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근하면서 배낭을 메고 왔다.
친구 오협이와 산행을 하기로 했었다.
9시에 주안에서 출발하면서 “연락을 할까” 하다가
연락이 없으면 일요일에 편하게 쉬는데 방해 될까 봐
그냥 혼자 산행을 하기로 했다.
석수역에 내렸다.
사람들이 저마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일행들을 기다리며 서성인다.
통로에 쪽 늘어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왔다.
적당히 쌀쌀함이 묻어 있는 날씨라서 좋다.
옷은 고민을 하다가 윗도리를 얇은 파카를 껴입었다.
김밥을 한 줄 샀다.
떡집을 지나치는데 백설기에 콩을 넣은 떡이 맛있다며
국산 콩이라면서 주인 양반이 말을 건넨다.
어제 집에서 나올 때 귤을 조금 넣어두었다.
호암산 쪽으로 길을 잡고 올랐다.
며칠 전에 내린 눈으로 잔설이 남아있다.
무리 지어 오르는 사람들에 섞여서 올라갔다.
이곳은 혼자서 다녔던 길이다.
소곤대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일행으로 섞여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의미를 잃어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로 들려온다.
사람들은 수없는 단어들을 연결하면서
잠시도 쉬질 않는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버거워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쉼 없이 이어가는 대화 속에서 나도 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대화 속에 내가 끼어들어야 할 이야기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형제들과의 대화라도 나는 별로 끼어들 필요성이 없을 때가 많다.
그러한 나를 두고 아내는 나에게 뭔가 같이 대화하기를 원하지만
나는 그냥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한 아내를 보면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남들의 대화에 별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늘 혼자서 등교를 했었는 이유도 있다.
초등학교 때에 혼자서 학교를 오가면서 자연과 교감한 시간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추억이고 생활이었다.
그때의 감성과 기억을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자연과 함께 느끼고 호흡한 시간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나무와, 구불하게 이어진 오솔길과, 길가에 뽑혀진 풀 무덕과,
작은 개울에서 흐르는 물과, 상큼한 공기와의 교감의 기억들...
사실 언어라는 것은 가장 소중한 감성이다.
언어가 없다면 아주 절실한 교감은 없을 것이다.
특히 모국어는 자신의 모든 영혼의 교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국어를 익힌다.
날숨이나 들숨 하나에도 모국어의 의미는 같이한다.
그냥 “집에 갔다.”라는 의미가 외국어로 표현하자면
그냥 집에만 갔지만, 모국어일 때는 다르다.
그 언어 속에 숨어있는 많은 의미들을 어찌 다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한 나라에서 가지는 글자와 모국어의 언어는
자신에게 영혼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잔설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상큼한 공기로 호흡하며 산을 오른다는 것은 행복하다.
혼자일 때보다 무리 지어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같이 산을 오르니 쉽게 산을 오르는 느낌이다.
산행 중에 자신을 뒤돌아보거나 주변 자연을
은밀하게 바라보기는 어렵지만 쉬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호암사에 들렀다가 다시 걸었다.
내가 사랑하는 양의 모습으로 화석이 된 자리까지 왔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묻어있는 자리.
어쩌면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만나서
이곳 낭떠러지 위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화석 속에 있다는 마음이 들어 애잔하다.
넘어지려는 아사녀의 손을 잡지 못했다면...
아니면 손을 잡고 서로의 무게를 못 이겨 같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면...
그러한 생각으로 그들의 추억이 묻어있는 이곳 화석의 자리에 오면
항상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되새긴다.
잠시 그곳을 머물다 삼성산 쪽으로 길을 잡아 나섰다.
음지로 된 산길 주변은 온통 하얀색으로 겨울 모습이 완연하다.
하지만 아직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계절이 이미 겨울의 중간에 들어서 있다.
얇은 파카를 덧입어서인지 덥다.
파카를 벗자니 추울 것이고, 벗자니 더운 애매한 모양새다.
그냥 자크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걷는다.
약간 허기를 느껴 귤을 몇 알 먹으며 걷는다.
눈이 많이 내린 산의 풍경도 아름답겠지만
잔설 속에 모습을 보인 관악산의 모습도 무척 아름답다.
삼성산 송신탑에서 다시 무너미 고개 쪽으로 내려갔다.
관악산이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아 점심을 먹었다.
김밥 한 줄에 귤 두어 개를 먹고 더운 커피를 마시니 행복하다.
한참을 건너편 관악산을 바라보며 쉬었다.
무너미 고개에 도착해서 약간 망설였다.
사람들은 거의 이곳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만 관악산을 오르고 있다.
관악산을 오르기에는 약간 시간이 모자랄 듯도 하다.
이곳에서 서울공대 쪽으로 내려가야 하나
아니면 욕심을 내서 관악산까지 올라야하나?
집에 아이들도 걸리고 아내의 목소리도 걸린다.
하지만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발은 이미 관악산을 오르고 있다.
학바위를 지나 뒤돌아온 길을 바라보니 멀리 삼성산 송신탑이 보인다.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고 있다.
눈부심이다.
모처럼 만의 산행으로 힘이 딸린다.
배낭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먹었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는 시간이 찬란한 햇살에 휩싸였다.
세시가 넘어서야 관악산 연주대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연주대는 아래쪽에는 음영이 서둘러 자리하고 있었다.
약간 마음의 조바심을 느끼며 연주대로 올랐다.
어찌 이곳까지 와서 관악산 정상을 밟지 않고 가리오.
관악산 정상에는 넘어가려는 햇살을 자리하고 사람들이 앉아있다.
바위에는 환한 빛으로 따뜻하다.
연주암을 둘러보고 사람들 주변 바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사당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그래도 과천으로 내려가는 것이 나을 것이란다.
과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
어두움이 금방 몰려올 풍경이라 사람들이 모두 서둘러 내려간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다.
아이젠을 한 사람은 괜찮지만 등산화만 신은 사람들은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며 내려간다.
나도 몇 번을 넘어지려는 것을 중심을 잡으며 내려갔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이 되었지만 약간의 허기로
가지고 간 떡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셨다.
이젠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려가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
나는 천천히 더운 커피를 마시고 산을 내려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랜턴을 켜고 내려왔어야 했다.
오늘 모처럼 즐거운 산행을 했다.
내 욕심만 채운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첫댓글 엄청난산행기잘읽고간다
한해를마무리하는싯점에서
나만의시간의미있었겠다
늘건강하고행복하기를..
이번 새재사랑산악회 가고 싶은데...모임이 있어서..우째 해야 할지...항상 안전 산행 되시고~~~~내년에도 즐거운 산행 하자구여^^
석수역에서 과찬향교까지의 거리가 만만찮은데 대단하이..
난 따로따로만 산행을 해봤지 연계해서는 못해봤는데...
겨울산행은 배낭에 항상 렌턴과 아이젠을 넣고 다녀야 만약을 대비한다우..
어련히 알겠지만서도..
건강미 넘치는 아우님의 얼굴이 참 보기좋네..
이번에 설마 해서 아이젠을 가져가지 않아서 혼났습니다...살이 조금 더 붙었습니다...빼야하는데 걱정입니다..^^
삼성산은 오래전 가보았는데 관악산, 호암산은 못가서 사진 잘보았습니다.
호암산은 쉽게 가는 산입니다...
관악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입니다...
천천히 한번 오르십시오..^^
아주조아~~~ 산행기도 잘 쓰고 ~~~ 우째서 아들래미는 안 딜고 갔남~~~관악산은 서울의 3대 명산 중 하나라서 그런지 디기 좋아~~~도봉산,북한산 중에 난 북한산이 기중 조아여~~~ 그래서 자칭 "북한산 지킴이"~~~ㅋㅋㅋ
네,,,저도 북한산 가장 좋아합니다..^^
아들넘이 이제 살짝 빠지려하네요...
올해 초등 졸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