 붙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어로 된 ‘주님의 기도’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혹의 바람에 흔들리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흔들리는 것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유혹에 흔들리더라도 그 유혹에 깊이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혹에 깊이 빠져들면 하느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유혹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교만’입니다. 뱀의 모습으로 온 사탄은 하와에게 이렇게 유혹합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이 하느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유혹입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교만’이라는 유혹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존경받던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교만’이라는 유혹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교만’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시기와 질투’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합니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아벨’을 들판으로 데려가서 죽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카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시기와 질투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세 번째 유혹은 ‘욕망’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거인 골리앗을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욕망’이라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바세바의 아름다움에 취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도 잊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장군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우리야가 바세바의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욕망의 덫에 걸려서 넘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직자도, 수도자도 욕망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네 번째 유혹은 ‘욕심’입니다. 아합왕은 자신의 포도원이 많았지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욕심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갈증 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재물을 많이 가졌습니다. 창고를 세우고 재물을 채웠지만 부자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일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벌어진 일을 해석하면서 성장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경험이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해석하는 마음에 따라서 내가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혹의 바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유혹이 사라지기를 기도하기 보다는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에파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부정의 문을 열고 긍정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문을 열고 희망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분노의 문을 열고 용서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미움의 문을 열고 사랑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탐욕과 욕망의 문을 활짝 열고 나눔과 봉사의 문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병자들, 굶주린 이들에게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권한과 능력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시대의 ‘에파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교만의 바람이 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의 바람이 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욕망의 바람이 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욕심의 바람이 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