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먹으라 권했던 점심조작단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추석 연휴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살들 때문에 시름 깊은 독자들을 위해 다이어트 특집을 준비했다. 전과 떡의 나날은 이제 끝이다. 다이어트와 함께 하면 효과를 2배쯤은 높일 수 있는 다이어트 자극 영화 5편과 함께 감량을 준비하자. 찬바람이 분다고 방심 하는 사이, 올 겨울에도 당신은 혼자다.
먹는다, 먹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 눈앞에 머핀이 있다면? 우리의 현실은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까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이겠지만, 임수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에서 그녀는 아메리카노와 함께 천천히, 우아하게 먹을 뿐 아니라 용의주도하게도 현빈에게까지 강권해 자신의 몫을 나눈다. ‘음식을 천천히 먹어야한다’든가 하는 하나마나한 다이어트 수칙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미식이나 탐식을 철저히 제한해온 이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래야만 영화에서 내내 내리는 비를 맞아도 빗물이 흐르지 않고 고일 것 같은 쇄골을 가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교훈이다. 담배를 피울 때 드러나는 가느다란 팔목은 저런 팔로 남자의 가슴을 쳐야 이별의 고통을 빙자한 폭행이 아니라 진짜 서글픈 이별의 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게 묘사한 마지막 요리 장면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또 얻는다. 크림소스나 미트볼이나 온갖 해물이 없어도, 오직 야채만으로도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목을 되새겨보자. 먹는다, 먹지 않는다. 그렇다. 그나마 그 파스타도 먹지 않는다에서 끝난다. 윤이나
먹지 마, 마시지마, 걸을 거야 <공기인형>
제목부터 인형이다. 여기서부터 각오할 필요가 있다. <공기인형>(2009)의 배두나는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매’나 ‘11자 여신 복근’의 환상을 팔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인형, 정말 껍질만 만져지고 안이 비었을 것 같은, 그래서 어린아이도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기인형의 느낌을 몸으로 연기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영화가 다이어트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느냐고? 당연히 가능한 일이다. 배두나의 인형처럼 하얗고 가늘고 매끈한 나신을 볼 때, 다이어트가 하고 싶어진다. 물론 그녀는 인형이라서 어떤 것도 먹지 않는다. 그저 씩씩하게 걸을 뿐이다. 걷기가 최선의 다이어트 방법이라는 배두나의 말을 떠올리게 되는 한편, 몇 시간이라도 걸을라치면 자기 전 ‘세븐라이너’로 붓기부터 빼야하는 본인의 현실은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걷기라도 하는 게 낫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인형은 될 수 없겠지만 오늘 저녁 식사의 고기 두 점 정도는 안 먹은 셈 칠 수 있을 것이다. 윤이나
이제는 55도 뚱뚱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다이어터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볼 때 느껴지는 기묘한 위화감은 앤 해서웨이가 <런웨이>와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난 날씬하지 않아요"라고 덧붙일 때부터 시작된다. 누가 봐도 55 사이즈인 그녀가 “66”이라고 말할 때에도 위화감은 계속된다. 그녀보다 당연히 더 살이 쪘음에도 그래도 66이라며 자신을 위안하고 있을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대사가 머지않아 이어짐은 물론이다. “요즘 사이즈로는 77이지.” 55가 되기 위한 66의 거친 다이어트와 그녀가 자신을 따라올까 걱정되는 불안한 44의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다이어트. 영화는 그녀가 할머니 스웨터 대신 브랜드 원피스를 입게 되는 과정을 마치 진정한 나를 잃어가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진정한 나 같은 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살만 빠지면 언젠가 입겠다고 사둔, 그리고 요요라는 괴물을 만나기 전 짧은 다이어트 성공 때 사둔 두 사이즈는 작은 청바지를, 가차 없이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윤이나
아이스크림 한 스푼, 술 한 모금 <투어리스트>
안젤리나 졸리가 정신 나간 위험한 여자에서 지금의 섹시스타가 된 데에는 다이어트도 한 몫 한다. 채식 식단과 레몬 디톡스 등 극단적인 식이 제한으로 얻은 그녀의 깡마른 몸은 <툼레이더>(2001) <미스터&미세스 스미스>(2005)를 거쳐 한층 더 말라갔고, 마른 여자 특유의 예민한 우아함을 가지게 됐다. 경찰이든, 스파이든, 웨이터든 남자라면 모두가 넋을 넣을 수밖에 없는 <투어리스트>(2010)의 신비로운 여인에 그녀가 낙점된 것은 당연한 일. 집 앞 카페에 아침을 먹으러 갈 때도 스틸레토 힐에 장갑, 클러치까지 성장하는 졸리는 좋은 것을 아주 조금만 맛볼 뿐이다. 아이스크림은 핥듯이 한 스푼 떠먹고, 주문한 크루아상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입술을 적시듯 칵테일 한 모금을 넘기는 졸리는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숭고한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졸리는 가는 팔과 손가락으로 먹는 행위가 이렇게 기품 있게 보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다들 깨달았을 거다. 그녀의 옷장을 가득 채운 드레스며 주얼리들을 속절없이 부러워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자세히 보면 모두 마른 몸에 걸치지 않으면 눈부시지 않은 것들뿐이니 그녀 또한 먹는 것을 삼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지혜
옷보다 몸무게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다이어트를 결심한 여자들의 컴퓨터 바탕화면이나 스마트폰 사진 폴더에서 꼭 빠지지 않는 이름, 샬롯 갱스부르. 그녀는 세기의 아이콘인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딸이자 프랑스의 대표 배우이며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다. <안티 크라이스트>(2011) <님포매니악>처럼 논쟁적인 최근작에 비해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2007)은 그녀의 작품 중 드물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특히 뭘 걸쳐도 시크한 몸으로 많은 여성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는데, 사실 발렌시아가의 밀리터리 롱재킷이나 스웨이드 롱부츠는 그녀처럼 앞, 뒤, 옆 구분 없는 여린 몸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꿈꿔선 안 되는 악마의 아이템이다. 결국 여자들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롱부츠나 청바지라기보다는 롱부츠 안에 청바지를 밀어 넣어도 한 줌이 될까 말까한 그녀의 다리였다! 아무리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한밤중에 아무 죄책감 없이 피자를 먹고, 맥주를 들이켜도 붓지 않는 그 다리 말이다. 그러니까 손님, 이건 샬롯 갱스부르잖아요. 이지혜