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경미한 교통사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이틀 전 퇴원했습니다) 휴대폰으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한 거란문자비에서 나름 흥미로울 만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북대왕묘지(北大王墓誌)』라는 거란대자비에서 '태왕(太王)'이라는 단어가 보인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거란(요)제국에서 창제된 거란문자는 크게 대자(大字)와 소자(小字)로 나뉘는데, 대자는 한자에서 적잖이 차용한 표의문자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 소자는 모양새는 한자와 비스무리하지만 위구르문자처럼 표음문자적인 성격이 강한 문자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거란소자가 더 많이 쓰였고, 현존하는 유물들도 거란소자비는 중요 유물들이 적잖이 남아있는 반면, 대자비는 굉장히 드문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거란소자에 대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글자들을 익힐 수 있는 반면, 대자에 대한 정보는 거의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거란대자에서도 특히 숫자 一, 二, 三, 五, 十이나 태후(太后), 태왕 등은 한자의 모양과 뜻을 그대로 차용한 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송기중, 「한자주변의 문자들」, 1988 참고). 거란어가 중국어와 다르니 발음은 달랐을 지라도, 태왕이란 단어가 우연히 모양만 비슷한 것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태왕'은 카페지기이신 김용만 선생님의 오랜 지론인 고구려 최고지도자(군주)의 칭호로 각인된 것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 『북대왕묘지』의 '태왕'이 고구려 금석문들에서 확인되는 '태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대왕묘지』에 대해 어느 정도 해독이 가능해야 '태왕'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을텐데(아님 저 당시 거란제국 관련 역사를 통해 확인하든지), 거란문자 특히 대자는 인터넷 정보만으로는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 실력으로는 그 용례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용례를 고구려 태왕과 성급하게 연결시켜서도 안 되겠지요.
(지인들과 논의하면서, 그리고 해당 비문을 좀 더 살펴본 결과 태왕이란 용례가 많이 나오고 태후 호칭도 보이는 걸로 봐선 아마 주인공인 '북대왕'을 가리키는 호칭이나 직책으로 볼 수 있을듯 싶습니다. 그런데 왜 비석 명칭은 북태왕이 아니라 북대왕으로 붙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ㅡㅡa)
만약 용례를 파악하여 이 '태왕'이 고구려 칭호와 관련이 있다면, 예전에 밸틴 형이 제기하신 거란 야율배의 호칭 '인황왕'과도 혹시 연결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 특이한 발견 하나 하고 쓴 잡소리였습니다. (__)
출처 - 바이두 '거란대자' 검색
첫댓글 p.s 쓰고 나서 들게 된 생각인데, 차후 나아가야할 공부의 방향은 『요사』나 『거란국지』 등 거란(요)제국 관련 사료들을 통해서 북대왕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단 거란사 전공이 아니고 석사과정생으로서 할 일들이 많은 고로 일단 패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조금씩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란에서는 칭제를 했는데 자신들의 황제에게 ~왕을 올리지는 않았을것 같군요. 태왕이 황제의 위상에 버금간다고는 하지만 태왕과 황제는 엄연히 다르죠.
그렇다고 거란 비문에서 고구려 왕을 등장시키고선 태왕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것 같고요.
물론입니다. 해당 비문 전체(인지 확실친 않으나...) 탁본을 확인해보면 황제 칭호도 따로 나오니, 저 북대왕(태왕)은 거란황제(가한)보다는 하위의 존재임에 분명합니다. 제가 조금 더 찾아본 결과로는, 북대왕(=북원대왕?)은 남, 북면관제와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